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복음에서 저녁때 늦게 온 일꾼들에게,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과 똑같은 대우를 하는 포도원 주인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인의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려 투덜거리는 일부 종들의 모습은 요즘, 조금이라도 ‘불공정함’에 불만스러워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아주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 심리가 그렇습니다. 이걸 '질투심'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어떤 누군가가 ‘보통 이상’으로 뛰어나게 독주하는 것을 절대 못 봐준다고 합니다. 특히 도긴개긴, 자신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는데 어느 날, 어떤 계기로 자신보다 월등히 잘나가거나, 많은 것을 누리게 되면, 자신도 분발할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어떡하든 그를 끌어내리려는 심리가 있다고 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맨주먹으로 자수성가한 사람이나 스타 연예인을 향한 공격입니다. 그들은 애초에 나보다 결코 잘난 존재가 아니었고, 또 그들이 성공을 했다고 하더라도 내가 보기에 ‘뭐 그 정도쯤은 봐줄 만한’, 시덥지 않은 성공이라고 여겨질 때는 침묵하고 있지만, 그러다가 어느 날, 인스타그램을 통해 노출된 그의 화려한 성공한 생활을 보게 되고, 상대적으로 자신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순간, 급발진하여 그를 깎아내리고 비난함으로 심리적 안정을 찾습니다.
오늘 복음말씀의 비유를 들으면서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의 속도’가 있습니다. ‘각자성’이라고 하는데요. 느리게 기어 다니는 달팽이가 1시간 동안 이동하는 거리와는 비교가 되지 않게, 빠른 치타는 1시간에 140 킬로미터를 달린다고 합니다. 여기서 누가 더 낫고 누가 더 뛰어나고는 없습니다. 자기 속도대로 최선을 다한 면에서 보면 달팽이나 치타나 똑같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달팽이를 보고, 치타만큼은 아니더라도 느려도 너~무 느린 거 아니냐고 핀잔을 줍니다. 좀 더 분발하라고 채근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위인전이나 멘토, 롤모델… 이런 것들이 마땅치 않습니다. 위인전 위인을 본받으라는 것은 사슴더러 호랑이를 닮으라는 격일 수 있습니다.
저도 과거엔 그랬습니다. “그래도 어느 정도는 해야지. 신부라면, 그리스도인이라면 적어도...” 그러나 이젠 자기에게 주어진 대로 그냥 최선을 다하면 된다는 생각입니다. 남들보다 느리다고, 좀 쳐진다고 우울해하거나 쫄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각자 타고난 재능대로 지지받고 칭찬받을 자격 충분히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