시즈오카(しずおか) 가을풍경(6) : 만들어진 자연, 일본정원의 철학
‘창세기’에는 창조주가 인간을 지은 다음 첫 번째로 행한 일이 동방의 에덴에 정원(동산)을 만든 것이다. 그런 후 그 지은 사람을 거기에 두고, 그 정원에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를 나게 하셨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를 보면 인간이 쉼을 얻고 거주해야할 공간은 나무로 둘러싸인 정원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에덴동산을 가지는 것은 고대로부터 사람들이 추구하는 이상향(理想鄕)이었다. 고대 7대 불가사의로 불리는 바빌론의 공중정원이 그러하다. 네부카드네자르 2세는 사랑하는 아내 아미티스 왕후를 위해 아내의 고향을 닮은 공중정원을 건설했는데, 이는 아미티스가 산으로 둘러싸인 자신의 고향과는 달리 평야 한가운데 위치한 바빌론의 삶에 지쳐 향수병을 앓았기 때문이다. 그 공중정원은 아미티스의 고향 메디아사람들의 천국의 이미지인, ‘푸른 나무와 풀로 이루어져 있고 온갖 과일이 열려 있으며 꿀과 물이 흐르는 연못’을 그대로 묘사해놓은 것이다. 결국 정원이란, 멀리 있는 ‘자연’을 불러와 가까운 곳에 ‘또 다른 자연’을 만드는 인간의 예술이므로, 만들어진 자연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정원은 인간정신에 가장 좋은 청량제이며 원예는 최상의 예술이다‘라고 한 프란시스 베이컨의 말에 수긍이 간다.
세상에는 아름다운 정원들이 많다. 그 중 오래 전에 가보았던 세계10대 정원을 꼽아보면, 네덜란드 코이켄호프(Keukenhof)의 튤립정원,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 정원(Garden of Versailles), 영국런던의 큐 가든(Kew Garden), 스페인 그라나다 알람브라궁전의 헤네랄리페(Generalife)정원 등이다. 우리나라에도 왕의 정원이었던 창덕궁 후원인 비원의 부용정 등의 유려한 곡선의 건축미와 부용지 물위에 비치는 나무들과 가을단풍과의 조화는 우리의 정서에 맞는 아름다운 풍경이다.
한편 일본사람들의 정원은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는 예술품을 보는 듯하다. 정원과 풍경의 완벽한 조화를 위해 돌 하나, 나무 한 그루, 풀 한포기, 어느 것 하나 아무렇게나 놓인 것이 없다. 그들의 위치에는 의미가 존재한다. 그리하여 마치 강박증을 가진 자들이 다듬어 놓은 것처럼 자로 잰 듯한 정원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답답하게 느껴질 수가 있다. 시마네 현(島根縣) 야스기 시(安来市)의 아다치(あだち)미술관의 정원은 일본 최고의 정원이라고 한다. 1970년 아다치 젠코(足立全康)라는 개인 사업가가 개관한 미술관인데, 실내에서 전시회를 관람 하듯, 한곳에 앉아 마치 액자에 담긴 그림을 보듯, 모든 정원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이곳에는 일본정원의 바탕이 되는 차경(借景)기법(경치를 빌린다는 뜻으로 산이나 자연물을 정원의 배경으로 는 기법이다.)을 볼 수 있다. 그 중 봄을 상징하는 고산수정(枯山水庭)은 물을 사용하지 않고, 물을 표현하는 정원으로, 정원의 바닥에 모래를 깔고 물의 파문을 그려 표현하기도 하고, 돌을 쌓아올려 폭포를 만든 다음 그 아래에 모래를 깔아서 흐르는 물을 상징하기도 한다. 다듬은 나무를 심고 산을 바위로 대치시켜 산이나 섬을 연상시킨다. 이런 고산수정을 몇 년 전 미국동부 메인 주 아카디아의 ‘아스티코우 진달래가든’(Asticou Azalea Garden)이라는 일본정원에서 보았는데, 그 때는 모래와 돌과 나무와 꽃이 조금은 어울리지 않게 느껴졌다. 그 다음은 여름의 백사청송정(白砂靑松庭)으로, 요꼬야마 다이칸 (橫山大觀,よこやまたいかん)의 명작인 ‘백사청송’의 분위기를 섬세하게 표현하여, 나무 그늘 사이로 보이는 하얀 모래와 검은 소나무 그리고 나지막한 동산이 무척 인상적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끼정원인 태정 (苔庭)으로 희미한 빛이 스며들면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소나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마치 교토 풍의 우아한 풍경을 보는 듯하며, 정원에서는 으레 등장하는 연못정원인 지정(池庭)의 아름다움도 그러하다고 한다.
우리가 머물던 하마마쓰 시(浜松市)에는 4월초이면 꽃 공원(Flower park)과 정원공원(Garden Park)의 풍경도 유명하다고 한다. 이곳에도 국가가 지정한 아름다운 정원이 있다. 여행 둘째 날, 2017년 NHK 대하드라마에 등장한 일본의 유일한 여자성주 이이나오토라(井伊直虎)의 무덤과 가족무덤 그리고 가신들이 묻혀있는 용담사(龍潭寺)가 그곳이다. 드라마의 주인공인 이이나오토라(井伊直虎)의 가문은 현재 하마마쓰지역의 ‘이이노라’라는 곳에 약 15개의 성을 가진 지방영주였다. 복잡한 가문의 문제와 전쟁의 와중에서 이니나오토라는 성주가 되었고, 대적 관계에 있는 가문에 의해 위협을 받았으나,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새 주군으로 선택하여 옛 영지를 회복하고, 공식적으로 도쿠가와 가의 가신이 되어 가문을 지킬 수 있었다는 이야기이다. 이제 계단 길을 따라 올라가면 울창한 나무들이 둘러있고, 일주문 같은 문에는 만송산(萬松山)이란 현판이 걸려있다. 자진해서 우리를 따라 온 해설사 할머니의 설명에 의하면, 막부의 쇼군이 바뀌게 되면 조선에서 통신사가 파견되어 오는데, 이곳 용담사(龍潭寺)가 조선통신사가 묵는 숙소로 사용되며, 여기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현판의 글씨는 어느 조선통신사의 작품이라고 한국에서 온 우리들에게 관심을 보이며 친절하게 설명했다. 절은 깔끔하게 유지되었다. 목재사찰을 관리하는 것이 보통일이 아닐 것이다. 여자들이 걸레로 힘들게 마루를 닦고 있었다. 사찰경내는 나무와 가을꽃으로 덮여 있었다. 그런데 이게 모두가 아니었다. 본당 뒤로 들어가자 신천지가 전개되었다. 고보리 엔슈(小掘遠州)라는 정원 디자이너가 만든 그리 넓지 않은 일본정원이 약간 경사진 언덕에 경이로운 모습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정원 뒤 언덕에는 울창한 숲이 배경이 되어 본시의 ‘자연’을 이루고, 또 다른 ‘만들어진 자연’이 돌과 낮은 나무와 정교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아래에는 작은 연못이 정갈하게 흐르고 있었다. 본당 툇마루에 방석이 준비되어있어 누구나 그곳에 앉아 무념무상의(無念無想)의 경지에 빠질 수 있게 해놓았다. 돌 하나 나무하나 어느 것도 그저 놓여 진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러할 때 비가 조금씩 내리면 더욱 어울리는 풍경이 될 것이다. 처마 끝에서, 나무와 돌 그리고 연못에까지 빗물이 뚝뚝 떨어지면 머리와 마음은 더욱 명징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 때 차 한 잔으로 은은한 향기를 매우 느리게 음미한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문득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일본기행’이 생각났다. 그는 1935년 이집트 포트사이드에서 선편(船便)으로 일본을 여행하였다. 그가 교토의 중심지에 위치한 혼간사(本願寺)의 작은 정원에서, 정원지기 승려로부터 일본정원에 대한 설명을 들은 내용은 다음과 같다. 다소 지루하더라도 일본정원을 이해하기 위해 그 일부를 들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예전의 정원사들은 우리가 작곡하는 것처럼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난해하면서도 복잡하고, 그러면서도 위대한 예술작품을 창조한 것이지요. 초기의 정원사들은 승려들이었고 중국으로 부터 기술을 들여왔습니다. 그 후에 다도(茶道)의 위대한 스승들이 이 기술을 전수받았습니다. 다음에는 시인과 화가들이 이 일을 맡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전문 정원사들이 태어났습니다.
모든 정원들은 각각 뜻을 지니고 추상적인 관념을 나타내야 합니다. 예를 들면 평안, 순수, 야성, 긍지, 영웅적인 장엄함 등입니다. 이 관념의 주인의 혼(魂)뿐 아니라 가문 또는 종족의 혼과도 상응해야 합니다. 개인의 가치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간적인 것입니다. 그에 반해 정원은 여느 예술품같이 영원성을 구비해야 합니다.
어떤 승려가 작은 정원에서 신의 전능함을 새겼습니다. 어떻게 했겠습니까? 심원한 감수성을 발휘하여 바위들을 여기저기 불규칙적으로 기울게 놓았습니다. 그는 불교적 전통으로 이 생각을 따왔습니다. 승려 다이치가 언젠가 언덕에 올라가서 설법을 시작했습니다. 전설에 따르면 돌들이 점차 이끼로 인해 황색으로 덮이고 예불이라도 하는 듯 머리를 숙였답니다.
유명한 정원 중에는 나무 한 구루나 꽃 한 송이 없이 오직 돌만으로 조성된 것들도 있습니다.
돌과 말라 버린 시내, 물 한 방울 없이 모래만 있는 폭포 등으로 만들어졌습니다. 이들 돌의 정원들은 장엄한, 야성, 범접할 수 없는 신성 등을 표출합니다. 그리하여 승려는 광야로 물러나는 대신 도시의 한 가운데로 와서 명상이나 구원을 위해 필요한 사막을 만납니다.
또한 나무와 물과 상록수로 꾸며진 정원들도 있습니다. 이것은 수도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감미로운 삶을 즐기는 속세의 대중들을 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의 정원들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자니와(茶庭)>라고 부르는 차의 정원들입니다. 이 정원은 다해(茶會)가 열리는 작은 방과 통합니다. 그 정원을 통해 투사하고자하는 감정은 고립감, 망상, 시끄러운 속세로부터 해방 등입니다. 이 작고 신성한 정원에 들어가면 가을날의 황혼녘에 속세를 멀리 떠나 황량한 바닷가에 온 듯이 느껴집니다. 고독감을 투사하기 위해 정원에서 이끼를 길러 나무 둥지와 바위에 입힙니다.‘
이쯤 되면, 일본의 정원과 다도(茶道)가 생활이기 전에 철학과 종교의 경지에 도달하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날 용담사(龍潭寺) 뒤 켠 정원을 보며 일본과 일본인에 관해 많은 것을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