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을 앞둔 연인들이 시댁을 향하여 달려가고 있다. 청첩장도 드리고 인사도 드리러 가는 길이다. 잠시 멈춘 휴게소, 화장실을 다녀오면서 간식을 사온 남자(장문호, 이선균 분)의 눈에 여자(강선영, 김민희 분)가 보이지 않는다. 여자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여자는 어디로 갔을까? 왜 사라져 갔을까?
남자의 친구로부터, 은행에 근무하는 친구로부터 전화를 받은 여자가 사라지고 만 것이다. 결혼이고 뭐고 다 팽개친 채 ---.
그녀를 사라지게 만든 은행원(남자 문호의 친구, 동우)의 전화 한 통이 그녀에게 치명타를 날린 것이다.
전화는 조명탄(照明彈)이었다. 하늘 높이에서 터지면서, 환하게 비추어 버린 것이다. 이제 그녀는 정체가 드러날 위기에 처해진 것이고, 그예 그녀는 도망치고 말았던 것이다.
행복한 결혼생활의 꿈은 날아가고 말았다.
문호는 여자를 찾아야 했다. 찾아다니면서 한 겹 한 겹 벗겨지는 양파껍질. 그녀는 강선영이 아니었다. 강선영은 강선영이 아니었다. 그럼 강선영은 어디가고, 그녀는 또 누구란 말인가?
이 풀 수 없는 퍼즐조각을 맞추는 데, 이미 경찰은 신뢰를 잃었다. 전직 경찰인 문호의 외사촌 형(종근, 조성하 분)이 도우미로 나선다.
이제 두 남자는 동상이몽의 길을 나선 것이다.
문호는 잃어버린 여자, 잃어버린 사랑을 찾고 싶은 것이고, 종근은 살인범을 잡고 싶은 것이다.
"조사하면 다 나온다"라는 말처럼, 범인은 아무리 자기 손으로 지문을 지우고 다닌다 해도 어디선가 흔적을 남긴다.
그 '흔적', 이 말을 불교에서는 '업'이라고 부른다. 업에는 다양한 의미가 있지만, 뒤에 질질 흘리고 다니는 흔적을 업이라고
부른다.
모델 하우스 구경을 간 자리에서 찍은 사진으로 인하여, 그녀의 이름이 밝혀진다. 차경선! 차경선이 강선영이라 하면서
살아온 것이다. 그리고 강선영은 사라졌다. 강선영의 어머니는, 제천시 송학리 고향마을에서 계단에서 넘어져 돌아가신 것이다.
차경선이 강선영 모녀를 죽인 것일까?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되었지만, 그것은 아니었다. 다행히도(?), 차경선은
강선영만 죽였다.
그리고는 강선영으로 살아온 것이다. 그러면서 문호를 만난 것이고 ---.
종근 덕분에 점점 좁혀져 오는 그물, 그 속에, 아무 것도 모르고, 새로운 이름을 찾아나선 차경선이 있다. 그녀는 차경선으로는 살아갈 수 없다.
아버지 차선택이 사채를 끌어다 쓴 것 때문에, 그리고서는 사라진 행방불명된 아버지 덕분에 그녀는 차경선으로 살 수 없다.
그녀가 그 사채 탕감의 모든 업 --- 이때는 '운명'이라는 부정적 뉘앙스이다 --- 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결혼한 적도 있었는데, 사채업자들 때문에 그 결혼도 깨어지고, 사채업자에게 끌려가서
몸을 다 망치고 마음도 다 망치고 말았던 과거가 있다.
그런 과정에서 처음 해 본 일이 강선영을 죽이고 강선영이 된 일이다. 그러나 이제 강선영은 끝났다. 저수지에 버렸던 시체도 떠올랐다. 강선영으로 밝혀졌다는 뉴스가 나오는 중에, 차경선은 제2의 강선영, 임정혜를 만나러 가는 길이다. 둘이 함께 여행을 떠나기로 하고, 용산역에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그 여행길에서 차경선은 임정혜로 새로 태어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정혜는 죽어야 한다.
아, 업의 중독성이여! 업은 습관성을 말하고 중독성을 말하는 것이다. 처음 강선영을 죽였을 때, 그녀는 그래도 피갑칠을 한 몸으로 피를 닦으면서 혼비백산을 했다. 문호랑 자면서도, 악몽을 꾸기도 했다. 하지만 이제 임정혜의 차례에서는 좀더 차분해 질 것이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을 죽일 것이다. 죽일 수 있을 것이다. 무서운 일이다. 이것이 업이다. 그런 의미이에서 차경선은 달리는 폭주기관차, 멈출 수 없는 폭주기관차에 올라탄 것이다.
그것도 불이 붙은 화차이다. 그 화차를 타면 누구나 살아올 수 없다. 불에 타 죽든지, 어딘가를 부딪치면 그 충격으로 열차가 설 것이고, 그 때 죽게 될 것이다. 그 중간에 화차가 지나는 역은 모두 도산(刀山)역, 화탕(火湯)역, 지옥(地獄)역, 아귀(餓鬼)역, 수라(修羅)역, 그리고 축생(畜生)역이다. 이 역들을 돌고 돌리라, 순환선이다. 그것이 윤회이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다만 애시당초 업을 짓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그 다음 차선은 죄를 짓더라도, 곧 참회를 하고 다시 짓지 않는 일이다. 그러나 차선은 얼마나 어려운가! 차경선이 강선영을 죽였다. 그런데 참회를 하고서, 다시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는 어떤 계기가 있어야 한다. 참회의 계기 말이다. 문호와의 사랑이나 결혼이 그러한 계기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그것은 어렵다. 그렇게 되면, 차경선은 그 스스로 애써 거머쥐게 된 문호와의 사랑이나 결혼, 안정된 생활을 다 포기해야 한다. 어려운 일이다. 달리는 호랑이 등에 탄 것처럼, 갈 데까지 가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같다. 업이 무서운 이유이다. 화차가 뭄출 수 없는 폭주기관차인 까닭이다.
용산역, 이 역에서 차경선이 탄 폭주기관차는 멈출 수 있을까? 멈춘다면 어떤 방식으로 멈출 것인가? 용산역으로 한 대의 기차가 들어온다. 느릿하다. 그렇게 느릿하게 들어와서 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쁘게 차려입은 차경선, 붉은 선이 가로로 그어져 있는 원피스를 입고서 역 안으로 올라오고 있다. 에스컬레이트를 타고 있다. 임정혜랑 함께 여행을 간다는 사실을 먼저 알아챈 것은 종근이 아니라 문호였다. 임정혜가 그의 동물병원의 고객이었고, 그러한 정보를 병원의 간호사가 알려준 덕분이다.
용산역으로 달려온 문호가 차경선, 아니 강선영을 기다린다. 에스컬레이트가 올라온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선영이가 올라오고 있다. 선영은 순간 흠칫 놀란다. 문호가 선영의 손을 잡는다.
"너는 누구냐?"
소리치는 문호,
"미안합니다. 나 좀 보내줘요. 저 좀 보내주세요."
문호, 손을 놓아준다. "붙잡히지 마라."
나 같으면 어땠을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문호의 행동에 대해서는, 논평하는 것이 가능하다. 제3자니까, 아니 문호보다는 훨씬 오랜 인생을 살아왔으니까. 놓아주면 안 되었다. 그것은 곧 임정혜를, 아니 임정혜는 안전하게 피신시켰다 하더라도 그 어디선가 또 제2의 강선영을 죽일지도 모르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에 이끌려서, 한 때의 사랑에 이끌려서 차경선을 놓아준다. 문호는 ---. 그게 징한 정이다. 그게 또 다른 '업'의 무서운 얼굴이다.
그렇지만 종근은 차경선을 놓아줄 수 없다. 붙잡았지만, 놓치고, 달리고 달린다. 그녀는 구두를 벗고서, 맨발로 달린다. 그러다가 저 밑으로 기차가 다니는 철로 위로, 차경선은 뛰어내리고 만다. 그녀가 그 순간 본 것은 무엇일까? 붙잡혀서 당할 고통을 본 것일까? 아니면 그녀가 살아온 과거의 고통을 본 것일까? 내 생각에는 과거를 본 것으로 생각된다. 허공을 향해서 몸을 날린다. 멈출 수 없는 폭주기관차로부터 내리는 유일한 길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그녀는 여전히 타고 있었던 화차로부터 벗어날 수 없다. 그것이 화차다. 그녀를 싣고서, 그ㅡ녀의 업을 싣고서, 화차는 여전히 육도의 순환선을 달리고 달리고 --- 할 것이다.
재미있고, 긴장되는 영화. 화면에 몰두하게 만드는 전개는 훌륭했으나, 결말에 대해서는 말이 많은 것같다. "마지막 5분이 다 버렸다"라는 평도 있는 것같습니다. 차라리 문호가 놓아주었을 때, 차경선이 인파 속으로 사라지는 것으로 막을 내렸다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가능한 것같다. 그랬더라면 우리 속으로 지금도 차경선이 돌아다니고 있으면서, 제2의 강선영을 물색하고 있다고 느낄 수도 있고 ---. 이 영화의 원작인 된 일본소설 "화차"(미야베 미유키 작)에서는 어떻게 끝났는지 알 수 없으나, 그렇게 된다면 더 무서운 공포영화처럼 되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결국 영화 "화차"는 차경선이 뛰어내려서 죽는 것으로, 철로 위에 널부러진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몸부림치는 문호와 그런 문호를 끌어안고 말리는 종근의 모습으로 끝난다. 그런데 왜 감독은 결말을 이런 방식으로 끝나게 했을까? 물론 권선징악적 이유는 아니었으리라. 이렇게 나쁜 짓을 하면, 이렇게 죽게 된다. 이런 메시지는 아니었으리라 본다. 그 보다는 그 끝을 보여주고 싶어서, 아니 보여주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던 것은 아닐까. 멈출 수 없는 폭주기관차, 즉 화차에 한번 올라타기만 하면 결국 그의 삶은 끝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 무서움을 우리에게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