松潭李鍾和博士行狀
옛날부터 성인들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한평생을 살아가며 財物과 名譽를 동시에 얻기는 어려운 것이라 하였으며 간혹 하늘에서 내리는 福을 받아 財와 名譽를 얻는 사람이 있으나 이는 四德을 갖추어 善行을 쌓아야 얻어질 수 있으며 德을 쌓지 않은 사람은 잠깐 福을 누렸다 하여도 오래가지 못할 것이며 큰富를 쌓았다 해도 三代를 가기가 어렵다」하였다.
그러나 많은 德行을 베풀어 사람들의 칭송을 받고 福을 누리고 사는 사람은 오래도록 一身의 平安을 얻을 것이며 끝까지 至體가 높고 尊貴함이 代를 이어 전해지고 敬賀스러운 일들이 子孫들에게 이어져서 끝이 보이지 않을 것이니 松潭李博士가 그런 분이시다.
松潭께서는 평생토록 말씀과 행동이 바르시어 참됨만이 있었으며 仁慈하시고 일찍 홀로되신 어머님께 孝道함은 세상 사람들이 따라 하기 어려운 일이라서 그 名聲이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넓게 퍼져나가 마침내 成均館에 이르러 孝道大賞을 받았다. 年歲가 八旬을 넘기셨어도 氣力은 왕성하니 건강하시고 얼굴은 童顔으로 부드럽고 밝으셨으며 항상 謹嚴하시고 말씀을 가려 하시며 每事를 깊이 省察하시는 모습은 마치 神仙처럼 고요하셨다. 비록 身體는 短軀이셨으나 뜻은 크고 넓었으며 업무를 처리함에 있어 私心이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믿고 따랐다.
松潭은 1933年 癸酉 음력 5月 17日 東京에서 아버지 平松公 圭鳳님과 어머님 烈婦泗川李氏 必順님의 二男一女中 맏아들로 출생하셨다. 本貫은 慶州 이름은 鍾和 雅號는 松潭이시다. 始祖는 新羅開國의 元勳이신 휘謁平이요 派祖는 高麗朝에 檢校政丞을 지낸 菊堂公 휘蒨으로 시호는 文孝公이시니 松潭의 二十代祖이다.
高祖는 應瑞公 정진이시며 曾祖는 松江公 헌벽이요 祖는 松山公 文榮이시다. 松潭은 忠孝世傳의 가풍을 이어받아 어려서부터 孝誠이 특별하셨는데 여덟 살에 父親을 여의니 天崩之痛으로 슬퍼함이 하늘을 울렸도다. 함경북도 무산에서 합천 고향으로 돌아와 學業에 정진하여 총명함이 남달라 봉산초등학교와 陜川中高 재학 시에 陜川을 빛낼 秀材로 불리 웠다.
1962年 衣巖댐건설 현장근무를 시작으로 한국경제 발전의 상징인 경부高速道路건설을 비롯해 영동.남해高速道路 및 蔚山 伴月工業團地 조성공사 건설현장에서 축적된 경험을 바탕으로 1979年에 京仁実業을 창업하여 勞社가 더불어 살아가는 올바른 企業觀과 事業報國의 國家觀으로 노사화합과 산업평화에 안정을 이룬 공로로 노동부장관 표창을 수상했다. 그리고 경영합리화를 통한 레미콘 품질향상과 기술개발에 선도적 역할로 1987年 레미콘조합 설립을 주도하고 새로운 도전과 혁신을 통한 중소기업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 하였다.
1997年에 仁川에 新空港레미콘株式會社를 창업하여 大韓民國의 關門인 仁川國際空港 건설공사에 특수레미콘을 개발하여 공항준공에 赫赫한 공헌을 하여 2000年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하고 2001年 大統領表彰, 2003年 자랑스런 韓國人大賞, 2004年 國民勳章石榴章을 수훈하여 名聲이 널리 알려졌다.
2008年에는 韓國레미콘工業協同組合聯合會 第7代會長 재임 시 레미콘업계의 오랜 숙원이던 國土海洋部산하 공공기관의 분리발주 및 납품대금 직불제를 代支給으로 전환하여 중소기업 발전에 큰 업적을 남기셨다.
松潭은 왕성한 기업 활동을 하면서 61세(1994年)에 慶州李氏菊堂公派大宗會 第13代會長을 맡아 巨額을 헌성하여 菊堂公 派祖묘역을 새롭게 淨化하니 大宗會는 宗人들의 칭송을 모아 2007年에 功績碑를 세워졌으며 67세(2000年)에 二百萬 宗勢를 자랑하는 慶州李氏의 第十九代中央花樹會長으로 선출되어 中國 龍井에 溥齋 李相卨先生의 역사전람관을 준공하여 抗日民族敎育의 요람인 瑞甸書塾의 創學정신을 현양하였다.
慶州李氏의 숙원사업인 始祖의 誕降地 遺蹟이 所在한 慶州의 밝바위一帶를 성역화하기 위하여 ⌜民主主義發祥地 慶州瓢巖聖域化事業基本計劃⌟을 수립하여 宗人인 李萬燮 國會議長 李在五 한나라黨院內總務 李相洙 民主黨院內總務 李良熙 自民聯院內總務 相得 源炯 鐘杰 在禎 在昌 相培 正一 方鎬 浩雄 국회의원과 문화재청 徐廷培 盧太燮청장의 도움을 받아 國費十一億五千萬원을 지원받아 성역화의 토대를 마련하였다.
표암재성역화추진위원회 李鍾贊 李敏雨고문님과 李相熙합천이씨중앙종친회장 李斗哲중앙청년회장 李相根서울청년회장등 李相樂사무처장의 적극적인 노력과 협력으로 국고지원을 연차적으로 받아 총三十一億五千萬원의 사업비로 성역화사업본부장인 李鍾澤경주표암화수회장의 勞苦로 공사를 마무리하게 되었으니 이는 松潭李鍾和중앙화수회장의 誠力으로 이룩된 사업이라며 宗人 모두가 그 功勞를 칭송하였다.
李萬燮 國會議長을 비롯한 第16代 종중출신 국회의원 열세분의 始祖廟宇告由參拜에 경주이씨. 합천이씨. 재령이씨. 원주이씨 등 本.分籍종친 모두가 제례를 봉행한 악강묘 參詣는 2000年 史上初有의 위선행사로 기록되었다.
慶州李氏花樹會의 百年大計를 위하여 2000年 慶州李氏中央靑年會를 창립하고 전국각지역화수회에 靑年會를 조직하셨으니 二十餘年이 흐른 지금까지도 崇祖尙門을 위해 노력하신 花樹會 中央會長이요 慕先心의 표상으로 불리고 있으니 松潭의 위업은 慶州李氏宗史에 찬연히 빛나리라.
2007年에는 한나라당 大統領후보 경선에 先進國民連帶 共同의장을 맡아 전국을 누비며 二百萬 宗人들을 일치단결시켜 李明博후보가 경선에 승리하는데 초석을 다지고 大統領選擧에서도 압도적으로 當選되어 第十七代大統領이 탄생하니 松潭이 감격하시어 ⌜우리 경주이씨가 시조께서 恩㤠王에 追封되신후 二千餘年만에 大統領을 배출하였으니 二百萬 宗人들의 積年의 恨이 풀렸으며 이제야 비로소 三韓甲族이 되었다 하시며 今次의 慶事는 菊堂 할아버지의 發福이라 하셨다.
松潭은 삶의 모든 순간이 배움의 연속이라는 일념으로 20餘年동안 延世大學校經營專門大學院을 비롯해 서울대, 고려대등 국내외 명문대 대학원에서 50여개의 최고위과정을 수료하고 훼이스대학교 대학원에서 敎育學博士 學位를 취득하고 中國 靑島道理工大學校에서 名譽經營學博士를 받으셨다.
松潭께서는 후진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2002年부터 延世大學校經營專門大學院에 지속적으로 數億원을 기부하여 2015年 신축한 延世大經營館의 B109호를 이종화토의실로 명명되었다. 2005年 民主平和統一諮問會議 常任委員으로 교육을 통한 南北協力의 시대를 열고자 平壤科學技術大學 건립기금으로 二十萬달러를 기부하였다. 故鄕인 陜川의 후진양성을 위한 교육발전기금으로 一億원을 기부하고 합천고등학교 우수졸업생에게 매년 장학금을 지급하여 진학의 꿈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셨다. 합천지역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1999年 陜川人 大賞을 받으셨다.
환경의식을 함양하고자 2006年 설립한 (주)환경안전공사를 통해 환경학습만화 「푸른별의 꿈」을 발간 보급하고 합천군의초.중.고등학교외에 일만여권을 기증하였다. 합천댐 건설로 수몰된 고삼리 남쪽 산악지대에 임도 5Km의 건설을 추진하여 향리의 교통편익을 도모하셨다.
八旬을 넘은 2013年에는 미래를 위한 農.生命分野에 관심을 갖고 농업회사법인주식회사송담을 창업하여 晋州市에 네덜란드식 최첨단 유리온실을 건설하여 친환경 창조농업으로 기계화된 새로운 재배방식을 도입하여 생산된 양질의 농산물을 수출하고 있으니 우리 농업의 미래를 밝혀주고 농생명분야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대한민국지식경영대상을 받아 松潭의 慧眼에 모두들 감탄하였다.
봉사와 배려로 원활한 사회활동을 하며 봉산초등학교, 합천중학교, 합천고등학교, 재경합천중고등학교총동창회장과 재경봉산향우회장, 재경합천군향우회장을 역임했으며 재경경남도민회 고문으로 특별공로상을 받았다. 2012年부터 연세대학교경영전문대학원총동창회와 합천고등학교총동창회장을 연임하면서 모교와 동창회 발전을 위해 헌신하였으며 매사에 열정적이셔서 모든 원우들의 귀감이 되셨다.
2011年에 세운 「慶州李氏菊堂公派松潭家門世系碑」는 세종대학교 역사학과교수 박물관장 문학박사 오 성교수가 짓고 전북대학교 명예교수 최승범 문학박사가 監修하여 선산에 비를 세우셨으니 후손들이 先代의 고결한 世德과 순후한 정신을 이어받아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세계평화에 공헌하는 가문으로 자자손손 융성 발전 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세겨 놓았다.
2017年 4月에 세운 「慶州李氏陜川乃華門中遺蹟碑」는 1986年 합천댐건설로 수몰된 乃華마을의 정취를 회상하며 비문을 쓰고 題字는 명예철학박사 정도준 서예가가 필력으로 합천호가 내려다 보이는 선산에 세우고 망향의 그리움을 잊지 못하였다.
松潭은 十九歲에 東萊鄭氏 휘秀大의 딸 分祚님과 결혼하여 슬하에 四男一女를 두셨으며 三十五歲에 홀로되신 어머님을 극진히 봉양하여 白壽延을 배푸니 孝子라 칭송되어 2006年에 成均館에서 오늘의 齊家賞인 孝道大賞을 수상하셨다.
孝를 行하는 사람이 드문 현실에 世敎의 귀감이 되셨으며 2009年 8月 25日 母親께서 一百四歲의 天壽를 누리고 別世하시니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는 저명인사들의 弔花가 가득한 가운데 많은 弔問客으로 만원을 이루어 조의를 표하였으며 送終에 禮를 다하고 一周忌에 先考와 先妣墓에 菊堂公派 第19代 李興雨 會長이 지은글로 추모비를 세우고 墓園을 淨化하여 꽃동산을 조성하였다.
松潭은 남동생 鍾三 여동생 桃時님과도 우애가 돈독하니 집안이 화목하였다. 配位이신 孝婦 東萊鄭氏 分祚님은 1933年癸酉 음력 9月 19日생으로 타고난 성품이 溫柔하고 勤儉節約하며 부지런하시고 夫君을 도와 家勢를 일으키고 일찍이 홀로되신 시어머님을 정성으로 모시어 白壽를 넘기시니 世人들이 孝婦라 송덕하였으며 자녀교육에 헌신하여 四男一女를 俊傑한 人材로 양육하니 婦德을 칭송함이 자자하였으며 松潭이 성공한 企業人이 될 수 있었던 것은 夫人의 內助의 功이었으니 崇高하도다 효부의 삶이시여!
슬하에 장남 政浩는 延世大學校 經營學碩士로 慶州崔氏 賢珠와 결혼하여 에쓰오일 理事로 재임중 2010年에 과로로 순직하니 松潭이 그 恨을 못이겨 ⌜爾哭을 我哭하니 我哭을 誰哭가 白首痛哭에 靑山欲裂이라⌟하셨으니 애틋한 父子의 情은 子夏先生의 喪明之痛이라는 古事가 새로워진다. 며느리 崔賢珠는 상명여자대학교를 나와 고등학교 지리교사로 재직하다가 수필가로 문단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두아들 相勳 相燁은 금융계에 근무하고 있다.
둘째 東浩는 서울시립대학교 도시행정학박사로 국민연금공단에 재직하다가 아버지의 뜻에 따라 진주에서 농업회사법인 주식회사 송담을 경영하고 있으며 며느리 泗川李氏 景燦은 상명여자대학교를 나와 고등학교 일어교사로 재직하고 있으며 슬하에 相憲 相潤 형제와 딸 亭旻이를 두었다.
셋째 承浩는 서울시립대학교 경제학석사로 서울도시개발공사에 근무하고 있으며 며느리 淸風金氏 順英은 숭실대학교 문학석사이며 슬하에 相沅 相宜형제를 두었다.
막내 炯㯙은 미국 워싱턴 스트레이어대학교 전자공학석사로 미국에서 사업을 하고 있으며 며느리 礪山宋氏 貞妸는 죠지메이슨대학교 경영학석사로 콜럼비아대학 국제교류협력처에 근무하고 슬하에 周美 周恩 자매를 두었다.
딸 賢珠는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을 나와 예일여자고등학교 영어교사로 재직하다가 東來鄭氏 淵夏와 결혼하여 영국계보험회사를 경영하고 있다.
막내아들 炯㯙과 며느리 宋貞妸 손자 相勳 相燁을 미국으로 유학을 보내 相勳은 오하이오주립대에서 경영학을 相燁은 인디얘나주립대에서 경제학과 회계학을 전공하여 국가와 사회 발전에 기여 할 인재로 키우는 한편 손자 相憲 相潤은 진주에 있는 경상대학교에서 농.생명과학분야를 전공 하여 친환경 미래창조농업을 이끌어 갈 경영인으로 亭旻이는 이화여대에서 서양화를 전공 하고 周美와 周恩 자매는 미국 버지니아주의 영재로 선발되어 영재교육을 받고 있어 장래가 촉망된다.
中國의 宋나라 司馬溫公께서 말하시기를 ⌜黃金을 쌓아 子孫에게 줄지라도 자손들이 能히 지키기 어려운 것이니 蔭德을 쌓아 자손들이 福되게 하는 것이 더 좋다⌟하였으니 松潭의 자손들이 美國留學등으로 博學을 섭렵하여 國家와 社會를 위한 棟梁之材로 성장하였으니 이를 보아서도 松潭이 積善積德하였음을 알 수 있도다.
아! 松潭 李博士께서 평생 헌신적인 봉사와 이웃을 도우며 살아온 참된 삶을 후세에 傳承하고자 松潭을 따르는 知人들과 子女들이 합심하여 行狀文을 請하니 松潭의 高貴한 행적이 잊혀 질까 두려운 마음에 내가 아는 대로 지나온 행적들을 찾아 간략하게 기록하면서 孝子요 君者요 成功한 企業人셨던 松潭의 行蹟이 세상에 오래오래 남아 빛나기를 素望합니다.
西紀二0十七年丁酉八月夏日慶州李氏中央花樹會副會長李凞雨謹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