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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중고32·25회
 
 
 
카페 게시글
…… 이야기*쉼터 스크랩 법과 인생
봉곡 강영권 추천 0 조회 102 08.06.23 17:22 댓글 3
게시글 본문내용
 

法과 人生

                           -고 김원치 검사장님을 추억하며

- 이 글은 김원치 검사장님 별세후 명복을 비는 글을 올린바 있는데, 그 분이 유작처럼 남기고 간 법과인생이라는 책을 읽고, 그 독후감도 겸해서 수정판으로 다시 올립니다.


많은 사람이 꿈을 말하고 노래했단다. 황진이의 꿈은 사랑하는 임을 만나는 꿈이요, 마틴 루터 킹 목사의 꿈은 흑인과 백인이 공존하는 세상이란다.

그분의 꿈은 소설 돈키호테를 극화한 데일 와서만의 뮤지컬 <라만차의 사나이>에 나오는‘이룰 수 없는 꿈’이라고 했다.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이겨낼 수 없는 적과 싸우며

감당해 낼 수 없는 슬픔을 견뎌내고

용맹한 자도 가기를 꺼리는 곳으로 달려가는 것


부정한 악을 바로잡고

멀고 먼 순수와 순결을 사랑하며

지쳐 쓰러지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닿을 수 없는 별에 닿는 것


이것이 저 별을 좇기 위하여 내가 바라는 것

아무리 절망적이고 아무리 멀지라도

정의를 위하여 싸우고

의심하거나 머뭇거림 없이

저 거룩한 대의를 위하여

행진하고 지옥 속으로라도 기꺼이 행진하는 것


대부분 사람이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기 위하여 살지만, 그것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더라도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라만차의 사나이가 이야기 하고 있다고 했다.

그분은 2007년 여름휴가를 돈키호테와 함께 보내며, 그동안 겪었던 잊혀진 시간 속의 초상에 픽션이긴 하지만, 그 누구보다 충직한 산초 판자를 종자로 거느리고 비록 이룰 수 없지만, 그 꿈을 실현하기 위하여 험난한 여정의 길에 오른 편력기사, 라만차의 그 위풍당당한 사나이의 초상을 그려 넣고 싶었단다.

그렇게 책의 마지막 페이지가 노을처럼 졌다.


동대구발 서울 행 KTX가 조금 후 서울 역에 도착한다고 멘트가 나올 무렵, 나는 숨차게 읽었던 책을 덮었다.

유작처럼 되어 버린, 그 분이 최근에 출판한 책을 덮으면서, 산초판자를 종자로 거느리고 꿈을 실현하기 위해 험난한 여정의 길에 오른 그분을 추억했다.

그리고 기원했다. 라만차의 위풍당당한 사나이로 저승에서나마 꿈을 꼭 실현하시길 빌었다.


그 책은 法과 人生(기파랑출판사)이다. 법률가로 평생을 살아오신 분께서 어린 시절부터 소년기, 청년기, 장년기, 노년기를 오롯이 회고하고 있고, 그 과정에 겪었고, 고민했던, 방황했던 인생의 모습들을 흑백 영화처럼 가감 없이 드러내 보여주고 있었다.

그 책이 구체적인 것은 우리의 기억에도 선명한 실화들을 나직한 목소리로 들려 주고 있다는 것이고, 또한 나도 아는 수많은 검사들의 이름도 보였다는 점이다. 

정태균, 김경회, 문종수, 김석휘, 김기춘, 박태종, 신상규 검사장님과 같은 검찰의 선배들에서부터 노환균 검사장, 강경필, 황병돈, 김오수, 이상호, 최윤희, 김영준, 박계현, 이지원등의 검사에 이르기까지.....

내가 알고 있는 그 검사들과, 그분이 알고 있는 그 검사들이 어떻게 달리 비춰졌는지 견주어봤으나, 보는 눈은 대체로 유사해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책 내용 중 눈길이 오래가고 깊이 생각하게 했으며, 현재도 진행형이기에 검사들이 명심해야 할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공정성이야말로 검사가 가져야 할 제1의 덕목임에 틀림없다. 왜냐하면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국가만이 물리적 폭력을 합법적으로 독점하고 있는데, 그 형벌의 사용이 공정하지 못하면 그것은 정당성을 잃게 되기 때문이다.

또한 검찰의 공정성은 정치로부터의 독립뿐만 아니라 여론으로부터의 독립도 의미한다.

예컨대 검찰의 위상에 대한 검사들의 자부심이 지나칠 경우, 정치인이 관련된 수사 때마다 수사 활동을 전체 검찰의 위상에 결부시키려는 지나친 공명심을 낳게 할 우려가 있다.

즉, 수사대상을 거물급 정치인으로 해야 하는 강박관념 때문에 이른바 권력 실세에 대한 표적수사 시비가 생길 우려가 있고, 거물이 아니면 수사에 착수하지 않기 때문에 수사 활동의 장기간 공백이라는 이중의 부작용을 낳을 우려마저 있다.


그 책에서는 과분하게도 날 글벗이라고 지칭하면서, 내 이름도 거명하고 있었다.


먼 훗날 제주의 대자연을 벗 삼아서 혹은 내 고향의 유명한 지귀도 자리돔을 술안주로 하여 위미리 벌러니 코지 방파제에서 그(전 전주노송병원 원장 천희두 박사)와 마주할 날을 기대해 본다.

술자리에 검찰후배이자 문우인 강영권 부장검사를 동석시킬 것이다. 산과 부처, 시와 여행, 해탈과 초월로 요약 될 수 있는 그의 저서 <웃어라 인생아>에 인용되어 있는 기타하라 하쿠슈우(北原白秋)의 시 <세월은 가네>를 짭짤한 바다 내와 함께 음미하고 싶어서이다.


세월은 가네. 붉은 증기선의 뱃전이 지나가듯

곡물창고에 번득이는 석양빛

검은 고양이의 아름다운 귀울림 소리처럼

세월은 가네. 어느 곁엔가, 부드러운 그늘 드리우며 가네

세월은 가네. 붉은 증기선의 뱃전이 지나가듯


몇 잔의 술에 기분이 무르익으면, 아마도 천 박사는 우리가 애걸하지 않아도 스스로 흥에 겨워 자신이 직접 북을 치며, 그가 좋아하는 <사철가>를 부를 것이다.

그 노래의 가사처럼‘세월은 가지 못하도록 붙들어 매놓고 나라 곡식 도둑질 하는 놈, 불효하고 형제 화목 못하는 놈은 저 세상으로 보내버린 다음 한잔 더 먹소, 덜 먹게’하면서 서로 소주잔을 기울일 것이다. 이제 그날이 오기를 기다려본다.


이 부분을 읽을 때, 그분과 나는 저승과 이승으로 갈라져, 이제 그럴 날이 없게 되었구나 싶으니 인생이 무상하기도 했지만, 엄숙해지기도 했다.

저자의 인생관과 직업관, 세계관이 오롯이 담겨있는 책을 읽다가 가슴에 묵직하게 돌멩이가 얹혀진 느낌이 들 땐, 여러 번 차창 밖을 보면서 회억(回憶)에 잠기곤 했다. 


사실, 그분이 검찰에 재직 중이실 때는 직접 모신 적은 없었다.

다만 그분께서 대검찰청 형사부장으로 재직하고 계실 때, 그 분이 쓰신 책,“시간의 모래밭 위에서....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를 읽고, 검사게시판에 독후감을 올린 적이 있었다.


내가 쓴 그 글에 대해, 그 분께서는 내게 전화를 주셔서 책 잘 읽어줘서 고맙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게 인연이 되어 퇴직하신 후, 그 분을 비롯한 몇몇 검찰선배였던 변호사님들과 자리를 함께 하곤 했다.


그분은 나직하고 울림이 좋은 음성으로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셨으며, 보수주의적 시각에서 세상 걱정을 많이 하시곤 했고, 나도 물론 그 분의 견해에 전적으로 공감을 했었다.


그리고 외람되게도 내가 작년에“웃어라 인생아”라는 책을 내면서 그분께 짧은 추천의 글을 부탁했었다. 그러자 그분은 진심으로 축하한다면서 이런 추천의 글을 보내주셨다.


그는 내가 검찰 현직에 있을 때 쓴, 몇 편의 글에 대한 분에 넘친 격려와 응원으로 나를 감동하게 한 검찰 후배이다. 그는 매우 긍정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이고, 약자에게 더욱 따뜻한 그런 사람이다. 그는 배려로, 겸손으로, 때로 유머로 주위 사람들에게 잔잔한 웃음을 건네주고, 누구보다 검사다운 검사의 모습을 보여주는 참 검찰인이다. 책은 글쓴이의 인격 그 자체라고 한다. 이제 성실하게 살아온 한 사람의 인생을 책으로 만날 수 있어서 기쁘다. 그의 글을 읽다보면 삶은 진실된 글로 살아나, 읽는 이에게 깊은 감동을 준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지금에 와서 새롭게 그 추천사를 읽다보니, 정말 과분한 추천의 글을 보내 주셨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 후, 간혹 전화로 안부전화가 오고가긴 했지만, 내가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다 보니, 뵙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지난 5. 23. 아침 신문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그분이 향년 65세를 일기로 급성간경화로 돌아가셨다는 거다. 나는 뒷통수를 세게 맞은 것처럼 한동안 멍했다.

별로 술도 즐겨하지 않으셨는데, 웬 간경화인가 싶어 놀랬다.

그분 살아생전에 내가 전화 드려, 책 출판을 기념하고, 또 추천사 써준 데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저녁을 한번 모시고 싶다고 말씀만 드리고 말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만나야 할 사람은 생각이 났을 때, 바로바로 만났어야하는데 후회막급이었다.


5. 24. 토요일 12시에 발인이라고 하므로 8시 반, 아침 일찍 빈소를 찾았다.

빈소에는, 미국으로 유학 가 있다는 젊은 아들 한사람이 상청을 지키고 있었다. 너무 쓸쓸하고 적막했다.

이제 이승과 저승으로 나뉘는 것을 슬퍼하며, 무릎 꿇고 절을 마치고 올려다보니 언제나 그랬듯이 온화한 미소로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상주와 인사를 하고 나서자, 뒤따라 그분의 동서되신다는 분이 차라도 한잔 하고 가라고 권했다.

차만 마시고 가기에는 뭔가 허전하여, 아무도 없어 텅 빈 접객실에 동서되는 분과 마주 앉아 캔 맥주 하나를 달라고 했다.

그분이 왜 갑자기 돌아가셨는지 물었다.

옛날부터 간이 안 좋아 경주지청장 시절에 술을 끊다시피하고, 부지런히 요양한 결과, 많이 호전됐었다고 했다.

그런데 작년 말부터 몸이 좋지 않아 조심을 많이 했는데, 악화되어 돌아가시고 말았다고 무척 아쉬워하는 목소리로 이야기했다.

12시에 발인하여 화장을 한 다음, 고향 제주로 모시고 갈 거라고 했다.

이야기를 듣고 있는 중간 중간, 자꾸 목이 말라 맥주를 홀짝 거렸다. 겨우 맥주 한 캔을 마셨는데, 자꾸만 눈이 침침해졌다.

동서되시는 분과 인사를 하고 영안실을 빠져 나오면서, 다시 그분의 영정을 바라봤다.

그분은 여전히 온화한 웃음을 짓고 계셨다.


밖으로 나가자, 강남성모병원 위 푸른 하늘에는 변함없이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고, 도로변에는 수많은 사람이 걷고 있었으며, 차들은 바삐바삐 움직이고들 있었다.


이제, 그 분을 떠나보내고, 그분을 존경했고 좋아했던 후학의 한사람으로, 그 분의 유작이 되고만 책을 덮고 그 분과 짧게 맺었지만, 튼튼하게 지었던 인연의 다리를 건너고 또 건넌다.


그분, 김원치 검사장님께서 유작처럼 남기고 간 책, 법과 인생에서 세상과의 영원한 이별을 예감했기에 책 마지막에 라만차의 사나이의 <이룰 수 없는 꿈>을 인용하고, 책 처음에 이런 시를 인용하지 않았을까 싶어지는 시, 김순이 시인의 <제주야행(濟州夜行), 가을>을 슬픈 마음으로 읊어본다.


나는 떠날 것이다.

사라센인의 단검 같은

초승달을 벗 삼아서

한 마리 타박거리는 조랑말

등에 얹혀서


나는 지날 것이다.

중산간 마을의 베개맡을

아름드리 멀구슬나무 아래를

억새꽃 피어 뽀얀 젖가슴 이룬

오름의 능선을


어느 여름날 밤, 난 서귀포 위미리 벌러니 코지 방파제에서 지귀도 자리돔을 안주삼아 쐬주잔을 홀짝거리며, 김원치 검사장님의 넋을 위로할 것이다.

편력기사, 라만차의 그 위풍당당한 사나이의 모습을 하고, 제주도 오름의 능선을 지나고 있는 그분을 추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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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6.23 20:35

    첫댓글 .. 아름답네..

  • 08.06.24 09:58

    <법과 인생> <웃어라 인생아> 그리고 돈키호테. 이후로 내 생각은 갈 길을 잃었다.

  • 08.06.24 15:51

    고인은 행복하고 인생을 참 잘 살다가 가신 분일세 저승간 이를 이승에서 이렇게 그리워하고 슬퍼해주는 사람이 있쓰니 말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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