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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양의 여자] 01
#S1. 몽타쥬
신도영의 활짝 웃고 있는 사진과 함께 ‘신도영 아시안 TV페스티벌 대상 유력’ 이란 표제를 단 신문.
조심스레 가위로 오리는 나이 든 여자의 거친 손.
스크랩한 신문을 앨범에 넣으려다 천천히 앞장으로 넘겨본다. 신도영의 기사 스크랩들.
‘한국 여대생이 닮고 싶어하는 여자 1위 신도영 아나운서’‘원더우먼쇼 성공비결 신도영 파워’‘클래식 FM 새 진행자 신도영’...
소중한 보물을 모아놓듯 깔끔하게 정리된 사진들... 한 장 더 넘기면 나이를 훌쩍 건너 뛰어 어린 시절 사진들 펼쳐진다.
뛰고 그네타고 학교 앞의 가방 맨 사진들... 모두 멀리서 찍은 사진. 정면으로 눈 맞추고 찍은 사진은 없다.
더 앞으로 넘기면 ‘재성 보육원’ 간판 앞에서 놀고 있는 6세 여자 꼬마, 엄마의 품에 안겨 이쁘게 웃는 갓난 아기..
거친 손, 사진 속 아기를 한 번 쓰다듬는다.
다시 앨범을 뒤로 넘겨 스크랩한 신문을 앨범에 끼우는 손. 그 위로 툭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
이국의 어느 쓸쓸한 작은 방. 햇빛이 드는 창문. 봄.
#S2. 상하이 야경 / 밤
화려한 상하이의 야경. 음악소리와 박수소리 울려 퍼진다.
#S3. 시상식장, 상하이 / 밤
“THE ASIAN TV FESTIVAL" 행사장. 특급호텔의 그랜드블룸 정도의 홀에 고급스럽게 꾸며진 시상식장.
신도영이 진행하는 쇼가 대형 모니터를 통해 보여진다.
우레와 같은 박수 터지며 화려한 드레스 차림의 도영, 상을 받는 게 매일의 일상이었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거침이 없다.
(도영이 상 받으러 무대에 나오는 동안 사회자의 해설 멘트가 영어와 중국어로 나온다)
사회자 : (E) 신도영씨는 한국 최고의 인기 아나운서입니다.
현재 직접 기획하고 진행하는 프로그램 ‘원더우먼쇼’로 많은 감동과 재미를 선사하고 있습니다.
도영, 마이크 앞에서 수상소감.
도영 : 매년 시상식을 보면서 늘 궁금했어요. 저 트로피를 받으면 촉감이 어떨까, 얼마나 무거울까.. 오늘 드디어 알았습니다.
생각보다 엄청 무겁고 촉감은 아주 좋네요. (트로피를 들어 보인다) 여러분 감사합니다!
객석의 사람들 웃으며 박수 쳐 준다.
도영 : 꿈을 꾸는 것, 자신을 믿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지 가르쳐 주신...
영어, 일어, 중국어 통역부스의 동시 통역사들 도영의 말을 받아 전하느라 바쁜 모습.
도영 :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두 분, 저희 부모님께 이 영광을 돌리고 싶습니다. 감사합니다!
#S4. 상하이 호텔 방 / 밤
스위트룸. 선물상자와 꽃바구니, 수소풍선으로 가득한 방.
은비, 6M 카메라를 옆에 놓고 질문 대본을 보고 있다.
도영, 급하게 뛰어 들어온다.
도영 : 30분 후에 방에서 인터뷰 하겠대.
은비 : 아쒸... 우리가 먼저 할려고 그랬더니. 방 정리해야 돼? (꽃바구니 옆으로 치우는데)
도영 : 아냐, 아냐... 그렇게 정리하지 마. 그대로 두자.
은비 : 인터뷰 다 외국 채널이지?
도영 : 응.
급박한 30분간...
도영, 옷 갈아입고 악세사리를 다시 바꾸고. 머리를 다시 빗고. 화장도 고치고. 구두를 바꿔 신어보고.
은비, 꽃바구니와 옷장 속의 빈 선물상자도 다 밖으로 내놓는다.
은비 : 대사님이 보낸 걸 제일 앞에 놓자... 꽃이랑 풍선도 좀 더 시킬게.
풍선과 꽃과 선물로 가득해진 방.
도영, 거울 앞에서 립스틱을 바른다.
은비 : 부모님은 안 오셨어?
도영 : ....... 응...........
외국 기자들 통역과 함께 방으로 들어온다.
도영, 밝게 웃으며 기자들 맞는.
도영 : 어서 오세요... 방을 못 치워서 어떡하죠...
은비 : (돌아서 웃는) 아으 저 여우.
#S5. 몽타쥬, 상하이 / 낮
스튜디오. 촬영중인 도영. 멋진 정장, 드레스 등등... 계속 헤어 메이컵과 의상을 바꿔가며 사진 찍는다.
촬영 도중 간간히 인터뷰도 같이. (빠르고 경쾌한 몽타쥬 컷으로) 옆에선 통역해주는 중국 여자.
도영 : 상금은 전액 소년소녀 가장 돕기에 기부하기로 했어요... 착한 척 하는 건 아니구요, 도움은 돌고 도는 것 같아요.
내가 도울 수 있을 때 도와주면 언젠가 나도 어디선가 도움을 받겠죠. ......... (또 다른 인터뷰) 남자친구요? 물론 있죠.
(웃는 모습에서 플래쉬 펑!)
시사 주간지 <Asian News>의 표지로 뜨는 도영. 가판대에 가득한 잡지.
거리의 오가는 젊은 중국 여자들, 도영 표지의 잡지를 골라든다.
#5-1. 그룹 회의실 / 낮
회장 두 사람, 서로 각서에 싸인한다.
옆엔 준세, 말쑥한 수트 차림으로 서서 싸인할 곳을 가리킨다.
회장 서로 계약서를 교환하고 악수. 사진 기자들 사진 찍고, 준세와 주변의 사람들 박수친다.
#5-2. 복도 / 낮
걸어가는 준세 뒤로 기자들 우르르 따라온다.
기자1 : 김준세 이사님, 인터뷰 좀 해주시겠어요?
기자2 : 벌써 다음 번 프로젝트 들어가셨단 소문이 있던데요.
기자1 : 프로젝트명이 포세이돈이란 설도 있던데 조선업계쪽으로 소싱을 하십니까?
기자2 : 전혀 관련 없는 이름으로 위장하시기도 하구요.
준세 : 그걸 미리 말씀드리면 재미없잖습니까.
#5-3. 그룹 회장실 / 낮
회장과 마주 앉아있는 준세.
회장 : 좋은 조건으로 인수하게 작업을 해줘서 내가 아주 흡족하네.
준세 : 감사합니다.
회장 : 자네 같은 인재를 내 식구로 두고 싶은 욕심이 드는데...
준세 : 말씀만이라도 영광입니다.
회장 : 우리 전략기획실로 와주면 어떻겠나.
준세 : 지금 하는 일이 더 재미있습니다.
회장 : 자네 고집 센 거, 내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준세 : 고집이 센 게 아니라 제가 좋아해서 이 일을 좀 더 하고 싶은 겁니다.
회장 : 자넨 합리적인 사람이지?
준세 : 그런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회장 : 자네를 냉혹하다고 말하는 업계 사람들도 꽤 있지만 난 그런 점이 맘에 들어. 내 판단에 아니다 싶으면
언제라도 돌아설 수 있잖아, 미련 없이. 정 때문에, 지금까지 들인 본전 생각 때문에 질질 끄는 건 안하는 사람이란 말이지.
나랑 코드가 맞아, 자네는.
준세 :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회장님.
회장 : 나한테 딸이 없는 게 아쉬우면서도 다행이야. 딸이 있었음 자네를 주고 싶었을 테고,
자네가 내 사위가 됐으면 내 아들들이 다 자네 발에 뭉개졌을 테니까.
준세 : (미소) 비행기 시간 때문에 그만 일어나 보겠습니다.
#5-4. 거리 / 낮
달리는 준세의 승용차.
핸즈프리로 통화하며 운전하는 준세.
준세 : 지금 공항으로 가는 중입니다. 제가 움직이기 전엔 아무 것도 결정하지 마세요. 대만 쪽에서 온 딜(deal)은 잡지 않는 게
좋겠어요. 재작년부터 굴러 다니던 손 탄 물건이에요. 패키징만 새로 한 거니까 속지 마세요. 결정은 돌아와서 하죠.
#S6. 방송사 건물 앞 / 낮
밝게 웃고 있는 신도영의 멋진 사진과 함께 ‘신도영의 원더우먼 쇼 공개녹화’ 팻말 붙어있고
그 뒤로 길게 늘어선 줄, 건물을 빙 돌려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기다리는 사람들 표정 모두 밝다. 설렘과 기대.
커다란 가방을 맨 윤사월, 활기차게 뛰어온다. 빠글거리는 양배추 파마머리, 요즘 세상에 보기 쉽지 않은 헤어스타일이다.
사월, 기다리는 사람들의 긴 줄을 보고 활짝 웃는다.
사월 : 아싸, 대박!
사월, 가방 안에서 홍보전단 한 웅큼을 꺼내고 줄 처음으로 달려간다.
#S7. 스튜디오 안 / 낮
‘원더우먼 쇼’ 녹화준비 중. 조명과 세트를 체크하고 있는 고훈PD.
조연출, 숨이 턱에 닿게 헉헉대며 달려온다.
조연출 : 신도영 선배 사고 났대요. 지금 앰블런스에 실려갔다구...
고훈 : (놀라) 뭐!
조연출 : 소년소녀 가장돕기 특별방송 갔잖아요. 거기 야외무대 세트가 무너져서 몇 사람 다쳤대요.
피투성이가 돼서 실려 갔다고 현장에서... (전화 왔어요)
고훈 : (말 끊어) 얼마나 다친거야? 오늘 생방 펑크야 그럼?
대본을 든 은비, 걸어오며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은비 : 남자들이 호들갑은.. 신도영 지금 수정 대본 읽고 있어요.
고훈 : 사고 나서 실려갔다니깐요.
은비 : 앰블런스 안에서 전화했던데. 대본 넣어달라고.
고훈 : 피투성이 됐다면서.
은비 : 피 닦고 오겠지.
#S8. 거리 / 낮
달리는 앰블런스 안. 찢어진 스커트 아래로 종아리와 무릎에 붕대가 감긴 다리.
신도영, 링겔 꽂은 채 머리엔 그루프를 몇 개 말고 한 손으로 스마트폰을 잡고 전송받은 대본을 읽고 있다.
그 와중에도 매력과 품격, 여유가 있다.
(E) 전화벨
도영 : 선생님, 죄송하지만 전화 좀 꺼내주실래요?
옆에 탄 의사, 가방에서 울리는 휴대폰을 꺼낸다.
도영, 발신자를 본다. 고훈PD.
도영 : 죄송해요. 귀에 좀...
의사 : (귀에 대준다)
도영 : (밝게) 고선배! 나 정강이 찢어졌어. 오늘 의상 바지로 바꿔 주시구요. 수정 대본 지금 받았거든. 30분 내로 갈게요.
의사 : 병원부터 가셔야 하는데요.
도영 : (여우같은 사근사근) 선생님이 지혈을 잘해주셔서 괜찮아요. 고맙습니다.
의사 : (어리벙) 안됩니다. 일단은...
도영 : 이해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쌩하니 달려가는 앰블런스. 멀리 63빌딩이 보인다.
가까워지고 있는 여의도.
앰블런스 안.
의사 : (스마트폰을 잡고 대본을 보고 있다)
도영 : (누은 채 외운 멘트 연습, 밝게) 오늘 모신 방청객은 정말 특별한 분들입니다.
뭐 저희야 어느 한 주 특별하지 않은 손님은 없지만 이번 주는 특히...(막힌다. 의사를 보면)
의사 : 내 소중한 이웃...
도영 : (기억나는) 내 소중한 이웃 코너에 사연을 올려주신 따스한 분들 추첨해 이 자리에 모셨습니다.
저희는 여러분이 자랑스럽습니다!
#S9. 방송국 앞 / 낮
사월, 길게 늘어선 사람들에게 홍보전단을 하나씩 나눠주고 있다. <뉴욕 파리 홍콩의 핫 패션을 만나세요! Dragon Girl>
사월 : 요즘 세일하고 있거든요. 자, 자... 한번만 왔다하면 린제이 로한, 두 번만 더 들리면 제시카 알바.
끝내주는 여름 신상 많이 있어요. 이쁜 언니, 꼭 오삼!
뒷 쪽에 서 있는 20대의 한 남자, 사월의 가방을 계속 주시하며 주변을 살피고 있다.
사월, 홍보전단 나눠주고 얘기하느라 정신이 없다. 사월, 한 장씩 다 나눠주며 맨 뒷줄에 와서 서는데
남자, 사월의 뒤에 줄을 선다.
사월 : (콧노래 흥얼거리며 핸드폰 문자를 보내는데)
남자 : (사월의 가방에 손을 넣으려 하는데)
사월 : (뒤돌아보며 전단을 준다)
남자 : (깜짝!!)
사월 : 여자친구 선물 살 때 한 번 오세요.
남자 : ...(전단을 받는다)
사월 : (흥얼거리며 문자 보내는)
남자, 사월의 가방에서 날렵한 솜씨로 두툼하고 낡은 지갑을 꺼낸다. 빠른 발걸음으로 걷기 시작.
사월, 문자를 보내고 핸드폰을 가방에 넣는다. 문득 뭔가 이상한.
사월 : !! (가방을 본다. 안을 뒤적이는데 지갑이 없다)
사월, 뒤에 서 있던 남자 저만치 빠른 걸음으로 걷고 있는 게 보인다.
#S10. 거리 추격전 / 낮
달리는 남자. 뒤따라가는 사월.
사월 : 도둑이야! 거기 서!
남자, 계속 달리고 사월 악착같이 따라간다. 절박하다.
두 사람의 추격전, 벚꽃 날리는 윤중로를 지난다. 윤중로를 빠져나와 서강대교 쪽으로.
서강대교로 들어서는 두 사람. 남단에서부터 뛰기 시작한다.
사월, 소리 버럭.
사월 : 야! 그 돈이 어떤 돈인데.... 너 잡히면 죽어!
남자, 뛰면서 뒤돌아본다. 암팡지게 따라오는 사월을 돌아본다. 놀랍단 표정. 계속 달린다.
사월, 계속 따라간다. 서강대교 북단 끝까지 오는 두 사람. 상수동 쪽으로 들어간다.
#S11. 방송국 분장실
링겔을 손에 꽂은 채 링겔병을 들고 들어오는 신도영.
조연출과 작가 이은비, 분장 오경미 앉아있다 놀라서 일어선다.
도영 : 의상 준비됐지? 리허설 하자 빨리.
조연출 : 숨 좀 돌리구, (대본 주며) 수정된 거 한 번 보시구요.
도영 : 오면서 다 외웠어요.
은비 : 리허설 할 때 그 병 들고 할꺼야?
도영 : 응. 피를 많이 흘려서 이거 안 넣으면 나 죽는대. 리허설 가자!
#S12. 막다른 골목 / 낮
소매치기 남자, 뛰다가 막다른 골목에 갇힌다. 땀으로 머리가 착 들러붙고 숨이 끊어질듯 헉헉거린다.
저만치서 달려오는 사월. 역시 땀범벅에 가쁜 숨 몰아쉬며 온다.
남자, 다리가 풀리는 듯 주저앉는다.
사월 : 헉헉... 내 돈 내 놔.
남자 : (헉헉) ...
사월 : (헐떡) 아까 나 전단 돌리는 거 봤지? 나 친구네 가게 일 봐주면서 힘들게 사는 사람이야.
지갑에 든 돈, 이따 동대문에서 물건 떼 갈 자금이다, 이 소매치기야.
남자 : ... 헉헉... 이게 겁도 없이...
사월 : 헉헉.... 너 그렇게 막장 인생 살지 마. 얼른 돈 줘라.
남자 : ....... (숨 몰아쉬며 정신없는)
사월 : 아우 숨차.... 다섯 살 때 먹었던 떡볶이가 다 넘어온다.
사월, 벽에 기대 가쁜 숨을 몰아쉰다. 가방에서 쥬스를 하나 꺼내 남자에게 던진다.
사월 : 옛다! 먹어라!
남자 : (받는다)
사월 : 너도 먹고 살기 힘든가 본데 내가 신고는 안할게. (쥬스병 또 하나 꺼내 뚜껑을 딴다. 꽝이라 쓰여있다. 던지며) 에이!
(쥬스 마시며 숨 고른다) 크... 내가 생긴게 이쁘고 럭셔리해서 니가 못 믿나본데 나 옛날에 좀 놀았어.
내 헤어스타일을 봐라, 잔인하지 않니. 험한 꼴 보기 싫음 그거 마시고 얼른 돈 주고 꺼지셔.
남자 : (쥬스를 따 마신다)
사월 : 뚜껑 내봐.
남자 : (뚜껑 던진다)
사월 : (보면 꽝) 꽝이네. 쯧...
남자, 쥬스를 마시다가 쥬스병을 사월에게 던진다.
사월 얼른 피한다. 옆의 벽에 부딪혀 박살나는 병. 유리병 파편이 사월 얼굴에 튄다. 피가 맺히는.
사월 : .... (인상 쓰며) 이런!!
#S13. 으슥한 골목이나 공터 / 낮
남자, 뛰어간다.
뒤에선 독이 바짝 오른 사월이 달려와 남자를 덮쳐 쓰러뜨린다.
두 사람의 격렬한 난투극. 인정사정 보지 않고 싸운다. 치고 차고 엎어지고.. 적나라하게 싸운다.
남녀가 아니라 거친 두 남자의 대결같다.
사월, 돌려차기로 얼굴을 때리고 박치기로 마무리해 남자를 쓰러뜨린다.
사월 : 나쁜 새끼...
사월, 남자의 점퍼 주머니를 뒤진다. 훔쳐간 지갑과 만 원짜리 여러 장, 교통카드, 주민등록증이 나온다.
사월 : 주민증은 경찰서 가서 찾아가.
남자 : 잘못했어요, 한번만 봐주세요.
사월 : 됐구! 이거 다 압수. (만 원짜리 바지 주머니에 쑤셔넣는)
남자 : 야! 내 돈!
사월 : 너 때문에 입은 피해 보상액은 가져가야지. (바락바락) 이게 뭐니 이게! (간다)
남자 : 야!
사월, 뒤도 안 돌아보고 뛰어간다.
#S14. 방송국 앞 / 어스름
기다리던 사람들 다 입장하고 썰렁한 입구. 웃고 있는 신도영 사진만 보인다.
헐레벌떡 뛰어와 그 앞에 서는 사월.
사월 : ...... (바리게이트가 쳐진 안 쪽에 소리친다) 저기요! 저 인터넷으로 신청해서 오늘 뽑혔거든요.
좀 들어가게 해주심 안돼요? 여보세요!
#S15. 방송국 스튜디오
대형 스튜디오. 지미집 카메라와 스탠드 카메라 3대 부산히 움직이고 빨간 불이 깜빡거린다.
한국 최고의 인기 아나운서 신도영이 진행하는 ‘원더우먼쇼’
(오프라 윈프리쇼와 버라이어티가 혼합된 형식이란 설정. 너무 무겁지고 가볍지도 않은...
예전 KBS TV의 성공시대와 사랑방 중계가 업그레이드, 변형된 형태로 보면 될 듯) 녹화중이다.
2, 30대 남녀 방청객들이 가득 앉아있다. 활기가 돈다.
진행자 신도영의 멋진 사진들, 앤디 워홀의 ‘마릴린 먼로’ 나 ‘엘리자베스 테일러’ 같은 작품처럼 만들어 큰 액자로 걸려있다.
리히텐슈타인의 그림처럼 도영의 캐리커춰로 ‘행복한 눈물’ 류의 그림도 걸려있고. 무대 분위기도 독특하고 새롭다.
신나는 오프닝 음악이 끝나면 신도영 무대로 뛰어나온다. 객석 환호와 박수.
빛나는 미모와 자신감으로 가득한 신도영, 화려한 메이컵과 세련된 의상(바지)으로 서 있다.
당당한 말투와 미소로 멘트.
도영 : 오늘은 아주 짜릿한 소식으로 원더우먼쇼를 열겠습니다. 여러분, 다 아시죠? 여러분의 뜨거운 사랑 속에 원더우먼쇼가
아시안TV 페스티벌에서 대상과 특별상을 모두 거머쥐었습니다! 브라보!
객석 환호와 박수. Congratulations 축하곡이 연주되기 시작...
도영 : 무조건 격려하고, 무조건 칭찬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는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막무가내 컨셉으로
시작한 저희 쇼가 그동안 많은 분들을 응원했고, 포기의 순간에 어깨를 일으켜 세웠습니다.
작가와 조연출, 카메라 옆에 흐뭇한 표정으로 서 있다.
도영 : 지난 주말에 있었던 수상 기념 바자회에 많은 분들 참여해 주셨죠. 고맙습니다. 지구의 절반도 넘게 살 수 있을만큼 모인
엄청난 따뜻한 성금은.. 오늘 따스한 이웃으로 선정된 방청객 여러분께 아낌없이 쏘겠습니다.
꽃종이 휘날리며 산타복장을 한 산타아가씨들 선물 상자를 들고 등장 객석에 나눠준다. 객석 모두 환호, 열광.
도영 : 자, 원더우먼 쇼의 강력한 주문, 오늘도 다 같이 외치면서 문을 열겠습니다. 하나 둘 셋!
(방청객들과 함께) 너는 내 꿈이야! 세상을 다 가져라!
객석, 요란한 함성과 박수.
#S16. 순두부 전문집 / 밤
TV에서 보이는 도영의 웃는 얼굴과 객석의 함성.
도영, 자신도 선물을 나눠주고 방청객들 도영을 껴안고 악수하고 열광의 도가니.
테이블을 쾅쾅 치며 열 받아 있는 사월.
사월 : 아우! 아우! 그 놈만 아니었어도 저 선물 나도 받는 건데... 아우....
주인아줌마, 리모콘으로 TV를 끈다.
아줌마 : 밥이나 먹고 부셔라.
사월 : 아우, 밥 주세요 얼른!
순두부 뚝배기가 오고 돌솥에 지어진 밥이 온다.
사월, 능숙한 솜씨로 순두부에 계란 2개를 깨서 넣고 솥에서 밥을 푸고 물을 부어 뚜껑을 덮어놓는다.
사월 : (순두부 조제를 하며) 너는 내 꿈이야... 세상을 다 가져라... 아무나 다 갖냐, 니들은 세상이 쉽냐...
그래도 신도영은 정말 멋져...
아줌마 : 너 그런데 한 번 나가볼랴?
사월 : 어딜요?
아줌마 : 사람 찾는 프로. 엊그제도 보니까 20년 만에 엄마 찾고 하더만. 내가 밥장사 40년 하면서 사람 보는 눈 하나는 틔웠어.
넌 아무데서나 굴러먹던 집 딸이 아닐껴. 나가서 한 번 찾어봐.
사월 : (화를 바락) 아우 짜! 오늘은 왜 이렇게 짜. 주방장님 실연당했나.
아줌마 : 부모 찾으란 소리만 하면 발끈햐. 찾지 마, 그럼.
사월 : (말없이 밥 먹는) ....
#S17. 분장실 / 밤
한 켠에 걸려있는 반쯤 빈 링겔 병.
도영, 들어온다. 분장실의 사람들 수고하셨습니다 인사하고.
도영 : 수고하셨습니다.
조연출 : 오늘 회식 있는 거 아시죠.
도영 : 당연하지. 그것만 기다리면서 사는데.
은비 : 자기는 병원부터 가야하는 거 아냐? 얼굴에 핏기가 없어.
도영 : 괜찮아.
은비, 도영을 붙잡아 바지를 걷어본다. 붕대를 감은 게 피로 흥건하다.
은비 : 헉!
도영 : (붕대 감추며) 나 빠지면 분위기 썰렁해. 괜찮으니까 그냥 가.
장시은, 들어온다.
시은 : 나랑 오늘 심야영화 보러 갈 사람?
도영 : 어서 와, 시은! 요즘 라디오 잘 듣고 있어.
시은 : 그래서?
도영 : 자기 프로에 신청곡 올리면 틀어줄꺼지?
시은 : 봐서!
은비 : 태도가 저러니 청취율이 마이너스지. 동기 중에 젤 빠지고.
시은 : 뭐라구요?
은비 : 9시 뉴스 앵커 이세진, 원더우먼쇼 신도영, 클래식 오딧세이 조선희... 다들 잘 나가는데 자기만 메인 프로가 없잖아.
그건 다 장시은 아나의 그 삐딱한 태도 탓!
도영 : 시은씨 프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듣는데.
은비 : 새벽 4시에 하는 걸 누가?
도영 : 시은, 우리 회식하는 데 같이 가자. 맥주 딱 한 잔 하고 나랑 같이 심야 영화 가.
시은 : 됐네.
도영 : (다정하게) 가자아.
시은 : 자기가 왜 나랑 심야 영화를 봐. 애인 어쩌구.
도영 : 지금 홍콩에 있어. 나도 외로워. 김은비 작가 신경쓰지 말고, 가서 우리끼리 놀자. 오늘 물 좋은 데 갈꺼야.
시은 : .... (솔깃) ... 물 좋은 데 어디?
도영 : 잠깐 기다려. 옷 갈아입고 나올게.
도영, 탈의실로 들어간다.
시은과 은비, 서로 까칠하게 쳐다보며 신경전하고 있는데 안에서 콰당 쓰러지는 소리가 난다.
은비, 시은 : ??
#S18. 병원 응급실 / 밤
응급실 앞으로 기자들 우르르 뛰어온다. 조연출과 고훈 PD에게 달려가
기자 : 신도영씨가 쓰러졌다면서요. 많이 다쳤습니까?
시은, 마이크를 들고 카메라 앞에 서 있다. 팩스 용지 한 장 손에 들고 있다.
시은 : 이거 너무 오바하는 멘트 아네요?
은비 : (어깨 으쓱) 낸들 아우? 연예 스트리트 작가가 팩스로 보낸건데. 맘에 안 들면 그 작가한테 항의하시던가.
카메라에 불 들어온다.
시은 : (웃는 얼굴로) 야외 세트가 넘어져 부상을 당하고도 바로 원더우먼쇼 생방송을 아무 일 없이 마친 신도영 아나운서가
방송 후 쓰러져 주위를 놀라게 했는데요. 대단한 프로 근성의 그녀, 다행히 응급수술로 무사히 회복중이라고 하네요.
다리에 붕대감고 누워있는 도영. 카메라가 들어온다.
시은 : 팬 여러분께 한 말씀 해주시죠.
도영 : 저 괜찮아요. 걱정을 끼쳐드려서 죄송합니다.
시은, 응급실을 나서며 군시렁.
시은 : 기분 나빠. 난 늘 교묘하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 같단 말이지...
링겔 줄 떼어주는 간호사. 알콜솜으로 마무리 해주는데
은비 : (다가와) 준세씨한테 전화왔었어. 홍콩에서 인터넷으로 자기 소식 알았대. 걱정 많이 하더라. 이따 전화해 줘.
도영 : 응.
은비 : 아주 사랑이 넘치셔 그냥.
도영 : 집에선? 전화 없어?
은비 : 없는데.
도영 : .... 응....
#S19. 동대문 시장 / 밤
커다란 옷가방을 여러 개 매고 시장을 누비는 사월. 얼굴엔 반창고. 이 집 저 집, 흥정하고 인사하고 활기차게 돌아다닌다.
군것질하는 상인들 과자도 하나 뺏어 먹고...
사월 : 신상으로 열장만 주세요. 지난번에 뽑아간 건 하루 만에 다 나간 거 있죠...만 원만 빼줘요 진짜...
사장님 왜 그렇게 짜, 잘생기면 다야?
음료 자판기에 서 쥬스를 뽑는다. 뚜껑을 연다. ‘꽝! 다음 기회에 ^^;’
사월 : 에라이...
#S20. 용자네 옷집 / 밤
늦은 밤. 인적이 끊긴 거리. <Dragon Girl>이란 간판의 신선하고 독특한 옷집. 홍대 어귀 쪽의 샵이라 생각하면 될 듯.
물건 가방들 쫙 열려있고 옷을 진열하고 정리하는 사월과 용자.
용자 : 와... 이거 동대문표 맞아? 얜 파리에서 왔대도 믿겠다.
사월 : 그게 다 언니의 물건 보는 솜씨가 탁월해서 아니겠니. (옷 걸며) 아우 좀 비켜 봐.
용자 : 근데 너 얼굴 왜 그래?
사월 : 오늘 소매치기랑 결투 살짝 해주셨거든.
용자 : (놀라) 소매치기?
사월 : 그 놈 잡아서 열라 패고, 갖고 있던 돈까지 뺏어 왔지.
용자 : 쯔쯔... 소매치기도 사람가려서 해야지. 걔 너무 불쌍하다.
사월 : 신고 안한다 지갑만 돌려주라. 쥬스까지 주면서 다독였어. 그런데 내 등에 칼을 꽂더라. 그래서 두 배로 갚아 준거야.
용자 : 복수의 화신 같으니라구.
사월 : (옷 걸며) 아싸, 죽인다!
용자 : 사월아, 너 머리 좀 바꿔라. 밤에 보면 나도 가끔 깜짝 놀라.
사월 : 야, 이 정도는 하고 다녀야 시장에서 말빨이 서지. 내가 얼마나 곱고 여리고 착하게만 생겼니.
용자 : 야, 안 웃겨.
사월, 세련된 투피스 정장을 거울에 대본다.
사월 : 이건 나 하루 의상 협찬해주라.
용자 : 면접날짜 잡혔어? 너 벌써 원서 낸거야?
사월 : 결혼식에 갈꺼야.
#S21. 결혼식장 / 낮
호텔 결혼식장. 화한이 즐비하다.
세련된 정장에 머리를 곱게 편 사월, 하이필을 신고 로비로 들어선다.
신부대기실 쪽으로 가는 사월.
신부 대기실, 예쁘게 웃으며 앉아있는 신부.
(E) 이제 곧 결혼식이 시작되오니 하객 여러분께선 착석해 주시기 바랍니다.
사진 찍던 친구들 모두 나간다.
사월, 미소 지으며 다가선다. 여유 있다. 그러나 진심으로 다가서는.
사월 : 장서임! 결혼 축하해.
신부 : ....
사월 : 날 기억 못하는 건 아니겠지? .... 나야, 윤사월. 니가 7년 전에 도둑 누명 씌워서 학교 짤린 고아원 기집애.
정말 오랜만이다, 그치?
신부 : 나가 줄래. 널 부른 적 없는데.
사월 : 긴장하지 마. 축하해 줄려고 왔어.
신부 : ....
사월 : 세상이 참 좁더라. 작년에 내가 아르바이트하던 레스토랑에서 널 봤어.
니가 놓고 간 명함 아니었음 헷갈릴 뻔했어. 너무 많이 고쳤더라, 너.
신부 : ....
사월 : 신랑네 집이 엄청 빵빵하네.
신부 : (밖에 부르는) 저기요!
사월 : 그 때 왜 그랬어? 누명은 나한테 씌우고 너 그 돈 가지고 서울로 나이트 갔다며.
신부 : 나가!
사월 : 너 때문에 난 인생이 (손으로 재는) 한 요만큼 더 힘들어졌어. 뭐 철없던 때 일이니까 용서할 수 있을 것 같아.
니가 진심으로 나한테 사과한다면.
신부 : 꺼져.
사월 : 니가 미안하다 한 마디 하면 나 오늘 거금 5만원 딱 내고, 맛있게 밥 먹으면서 축하해주고 갈꺼야.
신부 : 얘, 여기 식대 7만원이야. 너 같은 게 어디서 감히... 사람 부르기 전에 당장 꺼져!
사월 : .... 너 오늘 정말 이쁘다. 잘 살아 친구야. (나간다)
결혼식 진행 중. 신랑 신부 팔짱끼고 서서 축가를 듣는 순서.
중창단 여럿이 멋진 노래 부르고 신랑 신부의 옛날 사진들이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진다.
축가 계속 되는데 사람들 웅성웅성...
신부, 프로젝트 빔을 보면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다른 남자와 생일 축하 고깔모자 쓰고 웃는 사진, 껴안고 키스하는 모습,
미니홈피에서 찍은 듯한 야한 옷 입고 남자들과 클럽에서 춤추는 사진도.
홍대 앞 거리에서 외국남자와 껴안고 걸어가는 흐트러진 모습, 모텔에서 외국인과 나오는 모습 등이 나온다.
신부 : .............
이 때 화재 경보가 울리고 스프링클러에서 물이 터진다. 황급히 일어서는 하객들. 쑥대밭이 된 결혼식장.
결혼식장 로비, 뛰어나오는 사람들 사이로 하이힐 신은 사월 여유롭게 걸어 나간다.
#S22. 한강 고수부지 / 낮
봄 햇살이 쨍하다.
한강을 보며 물끄러미 앉아있는 사월. 표정 쓸쓸하다. 눈물이 나는 듯 손등으로 쓱 훔친다.
사월 : .... 미치겠네.... 오늘은 보고 싶은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눈물 그렁) 울 엄마... 울 아빠... 울 언니.....
사월, 가방을 뒤진다. 오렌지 쥬스 병이 나온다. 뚜껑을 확 따 던지고 목 마른 듯 꿀꺽 꿀꺽 마신다.
‘크으...’ 하며 내려놓는데 뒤집힌 병 뚜껑이 보인다.
사월 : ......
뚜껑을 들어본다. ‘GO! 홍콩!’이라 쓰여 있다.
사월 : !!!!!!
사월의 놀란 표정 위로 터지는 박수소리.
#S23. TV 스튜디오, 한국 / 낮
부모와 함께 아침방송 토크쇼에 출연 중인 도영.
우아하게 차린 엄마 최정희, 자상한 미소로 연신 도영을 바라보는 아버지 신수호 카메라 앞에 앉아있다.
아줌마 방청객들 앉아있고.
도영 : 전 어머니를 가장 존경해요. 미대 조소과 교수님이신데 제가 어릴 때부터 점점 자라는 모습을
흙으로 빚어서 만들어 주셨어요.
방청객들 : (와... 감탄)
도영 : 저도 언젠가 결혼을 하고 엄마가 되겠죠. 그 때 아이들에게 저희 어머니같은 엄마가 돼 주고 싶습니다.
보조MC : 우리 신도영씨는 보면 볼수록 어머니를 쏙 빼 닮으신 것 같아요. 정말 어머님 미인이십니다.
정희 : 과찬이십니다...
MC : 최정희 교수님, 우리 도영씨 가졌을 때 뭘 드셨나요?
세 사람, 잠시 멈칫. 남들 눈치 채지 못하게 아주 잠시.
정희 : (우아하게 웃으며) 글쎄요... 뭐 특별히 먹은 건 없고... 도영인 어렸을 때 별명이 사과대장이었어요.
사과를 그렇게 좋아했어요.
보조MC : 진작 좀 알려주시지. 저도 그럼 어릴 때부터 사과 먹고 성공했을 텐데.
MC : 오늘부터 사과농가 대박이겠습니다.
보조MC : 아니 그 엄청난 상금도 다 좋은 일에 쓰셨잖아요. 신수호 교수님, 어떡해야 저렇게 훌륭한 딸을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수호 : (웃으며) 글쎄요...
도영, 따뜻한 눈길로 아버지를 본다.
#S24. 방송사 입구 / 낮
승용차 서 있다.
도영과 프로그램 관계자로 보이는 사람들(다른 프로 PD, 작가) 나와서 부모를 배웅한다.
웃는 얼굴로 온화하고 고상하게 인사하는 정희.
PD : 고생하셨습니다. 그러게 너무 훌륭한 딸을 두셔도 피곤하시다니까요.
수호 : 애쓰셨습니다.
정희 : 수고하셨어요.
PD :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교수님 그럼 살펴가십시오.
피디와 작가 꾸벅 인사하고 들어간다. ‘어머니 너무 멋있으셔... 프랑스 여배우같아...’
도영 : 오늘 고생 많으셨어요.
정희 : (냉냉) 너 잘난 척 하는데 꼭 우리까지 불러내서 이런 쇼를 시켜야겠니?
도영 : ......
수호 : 또 왜 이래요. 지금까지 잘 웃다가.
정희 : 다신 이런 거 시키지 마라. 니가 뭐라고 우릴 이렇게 우습게 만드니.
도영 : 잘 못했어요 엄마. 죄송해요.
정희 : (남편에게) 타요.
정희, 싸늘하게 차에 탄다.
수호 : 맘에 두지 마라. 엄마 변덕스러운 거 한두 해 겪니.
도영 : 전 괜찮아요.
수호 : 참 저녁 약속이 어디랬지?
도영 : 오리엔탈 호텔이요. 이따 뵈요.
부모가 탄 차, 떠난다.
멀어지는 차를 물끄러미 바라보고 서 있는 도영. 쓸쓸한 표정으로 돌아선다.
#S25. 호텔 카페 / 저녁
도영, 커피 한 잔 앞에 놓고 앉아있다. 울적한 표정.
준세 다가온다.
준세 : 표정이 왜 그래?
도영 : 일찍 왔네. (일어서며) 가자! (팔짱을 낀다)
준세 : 사람들 눈도 있는데 그런 표정으로 있지 마. 넌 늘 당당하고 화려한 여자로 보이는 게 좋아.
도영 : 왜?
준세 : 내 여자니까.
#S26. 호텔 레스토랑 / 밤
식사중인 도영, 준세, 정희, 수호.
정희 : 출장 갔던 일은 잘됐어요?
준세 : 예, 잘 끝내고 왔습니다. 다음 주부턴 아버님이 고문으로 계신 백화점으로 출근해요.
정희 : 또 어디 한 군데를 사들이나 부죠?
준세 : 예, 아직까진 기밀입니다. 어머니.
수호 : 두 사람은 인터뷰로 만났다고 했지?
준세 : 예, 맞습니다. 그래서 저보다 멋진 남자 인터뷰는 하지 말라고 제가 매일 당부하고 있어요.
정희 : 도영이가 왜 좋아요?
준세 : 이쁘니까요.
수호 : 넌 김이사가 왜 좋으냐.
도영 : 저더러 이쁘다니까요.
수호 : (껄껄 웃으며) 심플해서 좋구나.
이때 바이올린과 플롯 연주하며, 꽃다발과 반지가 놓인 은쟁반을 든 웨이터와 매니져가 다가온다.
매니져 : 김이사님께서 오늘은 특별한 저녁이라고 하셔서요.
쟁반에 놓은 반지 케이스를 준세, 도영에게 건넨다. 케이스를 열면 빛나는 다이아반지.
준세, 도영의 손가락에 반지 끼어준다.
정희는 시니컬하게 보고 있고.
도영 : ..... (감동) ....
준세 : (꽃다발 주며 무릎 꿇는다) 나랑 결혼해 주겠어?
도영 : 당연하죠!
바이올린 플롯연주 더 신나게. 다른 테이블 손님들 박수쳐준다.
정희 : 쇼맨쉽도 대단하시군. 저런 건 둘이 조용하게 할 일이지.
매니져와 연주자들, ‘축하드립니다’ 인사하고 돌아가고.
준세 : 결혼식은 가을쯤 올리고 싶습니다. 허락해 주실꺼죠?
수호 : 허락하구 말구. 자, 우리 건배 한 번 하지.
네 사람 건배하다.
이때 핸드폰이 진동으로 징~ 울린다. 도영, 번호를 본다. 무시하는데.
수호 : 왜 안 받아?
도영 : 모르는 번호에요. 안 받아도 돼요.
핸드폰 계속 울린다
정희 : (까칠) 신경 쓰인다. 받아.
도영 : (전화받아) 여보세요... (소리가 없는 듯) .... 여보세요?
엄마 : (E) 신도영씨?
도영 : (사무적으로) 네, 어디시죠? ..... 여보세요?
엄마 : (E) 내가 보낸 소포가 아직 도착 안했나보구나... 너한테 전화오길 기다렸는데...
도영 : 실례지만 어디십니까?
엄마 : (E) 엄마다... 니 친엄마야.
도영 : .....!
도영, 멈칫. 긴장된 표정으로 듣고 있고 나머지 세 사람은 조용한 소리로 담소하며 계속 식사중. 평화롭게.
엄마 : (E) 난 곧 죽는다.... 죽기 전에 널 꼭 만나고 싶어... 날 만나러 한 번 이리 와 줄 순 없겠니...
도영 : (끊는다)
정희 : 무슨 전환데 그렇게 끊니?
도영 : 장난 전화에요.
#S27. 방송국 로비 / 아침
밝은 표정의 도영, 들어선다. 남들 앞에선 언제나 밝고 기운 찬 도영. 들어서며 청경과 마주치는 사람들에게 밝게 인사.
도영 : 안녕하세요.
엘리베이터를 탄다.
엘리베이터 탄 사람 중엔 장시은과 메이컵 담당 오경미도 끼어있다.
도영 : 안녕?
시은 : (고까운 듯) 응, 안녕.
3층을 누르는데 넷째 손가락에 반짝거리는 반지. 시은이 본다.
시은 : (놀라) 흡!
#S28. 방송사 분장실 / 낮
열 나는 듯 큐시트로 부채질하며 앉아있는 시은. 경미, 메이컵 중.
시은 : 티파노에서 나온 프로포즈 링이야. 그 백여시. 청혼 받은 게 분명해.
경미 : 도영선배는 정말 완벽하지 않아요? 좋은 집안, 미모, 학벌... 뭐하나 빠지는 게 없어. 거기다 잘생기고 돈 많은 애인까지.
시은 : 김준세 이사도 자기가 꼬신 거 아냐. 괜히 자기 프로에 맞지도 않는 사람 섭외해서 인터뷰하고..
자기도 알지? 김준세 내가 먼저 섭외하자고 했던 거.
경미 : 선배가 꼬셨으면 넘어오기나 했겠어요?
시은 : 왜 신도영은 모든 걸 다 갖는 거야. 왜!
경미 : 이러니까 그렇게 안티가 많지. 으이그! (시은 입술 위에 뺑덕 엄마 점을 하나 찍는다)
#S29. 원더우먼 쇼 사무실 / 낮
PD와 작가들 책상이 5개 놓여있고 가운데 커다란 회의 테이블,
한 쪽엔 에스프레소 기계와 원두커피, 커피잔들 제대로 갖춰진 세련된 공간.
(고훈 PD, 김은비 작가, 조연출 송진용 외 보조작가 3명과 FD 3명이 한 팀이란 설정)
인터넷으로 뭔가를 찾고, 전화를 받고, 복사기를 돌리고 잡지를 뒤적거리고 부산하고 활기차다.
도영, 밝게 웃으며 들어선다.
도영 : 굿모닝!
책상에 홍콩소인이 찍힌 소포 봉투가 놓여있다.
도영 : .......
엄마 : (E) 내가 보낸 소포가 아직 도착 안했나보구나... 너한테 전화 오길 기다렸는데...
도영, 소포를 뜯어 안에 든 내용물들을 꺼내본다. 흠칫 놀라 넣고 봉투를 손으로 꼭 잡는다.
도영 : 저기.... 이거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거야?
PD : 그저께 왔나... 뭐야? 외국에서 온 것 같던데.
도영 : 팬이 보낸 선물 같아요.
#S30. 옥상 / 낮
바람이 분다.
도영, 봉투 안에 있는 걸 꺼낸다. 떨리는 손길.
도영 : ......
꼭꼭 눌러 쓴 장문의 편지와 방 안에서 아기를 안고 있는 웃고 있는 엄마의 빛바랜 사진 한 장
<제성 보육원> 간판이 보이는 보육원 외경 사진 한 장이 나온다.
도영 : ..... (숨이 찬 듯 헉... 하는 호흡)
엄마 : (E) 널 낳던 날은 따뜻한 봄날이었단다. 네 아버지와 난 같은 공장에서 만났지. 그 사람은 아주 성실하고 착한 남자였어.
억울한 누명을 쓰고 행방불명되기 전까지 난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자였단다.
굳어진 시선, 멍하니 옥상에 서 있는 도영.
#S31. 스튜디오
‘원더우먼 쇼’ 녹화중.
도영, 출연한 패널들과 플라멩고 의상을 입고 서 있다. 춤을 배워보는 시간.
도영, 환하게 웃고 제스쳐도 크게 하며
도영 : 발로 치는 박자가 계속 왔다갔다 하는데요. 다시 한 번.
엄마 : (E) 어린 널 데리고 난 살아보려고 발버둥쳤어. 그러다 어느겨울, 널 업고 길에서 쓰러졌다. 이러다 너까지 죽이겠다 싶어서
보육원 앞에 널 갖다뒀지. 형편이 나아지는대로 널 다시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런데...
도영 : 우리가 제일 낫게 하는 것 같아요. 시범을 보여드릴게 한 번 보세요. 음악 스타트!
도영, 패널 한 사람과 춤추며 박장대소.
은비 : 오늘 왜 저렇게 오바야?
조연출 : 모르겠어요. 아깐 해외 출장 아이템을 내던데요.
#S32. 도영네 외경 / 밤
평창동의 단아한 2층 집.
#S33. 도영네 부엌 / 밤
깔끔하고 정갈하게 꾸며진 고급스런 거실을 지나면 부엌.
수호, 정희, 도영 세 식구 식사 중이다.
도영 : 홍콩으로 출장을 다녀올 것 같아요. 길진 않구요. 한 3일.
수호 : 피곤타지 않게 잘 먹고 다녀.
도영 : 그럼요. 저야 어디서나 잘 먹지. 선물 뭐 사다 드릴까요?
수호 : 선물은 무슨...
정희, 도영이 자주 집는 반찬을 앞에다 놓아주고 다정하게 군다.
정희 : 이게 맛있나보네. 많이 먹어.
도영 : 엄마 오늘 기분 좋은 일 있으신가봐?
정희 : 도영아.
도영 : 네, 엄마.
정희 : 지영이가 곧 온댄다!
도영 : !!!
수호 : (칼로 끊듯) 그만 해요.
정희 : 불문과 송교수가 기가 막힌 점집이 있다길래 가봤지. 무섭게 맞추더라. 막 소름이 돋을 정도야.
수호 : 그만 하라니까.
정희 : 당신도 들어봐요. 우리 지영이가 서울 사대문 안에 살고 있대요. 여름이 가기 전에 지영이가 우리를 찾아올 꺼래요.
수호 : (숟가락을 소리 나게 탕 내려놓는다) 당신 이제 그만 정신 좀 차려요.
정희 : 도영아 너도 보고 싶지 않니, 니 동생 지영이?
도영 : .....
정희 : 지영이가 돌아오면 그때 우린 정말 행복한 가족이 되는거지... 지영이를 데려간 사람이 마음이 바뀔꺼래요.
지영이를 우리 품으로 돌려보내 줄꺼래요.
수호 : (벌떡 일어나 나가버린다)
정희 : 니 결혼식때 지영이도 있음 좋지 않겠니?
도영 : (미소) 좋구 말구요.
#S34. 도영 방 / 밤
넓고 큰 2층 방. 한 쪽엔 각종 상패와 트로피 장식장을 가득 채우고 있다. ‘최우수 졸업논문상’‘자랑스러운 동문상’ 등등...
도영, 긴장을 풀지 않은 날이 선 얼굴로 앉아있다.
빛바랜 사진을 꺼내보는 도영. 자신을 안고 있는 엄마의 사진.
도영 : .... 당신이... 내 엄마라구...
도영의 얼굴 위로 비행기 소리.
#S35. 홍콩 일각 / 낮
신나는 표정의 윤사월, 활기차게 걸어간다.
사월, 셀카도 열심히 찍고 쇼윈도우와 각종 샵들의 디스플레이도 촬영하고.
타이머 맞춰놓고 혼자 연출해 심각한 표정의 사진도 찍고 너무 신났다.
사월, 거리를 걸으며 지나가는 멋진 여자들을 열심히 훑는다.
백과 구두, 긴 머리를 넘기면서 보이는 시계와 담배를 든 손에 낀 반지... 놓치지 않고 다 알아맞힌다.
사월 : (구두를 보며) 마놀로 블라닉, (백을 보며) 루이비통 36호... 막스마라 스커트, 까르띠에 탱크... 구찌 2008 스프링 콜렉션...
(선글래스와 안경 보며) 쟝 폴고띠에, 셀린...
한 멋쟁이 금발 미인 지나간다.
사월, 아리까리해 생각이 안나는 듯.. 그녀를 졸졸 따라가며 계속 훑어본다. 기억해내려 애쓰는.
사월 : 뭐지, 저거 뭐지.... 나 아는데....
금발미녀 : (이상한 듯 돌아본다)
사월 : (손가락 딱 치며) 돌체 앤 가바나.
금발미녀 : (미소로) Fake!
사월 : 짝퉁?? 오 마이 갓! 밧 유아 뷰티풀! 진짜 원더풀!
지나가는 차와 남자들의 타이도 다 알아맞힌다.
사월 : BMW 세븐 시리즈, 벤츠 S클래스.... 저건 폭스바겐 골프... (넥타이 보며) 알 마니, 폴스미스, 보스, 브룩스 브라더스...
#S36. 홍콩 외곽 / 낮
변두리 외곽. 말끔하게 차려입은 도영, 걷고 있다. 선글래스를 썼다.
쪽지를 들고 사람들에게 물어가며 길을 찾아가는 도영. 좁고 어두운 골목길로 헤매며 걷고 있다.
한참을 걷다 어느 허름한 건물 앞에 멈춰서는 도영. 잠시 멈춰 서 있다 건물 안으로 들어간다.
#S37. 허름한 건물 안 / 낮
좁은 골목. 어둑한 실내. 온화하게 생긴 한 중국 할머니, 도영을 안내해 데려온다.
중국말로 계속 떠드는 할머니.
할머니 : (중국어) 나랑은 언니 동생하면서 지낸지가 20년이 넘어요. 한국에서 귀한 손님이 올 꺼라고 매일매일 기다렸어요.
먼 친척이슈? 에휴, 딱해요... 하루 하루 간신히 버티고 있어요. 편하게 가시도록 잘해드려요.
할머니, 2층의 어느 방으로 도영을 데리고 온다.
아늑하고 소박한 방. 침대와 작은 티 테이블이 있고 깔끔하게 정리돼 있다.
한 여자, 침대에 누워있다.
할머니, 침대 쪽으로 가 보란 손짓하고 나간다.
도영 : ....
방 안, 고요하다.
도영, 선글래스를 벗는다. 도영, 침대 쪽을 보고 서 있는데
침대에 누은 여자, 손을 뻗는다. 주름지고 앙상하고 고생을 많이 한 슬픈 손.
도영, 천천히 다가간다. 누워있는 여자와 눈이 마주친다.
눈이 크고 맑고 자기와 닮은 것 같은 50대 후반의 여자, 눈물이 그렁해져서 말을 못하고 바라보고 있다.
엄마 : ...... 우리 애기...... 왔구나......
도영 : ......
엄마 : .... 아가.......
도영 : ........
엄마 : 가까이서 보고싶어..... 내 강아지 얼굴........
도영 : ....... (천천히 다가간다)
엄마, 도영 마주본다... 진짜 내 엄마 같은 느낌이 싸아하게 온다... 이 초라하게 늙은 딱한 여자가...
마음이 어지럽고 눈물이 날 것 같다.
도영 : (차갑게) 돈이 필요하신가요.
엄마 : .. (손을 내민다) ... 엄마를 용서해 줘... 나도 평생 널 그리워하면서 아프게 살았다. (가슴을 만지며) 여기가... 다 헐었어...
도영 : .......
엄마 : 한숙이 우리 애기... 니 아빠하고 내 이름하고 한 글자씩 따서 네 이름을 지었었지... 한숙이라고...
도영 : ................
엄마 : 좋은 집에 입양 갔다는 소식을 듣고 널 데려가지 않기로 했어. 내 품에서 고생하는 것보단 그게 더 나으니까...
하지만 늘 니 옆을 맴돌면서 살았어.
#S38. 플래쉬백 몽타쥬
도영의 집 앞에 우유를 갖다놓는 배달부 아줌마.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다.
최정희, 초등학생 도영과 4살짜리 지영을 데리고 나온다.
정희 : 지영이 조심, 조심... 아이, 잘 한다. 우리 딸, 엄마랑 언니랑 같이 어야 가자.
양 손에 지영과 도영 손을 잡고 걸어가는 정희. 몇 걸음 안 가 도영의 손을 놓고 지영을 번쩍 안아든다.
도영, 불쌍하게 정희의 옆에 바짝 붙어 걸어간다.
우유배달 아줌마, 물끄러미 숨어서 바라본다.
엄마 : ............
초등학교 교문 앞. 비가 내린다.
교문 앞에서 우산 들고 서서 아이를 기다리는 엄마들, 가방으로 비를 피하며 뛰어와 엄마의 품에 안기는 아이들.
도영, 비를 맞으며 오는데 예쁜 꽃무늬 우산을 씌워주는 손. 보면 모자를 쓴 야쿠르트 배달 아줌마.
엄마 : 우산 없니? 이거 써. 우리 딸은 벌써 친구 우산 빌려 쓰고 집에 가 있댄다.
도영 : .....
엄마 : (미소) 어서!
도영 : (손잡이 잡으며) 감사합니다.
예쁜 우산 총총총 걸어간다.
멀리서 그 모습 바라보며 눈물 그렁한 엄마.
#S39. 허름한 건물 안 / 낮
숨이 멎은 표정으로 서 있는 도영.
엄마 : ..... 그 우산.... 기억나니? 노란 색 바탕에...
도영 : ... 빨간 색 딸기... 손잡이는 노란색...
엄마 : .... 그래 그래...
도영 : (눈물이 핑글)
엄마 : 난... 이제 곧 죽어.... 이 세상에선 내가 널 품어주지 못했지만 저 세상에서 너를 보호해줄게...
아가... 그러니 넌 아무 걱정하지 마. 내가 널 보살펴 줄꺼야.
도영 : (아무 말 못하고 눈물만)
엄마 : 니 죄도 내가 가져가마. 다 내 잘못이니까.
도영 : .......
엄마 : 죄 값은 내가 다 받을 테니 이제 그 일은 잊어라.
도영 : ........!!
엄마 : 그 일 이후로 난 한국을 떠났다... 견딜 수가 없었어... 내가 널 그렇게 만들었으니까.
도영 : .......
엄마 : 그 날...... 니 뒤를 따라갔었다. 다 봤어... 그 날 일을 내가 다 봤어....
도영 : .... (창백한 표정으로 잡고 있던 손을 뺀다)
#S40. 플래쉬 백 몽타쥬
도영이 지영을 버리는 서울역 몽타쥬. 어지러운 웅웅거림처럼 불친절하게 보여준다.
주파수가 안 맞은 채널처럼, 토막토막 생각나는 악몽처럼...
도영 : 지영아... 언니 잠깐 어디 좀 다녀올테니까 여기 있어.
지영 : 싫어 같이 가.
도영 : 언니가 이거 줄게 (목걸이 벗어서 준다) 이거 보면서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지영 : 언니 그럼 빨리 와야 돼...
도영 : 알았어. 금방 갔다 올게 여기 있어, 지영아.
지영 : 응....
도영, 걷기 시작한다. 두렵다. 걸음을 빨리 한다.
지영 : ....... (소리치는) 언니 빨리 와!
도영 : ...... (돌아본다)
지영 : (목걸이 만지며 바라보고 있다)
도영 : 그래, 거기서 기다려!
도영,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지나간다.
#S41. 허름한 건물 안 / 낮
낡은 스탠드만 켠 방, 도영의 그림자가 크고 외롭게 벽에 드리워져 있다.
굳은 표정으로 서 있는 도영, 얼어붙어 있다.
엄마 : 쑥대밭이 된 너희 집으로 편지를 보낸 건 나였어. 널 지켜주기 위해서 내가 거짓 편지를 보냈다... 지영이를 데려간다고.
도영 : ......
엄마 : 살다가 그 애를 만나면 잘해줘야 해. 아가, 그 애한테 잘해줘야 해.
도영 : ......
엄마 : 모든 게 나 때문이야... (마지막 힘을 내 손을 뻗는다. 도영의 손을 잡는다)
엄마 : .... 니 죄는 다 내가 가져가마... (잡고 있던 손에 천천히 힘이 빠지는데) ....
도영 : .....
엄마 : (눈물 그렁한 눈으로 도영을 바라보는 눈 점점 감기는)
도영 : .......... 가지 마.
엄마 : ......
도영 : 죽지 마! 당신이 진짜 내 엄마면 죽지 말라구!
우르릉 쾅 천둥이 친다.
도영 : 엄마!
#S42. 묘지 / 낮
중국인 할머니와 할아버지, 선글래스를 낀 도영 서 있다.
도영, 선글래스 아래로 눈물이 계속 흘러내린다. 초라하고 쓸쓸한 엄마의 묘지.
노부부, 돌아가고 도영 혼자 그 앞에 서 있다.
#S43. 홍콩 특급호텔 / 낮
도영이 묵는 넓고 화려한 방. 오디오에선 클래식이 크게 흐른다.
침대에서 이불을 쓴 채 앉아 소리죽여 도영. 이불이 들썩거린다. 몸부림치듯 들썩거리다 침대에서 이불과 함께 떨어지는 도영.
이불을 쓰고 방바닥을 기어 다니며 흐느끼는 도영.
#S44. 홍콩 쇼핑몰 / 낮
미친 듯이 쇼핑하는 도영. 옷, 구두, 악세사리...
#S45. 홍콩 외곽 거리 / 밤
도영, 비틀거리며 걷고 있다. 가까스로 이를 악물고 몸을 추슬러 걸어간다.
우르릉 쾅 천둥과 번개. 비가 흩뿌리기 시작한다.
#S46. 허름한 바 / 밤
구석에 앉은 도영, 술 마시고 있다. 지독하게 슬프고 외로운 밤. 끔찍하다.
술이 많이 취한 도영, 혼자 중얼거리며 픽픽 웃기도 하고.. 도영, 이를 악물고 조용히 혼잣말...
도영 : .... 당신 왜 이렇게 잔인해.... 날 버리고 30년을 살다가 이제 나타나서 죽는다구? .... 그 날 나를 따라 왔었다구....
시끌시끌한 소리나며 차동우와 외국인 친구 세 명, 비에 젖은 옷을 털며 급하게 뛰어든다.
바에 앉아 왁자지껄 떠드는 동우와 친구들.
바텐더와 하이파이브하고 인사하고 맥주를 받아쥐는 동우. 구석에 앉아 넋이 나간 표정으로 슬프게 술을 마시는 도영을 본다.
혼자 피식 웃고 눈물이 글썽해 있는 도영.
동우 : ..........
이내 친구들의 시끄러운 소리에 다시 고개를 돌리고 웃고 술 마시는 동우.
#S47. 거리 / 밤
비 그친 거리. 인적이 뜸하다. 건물 간판에 고여 있던 빗물이 고요히 뚝뚝 떨어진다.
동우, 빠른 걸음으로 걸어간다. 가다가 멈춰 선다.
건물 처마 및 같은 곳, 도영 쭈그려 앉아 벽에 기댄 채 반쯤 쓰러져 잠들어 있다.
동우 : ...........
동우, 어찌할까 잠시 주춤거리다 발걸음을 옮긴다. 저만치 멀어진다.
가다 뒤돌아보면 불량스럽게 보이는 멕시칸 스타일의 남자 둘, 도영 앞에 서서 서성거리고 있다...
손목에 찬 시계와 백, 다리를 핥듯이 보는 두 남자. 도영의 백을 뺏어 열어보려는데
그 백을 발로 차는 발, 동우다.
남자1 : Who the hell are you.
남자들, 동우에게 주먹을 날리는데 동우 주먹을 피하고 몸을 날려 한 남자를 차 넘어뜨린다.
두 남자와 치고받고 난타전을 벌이는 동우. 두 남자, 코와 입에 난 피를 닦으며 도망간다.
동우 : (숨을 몰아쉬며 서 있는데)
도영 : .... (잠꼬대처럼) ....... 엄마......
동우 : ........
#S48. 동우의 홍콩집 / 아침
창가에 들어오는 햇살. 도영, 얼굴을 찡그린다. 눈을 부스스 뜨고 일어난다.
낯선 곳. 침실과 욕실이 하나 있는 작은 원룸식 스튜디오.
목포 이사벨의 집 마당에 서서 태권도복 입고 웃고 있는 어린 동우의 모습과 금메달과 트로피 구석에 놓여있다.
도영 : .... (놀라 일어나 앉는. 옷매무새를 살핀다. 쟈켓만 벗고 옷 입은 채 그대로다)
앞치마 두른 동우, 다가온다.
동우 : 이제 깼어요?
도영 : 여기 어디죠?
동우 : (손가락으로 꿀물 담은 잔을 가리킨다. 마시란 제스쳐)
도영 : (까칠하게) 이봐요!
동우 : 왜요.
도영 : 내가 여기 왜 있죠?
동우 : 당신 나 아니었음 밤에 입 돌아갔어. 길바닥에서 자면 풍 와요. 풍!
도영 : .... (머리 아픈 듯 잡고 있다가... 토할 듯 욱! 하는데)
동우 : 어.... 어.... 거기다 토 함 안돼요. (화장실 가리키며) 저기!
도영, 뛰어가다 카펫에 걸려 넘어진다. 쿵!
동우 : (버럭) 거 좀 조심해요! 집이 낡아서 마루 깨져요.
도영,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간다. 우욱... 소리와 함께 물 내리는 소리.
동우, 상을 차린다. 도영, 퀭해진 얼굴로 나온다.
도영 : .... 이봐요!
동우 : 나 바빠요. 상 차리는 거 안보여요?
도영 : 어제 일이 잘 기억 안 나는데 설명해 주시겠어요?
동우 : 내가 왜.
도영 : ..... (허! 기가 막힌)
동우 : 어제 술 마시고 길바닥에 뻗어있는 거 주워왔어요. 지갑 열어봐요. 손 하나 까딱 안했음.
도영, 둘러보면 얌전히 개어져 있는 쟈켓과 가지런히 놓여있는 백.
도영, 물끄러미 동우를 본다. 열심히 콩나물국을 끓이며 맛을 보고 부산히 움직이고 있다. 선해 보인다.
동우 : 해장해요. 콩나물 사러 새벽에 한국마트까지 갔다왔어요.
도영 : .......
동우 : 나 바쁘니까 어여 먹고 가요.
도영 : ........ (욱.. 욱.. 다시 화장실로 뛰어간다)
동우 : 아우, 드러.
전화벨이 울린다. 동우, 전화를 받는다.
동우 : Hello. 아.... 예, 박사장님... 제가 아직 예... 집세를 또 못 보내드렸죠... 저도 죽고 싶어요. 아... 진짜...
강물에 뛰어들래도 제가 수영을 너무 잘합니다. 돌겠어요.
퀭한 눈으로 화장실에서 나오는 도영. 식탁에 앉아 꿀물을 마시는데 동우의 통화가 들린다.
동우 : 사정이 있어서 그래요. 월세는 일주일 안에 넣어 드릴게요. 약속한다니까요. 죄송합니다.
도영 : ...........
도영, 콩나물 국을 건성으로 떠 먹는다. 한 입 먹는데 시원하다... 한 숟갈 두 숟갈 계속 떠먹는 도영.
동우, 잘 먹는 도영의 모습을 곁눈질로 보며 푸쉬업하고 윗몸 일으키기 하고... 몸을 푼다.
도영 : ........ (동우를 본다) .......
동우 : 왜요? 나 멋있어요?
도영 : .........
동우 : (빈 그릇 본다) 어휴, 잘 드시네. (일어나서 솥 째 들고 온다)
햇살이 더 들어온 거실. 도영, 머리에 핀을 꽂아 단정하게 정리하고 있다.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보는 동우. 햇살에 비친 도영의 옆모습, 아름다우면서도 왠지 슬프다. 마음이 간다.
도영 : 폐를 끼쳤습니다. (지갑에서 돈을 꺼내 놓으며) 받아주세요.
동우 : 됐어요. 콩나물 얼마 안해요.
도영 : 월세 땜에 절절 매는 것 같은데, 보태요. 자존심 세우지 말고.
동우 : 가요. 나 입 무거우니까 걱정하지 말고.
도영 : ....
동우 : 실물이 훨씬 안 이쁘시네요. 주근깨도 많고.
도영 : (황당해서 픽 웃는다) ....
동우 : 어머니가... 아프신가요?
도영 : ....
동우 : 어제 잠꼬대처럼 엄마... 라고 하길래.. 그래서 업어왔어요.
도영 : ..... 내가 엄마를 불렀어요?
동우 : .... 네.
도영 : (쟈켓 걸치는데)
동우 : 슬퍼 보였어요.
도영 : ......
동우 : 슬픈 일이 생겼다고 슬퍼하는 건 아마추어들이나 하는 거잖아요. 댁은 한국 최고의 프로 아닙니까.
여대생이 동경하는 인물 1위. 어제 밤에 인터넷 검색 좀 해봤어요.
도영 : 택시 좀 불러주실래요. 오늘 중요한 미팅이 있는데....
동우 : 이 동네론 택시 안 오는데.
도영 : ..... (난감) ....
#S49. 홍콩 거리 / 낮
동우의 낡은 차, 탈탈거리며 달린다.
조수석에 앉은 도영, 속이 거북한지 손수건으로 입 막고 앉아있다.
동우 : .....
동우, 뒷좌석에 있는 유도복 얼른 집어 도영에게 준다.
도영 : ??
동우 : 세탁할 꺼니까 거기다 토해도 괜찮아요.
도영 : .......
동우 : 오늘 제가 기사 해드릴께요. 괜히 또 택시 탔다 토하면 인터넷이 뜰라.
도영 : (미소)
#S50. 야외 카페 또는 호텔 라운지 / 낮
동우, 테이블에 앉아 신문 보고 있다.
좀 떨어진 테이블엔 깨끗하고 예쁘게 차려입은 도영, 현지 인사들과 밝은 표정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크게 웃기도 하고...
동우 : ..... (물끄러미 보는) ....
도영, 사람들과 악수하고 기념사진까지 찍고 사람들과 헤어진다.
도영, 사람들을 배웅하고 동우 자리로 와 앉는다.
도영 : 오늘 고마워요. 저녁 제가 살께요.
동우 : .....
도영 : .......?
동우 : 힘든 건 괜찮아요?
도영 : .... 이젠 속 가라앉았어요. 괜찮아요.
동우 : 그거 말구요. 뭔진 모르지만 엄청 슬픈 일로 힘들어하고 있었잖아요. 그런데 방금 너무 행복하고 들뜬 사람 같았어요.
도영 : 슬픈 일 없어요. 저녁으로 먹고 싶은 거나 생각해봐요.
동우 : ......
도영 : 이보세요.
동우 : 생각하고 있잖아요. 말 시키지 마요.
도영 : .....
동우 : 과메기 먹고 싶어요.
도영 : (황당한) 그거 말고!
동우 : 국물 시원한 김치말이 국수.
도영 : 그것도 말고.
동우 : 그거 말곤 없는데.
도영 : 그럼 오늘 사례비 받으세요.
동우 : 정말 정 없이 사시네. 그냥 신세 좀 지고 살면 어디 덧나나.
도영 : ....
동우 : 정 그러시면 서울에 가서 사람을 하나 찾아주세요.
도영 : 사람을요?
동우 : 윤사월이라고... 보육원에서 같이 자란 제 친굽니다.
도영 : .... 보육원이요?
동우 : 네, 부모 없이 거기서 자랐어요. 세 살 때 엄마 돌아가시고 아버지가 새장가 들려고 절 고아원에 보냈어요.
도영 : ....
동우 : 왜 그렇게 쳐다봐요? 고아원에서 자란 놈 치곤 너무 잘생겼죠?
도영 : 잘 생긴 건 모르겠고 참 밝으시네요.
동우 : 사월인 저보다 더 밝아요. 꼭 좀 찾아주세요. 저보다 세 살 어린 동생이자, 친구이자 제 첫사랑이에요.
도영 : 애써 볼께요.
동우 : 질투나면 안 찾아주셔도 돼요.
도영 : (황당) 아뇨 꼭 찾아 드릴께요. 무슨 일이 있어도 찾아드릴께요.
동우 : 오바하니까 더 수상해.
도영 : (기막혀 웃는) 댁보다 더 밝은 사람이 누군지 저도 궁금해요.
동우 : 감사합니다. 갑자기 막 힘이 솟네요.
#S51. 홍콩 거리 / 낮
활기 넘치는 거리.
선글래스 쓴 도영, 우울하게 걷고 있다.
저만치에선 여전히 엔돌핀이 넘치는 사월, 걸어간다.
도영 : (E) 사월씨도 그럼... 고아인가요?
동우 : (E) 잘 모르겠어요. 다섯 살 때 보육원에 왔는데... 그 이전의 기억이 확실치 않나 봐요. 부모가 버린 건지, 길을 잃은 건지...
도영 : (E) 딱하네요.
동우 : (E) 만나면 깜짝 놀라실껄요. 얼마나 밝고 귀여운 앤데요.
도영 : (E) 저도 꼭 찾아서 만나보고 싶네요. 이름도 어쩜 사월일까.
신나서 힘차게 걷고 있는 사월.
고고하나 우울한 빛을 띤 도영,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스쳐 지나간다.
#S52. 허름한 건물 / 낮
도영, 들어선다. 썰렁한 방. 빈 침대 덩그마니 놓여있다. 눈물이 핑 돈다.
와서 침대에 앉는 도영. 침대를 손으로 쓰다듬어 본다.
도영 : ......
베개를 들어 안는다. 엄마 냄새를 맡아본다. 감정이 복받쳐 오르는 듯 점점 추스르기 힘들어진다.
도영 : ..... 왜 나를 버렸어.... 난 시궁창에서 자랐어도 내 힘으로 성공했을꺼야. 엄마 옆에 있었어도 난 이만큼 왔을 꺼에요.
교수네 집이 다 무슨 소용이야, 날 진짜로 사랑해주는 엄마가 없는데...
도영,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흐르는... 빈 방, 썰렁한 침대에 앉아 눈물을 흘리는 도영.
밖에선 아이들이 공놀이하며 떠드는 소리, 여자들 웃음소리 들려온다.
창문으로 오후의 길어진 햇살 들어와 홀로 있는 도영을 감싼다.
도영 : 맨날 저 밖을 내다보면서 내 생각했어, 엄마?
도영, 햇빛이 들어오는 창가에 선다. 햇빛을 강하게 받으며 서 있는 도영.
도영 : .... 엄마의 유언은 지켜드릴 수가 없어요... 죽는 날까지 걔를 만나고 싶지 않아.
내 인생에 또 그 애가 끼어들면 난 걔를 낭떠러지로 밀쳐 버릴꺼야!
외롭고 독한 눈빛의 도영의 얼굴에서...
첫댓글 정말 감사해요 이 드라마 정말 재미있게 봐서 꼭 대본보고 배우고 싶었어요
잘 받아갑니다 ㅎ
정말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