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이 새롭게 열리고 눈 앞에 새 날이 밝았다.
'내 길을 걷는 것이 남의 길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홍순관 님의 통찰처럼
누군가는 상처 받고 아프고 번민중일지라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가는 새 날이 열린 것이다.
나는 과연 오늘 어떤 하루를 살아낼 것인가? 다치고 흔들리면서도
내 길을 가는데 주저함이 없을 것인가?
그건 오로지 내 안에서 결정된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버리지 않고 쌓아둔 불행이나 상처, 미련함도 취하여 실로 잣으신다.
내가 부진함이라고 여겼던 것들을 쓴 약으로 먹이시는가 하면
오래된 상처와 거기에서 나오는 진물을 닦아주시며 새 힘을 내게도 하시고
흉터를 딛고 인생의 혁명을 이루도록 도우시기도 한다.
록키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청년이다.
아버지와 엄마의 사랑은 그에게 사치스럽고 너무 비싼 것이었다.
아버지는 오래 전 엄마를 떠났고 엄마는 아이들을 키우면서
거의 술과 마약에 취해 살았고 폭력적이었다. 어느 곳에서도 그는 환영받지 못했으며
학교에서조차 소외된 아이였다. 불우한 환경이었고 환경에 지배받는 게 인생이라면
슬램가의 노숙자로 살아가거나 그저 인생이 굴러가는 대로 사는 게 록키의 운명이었을 것이다
.
어느날 그는 친구와 인도로 여행을 떠났다가 그곳에서 HIV에 감염된 아이들이 사는 곳을 가게 된다.
아이들과 성인 여자들만 사는, 인근의 마을에서조차 그들이 에이즈 감염자라는 사실을
모르는 시설이었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천형을 짊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천진난만했다.
그렇게 잘 웃고 뛰놀던 아이들이 하루 아침에 죽어나가는 그곳! 그는 거기에서 빠져나올 수 없었다.
미국에 사는 가족들은 자신을 필요로 하지 않았으나
아이들은 록키와 함께 웃고 울고 먹고 자고 하는 일상을 기뻐했고 모든 일에 그를 필요로 했다.
록키 역시 아이들의 진정한 가족이 되고 싶었음에 거기를 떠나올 아무런 이유가 없었다.
록키를' 아나'(큰형)라 부르며 잘 따르는 아이들 중 몇 명이 저 세상으로 떠날 때마다
록키는 가슴 저리게 울었다. 아이들이 죽어가도 어쩔 도리 없이 지켜봐야만 하는 그곳이 싫어지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거기를 떠날 수는 없었다. 아프고도 순수한 영혼의 아이들이
여전히 그를 원하기 때문이었다.
촬영하던 록키의 친구 스티브가 이름을 묻자
카메라를 향해 수줍게 웃으며 '수리야'라고 이름을 말하던
검은 피부의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남자아이가 있었다.
그 수리야가 어느날 아프기 시작했다. 고열에다 온몸에 염증이 돋아 살점이 떨어지고 피가 흐르며
입술마저 염증으로 퉁퉁 붓고 짓물러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눈마저 뜨지 못하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병원으로 급히 옮겼으나 의사마저 가망이 없다고 손을 놓아버렸다.
그러나 록키는 수리야를 포기하지 않았다.
상처마다 흐르는 피와 진물을 닦아주고 연고를 발라주면서
그가 한시도 수리야 옆을 떠나지 않았던 것은
특별히 치료할 것도 없는, 죽음이 기정사실인 상황임에도
세상에 태어난 한 인간, 한 생명에 대한 가슴 깊숙한 곳에서 솟아나는
지극한 애정과 연민과 긍휼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록키의 사랑에 예우를 해주신 것인가?
아니면 록키의 사랑에 대한 수리야의 화답이었을까? 기적이 나타났다.
수리야의 상태가 점점 호전되기 시작한 것이다.
수리야는 침대에서 일어났고 조금씩 먹었고 웃었다.
온몸을 뒤덮었던 염증은 서서히 아물고 눈도 뜰 수 있게 되었다.
록키가 말했다. "신이 수리야를 살리셨다"
의사는 말했다. "아니다, 록키가 수리야를 살렸다"
그것은 참으로 모두가 놀란 일이었고 수리야는 두어 달도 채 안 되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죽음의 문턱에서 삶으로 되돌아온 꼬마는 멋진 복장에 선글라스를 끼고
만면에 환한 웃음을 지으며 얼마 후 록키의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물론 수리야가 에이즈에서 벗어난 것은 아니다. 곧 짧은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자신을 있는 힘껏 사랑해서 살려냈던 기억 때문에라도
그 죽음은 덜 외롭거나 조금은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랑과 친절은 커녕, 옮을까봐 손사래 치며 옷깃조차 닿지 않으려 했던 수많은 에이즈 환자들 가운데
그래도 록키와 함께 지냈던 아이들의 생의 마지막엔 작은 미소 한송이가 입가에 물려 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장식품처럼 리본처럼 말끝마다 달고 사는 '사랑'이라는 말은
록키 같은 사람에게서 비로소 진가를 발휘한다. 이게 사랑이다. 죽음조차 못 데려가는
사랑!
자신의 가난하고 불우했던 환경의 그림자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넘어서서 자신보다 더 아프고 안타까운 생명들을 보듬어안음으로
자신과 남을 함께 살려낸 록키.
묵묵히 걸어감으로 남의 길까지 내어주는 록키의 길을 오래 묵상하는 날이다.
첫댓글 이런 다큐 교회에서 함께 볼 수 없을까요?
혼자보기가 너무 아까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