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다(יָדַע, Yada)’
히브리어 ‘야다(יָדַע, Yada)’는 어원적으로는 '손으로 만지다,다루다'와 관련이 있으며 다음과 같이 드러난다.
가. 체험적 경험)앎
야다는 실제로 직접 경험하여 체득하는 앎이다. ‘공부해서 안다)가 아닌 ’살아봐서 안다‘는 의미이다.
나. 친밀한 관계
대상과 인격적이고 정서적인 관계를 맺는 것을 말하며 성경에서 하느님과 인간의 친밀한 관계와 친교를 기술할 때 사용한다.
‘야다’는 남녀 부부의 ‘성적性的 관계’를 뚯하는 의미도 있다. 이 말은 성(性)의 본질적 의미를 깨닫는 데 도움을 준다. 성(性)은 전인적인 관계의 표현이다. 성의 본질은 몸의 쾌락만을 아닌 상호 보살핌과 희생과 친밀한 인격적 소통을 말한다.
다. 성경 안에서
야다(Yada)는 성경에서 900회 이상 빈번하게 나오는 중요한 단어라고 한다. 성경에서 이 단어는 하느님 백성과 백성 상호, 또는 하느님과 하느님 백성의 상호 관계에서 단순히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체험과 경험을 통해 깊이 깨달아 아는 것을 의미한다.
1. 구약성경 안에서
구약성경안에서 “야다”가 강조되어 사용되는 구절은 다음과 같다.
“사람이 자기 아내 하와와 ‘잠자리를 같이하니)야다’하니”(창세 4,1)...
여기서 야다는 친밀하고 성적인 부부 부부 관계를 뜻하는 ‘잠자리를 같이하니)야다‘로 번역되고 있다.(창세 4,1)
“내가 이집트 위로 내 손을 뻗어 그들 가운데에서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어내면, 이집트인들은 내가 주님인줄 알게 되리라)야다하다”(탈출 7,5)....
하느님이 사람과 역사의 주인이며 주관자이심을 체험을 통해 체험적으로 깨닫게 된다는 의미다.
“그러니 주님을 알자 주님을 ’알도록)야다 힘쓰자(호세 6,3)...
하느님 백성이 하느님을 인격적이며 체험으로 알아감을 강조하는 구절이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야다했다’”(예레미아 1,4)
2. 신약성경 ‘알다=야다)기노스코(Ginosko)’
기원 전후 서구의 세계는 그리스 사상으로 변화되었다. 그리스 사상은 신중심의 세계관에서 벗어나 인간중심의 세계관으로, 인간의 이성과 지성 감각을 통해 자연과 인간 삶의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였다.
신약성경은 그리스어로 쓰여졌기에 히브리어 ‘야다)알다’는 직접적으로 나오지 않는다. 대신 그리스어 ‘기노스코(Ginosko)’로 번역되어 등장한다. 글자는 달라졌지만 신약의 성경언어는 구약성경의 의미와 내용 전통을 더욱더 충실히 계승한다.
-바오로 사도: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는다. ”(1코린 1,22)
기원후 1세기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 전파에 활약했던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 사상의 한계를 통찰하고 지적한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한다. 그리스도는 유다인들에게는 걸림돌이요. 다른 민족들에게는 어리석음이다”(1코린 1,23). 바오로 사도는 인간 중심의 그리스 사상의 이성과 경험 감각을 중시한 제한적인 ‘앎’을 경계하고, 기노스코Ginosko 안에서 구약의 ‘알다)야다’ 라는 신앙 언어 감각을 충실히 계승하고 있다.
-요한복음:
체험적이고 인격적인 앎(관계)을 의미하는 그리스어 ‘기네스코(히: ‘야다(יָדַע, Yada)계승)’가 가장 많이 나타나는 복음서는 요한복음이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을 ‘안다’는 표현이 단순히 지식적인 앎이 아니라, 하느님과 예수님, 예수님과 믿는 이들과의 인격적이고 깊은 관계를 의미하고 강조한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너희가 나를 ‘야다)기노스코알게’ 되었으니 내 아버지도 알게 될 것이다. 이제부터 너희는 그분을 아는 것이고 또 그분을 뵌 것이다.”(요한 17,3)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야다=기노스코)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3).
이렇듯 구약성경 ‘알다)야다Yada’와 신약성경에서 ‘알다)기네스코’는 단순한 인간의 이성적 경험적인 지식과 정보는 아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존재론적 인격적인 관계과 앎을 의미한다.
입력:최 마리 에스텔 수녀;20260430; PM 15:46
참고:성경, AI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