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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불자는 부처님 닮아가는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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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회 지도법사 법 륜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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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 스님은 4월 12일부터 6월 1일까지 부산해운대정토회를 비롯한 전국정토회에서 ‘교화의 꽃을 피우다’는 주제로 법문했다. 부처님의 교화사례들을 중심으로 한 이 강좌는 매주 1회씩 총 8회에 걸쳐 진행됐다. 법륜 스님의 마지막 8번째 강의 ‘완전한 행복의 길(열반)로 떠나다’를 요약 게재한다. 편집자 주
부처님 사대성지 의미 알아야 눈 떠
여래께 올리는 최고 공양공덕은 수행
오늘은 부처님이 ‘완전한 행복의 길을 떠나다’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바이샬리에 계셨을 때 하루는 유녀인 암바팔리의 망고 동산에 머무르셨습니다. 부처님이 자신의 나무 아래 와 계시다는 소식을 들은 여인은 곧바로 달려가 부처님을 친견했습니다. 부처님 설법에 감동한 암바팔리는 그 자리서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겠다고 간청했고 부처님은 침묵으로 승낙 하셨습니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릴 수 있다는 기쁜 마음에 마차를 너무 급히 몰았던 그는 마주오던 바이샬리의 명문 리차비 족 사람들과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리차비 족 사람들도 “세존께서 바이샬리에 도착하시어 암바팔리 망고 동산에 머물고 계신다”는 소식을 듣고 친견하기 위해 길을 재촉하던 중이었습니다. 화가 난 리차비 족 사람들은 유녀 암바팔리를 질책하며 급히 달린 이유를 물었습니다. 이에 암바팔리는 “실은 내일, 세존을 비구들과 함께 공양에 초대하게 되었기에 너무 서두른 탓”이라고 말했습니다.
부처님 초대 선수를 빼앗긴 리차비 족 사람들은 부처님 공양 초대권을 자신들에게 건네라고 명했지만 여인은 “다른 것은 양보해야 하겠지만 그것만은 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들은 다시 “십만금(十万金)을 주겠으니 양도하지 않겠느냐?”고 다시 물었지만 암바팔리는 “설령 이 풍요로운 바이샬리 마을 전부를 준다 해도 이것만은 양도할 수 없다”며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습니다.
천민 신분의 이 유녀는 이렇듯 명문 귀족의 권위에도 굴하지 않고 당당하게 자신의 입지를 폈습니다. 십만금이 아니라 바이샬리 마을 전부를 준다 해도 부처님 초대 공양권과는 바꿀 수 없다는 그 신심과 긍지를 우리는 헤아려야 합니다. 당시 붓다의 제자들은 이러한 긍지를 가슴에 품고 누구 앞에서도 당당했습니다. 부처님은 늘 제자들에게 “비굴하지 말고 당당하라.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하셨습니다. 밥 한 끼 얻는 사람이 교만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밥 한 끼면 충분한데 돈 있는 사람, 권력 있는 사람 앞에서 비굴할 필요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돈과 권력 앞에 몸을 낮추지만 그런 세상사에 얽매임이 없는 부처님 제자들은 암바팔리의 여인처럼 당당했던 것입니다.
파바 마을에 이른 부처님은 춘다의 망고 동산에 머물게 되었습니다. 부처님이 춘다의 공양을 받을 때 부처님은 공양에 들어 있던 한 음식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춘다야, 이것을 다른 비구들에게 주지 말라. 그들은 이것을 소화시키지 못하느니라. 이 음식을 땅에 묻어라.” 그러나 공양을 마친 부처님은 큰 병이 났습니다. 일종의 식중독입니다. 춘다는 자신의 공양으로 인해 부처님이 열반에 드실지 몰라 안절부절하지 못했습니다. 이에 부처님은 춘다를 위해 아난에게 미리 말씀해 놓으셨습니다.
“춘다는 나에게 최후로 올린 공양을 후회할지 모른다. 그러면 아난다여! 너는 이렇게 말하여 대장장이 아들 춘다를 위로하라. 춘다여! 후회할 것 없소. 음식을 시여(施輿)함에는 가장 큰 뛰어난 큰 공덕을 가져오는 것에 두 가지가 있으니, 이들 두 가지가 가져오는 결과는 모두 같아 서로 우열이 없오. 그 두 가지 음식의 시여란 무엇인가? 하나는 그것을 먹고 여래가 위없이 바른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때이고, 또 하나는 그것을 먹고 여래가 남김 없는 완전한 열반의 세계(無餘涅槃界)에 들 때이니라. 이러한 두 가지 음식을 시여한 공덕은 모두 동등하여 서로 우열이 없는데, 다른 음식의 시여와 비교한다면 훨씬 큰 이익과 복덕을 가져오느니라.”
수자타의 공양과 춘다의 공양을 두고 하신 이 말씀에 귀를 기울여 보아야 합니다. 독이 든 음식인 줄 알고도 그 음식을 먹은 위인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독이 든 음식이기에 피한 위인도 저는 많이 보았습니다. 독이 든 음식을 먹고도 그 사람을 용서해 준 사람도 보았습니다. 그러나 독이 든 음식을 준 그 사람을 위대하게 만든 사람은 부처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붓다의 위신력이요, 불교의 위대함입니다. 물위를 걷고, 태산을 옮기고,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이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이 보이신 이 자비심에는 어떤 번뇌와 원망, 저주도 없습니다. 부처님은 죽음이 눈앞에 온 순간에도 이렇게 자비로운 마음을 내며 여여 하셨습니다. 춘다의 공양에서 보이신 그 위대한 자비심을 우리는 헤아리고 가슴 속에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쿠시나가르에 이른 부처님은 누우시며 아난에게 오늘 밤 열반에 들겠다고 말했습니다.
부처님이 누우시자 때 아닌 꽃이 피고, 하늘에서는 풍악 소리와 함께 꽃비가 내렸습니다. 놀란 대중들이 부처님께 연유를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이 모든 것은 저 하늘의 신들이 여래의 열반에 이르러 올리는 마지막 공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은 곧이어 “아난아, 이러한 천상의 공양은 제1의 공덕이 아니다. 여래에게 올리는 제1의 공양공덕은 수행정진이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제1공양공덕은 천상의 음악과 꽃비도 아닌 바로 수행인 것입니다.
아난이 묻습니다. “저희들은 부처님께 공양을 올려서 큰 공덕을 지었는데 이제 열반에 드시면 저희들은 공덕 지을 길이 없습니다.”
“아난아, 걱정 말아라. 여래에게 올리는 공양과 똑같은 공덕이 있는 공양 4가지가 있다. 굶주린 사람에게 밥을 주고, 병든 사람에게 약을 주고, 가난하고 외로운 사람을 위로하고 수행하는 사람을 외호하는 것이다.”
혹자는 불교사상에 복지가 없다 하는데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부처님의 이 한마디에 복지가 그대로 스며 있습니다. 부처님은 우리에게 어떤 마음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지, 어떤 행동을 해야 하는지, 어떤 수행을 해야 하는지 다 말씀하셨습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해 놓았는데 경전을 보지 않으니 불교를 어렵다 하기만 하고 추상적이라 하는 것입니다.
법에 의지해 법을 행해서 법을 경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가 진정한 부처님 제자인가? 속복을 입었느냐 승복을 입었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남자냐, 여자냐, 사회적 지위 정도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누가 부처님과 근접해 있는가? 누가 부처님을 닮아가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수행인이 공양 하기전 올리는 게송이 있습니다.
불생가비라 성도마갈다(佛生迦毘羅 成道摩竭陀)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說法波羅奈 入滅拘尸羅)
부처님은 가비라에서 태어나셨고 마갈다에서 성도하셨으며
바라나에서 설법하셨고 구시라에서 열반에 드셨도다.
부처님이 오신 뜻, 부처님이 이룬 도, 부처님이 설하신 법문, 부처님이 열반에 드신 의미를 항상 사유하며 그 뜻을 헤아려 법을 실천하고 수행하는 것이 불자의 길입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 직전 다음 한마디를 남기셨습니다. 부처님의 마지막 유훈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래는 깨달음의 지혜다. 비록 육신은 너희 곁을 떠나지만 깨달음의 지혜는 영원히 너희 곁에 있도다. 게으르지 말고 정진하라.”
채한기 기자 penshoot@beopbo.com
법륜 스님은
1988년 정토회를 설립한 법륜 스님은 국제기아 질병 문맹퇴치기구인 한국 JTS , 한국불교환경교육원, 좋은 벗들 이사장을 역임하며 국내외에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특히 인도 불가촉 천민을 위한 학교와 병원인 수자타 아카데미와 지이바카를 설립 운영함은 물론 인도를 비롯한 미국 뉴욕과 LA, 독일 프랑크프르트 정토회도 설립해 국제 빈민구호 및 복지 활동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저서로는『실천적 불교사상』, 『젊은 불자들을 위한 수행론』, 『불교와 환경』, 『불교와 평화』 등이 있다.
수행, 포교, 인권, 빈민구호의 공로가 인정돼 만해상 포교상과 막사이사이 평화상을 수상했다.
<2005-06-08/806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