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아두면 있어 보이는 TMI
HI! 알라딘, 신데렐라~ 죄송하지만 저희 ‘중국인’인데요
어서 와 신데렐라! 아니, 이게 누구야? ‘뮬란’이랑 <쿵푸팬더>의 귀염둥이 주인공 ‘포’도 왔네? 나 알라딘과 신데렐라가 디즈니에 소송 건다는 소문을 듣고 너희도 할 말이 있어 왔다 이거지. 흠, 그럼 이참에 디즈니가 우리에게 어떤 피해를 입혔는지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해볼까? 뮬란은 본명이 ‘무란(木蘭)’인데 본인 동의 없이 창씨개명을 당했고, 그럼 포는? 사람들이 자꾸 판다가 영어도 잘하고 쿵푸도 잘하는 줄 알고 막 영어로 말 걸고 자는 데 방해한다 이거지. 그래도 신데렐라와 나에 비하면 이건 조족지혈이라 소송감도 아닌걸. 우린 중국인인데 디즈니가 국적과 조상을 바꿔놨다니까! 이거야말로 천인공노할 일 아니니?
취재 김한나 리포터 ybbnni@naeil.com
참고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 <아라비안나이트>속 인기남
“니하오! 중국에서 온 알라딘입니다.”
“I can show you the world, shining shimmering splendid~” 이 가사를 보자마자 막 귓가에 노래가 흐르지 않니? 영화 <알라딘>의 주제곡 ‘A whole new world’는 너희 부모님 세대부터 모르는 이가 전무할 정도로 전 세계에서 초유의 히트를 친 곡이잖니.
지금으로부터 28년 전, 미국 월트디즈니사는 사전 동의도 구하지 않고 내 캐릭터를 본인들의 구미에 맞게 창조해냈어. 디즈니 덕분에 다들 내가 영어 잘하는 아랍인인 줄 안다니까! 나 외국어 공포증 있는데! 지금부터 진실을 들려줄 테니 잘 들어라~.
세상에 나를 처음으로 알린 건 6세기 설화집 <아라비안나이트>(‘천일야화’라고도 하지)야. 책에 소개된 다채로운 이야기 속 인물 중 나 ‘알라딘’만큼 유명한 이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지. ‘신밧드’가 있지 않냐고? 솔직히 인정하자. 그 형이 아무리 유명해도 나만큼은 아니다.
18세기에 프랑스를 시작으로 전 유럽에 퍼진 <아라비안나이트>는 서구 문학에 큰 영향을 끼쳤고 훗날 내 스토리는 전 세계를 불문하고 영화와 드라마의 독보적인 인기 소재로 각광받게 됐단다. ‘미천한 신분에 가난한 남자 주인공이 공주를 만나 사랑에 빠져 결혼하게 된다’는 ‘신분 상승’의 모티브와 로맨스, 그리고 모험이 곁들여진 매력 넘치는 스토리는 모두가 나로부터 출발했단 말씀이야. 한국 드라마나 영화에도 이런 배경의 남자 주인공이 한가득이지 않니?
<아라비안나이트>에서 날 소개하는 부분의 첫 구절은 이렇게 시작해. “오, 인자하신 임금님. 중국의 어떤 곳에 매우 가난한 재봉사가 살고 있었습니다. 그 재봉사에게는 알라딘이라는 아이가 있었는데….” 이게 다가 아냐. 책을 자세히 읽어보면 난 중국인이고 나에게 램프를 가져오게 한 사기꾼 삼촌은 모로코인이란다. 게다가 램프는 터키에 있었지.
너무 글로벌한 거 아니냐고? <아라비안나이트>의 주 무대였던 당시 바그다드는 이슬람 문명권인 동시에 아프리카와 인도, 중국의 실크로드를 따라 각국 사람들이 한데모여 이야기보따리를 풀어놓는 문명의 용광로 같은 곳이었어. 내가 중국인이라는 사실이 전혀 이상할 게 없었단 말씀이지. 디즈니가 내 국적을 바꿔놓기 전까진 말야.
# 억울한 1인 추가요~
전 ‘신데렐라’가 아니라 ‘예시엔’인데요
1911년, 미나카타 쿠마구스라는 일본 학자가 유럽 학회에 참여해 폭탄선언을 했어.
“<신데렐라>는 9세기 중국 민담집 <유양잡조> 속 ‘예시엔(葉限)’의 이야기를 원형으로 한다.” 왓!? 금발의 신데렐라가 중국인이라고? 동화 <신데렐라>의 고향이라 믿었던 프랑스 1차 충격, 유럽 전역도 연이어 충격의 쓰나미에 휩싸였지.
쇼크를 제대로 먹은 유럽 학자들은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어. 그리고 중국의 ‘예시엔’ 이야기가 동서양과 중국을 오가던 상인들에 의해 퍼져나가 중세 유럽까지 전파됐고 훗날 아메리카 대륙까지 알려지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지.
<유양잡조> 내용을 잠시 소개하자면, 계모의 학대를 받던 예시엔은 자기 집 연못 속에 말하는 물고기를 몰래 키웠는데 어느 날 계모가 이를 알고 물고기를 잡아먹어. 물고기 뼈를 부여잡고 우는 그녀 앞에 한 여인이 나타나 뼈에 소원을 빌면 다 이뤄질 거라고 말하지. 훗날 예시엔은 물고기 신령의 도움으로 마을 축제에 갔다가 황금신 한 짝을 잃어버리게 되고 이를 주운 왕자와 결혼해 왕비가 된다는 내용이야.
가난한 아가씨가 왕자와 결혼해 신분 상승을 한다는 신데렐라, 아니 예시엔의 성공기는 시공간을 넘나들며 각국의 전래동화로 탄생했어. 대한민국의 <콩쥐팥쥐>도 비슷하지? 학자들이 유럽과 동남아시아, 아메리카 인디언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지에 변주된 예시엔 이야기를 모아보니 무려 500여 종에 달했다나. 이쯤 되면 취향의 대동단결인 셈이지.
1950년, 디즈니는 중국 소녀 예시엔을 유리 구두를 신은 금발 여인으로 각색해 장편 애니메이션의 주인공으로 화려하게 등장시키지. 예시엔이 국적과 이름을 완벽하게 잃은 순간이랄까?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신데렐라>를 쓴(아니, 각색한) 프랑스 작가 샤를 페로는 작품 속 신데렐라에게 고급 ‘가죽신’을 신겼다고 해. 이것이 영어로 오역되면서 ‘유리신’이 됐다는 말씀. 그런데 디즈니 덕에 신데렐라의 유리 구두 이미지가 너무나 강해져 프랑스 원작조차도 유리 구두로 바뀌었단다. 자, 이제 나 알라딘과 신데렐라, 아니 예시엔이 중국인이라는 걸 알았지? 그럼 이 중대한 사실을 너만 알지 말고 널리 퍼뜨려주길 바라. 나도 이제 소송 걸러 출발해야겠다.
내일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