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각목이나 철근들이 어지러이 널려있는 바닥에, 그것들과 그다지
크게 다르지는 않은 모습으로 인간들마저 널부러져 있다는 것은- 확실히
그리 건전한 광경은 못되었다. 얼핏 보기에, 10대 후반에서 20대 중반
정도까지의 연령 분포를 보이는 그들은 온 몸에 피칠을 하고서 널부러져
있었다. 여름날 특유의 습기어린 공기가 밀집된 도시 지역의 탁한 대기로
인해 더욱 흐려져 공터 내에는 진한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고 있다. 흥건
하니 피가 배어나오는 배를 너클을 낀 손으로 부여잡고 쓰러져 있는, 펑키
머리의 사내를 밟고 선 발의 주인을 제외하고, 그 곳에 멀쩡하게 서 있는
사람은 전혀 없는 듯 했다.
아래로 갈수록 모양새가 가늘어지는- 어깨를 넘는 머리 길이가, 온통 하얀
색인 특이한 머리의 소유자는 대략 10대 후반으로 보였다. 귀에는 검은 색
귀걸이가 귓바퀴에, 귓불에는 세 개의 실버 링이 끼워진(그 중 하나는 피어스
였다)모습. 정면을 보지 않고서 언뜻 보기에는 그저 흔하디 흔한 양아치인
듯 했지만, 차갑다 못해 얼어붙을 듯한 얼굴 표정은 소름끼치는 카리스마.
목을 훤히 드러내보이는, 검은 가죽의 옷차림새를 한 소년은 은색의 작은
판이 걸린 목걸이가 점퍼에 걸려 걸기적거리는 것을 흘끗 일별하고는 천천히
옷매무새를 고쳤다. 그래봤자 약간 추슬러입는 정도긴 했지만... 그런 그가
별안간 입을 연 것은, 막 목걸이를 점퍼의 칼라에서 떼어낸 직후였다.
"....왔으면, 얼굴이나 보이시지. 아이하라 유리카."
공허하게 공터의 허공을 울리는 목소리. 하지만, 뜻밖에 대답은 있었다.
"어머- 역시, 날카롭네!? 과연 이시카미 상이야."
차가운 허스키 보이스가 허공에 울린 동시에 대답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소녀는, 장난스럽게 눈을 찡긋해보였다. 뒷머리는 커트였지만, 멋들어지게
귀밑머리를 앞으로 슬쩍 내린 그녀는 상당히 귀염성이 있는 얼굴이었다.
하지만, 남자의 시선을 충분히 잡아끌 수 있을 만한 그 얼굴에도 백발의
소년은 별 감흥없이 무감각한 시선만을 던질 뿐이었다.
그런 그를 보며, 유리카라 불린 소녀는 재미없다는 듯이 혀를 내밀었다.
"뭐야- 정말이지 정이 뚝 떨어진다니까!? 모처럼 좋은 정보를 물어왔는데."
"....용건만 간단히 말해라."
"흥흥, 정말이지 재미없어. 이봐요, 얼음왕자님!! 뭘 알아왔는지나 알아!?
이 내가 아주아주 어렵게 알아온- 가마모토 히카루 상의 신변 정보라구!!"
".......!!"
한 밤 중의 습기어린 공기가, 흔들렸다. 공터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던
신음소리마저 멈춰버린 듯한 느낌에, 유리카는 숨을 삼켰다. 그녀의 눈이
향하는 곳에는 아까와는 달리, 이제는 그녀가 뚫어질 듯 바라보는 그가
있었다.
"......확실한가?"
"....!! -물론이지!! 나를 뭘로 보는 거야!? 확실하지 않은 정보는 아예
취급도 안한다고!! 뭐, 사실 흥미없는 쪽으로는 약간 그럴 수도 있지만-
잘 지내다가 별안간 1년이 넘게 잠적해 버린 히카루 상의 일인데, 내가
노력하지 않았을 리가 없잖아!!?"
"......."
그의 그 무시무시한 기세에 지지 않겠다는 듯이 되려 외치는 유리카를 보며,
소년- 이시카미 준은 눈살을 찌푸렸다. 뭔가 거슬린다는 듯이 손에 낀 장갑을
만지작거리는 준을 보며, 유리카는 질색하는 어조로 말했다.
"세상에!! 지금, 나 협박하는 거야, 뭐야!? 와이어는 또 왜 만지작거리는
건데!?"
".....말해, 아이하라 유리카."
"하- 나 참!! 도대체, 우리 조직의 괜찮다는 10대들은 왜 다 이 모양이냐구!?
가마모토 상도 그렇고, 후지모리 상도 그렇고- 아니다, 후지모리 상은 그래도
낫지!! 도대체가 여자에 대한 배려라고는 눈꼽만치도 없다니--.....!?"
피잉-!!
기가 막힌다는 듯이 말하던 유리카는, 더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빛조차 반사
시키지 않을 만큼 가늘고 예리한 강철 와이어가 보이지도 않게 날아와 뺨을
스치는 감각에, 입이 얼어붙어버린 듯한 기분이었다. 그런 그녀에게 준은
으르렁거리듯이 말했다.
"-두 번 다시.... 그 녀석을, '가마모토'란 이름으로 부르지 마라.....!!"
".....!!"
그 검은 눈에서 번뜩이는 분노에, 도리어 유리카는 숨을 진정시켰다. 어쨌든,
이런 백호랑이를 상대로 이렇게 접근한 것이 오히려 역효과였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기가 죽은 티를 낼 생각은 추호도 없는 유리카는 천천히
미소지었다. 어느샌가 거두어진 와이어에 확신을 가진 그녀는, 아까와는
다르게 냉정하게 미소지었다.
"아아, 그래!? 소문이 정말이었나 보네...... 하지만, 정말 그가 그 이름을
가질 자격에 대해서 과연 그 누가 뭐랄 수 있을까!? 저 대단하신 '어르신'께
10대의 나이로, 정면으로 맞선 사람은 히카루 상이 최초인걸?♬"
".......쓸데없는 소리 마라. 결론부터 말해."
"하하, 알았어."
그녀는 그 말에 방긋 웃고는 뒤를 이어 말했다.
"요점은 말이지, 후지모리 상이 꽤나 곤란해졌다는 거야. 어쨌든, 아키 짱은
히카루 상의 또래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친했잖아?
둘이 호모라는 소문이 돌 정도로- 하긴, 히카루 상이 무표정해서 그렇지,
봄의 사오히메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답긴 했으니까.... 아이, 인상 쓰지 마.
농담이라구. 하여튼, 그런데 이번에 간부 측에 아무 말도 없이 사라진 히카루
상을 전혀 낌새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이유로, 아키 짱이 곤경에 처한 거지.
덕분에 이번 일로 은룡회(銀龍會)의 입지가 상당히 아슬아슬해. 그래서...
책임지는 차원으로-"
"......."
여전히 아무 말 없이 묵묵히 듣고만 있는 준에게, 유리카는 검지 손가락을
흔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키 상이, 직접 한국으로 가게 되었다는 거야~♡"
".....정말인가?"
"물론이지."
".....주소도 알고 있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어느새 꺼낸 흰 종이가 유리카의 손가락 사이에서
팔랑대는 것을 보며 준은 인상을 썼다. 하지만, 그 박력에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기색으로 그녀는 생글생글 웃고만 있었다.
"내 놔."
"싫~어. 기브 앤 테이크란 말도 몰라!?"
"......원하는 게 뭐냐."
담담하게 묻는 말에, 유리카는 한 쪽 눈을 찡긋하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간단해. 나도, 한국으로 데려가 주는 것. 어때, 쉽지!?"
"-....오노에에게는 그 말을 안 했나?"
"흐음, 안되니까 이시카미 상한테 부탁하는 거지~ 뻔한 걸 왜 묻고 그래?"
"....."
잠시, 그런 그녀의 웃는 얼굴을 바라만 보던 준은 차갑지만 수려한 외모에
웃음 비슷한 것을 띄웠다. 만년설마냥 얼어붙어 풀리는 법이 없다던 그의
표정 변화에(그것도 엄청 멋있는 미소를), 놀라 그녀가 눈을 크게 뜬 순간-
갑자기 손가락 사이가 허전해진 것을 알아차린 유리카였다. 고개를 숙여
확인해보니 아니나다를까, 손가락 사이의 종이가 사라진 것을 알아챈 그녀가
준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캬앗---!! 이 나쁜 놈--!! 이대로 혼자 가버리면, 나쯔키 상한테 네가 어디
갔는지 다 말해버릴 거야~!! 마사키 짱도 네가 어디 갔는지 알면 가만있지는
않을 거라구!!! ---야, 듣고 있는 거야!!!??"
"그래."
"-----이시카미 준------!!!!"
이미 골목 바깥으로 나간 건지, 그림자마저 불빛에 반사되어 사라지는 것을
보며 유리카는 발을 굴렀다. 요새, 눈에 띄게 심기가 불편한 이시카미에게
걸려서 불운하게도 그의 화풀이 상대로 희생되어버린, 뒷골목의 어느 한 그룹
단원들이 엉망진창으로 쓰러져 있는 공터의 한가운데서- 그 후로도 한참을
유리카는 분을 삭이지 못해 어쩔 줄을 몰라해야만 했다.
야나가와 히카루- 그러나, 주변에서는 가마모토 히카루로 더 유명했던 소년이
한국으로 떠난 지 3일 뒤에 있었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