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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분 / 15세 이상 관람가>
=== 프로덕션 노트 === (내지 해설)
외롭고 쓸쓸한 고흐의 일상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조각조각 굵은 이야기
화가 “빈센트” 그는 과격한 성격으로 자신에게 어떠한 비판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작은 충고에도 심각한 상처를 입곤했다
빈센트의 외롭고 절망 가득한 37세의 짧은 삶 그러나 그의 위대하고 강렬한 예술혼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태양의 화가 반 고흐, 그는 미치지 않았다. 열정이 넘칠 뿐.
프랑스 감독 모리스 피알라의 <반 고흐 Van Gogh, 1991>는 고흐가 죽기 2~3개월의 마지막 일상을 담담하게 담아낸 작품으로써, 우리가 고흐에게서 받는 느낌처럼 그의 일상은 늘 열정으로 가득 차 있었으며 그가 미쳐 있을 때 그림을 그리는 천재인 것 마냥 인식해 있는 우리에게, 어떤 천재 화가라도 끊임없는 습작과 연습으로 하나의 대작이 나온다는 것을 보여 준다. 고흐가 37세의 짧은 힘겨운 삶을 다하여도 일상은 늘 그대로 자신의 본연의 일들로 살아감을 보여주는 것은 삶에서 죽음이라는 명제를 다시금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일 것이다.
각본 : 모리스 피알라 (Maurice Pialat)
촬영 : 엠마누엘 마슈엘 (Emmanuel Machuel)
편집 : 얀 데데 (Yann Dedet), 나탈리 허버트 (Nathalie Hubert)
미술 : 필립 폴럿 (Philippe Pallut)
출연 : 자크 뒤트롱, 알렉산드라 런던, 리즈 라메트리, 베르나르 르 코크
영화는 1890년 5월 빈센트 반 고흐가 휴양을 위해 오베르에 도착하면서 시작된다. 빈센트는 동생 테오가 매달 대주는 적은 생활비로 하루에 방세가 3프랑 50 밖에 안 되는 초라한 카페 2층의 다락방에서 지내는 동안 오베르의 아름다운 자연과 그곳 사람들의 모습을 미친 듯이 그려나간다. 오베르에서 가깝게 지내던 의사 가셰 씨의 어린 딸 마그리트는 소녀적인 순수함과 맹목적인 사랑으로 그를 열렬히 사모한다. 그녀와의 밀회를 하는 중에도 그녀의 건강하고 티없는 세계는 빈센트의 바닥을 모르는 깊은 영혼의 갈증과 허무를 채워주기에는 미흡했다. 한편으로 그는 창녀 캐티와의 관능적인 관계를 통해 소외된 사람들의 고독과 좌절을 나눔으로 해서 위안을 찾으려 한다. 또한 그를 끊임없이 따라다니던 가난은 불편함 외에도 자신이 동생에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고 있다는 자책감을 준다. 동시에 동생에게 구걸해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에 대한 굴욕감 등이 이중으로 그를 괴롭히고 서서히 파괴해간다. 고흐의 그림이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할 즈음 그의 영혼은 이미 너무도 고갈되고 황폐해져서, 그는 자신이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을 한계점에 이른 듯 느낀다. 게다가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한다고 믿었던 동생이 다른 모든 화상들처럼 자신을 착취하고 있는 듯한 배신감에 정신적으로 그는 더욱더 막다른 골목으로 몰린다. 그에게 구원의 여신상처럼 비쳐졌던 아름답고 열정적인 제수 조안나(콜린느 보우든 분) 역시, 남편 테오에게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경제적인 부담을 주는 빈센트를 자신의 가정에 위협적인 존재로 생각해 그에게 등을 돌린다. 그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을 쏟아왔던 마그리트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빈센트의 광기와 정신의 황폐함에 절망한다. 예술의 애호가로 자처하고 빈센트의 후원자처럼 그를 환대해주던 가셰 박사조차 빈센트와 딸 마그리트의 관계를 안 뒤로 그와 절연하자, 그에게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진다.
고흐의 그림이 평론가들의 주목을 받기 시작할 때 그의 영혼은 이미 너무도 메마르고 황폐해져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다고 그는 고백한다. 그리곤 끝내 권총 자살을 시도하고 그 상처로 인해 하루 동안 고통 받다가 오베르의 싸구려 하숙집에서 37세로 생을 마감한다. 세상에 발을 못 붙였던 그의 자리는 워낙 없었으므로 또 다시 세상은 아무 일 없었던 듯 돌아가지만, 그의 강렬한 예술혼은 그를 사랑했던 마그리트의 가슴에, 그리고 후세의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새겨질 것이다.
=== 영화평 === <부산문화회관 예술에의 초대 2015년 12월호 vol.288호, 16 ~ 19쪽 / 프랑스 통신원 전은정 글>
자연주의 속에 쌓아 올린 사실주의의 미학
모리스 삐알라 Maurice Pialat, '반 고흐 Van Gogh'
영화는 태생부터 그 정체성이 묘하다. 영화가 산업이냐 예술이냐라는 켸켸묵은 논란을 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영화가 탄생한 19세기 후반은 전통적 회화 양식의 틀을 깨고 세상 바깥으로 캔버스를 들고 나온 인상주의 화가들을 비롯해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본격적으로 던지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카메라'라는 기계로 인해 태어난 기술발전의 산물이기도 하고 이로 인해 새로운 예술적 시도에 박차를 가하게 해줌으로써 예술사의 한 부분을 차지할 수 있었다. 이렇게 늦게 태어난 영화는 선배 예술들의 유산을 적극적으로 자신의 고유한 영억으로 끌어들여 문학을, 미술을, 음악을, 연극을 체화시키고 자기번식을 반복한다. 그래서 영화는 제7의 예술로서 종합예술이라는 자격을 얻었을 것이다.
거칠게 말해 영화는 이미지를 바탕으로 이야기를 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꾸준히 이야기와 이미지를 찾는 영화계에 예술가의 삶은 아주 흥미로운 소재로 다가왔다. 특히 미술사의 획을 긋는 천재적인 화가들의 삶은 영화계에는 화수분 같은 존재다. 재현의 문제는 감독들에 의해 재해석되어 또 하나의 다른 이야기로 이미지와 함께 다가간다.
스크린에서 재현된 대표적인 화가로는 열정과 광기로 상징되는 반 고흐의 삶이 있다. 알랭 레네는 초기작 다큐멘터리 <반 고흐>를 통해 고흐의 그림을 새로운 영화형식으로 표현했고 헐리우드 멜로드라마의 대부라 할 수 있는 빈센트 미날리도 반 고흐를 지나치지 못했다. 로버트 알트만 또한 고흐와 동생 테오의 관계를 스크린에 옮겨 놓았다. 물론 일본의 구로자와 아키라의 <꿈>도 빼놓을순 없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프랑스 영화계의 반항아 모리스 삐알라의 <반 고흐>가 있다. 이들 모두 영화사의 걸작으로 회자되지만 모리스 삐알라의 <반 고흐>만큼 천재라는 극적인 화가보다는 한 인간의 모습에 초점을 맞춘 삶과 죽음에 대한 영화는 없을 것이다.
프랑스 영화사에서 모리스 삐알라는 가장자리에 위치하고 있다. 그는 프랑스의 유수한 영화상(쟝 비고상, 루이 들뤼 그리고 깐느)을 수상하고 1960년대를 누비던 누벨 바그와 동시대를 보냈지만 그 어떤 그룹에도 속하지 않고 독창적인 영화행보를 고수했다. 1925년생인 모리스 삐알라는 프랑스 근현대사의 말 그대로, 격동기를 살아 온 사람이다. 청소년기엔 나찌의 하수인 비쉬정권을 거치고 청년기에는 프랑스의 원죄인 알제리 독립전쟁을 겪었으며 현 프랑스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1968년 5월 혁명 당시 그는 43세였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떠도는 입양아를 그린 첫 장편영화 <벌거벗은 어린시절>은 불우한 유년기를 보낸 감독 자신의 모습과 함께 1968년의 사회적 분위기가 녹아들어 있다.
35여년의 영화인생 동안 10편의 장편과 한 편의 텔레비전 시리즈를 만든 모리스 삐알라는 다작 감독은 아니다. 화가로 활동하다 43세라는 늦은 나이에 영화에 발을 디딘 삐알라의 행적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장편 데뷔 이전 십여 편의 단편 작업을 했으며 1965년에 만든 단편 다큐멘터리 <반 고흐>는 삼십여 년 후 다시 고흐의 이야기로 돌아올 것을 예고하였다.
그의 작품들을 관통하고 있는 것은 고독과 외로움과의 싸움이며 인간과 화해할 수 없는 잔혹한 사회와의 단절이다. 그 스스로 상업영화를 만들고 싶은 욕망을 거침없이 드러내면서도 편협적인 사회적 가치와 제약에서 끊임없이 이탈을 꿈꾸는 모습은 모순적이지만 그 점이 바로 감성과 이성을 오가는 원초적 고민의 발로였을 것이다. 그는 전통적인 영화문법과 감성주의를 거부하고 찰나의 진실성과 간결한 이야기로 인간 본성에 더욱 가까이 갈 수 있기를 원했다. 그의 영화 속 인물들은 아파하고 사랑하고 무관심하며 저항한다. 잔혹성과 솔직함에 분석의 잣대를 대지 않고 거친 욕망을 드러내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는 점에서 삐알라의 영화는 자연주의와 맞닿아 있다.
시나리오보다는 현장에서의 즉흥연출과, 최적화된 인공적인 연기보다는 비전문 배우를 통한 날 것 같은 감정을 잡아내는 방식은 삐알라만의 사실주의적인 흔적이 보인다(이로 인해 촬영현장에서 삐알라는 스텝, 배우들과의 불화로 유명하다). 작가는 '영화가 촬영되는 그 순간이 리얼리즘의 본체다. 간결하고 솔직한 정서로 순간의 진실에 다가가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1991년에 개봉된 <반 고흐>(이후 삐알라는 1995년 <르 가르쉬>를 끝으로 2003년 생을 마감한다)는 그의 영화형식의 정점에 있다고 해도 무리가 아니다. 이미 제목에서부터 삐알라는 그의 의도를 확실하게 드러낸다. 그 어떤 미사여구를 곁들이지 않은 파란 화폭 위로 뜨는 단순한 제목 '반 고흐'. 관객이 한 영화와 첫 만남을 가질 때 선입관을 가지지 않고 그저 고흐의 삶 속으로 흘러들어가길 원했던 것이다.
영화 <반 고흐>는 오베르 쉬르 우와즈에서 보낸, 화가가 자살하기 전 마지막 3개월 동안의 여정을 담고 있다. 이 시기는 고흐가 가장 많은 작품을 남긴 (두 달여간 70여 점의 작품) 시기로도 유명하지만 삐알라는 여기에는 별 관심이 없다. 삐알라는 고흐라는 한 인간의 삶 자체에 더 흥미를 가진다. 중요한 것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일하는 고흐다. 영화 속의 고흐는 오베르 마을에서 일하는 사람들과 구별되지 않는다. 이미 귀를 자른 뒤 오베르를 찾은 고흐지만 영화 속에서는 드러나지 않는다. 물감이 묻은 흔한 작업복도, 베레모를 쓰고 괴로워하는 상투적인 고흐는 없다. 아침이면 간단한 식사를 하고 캔버스를 둘러매고 밖으로 나간다. 여기서 고흐의 그림은 영화 속에서 배제된다(만약 이 영화를 통해 고흐 작품의 신비를 엿보려고 했다면 실망할 것이다). <반 고흐>는 그림이 아니기에 그의 그림은 미쟝센 속에 숨어있다. 작업의 결과인 그림보다는 일상속의 창작과정이 영화 <반 고흐>를 이루는 주축 중의 하나다.
다른 한 축은 19세기 후반 프랑스의 한 마을의 사람들의 모습이다. 고흐가 서민들의 일상을 화폭에 옮긴 것과 닮아있다. 고흐 그림 속의 자연과 사람은 영화라는 시간 속에서 재현된다. 창작하는 고흐의 행위, 여인숙의 작은 선술집에서의 일상적인 대화, 주사위 놀이, 진료받는 모습 그리고 매춘녀 카티와 마그리트와를 오가는 모습… 고흐의 내면적인 심리적 해설에 집중하기 보다는 각각의 인물들의 응축된 일상의 사연을 보여준다. 어깨를 마주하며 걸으며 자신의 집안은 모두 철도인생이었고 젊은 날을 기차와 함께 보냈다고 말하는 역무원의 삶은 땅에 발을 디딘 민중들의 구체적 모습이다. 삐알라는 고흐가 있는 그 현실적인 시간과 오베르 주민들의 이야기를 통해 천재화가의 광기와 기행보다는 특별하지 않은 일상을 그려낸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 아무렇지도 않게 보여지는 고흐의 죽음을 암시하는 장면들은 극적이다. 방에서 면도를 하던 고흐에서 총에 맞은 배를 움켜쥐고 걸어오는 강가의 고흐로의 장면 전환은 연출의 힘을 보여준다. 그리고 영화 <반 고흐>는 고흐가 죽으면서 끝나지 않는다. 삶은 다시 시작된다. 여인숙은 다시 문을 열고 청소를 하고 테오는 덤덤하게 밀린 숙박비를 지불하고 커피를 마신다. 그 어떤 감정의 강요는 없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놀이를 하고 여인숙의 바깥에서는 빨래를 하고 일상은 이어진다.
삐알라는 카메라를 붓 삼아 스크린 위에 그림을 그린다. 배경은 화폭이 되고 인물들은 그 사이를 끊임없이 오가며 각자의 그림을 만들어낸다. 작가는 영화가 할 수 있는 일상의 '시간'을 그려내는 것에 충실한다. '영화예술은 놀라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진실에 다가가는 것이다'라는 쟝 르느와르의 말처럼 모리스 삐알라는 <반 고흐>를 통해 때론 이기적이고 때론 두려움 속에서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세상과의 소통을 꿈 꿨던 인간 반 고흐를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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