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셨죠? 5월 5일 어린이날이네요.
법정 공휴일, 즉 빨간날. 그래서 회사 출근 안 하는 날.
덕분에 이렇게 서평을 쓸 수 있게 됐답니다.
그리하여 여러분들에게 책도 권해드릴 수 있고요.
이번에 추천할 책은 일본 작가의 작품인데요.
꽤나 많이 유명한 작가랍니다. 뭐, 전 이 작가의 책을 즐기진 않지만요.
그럼, 서평 시작합니다.
도서명: 사명과 영혼의 경계
지은이: 히가시노 게이고
* 이 책은 아이프리 도서관 9번 문학에 추리 코너에서 다운받을 수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처음 책의 제목을 봤을 때 꽤나 의미심장하다고 생각했다. ‘사명과 영혼의 경계’라니, 무슨 철학서 내지는 심령학을 암시하는 것 같잖은가. 다른 사람들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받은 인상은 그랬다. 그런데 소개글을 읽어보니, 의학 스릴러라고 했다. 그래도 다운 받기까지는 제법 망설였다. 내가 ‘히가시노 게이고’라는 작가를 선호하지 않기 때문이다. 글 스타일이 나랑은 안 맞는달까. 그러나, 결국은 이 작품을 들게 됐다. 읽을 책이 딱히 없었기 때문이다. 작품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유키는 사춘기 시절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와 함께 생활한다. 아버지는 심장질환 때문에 돌아가셨는데, 그를 계기로 그녀는 의사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시간이 지나, 유키는 심장외과의 수련의가 되고, 니시조노 교수의 담당 아래 인턴 생활을 한다. 그는 심장외과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가진 인물로, 옛날 유키 아버지의 수술을 집도했으나, 끝내 살리지 못한 과거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병원으로 한 통의 협박 편지가 날아든다. 범인은 의료사고의 진실 규명을 요구하고 병원은 수런거리기 시작한다. 경찰 수사가 진행되고, 편지를 처음 발견한 유키는 수사에 협조한다. 그 와중 나나오 형사에게서 아버지의 과거 편린을 듣게 된다. 유키의 아버지, 히무로 긴스케가 전직 경찰이었다는 사실, 그리고 모종의 이유으로 일을 그만두었다는 사실. 한편 협박범인 조지는 정보원인 간호사를 통해 병원의 사정을 듣고 모종의 계획을 진행하기로 한다. 사실, 정보원인 ‘그녀’는 조지의 속셈을 까맣게 모른다. 그런 가운데, 유키의 엄마가 재혼할 의사를 밝히며, 유키의 의견을 묻는다. 그 상대는 바로 니시조노 교수. 그 둘의 관계를 맞닦드린 그녀는 과거에 모종의 음모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게 된다. 요컨데, 수술을 일부러 실패하여 아버지를 죽게 한 건 아닌가 하는, 거기에 어머니도 동조한 게 아닐까 하는 의혹. 히무로 긴스케가 경찰이던 시절 니시조노 교수의 아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기 때문이다. 고의가 아닌 사고였지만, 받아드리는 사람 마음이란 게 어디 그런가. 니시조노의 입장에서는 긴스케를 ‘원수’라고 여길 수 있으리라. 그런 두 사람이 의사와 환자의 관계로 만나게 된 것이다. 거기에 유키의 어머니와의 관계도 있고. 하지만 심증뿐 물증은 없다. 그렇게 마음 한구석에서 점차 의심이 자라는 가운데, 협박범의 위협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2차 협박 편지가 날아들고, 폭발물을 빙자한 발화통으로 환자와 의사 모두 동요한다. 흔들리는 분위기에 떠나는 환자와 남는 환자가 갈리고, 형사 나나오는 범인의 목적에 의문을 품기 시작한다. 왜 범인은 폭발물이 아닌 발화통을 설치했는가? 어째서 협박 편지를 환자들에게 발견되도록 꾸몄는가? 진짜 범인이 놀이는 바는 무엇인가? 한편, 범인 조지는 슬슬 목적을 달썽하기로 결심한다. 마침내 어떤 유명 인사의 수술 집도와 함께 범인의 테러도 시작된다.
‘사명과 영혼의 경계’는 메디컬 스릴러답지 않은 추리물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의학적인 지식이나, 그와 관련된 면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본격적인 ‘메디컬 추리’를 선호하는 독자에게는 별로일 수도 있다. 하지만 책을 덮고나서는 뭔가 여운이 남는다. 추리소설은 크게 두가지 종류다. 여러가지 트릭으로 진범을 찾는 경우, 등장인물의 심리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 ‘사명과 영혼의 경계’는 범인이 오픈된 형태다. 따라서 독자는 등장인물들을 따라다니며 그들의 심리와 행동양식, 사건의 동기 등을 파악하며 읽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머리 아픈 추리를 벅차하는 독자에게는 권할 만한 작품이라 하겠다. 참고로 나는 ‘적당’을 선호하기 때문에 이런 형식이 썩 나쁘지는 않았다. 이 책에는 나름의 사명을 가진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심장외과 전문의 니시조노. 그는 의사의 책임감과 사명을 보여준다. 특히 수술 장면에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면모가 돋보인다. 의사의 사명으로 영혼의 경계에 선 환자를 붙든다. 경시청 소속 형사 나나오. 위에는 잔뜩 밑보였지만, 자신의 소신, 즉 사명을 꾿꾿하게 지킨다. 한편, 평범한 시민이지만, 모종의 이유로 테러를 자행한 조지도 있다. ‘사명과 영혼의 경계’는 인물간의 관계가 매우 짜임새있는 작품이다. 메인 스토리를 잘 엮으면서 사이사이 다른 인물들의 감정선도 잘 잡아냈다. 그래서 잘 만든 미니시리즈를 본듯한 느낌도 든다. 개인적으로 인물간의 갈등과 심리가 잘 얽힌 작품이었던 것 같다. 물론, 좀 지나치다 싶게 ‘드라마틱한’ 인물도라는 생각이 없진 않다. 너무 절묘하게 얽혀서 ‘어떻게 이게 가능해?’ 하는 작위적인 느낌도 있다. 또한, 조지의 범행 동기도 묘했다. 이해할 수는 있어도, 납득이 안 된다고 할까. 조지는 사랑했던 여자의 죽음에 관한 조사를 하다가 제일 잘못이 있다고 여겨지는 자동차 회사의 사장을 죽이기로 마음먹는다. 그러나, 죄없는 다른 사람들을 해치고 싶지는 않았다. 때문에 여러 소동을 버린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사장에게까지 죄를 묻는 건 좀 아닌 것 같다. 일단, 그는 책임자로써 할 도리를 다 했다. 사과를 했고, 보상도 했으며, 원인을 밝혀서 직원을 해고했다. 잘못을 인정한 게 어딘가? 내가 삐뚤어져서 그런가, 그냥 덮어버리거나, 입막음하지 않은 게 어디냐는 생각이 먼저 든다. ‘일본 사회’와 ‘한국 사회’의 ‘도덕’ 수준인가 하는 생각에 이르면 씁쓸해진다. 그 동네의 보편적 율리 수준이 이 정도란 말인가? 아, 쪽팔려! 우리나라 왜 이렇게 양심불량 인간이 많아? 옆 나라, 특히 역사적 도덕심에서 부족한 나라한테 사회적 도덕심이 밀린 건가? 으으윽! 한국 국민으로서 무진장 존심 상한다. 좌우간 각설하고, 어쩌면 조지는 누군가 그녀를 알아주길 바란 게 아닐까 싶다. 그의 여자친구인 그녀는 사고의 직접적인 희생자가 아니다. 굳이 표현하자면, 간접적인 희생자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그녀의 죽음은, 가족들에게마저 ‘운이 나빴다’는 식의 체념을 불러왔을 뿐이었다. 그런 까닭에 별다른 보상도 받지 못했고 피해자 그룹에도 속할 수 없었다. 조지는 그것이 억울했던 게 아닐까. 그녀의 죽음이 잊혀지는 게. 따지고 보면 개인이 모여 사회가 되지만, 사회 입장에서 보면 개인은 작은 존재니까. 그래서 자신이라는 개인뿐 아니라, ‘사회’에 호소할 요량이 아니었을까. 그 점이 투사하고 표상화한 게 자동차 회사 사장이었고 말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그의 동기는 이해할 수 있을지언정, 납득하고 동조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 작품이 심리묘사와 갈등, 사회성을 테마로 했다고 하니까 이건 독자가 양해를 해야할 것 같다. 게다가 이 도서는 ‘의학 스릴러 속의 범인의 이상행동’을 말하고자 하는 게 아니다. 어디까지나 사견이지만, 작가는 ‘사회 속의 개인’, 혹은 ‘개인마다 지닌 사명’, 그리고 그것이 ‘사회에 투영될 경우, 사회는 어떻게 변화하고 움직이게 되는가’ 하는 것을 담고자 했던 것 같다. 그래서 ‘메디컬 추리를 테마로 사회성을 그렸다’고 표방했는지도 모른다.
“사람은 누구나 사명을 가지고 태어난다.”
작중 히무로 긴스케가 말한 대사다. ‘사회성’이라는 게 좀 모호한 개념이라 약간 부족하게 들어난 것 같지만, 그나마 ‘사명’과 연동되어서 감을 잡을 수 있었달까. 사회를 이루는 개인이 저마다 ‘사명’을 갖고 임한다면, 우리 사회가 더 건설적으로 변화하지 않겠는가. 개인의 갈등이나 집단과 개인간의 트러블도 원만하게 풀릴 테고 말이다. 이 도서는 관점에 따라 호불호가 나뉠 만한 작품이다. 그러나 어떤 책이든 읽고 나서 생각할 거리가 주어진다면 그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지 않을까. 이 책은 비록 그럴싸한 반전도 없고, 긴장되는 스릴이나 스마트한 의학적 지식은 없지만 마음 한켠에 온기가 싹튼 추리물이었다. 그런데, 읽는 내내 등장인물들의 사명만 생각하느라 내게 주어진 사명은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이제 내게 주어진 사명을 천천히 생각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