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공중파방송의 한 프로그램 작가로부터 전화인터뷰 요청이 있었다.
자장면에 대한 프로그램을 구상하는 중이라 방송 대본을 쓰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는 요청과 함께 몇 가지 질문에 답을 해달라는 것이다. 그 작가와의 대화 속에서 기억의 테이프는 재생되었고 동시에 영상이 머리를 스쳤다.
질문의 큰 줄기는 ‘자장면을 언제 처음 먹어보았는가, 자장면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은 누구인가, 자장면과 가족 간의 상관관계는 무엇인가, 자장면이 주는 한국적 문화의 상징은 어떤 것인가’ 등 그런 시시콜콜한 질문들이었다.
자장면에 대한 추억은 그저 단순한 먹을거리에 대한 추억이 아니라 그 음식을 통해 가족이라는 매개체 속에 행복이라는 단어를 떠오르게 만들다니 신기하기도 하다.
그랬다. 내가 아버지의 근엄함 속에서 자잘한 사랑을 느낀 것은 가정의 대소사 중 입학과 졸업, 그리고 아주 특별한 날 자장면을 먹으며 짧은 대화와 수고했다는 칭찬이 오간 유일한 시간이었음이 새삼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처음 자장면을 먹었던 시간을 떠올려 본다. 초등학교 3학년이었던가. 그때 그림을 그리는 재주가 조금 있었던 나는 서울의 모 대학에서 주최하는 미술대회에 참가하여 우수상을 받았다. 평소 웬만한 학교 행사는 할머니가 보호자였으나 수상식에는 아버지가 처음으로 아들의 보호자로 함께 했으니 어린 나에게는 어색함이 앞섰고, 수상식 내내 그다지 밝지 않았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그러나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자장면 집 발을 걷고 들어가 자리에 앉는 순간 그 모든 불안은 사라졌다.
처음 대하는 자장면. 먹는 방법조차 몰랐기에 머뭇거리던 내 모습을 지켜보던 아버지는 선뜻 자장을 비벼주신 뒤 단무지와 함께 먹는 것이라며 소상히 알려주는 사이 아버지의 자장면은 떡이 져 있었다.
검은 자장과 하얀 면발이 섞여지면서 아버지의 근엄함은 사라졌고, 늘 칭찬보다는 꾸중으로 일관하던 아버지의 입에서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와 아버지도 어린 시절 그림을 제법 그렸다면서 ‘나를 닮아 그림을 잘 그리는구나’라는 부전자전의 말을 들었을 때 으쓱해지는 것을 느꼈다.
자장면 얘기를 나누며 아버지와 첫 외식 장면이 주마등처럼 지나갔고, 그 후 우리가족 아이들에게 특별한 날은 늘 자장면 집에서 나무젓가락을 쪼개고 군침을 흘리며 단무지를 씹던 우리 형제들을 떠올린다.
그 영상은 아련한 추억의 명화처럼 마지막 여운이 남고 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 주기 위해 전화 인터뷰가 있었던 그날 저녁 우리가족은 모처럼 자장면을 시켜 먹었다. 자장면을 비비고 첫 젓가락질에서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어디 자장면에 대한 추억이 나만의 추억이었겠는가. 내 또래 시대에 성장한 사람들은 물론 우리 대중에게 추억거리를 만들어 준 자장면은 분명 자식들과 부모간의 간극을 채워 주는 매개체임에는 틀림이 없다.
외식문화가 다양해진 현실에서도 어린 시절 자장면의 추억을 간직한 어른이 있듯이 우리아이들도 특별한 날, 아주 특별한 추억을 간직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앞선다.
늦은 시각, 방송작가가 일러준 프로그램을 본다. 자장면의 추억을 이야기 하면서 눈시울을 붉히는 출연자의 모습에서 내 얼굴이 겹쳐진다.
한철수/시인·좋은아버지가되려는사람들구리모임직전회장 |
첫댓글 요즘은 외래 음식 중 인기 일위가 스파게티로 바뀌었다니 시대와 입맛이 참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그래도 짜장면은 40년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히 맛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