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평등의 땅에’
지난 3일이 입춘이었습니다. 그날 어느 작곡가가 세상을 떠났다는 궂긴 소식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그분은 몰랐지만, 노래는 아주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습니다.
류형수, 사람들은 그를 ‘민중가요 작곡가’ 혹은 ‘천재 음악가’로 알고 있는데, 대표곡이 “저 평등의 땅에”입니다. 1989년에 발매된 ‘노래를 찾는 사람2’에 실렸는데 권진원이 불렀습니다. 장례를 치른 후에 이안이라는 음악 평론가가 추모의 글을 썼는데 일부를 옯겨적습니다.
“그러나 류형수의 가장 놀라운 능력은 음악적 비범함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열린 마음이었다. 귀를 열고 벗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마음, 다른 이들의 이야기를 허투루 여기지 않고 저마다의 사정을 깊이 새기고 품어 노래로 위로해주곤 했다. 농민과 빈민, 여성들의 목소리가 틀어 막히는 상황 안에서 숨쉬기조차 힘들었을 때, 류형수는 그 모든 상황을 아파했고, 분노하며 같이 싸웠다. 그 분노는 노래가 되었다.”(한겨레 2월13일자)
아파하고 분노하는 것이 노래가 되고 혹은 시가 되기도 하고 혹은 그림이 되기도 하는 것이겠습니다만, 저는 ‘설교가 되었다’라고 읽었습니다. 설교자는 그런 사람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노래하는 사람이나 설교하는 사람이나 입으로 하는 것인데 그 시작은 잘 들어주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임을 다시 생각합니다. 2주 전에 교회에서 ‘에바다(귀가 열리라)’는 말씀 공부를 오후에 했습니다. 갈릴리 호수에서 귀먹고 말 더듬는 어떤 사람을 예수님이 고쳐주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귀가 열려야 한다는 것은 듣고 싶은 것만 골라서 듣는 것은 아니겠지요. 마땅히 들어야 할 것을 찾아서 새겨들을 때 귀가 열렸다고 할 수 있겠지요.
어쩌면 평등의 땅은 작고 희미하고 보잘 것 없어 보이는 소리를 귀 기울이고 들어주는 사람들의 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류형수님을 추모하면서 이렇게 써보았습니다.
( 류형수: 1967년 대구 출생. 서울대 전기공학과 졸업.
서울대 노래패 ‘메아리’, ‘노찾사’ 등에서 활동 )
첫댓글 찾아서 들어봤어요 비장하게 들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