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강생 중에는 유정준 SK에너지 해외사업담당 사장, 박영주 이건산업 회장,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 송재엽 동원건설 사장 등이 포함됐다. SK그룹 최태원 회장의 부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도 등록했다.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 이병남 LG인화원 원장, 신헌철 SK에너지 부회장 등은 이 과정을 이미 수료했다. 성공회대 임정아 교수는 "30명 모집에 100명이 넘는 CEO들이 지원했을 정도로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 ▲ 지난 7일 밤 서울 정동 성공회성당 수녀원에서 기업 CEO들이 인문학 강의를 듣고 있다./전기병 기자 gibong@chosun.com
인문학 강좌가 재계에 갈수록 확산되고 있다.
서울대 AFP(Ad Fontes Program· '원천으로'라는 의미)는 국내외 역사·문화기행 비용을 포함, 수강료가 1200만원대이지만 입학 경쟁률이 3대1 이 넘는다.
대한상공회의소의 'CEO 독서 아카데미', 삼성경제연구소의 '메디치21', 능률협회의 '지혜의 향연' 등 경제단체와 연구소가 운영하는 인문학 프로그램도 규모가 날로 커지고 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월 1회 조찬을 겸해 이뤄지는 메디치21 프로그램은 2005년 100명 정도로 시작했으나 지금은 700명에 이른다"고 밝혔다.
회사 안에 인문학 강의를 개설하는 기업도 잇따르고 있다. 롯데백화점은 올 6월 사내에 '서울대 AFP-롯데백화점 인문학 과정'을 개설했다. 지난달까지 두 달 동안 진행된 1기 프로그램에는 이철우 대표와 신영자 사장(대주주) 등 35명의 주요 임원이 참여했다. 토요일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진행되는데, 문학·역사·미술·음악 등 강좌와 오페라 감상도 포함한다.
포스코에선 정준양 회장이 올 5월 '수요 인문학 강좌'를 개설했다. 이달 9일 서울대 독문과 전영애 교수가 진행한 '괴테' 강의는 서울·포항·광양의 3개 사무소 강당에 영상으로 전달돼 포스코 임원들과 외부 협력회사 대표 등 800여명이 수강했다.
CEO들이 인문학 강의를 듣는 이유와 관련, 유정준 SK에너지 해외담당 사장은 "글로벌 기업들의 CEO와 만나 협상하고 해외시장을 개척하려면 문화와 정서를 먼저 이해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은 "사업을 성공하려면 '맛있는 음식'이나 '아름다운 디자인' 처럼 사람들이 추구하는 가치를 잘 알아야 한다"며 "신사업을 결정할 때에는 경영학적 지식보다 소비자의 반응 같은 문화적인 측면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강신우 한국투자신탁운용 부사장은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보면서 자본주의의 지속가능성에 대해 회의를 갖게 됐다"면서 "인문학에서 대안을 찾아볼 수 있을까 해서 수강했다"고 말했다.
신영복 성공회대 인문학습원장은 "글로벌 경쟁, 아웃소싱, 복잡한 노동체계 등 기업 안팎의 문제 극복에 인문학 함양을 통한 유연한 사고체계 확립이 유력한 대안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