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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산행일시: 2009. 01 .31.(08:00-16:06)
2.날씨 : 맑음, -2.0~9.4도 평균 3.6도 평균풍속 1.4m/s 일평균습도 69%
일조시간 6.3시간 운량 3.1<춘천기상대>
3.gps data 및 산행경로 :
Cartographic Length = 25.914 km,평균속도: 3.2 km/h,총소요시간: 08:06:19
경반리 전말(사격장,07:56,85m) →354m갈림길(8;27) → 463봉(9;15, 수정봉(△437.7m)우회) →457봉(9;04) →양아터고개(09:29,490m) →암봉지역(09:50)→중산리갈림(09:57)→물안골갈림(10:18)→경반분교갈림(10:22)→칼봉이 갈림(10:45)→칼봉산(899.8m,11:04,910m) →회목고개(11:24,700m) →중간점이정표(매봉6,11:46) →매봉(929.2m,12:00~12:23,945m) →경반갈림(10:45)→깃대봉(△910m,12:59,921m) →윗삼일 김할머니집 갈림(13:04) →송이봉(807m,13:30,811m) →경반리갈림2.12km(13;33) →윗삼일재(505m,14:01,482m) →508m삼각점봉(14;10) →수리봉,헬기장(553m,14:36,548m) →두밀재(14;54,361m)→△415.7m 봉(15:16) →칼봉산통나무펜션(15:43,122m) →경반리 마을회관(16:02,90m)
4.산행인원 : 청계산님,산타래님,강승철님,막걸리님,랑이님,사무사님,다나님,반장님,산시조
5.교통편 :갈때(일산-(승용차)-동서울-(버스)-가평터미널-(택시,오천원)-갈곡리,
올때(경반리-(택시,오천원)-가평터미널-(버스)-동서울)
6.마을과 지명 유래(가평문화원 및 국토지리정보원 참조)
가. 경기도 가평군 가평읍 승안리
-수정봉 산봉우리에서 수정이 많이 나와 수정봉이라 함.
-칼봉산 산이 거대하며 산마루가 칼날처럼 예리해 보인다는 뜻에서 칼봉산이라 함.
-칼봉이 산이 거대하고 산마루가 칼날처럼 보이는 산 기슭에 마을이 위치하고 있어 이 마을을 칼봉 이라 함.
-회목고개 안골 서북쪽에 있는 고개로 검봉산 서쪽이 되는데 휘어 돌아가서 회목고개라 함. 태고시대 이곳일대가 전나무가 무성했으며 거목들이 많아 회목동이라 함.
-마을명 : 자리터※(자리터의 역사기록 :「가평의 자연과 역사」156쪽 참조)
승안 2리의 경계부락으로서 원래 가평의 밤이라고 하면 자리터 밤이라고 할 정도로 밤나무 숲이 무성했던 곳이다. 이 마을은 임진왜란 이전부터 군사요충지였으며, '진터(군의 주둔지)'라고도 한다. 밤나무도 손자(孫子)병법의 팔진도법(八陣圖法)에 따라 심었기 때문에 병법을 모르고 이 밤 벌에 들어서면 길을 잃고 헤매다가 잡히고 만다고 하며 이 밤 벌을 팔진율림(八陣栗林)이라고도 한다. 현재 군부대가 주둔하고 있는 것도 지명과 지형에 관련이 있는 듯하다. 대지주 임종산의 전통적 한옥이 있었고 홍성유의 소설 '비극은 없다'의 서두에 등장하는 곳이다.
-마을명 : 승안1리
가평읍에서 북서쪽으로 향하다가 계량내 다리를 건너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여기서부터 승안리라 할 수 있다. 1871년도 가평읍지에 이곳에는 민가가 100여 호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가평의 단일부락으로서는 상당히 방대한 고장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지역은 본래 가평군 군내면에 속해 있던 지역으로, 1914년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하마장과 중촌의 일부를 합하여 '升安山'이라 하였다. 그리고 이 마을 중앙에는 군부대가 자리잡고 있다. 자연부락으로는 계량내와 자리터(테), 그리고 은은쟁이가 있다.
-마을명 : 전말과 쇠목이골(牛項: 소의 모가지) ※ 1999. 8. 17. 조사 제보자: 이장 박양철
갱골에서 경반리로 넘어가는 막다른 골짜기 지명으로 전말은 옹기를 굽는 가마와 옹기를 팔던 옹기전이 있던 곳이라고 하며, 쇠목이골은 쇠의 모가지(項)처럼 우묵하게 들어간 고개라는 뜻과 쇠를 녹여 농기구를 만드는 대장간이 있던 곳이라 쇠를 먹는 골, 소를 사육하던 곳 등의 여러 설이 있다.
이 소목이골과 어우당 유몽인의 묘인 용묘에 얽힌 전설도 있다. 어우야담의 저자인 어우당 유몽인은 예조·이조 참판 등을 역임한 문무를 겸비한 분이었으나, 불행하게도 인조반정 때 광해군의 측근이라는 구실로 아들과 함께 처형되었다. 처형 직전 유언으로 가평 하삼익골(下三益谷 : 下色峴)에 묻어 달라고 하면서 묘 자리가 명당자리라는 것을 누설하지 말고, 세 손자가 과거를 보더라도 따로따로 보라고 하였다. 그런데 손자들은 유언을 잊고 함께 과거에 응시하여 모두 합격하였다. 그들의 성적이 우수하고 인품이 출중하여 필시 명문가의 자손이라고 짐작하여 그 가문을 캐니, 반정의 역신으로 몰려 처형된 어우당의 손자들이었다.
그 묘소를 파 보니 승천 직전의 용이 꼬리가 명주실에 얽혀 승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 용을 당 고개(성황당이 있는 고개) 마루에 묶어두고, 쇠먹이골(또는 쇠목이 골 : 牛項)에서 쇠 물을 끓여다가 용을 태워 죽였다는 전설이 마을에 전해온다. 그 후손들의 보복을 두려워 한 반정공신들이 그들을 등용하였을 리 없고, 그래서인지 유몽인은 고흥 유씨라고 하는 데 현재 그 묘는 용묘라고 부르는 것과 달리 돌보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한다.
-마을명 : 옥계동과 중산리(中山里)(승안산 옥계구곡:「가평의 자연과 역사」52∼59쪽 참조)
용추 계곡에서 안골(내곡)로 이어지는 계곡은 천고의 자연미를 간직한 곳으로, 수정 같은 웅덩이(沼)와 이를 담는 기암괴석, 거울 같은 수면에 비추는 아름답고 울창한 숲 등은 한 폭의 동양화를 방불하게 하여 무주 구천동에 버금 할 정도의 절경이다.이곳을 옥계동(玉溪洞)이라 하는데, 와용추 무송암 탁령뇌 고실탄 일사대 추월담 청풍협 귀유연 농완계의 옥계구곡(玉溪九曲)이 한 구비를 돌 때마다 길손의 탄성을 자아내는 색다른 절경을 연출한다.이 계곡 초입에 있는 중산리는 소내미의 위쪽 마을로서 옛날 산간 한가운데에 마을이 있었다고 하며, 산과 산 사이의 마을이라는 뜻으로 중산리라고 불렀다고 한다. 그리고 이곳에는 벼락을 맞아 떨어졌다는 벼락 바위가 있다. 그리고 구한말 유림들이 국권회복 운동을 전개할 때, 무장 궐기한 가평지역의 의병대를 지휘하여 보납산 전투에서 왜놈들에 맞서 싸우다가 장열(壯烈)하게 전사한 이충응 대장의 출신지가 중산리라고 한다. (「가평의 자연과 역사」159쪽 참조)
-칼봉산 ※조사일시 : 2000. 6. 제보자 : 노인회장 최철지, 주민 김화식
운담마을 동남쪽에 솟아 있는 칼봉은 북진하는 장수의 보도인양 그 위세가 신비롭다. 그 산의 생긴 형태가 칼의 모양처럼 높고 뾰족함이 더욱 그렇다. 지금 당장에 그 위세가 하늘 높이 번쩍일 듯싶다. 이 곳 칼봉 끝 부분에는 운담 최예선 선생을 추모하는 추모비가 있다. 운담 최예선 선생은 화서 이항로 선생의 學統을 이어 받아, 평생을 학문과 후생 교육에 정진하신 분이다.
-마을명 : 육림반
육림 사업을 위한 식목인부의 숙소가 있던 마을이라는 뜻의 육림반은 마을 뒷산의 봉우리가 칼봉이고, 칼봉산 너머에는 경반리 안골(회목) 마을이 나오게 된다.
-마을명 : 산유동과 칼봉산 ※조사년월일 : 99. 8. 18. 제보자 : 이장 장석목
산유동에는 전남맥, 지장골, 분자골, 원주골, 원수골, 갈치골, 양지말, 응달말 등 여러 부락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마을이다. 부락별로 하나씩 살펴보면 전남맥은 크고 작은 전나무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여기에는 마을회관과 산유리 전화국 분국이 있고 11가구가 거주한다.지장골(기장의 경기도 방언: 5곡의 하나인 기장을 많이 재배하던 골이란 뜻을 방언인 지장골로 표현한 듯)은 1991년경에 화약공장이 들어오게 되었으며, 현재 7가구가 거주한다.
분자골은 옛 조상께서 자식을 혼인시켜 분가(分家, 分子, 分財)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현 9가구가 거주한다. 원주골은 어느 원님의 묘를 이곳에 써서 그때 붙여진 이름이고 현 5가구가 거주하며, 감전(甘泉)골은 외서면 상천리 감전마을로 넘어가는 길이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2가구가 거주한다. 온수골(온수골→원수골: 溫水谷-따뜻한 온수가 나오는 골이 변한 것)은 현재 약 30만평되는 온천지구 개발 예정 지역으로 책정되어 본격적인 개발 계획이 추진 중이다. 옛 절터가 있고, 원주골 입구에는 장마철이면 아름다운 폭포로 변하는 복희 바위가 있으며, 이곳에는 지선암이라는 암자가 있는데 이곳에서 민족의 숨결이 담겨 있는 황국지를 만든 곳이기도 하였다. 현재 2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갈치골은 갈치고개 밑의 부락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이곳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뾰족한 산을 칼처럼 생겼다 하여 칼봉산이라 부른다. 현재 6가구가 살고 있다. 양지말이란 달맞이산 개울 건너 마을이며, 마을이 양지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현재 13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응달말이란 달맞이산 아래 마을이며 마을이 응달이 지어 붙여진 이름이며, 현재 10가구가 거주한다. 덕거리 고개란 산유리에서 금대리로 넘는 고개를 덕거리고개라 하는데 옛날에는 홍역을 앓는 사람은 꼼짝없이 죽어야 했던 때라 궁여지책으로 수 삼일동안 누에를 얹어 놓는 덕 위에 사람을 실어다가 이 고개에 놓아 두어 만약 죽지 않고 살아 있다면 병이 다 나았다 하여 마을로 다시 데리고 왔다는 곳으로 그 덕을 매어 놓아두었다 하여 덕거리고개라 하였다.
※산유리 말무덤 이야기:「가평군 향토지」69쪽, 「가평의 자연과 역사」175쪽 참조
-마을명 : 물안골(수춘리(水春里))
물안골은 옥계 중간에 위치한 마을로서, 이곳으로 흐르는 계곡의 모습이 좁은 협곡으로 봇물처럼 내려감으로 봇물이라 불렀다. 보를 봄춘(春)자로 물은 물 수자로 써서 춘수동(春水洞)이라 했다가 이를 다시 수춘리로 고쳤다 한다. 물이 풍부한 안골이라는 뜻으로 물안골이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마을 이름이다.
-마을명 : 양아터(羊阿攄)
점말에서 우무동으로 가는 중간이 양아터로, 어느 양(梁)씨 문중들이 대를 이어 살았다고 하며 지금도 수백 년 전 양(梁)씨의 묘가 있으니 양아터는 양가(梁家)터의 변형인 듯하다.
-마을명 : 우무동(憂無洞 또는 牛舞洞)
양아터에서 산골로 더 들어가면 지대가 높으면서도 아늑하고 또 오목하게 들어간 자연부락이 있는데, 외곽에서는 보이지 않는 곳이라 하여 근심마저 없다는 뜻으로 우무동(憂無洞), 또는 소의 먹이가 되는 풀이 많아서 소가 춤을 춘다는 뜻의 우무동(牛舞洞)이라는 기록도 있다. 조옥동(옛 승안분교 쪽)에서 우무동으로 넘는 고개가 우무재이다.
-마을명 : 회목동(檜木洞)(안골)
회목동을 '안골'이라 부르기도 하며, 경반 분교가 있던 마을의 소지명으로 아람드리 전나무가 많아서 회목이라 했다 한다. 이곳에서 조금 더 오르면 경반사가 있고, 이 사찰을 지나면 수락폭포(水落暴布)가 있다.가평에서 6km정도의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데 그 길이가 32.8m에 이른다. 그리고 이 폭포로 흘러 들어오는 물의 암벽이 약 300개나 된다고 하니 그 물의 맑음과 웅장함은 상상할 만하다. 이곳을 물떨어지(水落)라 부르듯, 무지막지하게 쏟아지는 물보라와 바위 틈에서 자란 노송들이 장관을 이루어 수락폭포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서기 어린 폭포를 왼편에 두고 험한 언덕을 오르면 화전 정리 이전에 두,태(콩팥)와 산간 임산물로 유명하던 회목동이 나온다. 지금은 초목만이 우거져서 통행이 어려운 상태이다.
-마을명 : 내곡(안골)
물안골 상류를 모두 내곡(안골)이라고 한다. 검봉산(칼봉) 아래는 하검봉리, 윗편에 상검봉리가 있는데, 하검봉리에는 내곡 분교가 있었으나 약 20년 전에 폐교되어 현재는 텅 빈 교실만이 험준한 산 속에 묻혀 옛날을 회상케 하고 있다.
-마을명 : 계량내(「가평군지」1129쪽 참조)
승안1리의 첫 부락이자 중심지이며, 계량천과 가평천의 합류점에 자리 잡고 도유림 사업소와 마을회관이 있다. 칼봉산(女山)에서 용추를 지나 옥녀봉 남쪽을 흐르는 계량천(서남 경계)을 앞개울이라 하고 화악산, 명지산(男山)에서 목동을 거쳐 흐르는 가평천(동북 경계)을 뒷개울이라 한다. 앞개울은 암놈이고 뒷개울은 수놈이라고 하여, 홍수 때 앞개울이 먼저 범람하면 장마가 계속 되고, 뒷개울이 먼저 넘으면 장마가 그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현재 90가구 가량이 거주하고 있다.
나. 가평군 하면 마일리
- 매봉 전패에 장군 지혈이 있는데 이 혈의 말 매는 봉이라고 하였는데 그 후 주먹에 매가 앉아 있는 것 같아 매봉으로 많이 부르고 있음.
다. 가평군 가평읍 경반리
- 수리봉 개벽당시 수리처럼 남겨진 산봉우리라는 데서 유래되었음.
-마을명 : 윗말(上村)과 수리봉
※조사일시 : 99. 9. 4. 제보자 : 이장 김영식, 노인회장 유명상, 주민 이명우
수리현의 가장 안골에 형성된 윗말은 두밀리로 넘어가는 수리재 바로 아래에 자리 잡은 마을로, 행정구역상 상천3리 3반이며, 약 25여 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윗말에는 불기산의 서북쪽 줄기와 대금산의 동남쪽으로 뻗은 봉화산 등이 이어지면서 마을의 뒷산을 이루고 있다. 이 산에는 금낭화(며늘치)가 많이 자생하고 있다. 6·25때 이 마을 사람들이 피난하였던 천연 굴로, 굴의 형태가 세 층으로 되어 있고, 아직까지 굴 끝까지 들어가 본 사람이 없다고 하는 박쥐굴(박쥐가 서식하고 있음)이 있고, 또 바위형태가 문과 같다 하여 붙여진 문박골이 있다. 풍화작용으로 동굴이 생겨 소리가 난다고 해서 붙여진 소리봉이 언제부터인가 수리봉으로 변하면서, 마을 이름이 수리현(秀理峴)이라는 한자로 변하였다는 설도 있으나, 사실은 수리재에 있는 봉우리라 마을 사람들이 수리(秀理)봉이라고 할 뿐이다. 수리봉 서북 쪽에는 봉화산이 있어, 옛날 봉화를 올리던 통신 중계마을이었다고 짐작된다.
※수리재 넘어 두밀리(삼거리)의 북쪽, 경반리 수락폭포가 있는 회목과의 경계지점에 있는 산이 수리(鷲:수리 취, 독수리 취)봉이다. 수리재와는 무관한 지점에 수리(鷲:수리 취)가 앉아 있는 형국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發音으로는 같은 수리봉이지만 한자로는 秀理峰(상천)과 수리봉(鷲峰)으로 전혀 다르다.
-마을명 : 삼일←삼의골(三儀谷)→새밀
삼일은 옛 삼의골(三儀谷)의 준말이고 이것이 변하여 새밀(새 두밀이라는 뜻으로도 사용)이라고도 부르는 자연부락으로, 대금산과 수리봉이 서북쪽을 병풍처럼 가로막고 있는 산자락에 형성된 산간마을아다. 이 부락은 예부터 화전으로 농사짓던 촌락(村落)이었으니, 자연히 콩이나 팥 등 두태(豆太)농사가 본업이었고 그 수확량이 수백 석이나 되었다고 한다. 숯가마와 산판(연료용 벌채작업)이 성행하였고 벌채한 자리가 화전 밭으로 이용되었다. 조선조 시절에 가평에는 토산물로써 봉밀(蜂蜜)을 첫째로 꼽았는데 이곳에서 나오는 토종꿀을 진품으로 여겼다는 기록도 있다. 그리고 새밀 입구에는 넓고 둥근 모양의 바위가 있는 동그란 소가 있고, 또 임진왜란 때 평산 신씨와 송씨 일가가 피란 와서 살았다는 굴바우가 있다. 굴 안이 사람 키보다 높고, 10여 평의 넓이에 현재도 구둘 돌이 남아 있고, 이 굴바우 안에 작은 굴이 있다. 이 굴에서 불을 때면 연기가 나오지 않는데, 현등사 쪽으로 뚫렸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굴이 작아 들어갈 수 없어서 확인되지 않고 있다고 한다. 새밀(삼일)은 윗말과 아래 마을 또는 원 새밀(삼일)로 나누기도 하나 삼거리와 함께 상조계를 조직 운영하고 두밀과는 차별화되고 있다.
-마을명 : 백학동(白鶴洞)(배골)
경반천을 따라 오르면 경반리 본 마을에서 가장 가깝다는 첫 나들이 소(沼)와 호랑이 형상을 한 범소를 지나면 백학동 또는 배골이라는 마을에 다다르게 된다. 옛날 이 마을에는 백로가 많이 살았다 하여 백학동 또는 돌배나무가 많고, 마을의 생김이 배(梨) 같은 형국이라 하여 배(梨) 골이라 했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백로가 많이 살았었다는 것은 사실이다. 좀더 골짜기를 올라가면 두밀리로 넘어가는 단지메기 고개가 있으나 현재는 폐쇄 되었다 다시 그 위에 마을이 있는데 현재 3가구가 살고 있으며, 매달려 있는 마을이라고 하여 다루게 마을이라고도 한다.
-마을명 : 경반 본마을(鏡盤村)과 수정봉
경반리의 중심지라 할 수 있으며 여기에는 마을회관, 노인정, 경반교회 등이 있어 경반리 주민들의 왕래가 잦다. 경반촌에서 동북쪽 수정봉 기슭에는 말끔히 단장한 효자정문이 있는데 이곳에는 인동 장씨 문중의 효자 장중휘(張仲煇)의 정문과 장우태(張羽泰)의 효자 정문이 있으며 이곳 경반촌에는 밤나무가 많이 있었고 현재도 고목 뿌리가 곳곳에 있다.
-마을명 : 말구리(마곡리) 와 사그막고개
말구리는 풀무고개 서북 산록에 있는 부락으로 옛날에는 경반리 입구의 마을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고개가 너무 가팔라서 짐을 실은 말이 가다 굴렸다 하여 '말굴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또한 말을 타고 훈련을 받던 곳이라 하여 마곡리라고도 불렀다 한다. 말구리에서 사기막으로 넘는 사그막고개 마루에는 성황(나무)이 있었지만 현재는 고개가 폐쇄되고, 그 고개 아래에 새로운 말구리 고개가 생겨 농로로 이용되고 있다.
-마을명 : 사그막 ※조사년월일: 1999. 10. 17. 제보자: 이장 김흥기, 주민 이진백
대곡4리는 안말, 사그막 등 자연부락이 나누어지며 사그막이란 사금이 많이 나와 이를 채집하는 인부들이 움막을 짓고 작업을 한데서 나온 이름이다. 사그막 고개를 넘으면 경반리(말구리)로 넘어가는데 산골인데도 논이 많다고 하여 논골이라 부르던 곳으로 현재는 양계사가 다수 자리 잡고 있다. 사그막 고개에는 옛날 성황(나무)이 있었다 한다. 사그막 고개 입구에서 서쪽 마을로 들어서면 농박골이 나오고 이곳에서 아감지골 고개를 넘으면 하색 1리에 도착하게 되나 지금은 사람 통행이 거의 없어 수목과 잡초가 무성하다.
7.유산기
신년산행으로 처음 참가하여 가평의 칼봉산을 가기로 한다. 지난번 자룡님의 요청으로 미리 준비한 산방가를 낭송하는 시간을 갖기로 했었으나, 뜻하지 않게 자룡님과 용주님이 불참하여 아쉬운 마음 금할 길 없었다. 교통편은 지난번 대중교통이 여의치 못하였던 터라,5시 정각에 승용차로 일산을 출발하여 구산동에서 사무사님을 픽업하고 구의역 부근 주차장에 주차하고 동서울에 도착하니 맞춤한 시간이다. 6시30분에 발차하는 가평버스를 타고 가며 랑이님이 늦었지만 뒤따라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 산행시작점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들머리로는 택시로 이동했는데 지도상의 갈곡리를 행선지로 말했더니 전말의 군부대사격장에 내려놓는다. 수정봉을 가기 위해서는 사격장에서 좌측 비포장도로를 따라 왼쪽 능선을 갔어야 했는데, 사격장 뒤 능선으로 전진하여 결과적으로 수정봉을 우회하게 되었다. 수정봉과는 약 200미터 떨어졌지만 뒤처진 처지라 숨 몰아쉬며 뒤따라간다.
463봉 이후 양아터재까지는 고요한 숲길 약 3km를 서북쪽으로 걷는다. 고개에 이르니 내곡쪽으로는 수풀이 무성하고, 인적이 없지만 칼봉쪽으로 올라가자 암봉과 표지기가 흔하다. 도처에서 갈림길과 이정표가 나타나고 북쪽으로는 눈이 녹지 않아 앞서 간 일행들이 하트 표시를 그려놓았다. 때로 암봉에서 직진하고 우회하기도 하지만 위험하지는 않다. 칼봉산에서는 조망이 트인 편이고 내리막길에서 랑이님과 청계산님을 만난다. 랑이님은 임도를 답사하기로 했다고 하며, 천천히 매봉까지 약 1.9km를 올라선다. 매봉에서 도시락을 먹고 일어서면 작년 가을에 다녀갔던 명지지맥 2구간을 다시 맛보는 길이다. 억세던 수풀은 간데 없고 방화선 따라 점점이 발자국이 찍혔다. 깃대봉에 이르러 윗삼일로 내려가지 않고 송이봉쪽으로 東進하면 내리막이 윗삼일재까지 계속된다. 아이젠을 찬 터라 미끄럼은 신경 쓰이지 않고 다만 수시로 갈려나가는 갈림길만 제대로 짚어 가면 된다. 고개에서 단체사진을 찍고 올라가니 지도상에 없는 삼각점 봉이다. 수리봉까지 꾸준히 올라가면 우측으로 꺾이며 헬기장이 나타난다. 수리봉에서 잠시 쉬다 계속 동쪽으로 걸으면 "에버그린"님의 표지기가 보이고 마지막 삼각점봉우리다. 마중을 나오겠다는 동그라미님의 사정으로 말미암아 가평운동장으로의 산행을 포기하고, 임도로 하산하여 가평터미널에서 기다리고 있다는 랑이님과 다시 만나기 위하여 하산을 서두른다. 펜션으로 가는 잣나무 숲길을 헤치자 경반리 마을 회관까지는 순식간이고, 회관에는 구정 뒤끝임을 알리기라도 하는 듯 척사대회 현수막이 오도카니 걸렸다.
8.유산가
청 청춘이라 노닐 적엔 이 즐거움 몰랐어라
계 계곡으로 산마루로 사시사철 누비고자
산 산에 미친 사람들로 같이 가며 모여 앉아
산 산골길 끝도 없이 언제나 걸었던 꿈
방 방장님 모시고서 추억보단 지금 함께
영 零下 날씨 무서우랴 炎天에도 끄떡없이
원 원컨대 올 한해 내내 遊山 有樂 하오기를!

첫댓글 우리 산군님들 올해도 遊山有樂 하시옵소서...
청계산님과 다니신 산행기를 여기서두 보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