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천의 최북단에는 상서면이라는 지역이 있다.
직접 북한과 맞닿지는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직접 총을 맞댄 최전방 중의 최전방이다.
이 지역에는 어떤 마을이던 항상 군부대가 하나씩은 끼어있을 만큼,
지역 주민보다 군인 수가 많은 지역으로 꼽힌다.
여기에서 복무하는 군인 대다수는 나라의 부름을 받은 장병이다.
당연히 그들의 집은 화천이 아닌 전국 각지로 흩어져 있다.
따라서 이들을 외부로 실어 나를 대중교통이 반드시 필요했고,
이러한 이유로 상서면의 중심지인 산양리에는 간이터미널이 들어섰다.
이름하여 산양리터미널이라 불리는 이 조그마한 터미널은,
버스터미널이자 군인들의 쉼터이자 문화 공간으로까지 사용되어
간이터미널이면서 복합 시설로 운영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독특한 매력이 있는 이곳은 어떻게 생겼을지, 기대를 가득 안고 출발해본다.
육단리를 다 구경한 후, 5번 국도를 타고 산양리로 넘어왔다.
원래 계획은 육단리에서 일정을 마치는 것이었지만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이전에 가보지 못했던 산양리를 한번 구경해보기로 했다.
2011년에도 화천에 온 적은 있었지만 그때는 다목리를 통해 넘어갔었다.
그래서 산양리를 언젠가는 와보고자 했고, 민통선 구간인 말고개를 넘고 싶기도 했기에,
마침 근처로 온 김에 즉흥적으로 결정을 내렸다.
검문을 받고 민통선의 험한 말고개를 넘는 과정은 긴장이 되면서도 즐거운 경험이었다.
산양리에 들어오자 조그마한 시네마 건물이 보였는데,
이 조그만 마을에도 영화관이 있다는 게 너무나도 신기했다.
영화관을 지나자마자 오른 편에 터미널이 나와 차를 세우고 구경을 시작했다.
산양리터미널을 눈으로 직접 본 것은 처음이었는데,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 전형적인 시골 간이터미널의 모습이었다.
중간의 주차장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건물이, 오른쪽에는 대기실이 눈에 띄었다.
마침 강원고속 차량 한 대가 잠시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건물은 무척 작지만 지붕이 특이해서 개성이 뚜렷하다.
허나 건물 자체보다 더 눈에 띄는 것은 코인노래방이었다.
매표소 바로 옆에 코인노래방이 자리를 잡고 있었는데,
실제로 들어가 보니 원래 대합실로 쓰이던 공간을 코인노래방으로 개조한 것 같았다.
반대편에는 용사의 집이라는 군장점이 나란히 자리를 잡고 있는데,
군장점이 왜 있는지는 말 할 것도 없고 노래방에도 군인들의 소리가 들리는 것을 보아,
누가 봐도 최전방 터미널이라는 것이 팍팍 티가 난다.
원체 깊은 산속에 있기 때문인지 국도 바로 옆인데도 높은 산이 시야를 가로막으며,
이 조그마한 마을에도 버스가 주차를 하는 것을 보아 여기까지만 운행하는 노선이 있는 것 같다.
승차장이 반밀폐형 칸막이로 되어있는데, 바로 옆에 흡연실이 있는 것도 특이했다.
담배 연기가 칸막이 안으로 다 들어갈 텐데...
흡연장을 개조해서 승차장으로 쓰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터미널이 워낙 작다 보니 벌써 모든 시설을 다 둘러보았고, 이제는 시간표를 볼 차례다.
시간표는 심플하다 못해 단조로워서 시외버스, 시내버스 모두 노선이 하나씩만 있다.
시외버스는 동서울행, 시내버스는 화천-마현리를 오가는 노선이 유일하다.
동서울행은 하루 8회 있는데, 워낙 규모가 작은 동네니 이 정도 횟수는 당연하다.
횟수보다 눈에 띄는 특징은 경로이다.
당연히 화천에서 연장 운행하는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와수리에서 연장 운행한다.
심지어 와수리 사이의 중간 정류장이 38연대와 15초소로 나오는데,
5번 국도(말고개)를 넘는 걸로 보아 민통선 안쪽 정류장으로 추측된다.
이곳에 들어오는 시내버스는 7번이 유일하다.
물론 모든 노선이 똑같이 운행하지는 않고 시간대에 따라 조금씩 다르기는 하나,
화천-마현리(말고개)를 운행하는 노선의 중간 정류장으로 운영된다.
하루 18회, 약 1시간에 한 대꼴로 비교적 자주 있어서 지역 주민에겐 생활 터전으로,
군인들에겐 외박 전용 버스로 유용하게 사용될 것이다.
동서울행 시간대가 맞지 않으면 화천으로 가는 대체재로도 이용할 수 있다.
코인노래방 쪽 대합실에도 똑같은 시간표가 그대로 걸려있다.
원래는 인천행이 하루 2회 운행되고 있었으나 최근에 폐지된 것으로 보이며,
시내버스-마현리 시간표에 민통선 부대가 고스란히 노출된 게 정말 특이하다.
워낙 외진 곳이라 이렇게라도 안내를 하지 않으면 안 돼서 그런 건가 싶다.
시간표가 단순한 만큼 요금표도 너무나 단순하다.
옆 동네 와수리까지 3,600원, 일동 8,000원, 동서울 14,500원으로
국도 요율이 엄청나게 비싸다는 것이 다시 한번 느껴지는 순간이다.
시내버스도 요금 단일화가 되지 않아서 화천까지 2,450원을 받는다.
조만간 요금이 또 오른다는 소식이 들리는데,
여기서 더 오르면 군인들의 부담이 더 심해질 것 같다는 걱정이 앞선다.
시간표를 다 찍고 승차장으로 다시 나오니 바로 앞에 편의점과 카페가 보였다.
육단리에서는 볼 수 없었던 편의 시설이 우후죽순 보이니 사람 냄새가 물씬 느껴진다.
나라를 지키기 위해 고생하는 군인들을 위한 편의 시설이 곳곳에 눈에 띄고,
버스터미널 전체가 문화 공간으로 사용되는 산양리터미널은
여태껏 다녔던 터미널 중에서도 꽤나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곳을 떠난 뒤 시간이 한참 흘러도 기억이 날 것 같은, 짧지만 강력한 만남이었다.
첫댓글 제가 근무했던 곳이네요. 지금부터 23년 전이네요.
이곳은 7사단 보병, 포병, 15사단 보병, 포병, 27사단 포병, 2포여단 포병등이 곳곳에 산재해 있는 지역이지요.
23년전에는 와수리로 넘어가는 노선이 아니었고, 동서울 - 춘천- 화천 -산양리 노선이었습니다.
시내버스는 화천출발 - 산양리 경유 - 말고개 38연대까지 운행했었구요.
여기서 불과 3킬로 전방에 민통선입니다. 길이 많아져서 그런지 와수리로 가는 것이 더 빠른 모양이군요.
두번인가 말고개를 넘어 서울로 가본 적이 있긴한데, 주로 춘천으로 나와서 서울로 갔었습니다.
터미널 시설은 달라졌지만 위치는 그대로네요.
다시 한번 가보고 싶습니다.~
소식 잘 봤네요 감사해요
90년대에 이곳에서 군복무를 하셨었군요~
시내버스 경로는 그때나 지금이나 변한게 없는데 시외버스 경로가 바뀐 모양이네요.
민통선 안쪽 군부대의 대중교통 필요성 + 와수리 구간 수요 + 화천까지 시내버스 중복이 되니
지금 생각해보면 잘 바꿨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다만 서울까지 경로는 춘천쪽이 좀 더 빠르긴 하더군요.
그 당시의 산양리터미널은 어떻게 생겼을지 궁금해지네요. ^^
테클은 아니고요, 춘천,화천경유 산양리노선은 상봉에서만 있었을뿐
동서울에서는 운행하지않았습니다.
@스몰우드 오래전이라 기억이 가물하네요.
여튼 북쪽으로 가는 노선은 시내버스 38연대 말고개가 종점,
시외버스 직행은 없었고요.
산양리에서 상봉으로 가는 노선은 없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아요.
96.3~98.9까지 근무했었는데요.
산양리에서 화천나갈때는 시내버스를 타고 나가서 화천읍에서 동서울로 가곤 했었습니다. ^^
상봉? 잘 기억이 안 나네요. 관심이 없어서 일수도 있습니다.
@도룡님 저는 92년초부터 93년말까지 화천근무했어요
춘천-동서울행이 생긴게 정확친않지만 90-91년정도쯤이고
화천-동서울행은 제가 화천에서 나오기 몇달전에 1일 5회생겼는데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서 화천에서 나올때는 타본적이 없고,
동서울에서는 오후 5시정도에 막차가 있어서 두번정도 탄 것 같아요.
동서울행이 생기면서 수요가 급격히 동서울로 쏠리면서
상봉행은 꾸준히 감차되고 동서울행은 증차가 되었을거예요.
동서울발 화천행은 꾸준히 증차가되었지만 지금까지도 화천행이 산양리까지는 연장되지않았고
저도 상봉-화천,산양리행이 폐선된 정확한 시기는 모르겠네요.
많이 변했네요 산양리 예전엔 사방거리로 불린적도 있습니다 1989년 마현리에 적근산 부대에 근무할때 이곳을 통해 부대복귀한 기억이 나네요 잘봤습니다
예전엔 사방거리로 불렸었군요~ 처음 듣는 재밌는 이름이네요.. ^^
맞아요, 사방거리라고 불렀죠. ㅎㅎㅎ
15사단에서 근무하셨나 보네요. 전 91년 ~ 93년 근무하면서 적근산 중대에 있다가 철책으로 바로 대대교체 되었는데... 초소 나오자마자 버스정류장이 있었고 그거타면 화천 춘천 지나서 서울왔던 기억이 나네요.. 사방거리란 지명 오랜만에 들어보니 정겹네요 ㅎㅎ. 그때 버스회사는 삼용인거 같은데 기억이 가물가물하네요^^
@난프로다 마현리 적근산 중대있을때가 1989년이였고요 1990년 Gop거쳐 중고개 예상동 부대에서 근무 1991년 2월 전역했습니다 지금은 4대대가 없어졌다는데 ㅠ 아쉽네요
상봉시절, 그리고 강원,진흥(삼용이었다가 진흥으로 사명변경) 합병되지않았을때 상봉-춘천-화천까지오는버스중 화천 종착은 별로 없었고 대부분이 산양리가 종점이었어요.
특이한것은 인천버스매니아님의 말처럼, 강원은 산양리, 진흥은 사방거리란 행선판을 달고 다녔고
바로옆이지만 종점도 매표소도 따로였고 사방거리란 말을 더 많이 들었어요.
동서울출발노선이 생기면서 화천까지만 운행을하고, 화천경유 산양리는 계속 상봉에서만 다니다가 폐선됐고
제가 군생활 한 92년-94년에도 화천에서 동서울행보다 상봉행이 두배정도 많았죠.
동서울에선 오랫동안 노선이 안생기다가 와수리 연장선으로 한대한대 늘리더니 어느새 8대까지 됐네요.
동서울에서 춘천경유 양구행은 춘천까지 무정차로 가는데
화천행은 대성리, 청평,가평,강촌경유하는 완행으로 다니더군요.
현재 화천완행이 그대로 산양리까지 연장한다해도 27년전 소요시간(3시간 이상)에서 하나도 안줄어들것같네요.
와수리터미널과 산양리 터미널 시간표를 비교하니 와수리에서 동서울행중 오전에 무정차4회가 있었는데
이차들이 산양리에서 출발하는 차량인것 같네요.
산양리에서 서울나갈때 거리도 멀고 중간 경유지도 많고 국도요율로 요금도 비싸니,
장병들 휴가나가는 오전시간에 무정차 배차들로 빨리라도 데려다 주려는 배려라도 있어서 좋네요.
개인적으론 산양리 터미널 올리신게 가장 반가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스몰우드님의 상세한 설명을 들으니 제가 그 당시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종점과 매표소가 강원 / 진흥이 각각 따로 있었다거나 사방거리라는 이름은 처음 듣네요.
2000년대까지만 해도 이 일대에서 상봉행이 참 많았는데 죄다 없어진게 참 아쉽습니다.
정말 귀한 말씀 잘 들었어요 :)
당시 시내버스행선판도 사방거리로 달고다녔고 화천시내버스터미널 시간표에도 사방거리로 안내했어요.
지역사람들도 사방거리라 불렀는데, 솔직히 산양리란 이름은 강원운수 행선판에서만 본 것 같네요,ㅎㅎ.
거창하게 매표소라기보단 인접한 각각의 슈퍼에서 따로 표를 팔았지요.
여담으로 당시 서울-춘천,화천만 따로 떼어놓고봤을때
이 구간을 운행하는 두 회사의 운행비율은 진흥이 더 많았지요.
훗날 강원운수(고속)에 피합병되는 비운을 맛봤지만 사명은 존치되고 있지요.
원래 순우리말 지명이 사방거리였고, 이걸 한자화시킨게 산양리인가 보네요.
당시에는 순우리말로 더 많이 불렸지만 지금은 한자 지명이 정착되서 잊혀져가는 지명이 되고 있군요.
지금은 같은 자회사인 강원 / 진흥 간의 경쟁구도도 흥미롭습니다. ㅎㅎ
@Maximum 그랬군요. 지명이름이 바뀐게 아니라 같은의미의 말이군요.
둘 다 듣고 지냈는데 순우리말과 한자화된 지명인지는 모르고 있었네요.
당시에는 강원운수의 산양리란 행선판을 보면 좀 쌩뚱맞은 느낌이었었죠.
우리보다 더 먼저 복무하신 연장자분들은 사방거리만 아실거예요.
상봉이 쇠락하면서 웬만한 노선은 동서울로 다 넘어왔는데
동서울에서 한동안 산양리(사방거리)행이 보이지않아서
군인수요가 많을텐데 화천환승하도록 바뀌었나 의아해하다가
와수리 연장으로 다니는 것을 처음봤을때는
이 "산양리"가 그 "산양리"가 맞는지 궁금했었지요
아마 사방거리라고 표시됐으면 단박에 알았을텐데..., ㅎㅎ.
진입도로,주변지형 터미널 주변상점 등 원통터미널과 너무비슷하네요ㅎ 경기,강원북부투어까지 부지런하십니다~
원통과 비슷하다는 생각은 안해봤는데 그렇게 느껴질 수도 있겠네요~ ^^
전방 지역이라는 말이 실감이 나는 포스트 내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민통선으로 들어가는 시외버스들이 있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산양리 쪽 노선들이 그 중 하나군요. 개인적으로는 지금까지 올려주신 글에 등장하던 터미널들 중에서 가장 개성이 뚜렷한 곳 같습니다. 사진 속에 잠깐 나오는 태영운수라는 시내버스 업체도 강원고속 자회사인지 궁금해집니다.
저도 인상깊게 본 곳이기는 한데, 다들 말씀하시는걸 보니 임팩트가 강하긴 한가봅니다. ㅎㅎ
최전방 분위기가 아주 강해서 그런 걸까요?
태영운수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부산쪽 업체 아니었던가요?
이쪽은 산천어운수가 운영을 하고 있거든요.
@Maximum 사진 속에 태영운수라고 기재된 행선판이 있었는데 업체명이 잘못 기재된 것 같습니다. 예전에 산천어운수가 태흥운수이던 시절에 붙인 것 같은데 태흥이 태영으로 들어간 것 같네요. 화천터미널 사진을 같이 보고 왔는데 산양리에 오는 7번이 다른 노선들에 비해서도 횟수가 많은걸로 보아 오가는 수요가 적지 않은 듯 합니다.
@왕십리 그러고보니 태흥운수 시절에 인쇄한게 오타가 난것 같네요.
7번이 그나마 화천에서는 가장 배차가 촘촘한 노선이더군요.
시외버스가 민통선을 넘는 경우는 산양리가 유일하죠.
예전에 동서울-산양리-화천-춘천 코스로 돌았네요.
달라진건 버스밖에 없는것 같기도 하고 ㅎㅎ
산양리에서 환승하면 한바퀴 돌면서 시승이 가능하죠 ^^
오지 터미널 기행기는 더욱 귀하게 느껴집니다
저는 사창리서 군생활을해서
다목리 까지만 그때는 가봤어요^^
쉽게 가기 힘든 곳에 대한 갈증이 다들 있으신 모양이에요 ㅎㅎ 다목리도 특색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