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22일 “오늘의 말씀 묵상 편지”
“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지체됨을 보고 ”
우리가 함께 묵상할 하나님의 말씀은 출 32 : 01- 04을 중점적으로 말씀을 탐구하여 묵상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지체됨을 보고 함께 모여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일어나라. 우리 앞에 갈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우리를 이집트 땅 에서 인도하여 낸 그 사람) 이 모세에 관하여는 그가 어찌 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함이니라." 하니 아론이 그들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아내와 너희의 자녀들의 귀에 있는 금귀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하거늘 그때에 모든 백성이 자기들의 귀에 있는 금귀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왔더라. 그가 그들의 손에서 그것들을 받아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새기는 도구로 그 모양을 만드니 그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오 이스라엘아, 이것들은 너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신들이로다." 하는지라.
(Now when the people saw that Moses delayed coming down from the mountain, the people gathered together to Aaron, and said to him, "Come, make us gods that shall go before us; for as for this Moses, the man who brought us up out of the land of Egypt, we do not know what has become of him." And Aaron said to them, "Break off the golden earrings which are in the ears of your wives, your sons, and your daughters, and bring them to me." "So all the people broke off the golden earrings which were in their ears, and brought them to Aaron. And he received the gold from their hand, and he fashioned it with an engraving tool, and made a molded calf. Then they said, "This is your god, O Israel, that brought you out of the land of Egypt!")”
임마누엘!!
우리는 이제 출애굽기 32장에 도착하였습니다. 아직도 출애굽기 말씀 탐구를 다 마치려년 얼마나 많은 날들이 필요한지 저는 모릅니다.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한걸음씩 나아가려고 합니다.
저의 가장 큰 관심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을 가난한 마음으로 주신 말씀 탐구의 사명을 감당하는 일입니다.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지 않도록 함께 기도하여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본문이 담긴 출애굽기 32장은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지금 하나님의 명령따라 시내산에 올라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내산에 올라 오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오라고 하심은 다름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매우 중요한 말씀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닌 하나님의 계명인 ‘십계명’을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는 지금 십계명을 아주 쉽게 읽을 수 있는 은혜를 입고 있지만 모세가 이 십계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일은 매우 힘든 과정이 필요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시내산에 모세가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여 올랐다고 해서 바로 하늘로부터 십계명이 내려 온 것이 아닙니다. 모세는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시내산에서 40일동안 물도 마시지 않는 단식으로 하나님께 간구하여야만 했습니다. 이는 결코 모세가 자의로 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한 것일 뿐입니다.
시내산의 환경이 어떠했겠습니까? 광야에 우뚝 솟아 있는 산입니다. 물이 없습니다. 낮에는 덥고 밤에는 춥습니다. 산꼭대기 모세 혼자 있다는 것 자체가 매우 위험한 일입니다. 어떻게 생각하면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일 것입니다. 며칠까지 라는 어떤 기약도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하시는 대로 모세는 자신을 내놓아야만 했습니다.
모세의 위상은 이스라엘 민족에게 매우 중요한 위치였습니다. 하루도 없으면 안될 그런 위상입니다. 시내광야에서 하루하루를 장막에서 사는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장정만 60만명이니 노인들과 어린아이들 그리고 그 당시 사람의 숫자에 포함하지 않은 여성들까지 포함한다면 최소한 이백만명은 될 것입니다. 그 큰 무리들의 민족 지도자인 모세입니다. 절데 권세를 가진 통치지가 백성들과 함께하든 그 자리를 비우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시내산에서 기약도 없이 보낸다는 것은 어떻게 보면 무책임하다고 질책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속성에는 불순종의 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이 불순종의 실력(?)을 마음껏 발휘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탄의 권세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이스라엘 하나님의 공동체를 훼파하려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습니다. 기회만 노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 공동체를 허물려고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는데 정말 놀라운 찬스가 주어졌습니다. 그때가 바로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기디리고 기다려도 내려오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본문의 말씀과 같이 지체하고 있어 보입니다. 이 지체는 그 어려운 상황에서 소식이 없으니 실종으로 인식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죽었는지 살아 있는지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시내산에 올라가서 산을 수색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지체됨을 보고 함께 모여 아론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일어나라. 우리 앞에 갈 신들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우리를 이집트 땅에서 인도하여 낸 그 사람) 이 모세에 관하여는 그가 어찌 되었는지 우리가 알지 못함이니라.”
여기 ‘지체됨을 보고’는 히브리어 'bosh(보쉬)'. ‘부끄러워하다(be ashamed)’, ‘창피를 주다(put to shame)’, ‘당황한(disconcerted)’, ‘실망한(disappointed)’ 아니면 몇몇 경우에 '혼동하다(confound)로 번역하여 '연기하다(delay)’, 그리고 '중단하다(cease)와 같은 관용적인 용법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잘 표현하고 있음을 봅니다.
저들의 마음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 꼭대기로 올라간 것을 이스라엘 민족으로서 자부심을 가지지 못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못하고 정반대로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니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론에게 찾아와서 다른 신을 구하였고, 아론은 여인들의 귀에 있는 금귀고리를 가지고 오라고 하여 그 금으로 황금 송아지를 만들고 이것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한 신이라고 소리쳤습니다.
황금 송이지 신을 만든 것을 무척 자랑스러워 하였습니다.
아주 비정상적인 모습입니다.
자기 지도자가 하나님의 명을 받아 시내산에 올라 갔으면 한 마음으로 모세를 기도하며 응원하며 함께 하는 모습이어야 하는 것이 정상적인 것 아닐까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셔서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매일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셔서 일용할 양식으로 주신 놀라운 권능의 하나님, 큰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하나님을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세우신 민족의 지도자 모세는 지금 시내산에서 물 한모금도 마시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려고 기다리고 있음을 조금이라도 생각한다면 하나님을 버리고 황금 송아지로 만족하여 춤추고 노래하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결과는 심판이었습니다.
그러나 초대교회가 탄생한 오순절 아침은 달랐습니다. 주 예수 부활과 승천을 목격한 예수님을 사랑하는 무리들은 열흘동안 금식하여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렸습니다. 즉 성령의 강림을 기다렸습니다. 한마음으로 전혀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렸습니다. 그 결과 오순절 아침 성령님이 기다리는 무리들 120명에게 강림하셔서 의심하는 것들을 확신으로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무식하다는 평을 받던 어부 출신 베드로는 성령의 권능으로 말씀을 선포하였을 때 3,000명이라는 큰 무리들이 주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한 마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때를 기다린 무리와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부끄러워하던 이스라엘 무리와의 차이는 이렇게도 큰 것을 보여주십니다.
이 나라 현재의 한국 교회와 한국 정치 상황도 마찬가지가 아닐까요?
감사합니다.
서울에서
이 우복 목사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