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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쉼터 스크랩 <26> 두 얼굴의 담배.<27> 바이러스와의 전쟁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ysoo 추천 0 조회 168 14.12.05 23:2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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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인디언 정복한 백인, 그 백인을 정복한 인디언 담배

 

<26> 두 얼굴의 담배

 

 

인디언들이 유럽 정복자들에게 평화의 상징인 파이프 담배를 권하고 있다(1621년).

 

 

“흡연도 유전이 되는가?”라고 묻는 지인의 표정이 굳어있다. 골초로 유명한 영국의 처칠이나 중국의 마오쩌둥(毛澤東)도 91세, 83세까지 장수했다는 기록을 보물단지처럼 갖고 다니던 애연가(愛煙家)의 표정이 꽤나 심각하다. 고등학생 아들의 가방에서 담배를 발견한 것이다. 본인은 일찍 담배를 배웠으면서도 아들은 흡연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해서 초등생 아들에게 나름 ‘충격요법’을 써서 성공했다고 믿던 그였다.

 

충격요법은 이랬다. 먼저 실험용 생쥐를 물속에서 헤엄치게 했다. 보통 쥐는 물에서 한참을 떠 있는 반면, 담배연기를 맡고 수영을 하던 놈은 몇 초를 견디지 못하고 허우적거리더니 꼬르륵 꼬르륵 가라앉고 말았다.

그 생생한 광경에 놀란 초등생 아들은 ‘나는 절대 담배 안 피우겠다’ 고 스스로 맹세했다는 것이다. 그런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자 보란 듯이 담배를 시작했으니 “애비가 담배를 피워서 그런가” 걱정이 돼 흡연의 유전 여부를 물어본 것이다.

 

담배 피우는 부모 밑에서 자란 아이들이 커서 흡연자가 될 확률이 비(非) 흡연 부모를 둔 아이보다 세 배나 높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게다가 사람마다 니코틴의 맛을 느끼는 DNA(유전자) 종류가 조금씩 다르다는 연구결과도 제시됐다. 이는 결국 아이가 골초가 되는 것이 부모 탓이란 얘기다.

 

그렇다면 아들 가방 속의 담배를 보고 실망하던 친구는 자책 대신 골초였던 할아버지를 원망해야 할 판이다. 국내 청소년들의 흡연율은 지난 10년간 줄지 않고 있다. 니코틴을 증기로 흡입하는 전자담배를 사용하는 중·고교생이 무려 열배 가까이 늘었다. 이 전자담배가 금연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흡연을 부추긴다는 연구결과가 최근에 나왔다.

 

건강의 최대 적(敵)인 담배, 이로부터 우리 아이들을 지킬 방법은 없는가.

 

 

인디언 담배가 건강에 이롭다’고 전한 1907년 광고.

 

 

전자담배에서 새 발암 물질 생성돼

 

마오쩌둥은 “담배를 피우면 머리가 맑아지고 정신이 집중돼 일에 몰두할 수 있고 또 내뿜는 담배연기를 보면 마음이 가라앉고 평화로워진다”고 했다. 흡연의 시조인 인디언들은 감사의식 때 파이프 담배를 피웠다.

1492년, 스페인의 콜럼버스는 담배를 보는 순간 돈벌이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그는 만병통치 효과가 있다는 과대 선전과 함께 담배를 퍼뜨렸다.

 

당시 신무기와 두창(천연두)을 앞세워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몰살시킨 유럽 문명에 대한 인디언들의 저주일까? 현재 지구촌 남성의 반이 피워대는 담배는 성인 사망원인 중 으뜸이다. 인디언들의 ‘감사의 담배연기’가 이제는 ‘죽음의 연기’가 돼 성인·청소년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담배에 든 599종의 첨가제들이 타면서 벤젠·포름알데히드 등 69종의 발암물질이 나온다. 흡연은 인체의 모든 장기에 악영향을 미치는 직격탄이다. 20대 젊은 남녀가 80세까지 건강하게 살 확률이 70%인데 담배를 무는 순간 그 장수확률이 35%로 준다.

 

흡연은 암 억제 DNA까지 망가뜨린다. 2013년 ‘미국 임상종양학지’에 실린 삼성서울병원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국내 폐암환자의 96%에서 유전자 변형이 확인됐다. 변형된 곳의 80%가 하필 암 발생억제 유전자(TP53)다. 생활하다가 ‘이상한 세포’가 한둘 생기더라도 암 발생억제 유전자가 없애줬는데 담배연기는 이곳을 집중적으로 망가뜨려 암을 발생시킨다. 유전자가 망가지면 치료해도 원래의 정상 DNA로 돌아갈 수 없어서 그만큼 치료가 힘들다.

 

 

전자담배는 청소년에게 담배를 쉽게 접하게 하고 금연엔 별 도움을 주지 않는다. 일러스트 박정주

 

 

폐암·심혈관 질환·고혈압 등 많은 병의 원인이 담배연기 속의 발암물질이다. 이런 이유에서 전자담배는 덜 위험하다고 선전·시판됐다. 즉 전지를 이용해 니코틴 용액을 증발시키면 니코틴만 폐로 갈뿐 발암물질이 담긴 연기는 생기지 않아 기존의 담배보다 훨씬 안전하다고 했다. 전자담배가 금연에 도움을 준다는 광고도 등장했다. 이런 광고에 힘입어 전자담배는 출시 이후 시장이 급성장했다. 매출액이 4년 새 25배나 뛰어오른 2조원에 달했다. 10년 내에 일반 담배 전체보다 시장규모가 커질 것으로 예측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런 광고와는 다른 연구결과들이 최근 속속 발표되고 있다. 2014년 ‘국제 청소년건강학회지’에 의하면 한국 청소년 7만 명을 조사한 결과 전자담배가 흡연율을 낮추지 못했다. 대부분은 전자담배와 기존의 담배를 동시에 피웠다. 전자담배를 이용하기 시작한 학생이 9배나 늘었다.

 

금연 성공, 니코틴 수용체 복구에 달려

 

지금은 메이저 담배회사들까지 뛰어든 전자담배는 기존 담배와는 달리 무엇을 섞어도 관계기관이 규제하지 않는다. 그래서 제조업체들은 청소년이 좋아하는 향료를 섞기도 하고 니코틴 액을 증발시키는 전기량을 늘려서 첨가제들이 더 잘 날아가도록 했다. 그 결과 ‘카보닐’ 계열의 새로운 발암물질이 생성됐다. 게다가 니코틴 액이 증발할 때 생기는 초(超)미세입자들은 기존 담배처럼 40% 이상 폐에 축적됐다. 전자담배 증기를 항생제에 잘 견디는 세균에 쬐였더니 세균들의 항생제에 대한 내성(耐性)이 더 강해졌다.

 

당초 전자담배가 금연(禁煙)을 도울 것으로 기대한 것은 니코틴만 몸에 공급하면 중독성이 다소 적을 것으로 판단해서였다. 하지만 한국·미국 청소년 모두 담배를 줄이거나 끊기는커녕 전자담배로 인해 오히려 담배와 친숙해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마디로 말해 전자담배도 해롭다. 전자담배도 니코틴 중독에서 벗어나게 하진 못한다. 담배에서 발암물질 이상으로 무서운 것은 바로 니코틴 중독이다.

 

“담배를 끊은 사람에겐 딸을 주지 마라”는 말은 딸을 주고 싶지 않을 만큼 심성이 독한 사람만이 담배를 끊는다는 얘기다. 그만큼 담배 끊기가 어렵다. 니코틴이 함유된 일반 담배·전자담배·담배 껌은 모두 니코틴 중독을 일으킨다. 니코틴 중독이 생기는 것은 마약인 코카인·아편에 중독되는 이유와 같다. 담배 연기와 함께 폐 속으로 전달된 니코틴은 폐(肺) 혈관에 흡수돼 두뇌 앞부분의 신경세포로 전달된다. 이어 니코틴은 신경세포의 니코틴 수용체(receptor)에 찰싹 달라붙어 도파민을 분비하게 만든다. 도파민은 기쁨의 호르몬이다. 사랑할 때 나오는 이 호르몬은 우리를 즐겁게 만든다. 니코틴이 작용하는 곳은 뇌의 ‘쾌락중추’다.

 

원숭이에게 같은 부위를 자극하는 전극의 스위치를 쥐어주면 죽어라고 스위치를 누르다 결국 죽고 만다. 원숭이의 뇌에 붙인 전극처럼 어떤 행동에 대한 보상, 즉 쾌락이 빨리 올수록 중독이 잘 된다.

 

마침내 그림을 완성한 화가의 뇌에선 도파민이 분비돼 쾌락을 느낀다. 하지만 이런 보상을 받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려 중독이 안 된다. 이와는 달리 담배는 피운 뒤 10초 만에 니코틴이 뇌에 도달해 도파민을 생성시킨다. 담배를 입에 물면 바로바로 쾌락을 얻는 것이 담배의 유혹에서 빠져나오기 힘든 이유다. 담배가 ‘죽음의 쾌락 전극’인 셈이다.

 

흡연한 지 오래 된 사람의 니코틴 수용체는 비틀려 있다. 비틀린 수용체에 니코틴이 붙지 않으면 금단(禁斷)현상, 즉 마음이 불안해지고 심장이 쿵쿵거리고 머리가 아파 온다. 밤새 니코틴이 분해돼 혈중(血中) 니코틴 농도가 낮아지면 수용체에 니코틴이 붙지 않게 된다.

 

약효 강력한 금연약은 ‘자살’ 부작용

 

흡연 초짜인 경우는 수용체가 정상 모양이어서 별 문제가 없다. 그러나 골초들은 수용체가 비틀려 있어서 금단현상을 경험한다. 또 니코틴에 중독된 뇌에서 니코틴이 부족할 때 나오는 물질(CRF)도 금단현상을 유발한다. 새벽에 일어나자마자 빈속이라도 담배를 물어야 하는 것은 밤새 떨어진 혈중 니코틴을 급히 보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방 안에 남은 담배가 없다면 재떨이라도 뒤져서 꽁초에 불을 붙인다.

 

니코틴 수용체는 여러 종류의 부속물로 구성돼 있다. 사람마다 부속물의 종류가 다르다.

담배를 끊으려면 니코틴 중독으로 비틀린 수용체를 원 상태로 복구시켜야 한다. 수용체가 원래의 정상 모습으로 돌아오는데 걸리는 시간이 4~8주다. 새해의 금연결심이 대개 작심삼일(作心三日)로 끝나는 것은 금연 후 48시간이 금단증상의 피크이기 때문이다.

 

니코틴 중독은 단순히 수용체가 비틀린 것보다 훨씬 뿌리가 깊다. 담배를 피울 때의 분위기, 즉 머리에 꽂힌 ‘필(feel)’도 함께 저장되기 때문이다. 예컨대 석양이 지는 울릉도 해변에서 소주 한잔과 함께 입에 물었던 필자의 첫 담배의 기억은 40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석양에 해변을 거닐거나 감탄사가 절로 나는 풍경 앞에 서거나 소주 한잔이 들어가면 수년간 끊었던 담배 생각이 간절해진다. 만약 기억에 남는 흡연 장면의 ‘필’이 매일 반복된다면 중독이 더 심해진다. 기억까지 저장된 담배는 끊기 힘들다.

 

강력한 금연약인 ‘챔픽스’의 사용설명서에 표시된 부작용이 ‘자살’이다. 니코틴이 수용체에 달라붙어야 도파민이 생성된다. 이 금연 약은 니코틴보다 20배 강하게 수용체에 먼저 달라붙는다. 따라서 이 약을 복용하면 담배를 피워도 니코틴이 수용체에 붙지 않아 도파민이 생성되지 않는다.

당연히 담배를 피워도 맛이 없고 밋밋하다. 도파민이 생성되지 않으니 세상 살맛이 없어지고 우울해지며 심하면 옥상에서 뛰어내리게 만든다. 끊고 싶지만 하루 만에 다시 피는 사람이 절반이고 금연성공률이 3%인 이유는 건물 지붕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이런 금단현상 탓이다.

 

한국은 니코틴 중독으로 인해 성인남자의 반이 담배를 피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내 ‘흡연챔피언’이라는 불명예를 고수하고 있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담배 끊긴 아주 쉽다. 나는 무려 백번이나 끊었다”고 했다. “금연에 성공한 사람은 없다. 다만 평생 참고 있다”고 할 만큼 니코틴 중독은 마약만큼 절연(切緣)이 힘들다. 처음부터 발을 들여놓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통계에 따르면 많은 청소년들이 고교 시절에 흡연을 시작한다. 호기심·사춘기·입시가 맞물려 니코틴 중독의 길로 발을 디딘다. 부모가 흡연하면서 자녀들에게 금연을 강조할 순 없다. 초등학교부터 담배의 무서움을 교육해야 한다. 이제 담배연기는 더 이상 인디언들이 하늘에 기원하는 기도가 아니다.

신대륙 발견 과정에서 아메리카 인디언들에게 저지른 피의 대가는 그동안 폐암으로 인한 수많은 죽음으로 충분하다. 말랑말랑한 아이들의 뇌를 누런 색 담배 니코틴으로 물들게 해서는 안 된다. 어른들이 나서야 할 때다.

 

 

 

 

[김은기의 ‘바이오 토크’]

에볼라 확산은 밀림 파괴와 밀렵에 대한 ‘보복’

 

<27> 바이러스와의 전쟁

 

 

에볼라 바이러스의 전자현미경 사진. 감염된 동물세포(노란색)에서 밖으로 나오는 에볼라 바이러스(청색).

 

 

중국의 마술 변검(變?)은 짧은 시간에 뺨(?), 즉 얼굴이 변하는 고난도 기술이다. 그 중 한 방법은 여러 겹의 얇은 가면을 미리 쓰고 있다가 ‘휙휙’ 한 겹씩 벗겨내는 기술로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변검의 최고봉 기술은 얼굴의 색을 감정 조절로 변화시키는 방법이다. 기술이 어려워 제대로 할 수 있는 사람이 거의 없다.

 

1995년에 개봉된 오천명 감독의 중국영화 ‘변검’을 보면서 지구상에서 가장 변검을 잘 할 수 있는 생물체는 무엇일까 하는 ‘직업 정신’이 발동됐다.

 

최근 서부 아프리카에서 발생해 전 세계를 공포에 떨게 하는 에볼라 바이러스가 변화의 천재가 아닐까? 문제는 중국 마술처럼 ‘와!’하는 탄성 대신 ‘싸’한 두려움이 앞선다는 점이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스스로 ‘변해’ 한국을 감염시킬 수도 있을까? 나는 평소 뭘 해야 하나?

 

미국, 생물학전 대비해 치료제 개발

 

2014년 8월 2일, 서아프리카를 출발해 미국 애틀랜타 공항에 도착한 전세기에서 두 명의 미국인이 후송되는 장면이 마치 SF영화처럼 생중계됐다. 철저한 보호 장비 속의 에볼라 감염 환자는 곧 바로 대학병원으로 이송됐다. 다행히 치료주사를 맞고 기적적으로 회생하기 시작했다.

치사율이 90%에 달하는 에볼라 바이러스를 미국 본토에 들여오는 위험을 무릅쓰고, 거액을 들여 두 미국인을 사지(死地)에서 데려와 살린 오바마 정부의 용단이었다. 이는 미국인에겐 성조기에 대한 자부심을, 다른 지구인에겐 에볼라 공포에 대한 안도감을 주었다. 치료제로 사용된 ‘ZMapp’ 주사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다.

 

한 가지 이상한 점이 있었다. 미국인이 후송되기 전까진 공식적으로 에볼라 치료제가 없었다. 에볼라 발병 5개월 동안 1847명이 감염, 1002명이 숨질 때까지 현지 아프리카 환자들이 받은 치료는 탈수방지 수액제(링거액)가 전부였다. 지금껏 치료·예방약이 안 나온 이유로 거론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일단 바이러스가 너무 위험해서 다루기 힘들고 감염경로를 모르며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에서 발병해 바이러스 샘플 채취가 어렵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동안 치료제를 거의 만들어놓고 있었다.

동물을 대상으로 한 효능 판정 연구가 끝난 ‘ZMapp’은 에볼라 바이러스를 쥐에 주사한 뒤, 쥐의 혈액 속에 형성된 면역방어물질인 항체(antibody)를 천연물과 혼합한 약이다.

 

미국은 왜 이 약을 만들고 있었을까? 에볼라는 돈이 되는 병이 아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 바이러스는 치사율은 높지만 그 지역 주민만 희생시키고 전 세계로 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몇 년에 한 번씩 가끔, 그것도 가장 가난한 나라에서만 발생했다. 사망자수도 40년간 1000명이 넘지 않았다.

그런데도 미국이 에볼라 치료제 개발에 나선 것은 생물학 무기 치료제로 사용하기 위해서였다. 적국이 생물학전 무기로 에볼라 바이러스를 사용하려면 높은 치사율도 필요하지만 빠르게 전파돼야 한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에어로졸’, 즉 안개 형태의 미세 물방울로 퍼질 수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서(西)아프리카에서 유행 중인 에볼라 바이러스가 환자를 직접 접촉한 경우에만 옮겨진다고 해서 100% 안심할 순 없다. 실제로 에볼라에 감염된 돼지와 직접 접촉이 안 되는 곳에 격리됐던 원숭이가 감염됐다는 연구(Scientific Report, 2012년) 결과는 안개 형태의 에어로졸로 에볼라가 옮겨질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독감을 일으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바이러스의 ‘외피’를 벗어던지고 알맹이인 유전자(RNA)만을 민들레 씨앗처럼 공중으로 날려 보내는 ‘공기 부양’ 능력을 갖고 있다.

에볼라 바이러스는 ‘공기 부양’까지는 아니지만 미세 방울 형태라면 어느 정도 이동이 가능하다. 비행기 내에서 에볼라 환자가 기침으로 바이러스를 내뿜는다고 가정해보자. 인플루엔자처럼 전체 항공기 내로 에볼라 바이러스가 퍼지진 않지만 기침 속의 미세 침방울이 닿는 근처 승객은 위험해질 수 있다. 모든 바이러스는 살아남기 위해 변화하고 진화한다. 에볼라 바이러스가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처럼 공기 속에서 오래 머물 수 있도록 진화할 가능성은 없는가?

 

과일박쥐·원숭이·곤충 등 숙주 의심

 

영화 ‘변검’에선 마술사인 주인공 할아버지를 따라 다니는 여자 아이가 나온다. 아이는 변검 마술을 배우고 싶어 하지만 여자가 마술사가 되는 것이 못 마땅한 할아버지는 그 비법을 알려주지 않는다.

어느 날 고아는 마술사 몰래 비법이 담긴 ‘통’을 찾아 나서고 드디어 나무상자에 든 수십 장의 가면종이를 발견한다. 얼굴을 순식간에 변하게 하는 마법의 ‘통’을 발견한 것이다.

 

바이러스 학자들도 여자 아이처럼 ‘통’을 찾아 헤맨다. 이들에게 ‘통’은 야생동물이다. 2003년 세계를 휘저은 사스(SARS, 중증 급성 호흡기증후군) 바이러스의 ‘통’은 중국 광둥성의 요릿집에 있었다.

사향고양이와 뱀으로 만드는 ‘용호봉황탕(龍虎鳳皇蕩)’은 중국 광둥성의 명물요리다. 재료로 사용된 야생동물인 사향고양이에 숨어있던 사스 바이러스가 요리사를 감염시키면서 이 병은 전 세계로 확산됐다. 이처럼 야생동물은 바이러스의 ‘통’이자 시작점이다. 그래서 바이러스 학자들은 바이러스가 자연에서 자신의 ‘몸’을 의탁하고 있는 동물, 즉 바이러스들이 기생하는 숙주(宿主)를 찾는 데 주력한다. 그래야 전파경로를 알 수 있고 병의 확산을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1976년 아프리카 자이레(현재 콩고 민주공화국)와 남수단에서 602명 감염, 431명 사망이란 사상 최고의 치사율로 세상에 첫 선을 보인 에볼라 바이러스의 숙주는 어떤 동물일까?

바이러스 과학자들은 에볼라 발생지역인 밀림을 샅샅이 뒤졌다. 지난 20년간 3만 마리에 달하는 포유류·조류·양서류·곤충을 조사했다. 과일박쥐가 주범일 거라고 하지만 원숭이·곤충·새일 가능성도 아직 남아 있다. 바이러스에게 ‘통’, 즉 야생동물은 후손을 보존하는 안전한 공간이지만 변종(變種)을 만드는 장소이기도 하다.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 둥근 바이러스 외피 안에서 변이가 잘 되는 RNA 유전자가 보인다.

 

 

바이러스에겐 ‘유토피아’인 인간의 몸

 

‘살아서 퍼뜨려라.’ 모든 생물의 DNA(유전자)에 프린팅(입력)된 이 사명을 위해 바이러스는 숙주 안에서만 머물지 않고 종종 바깥출입을 한다. 외출할 때는 그동안 숙주 안에서 길러온 수많은 변종을 데리고 나간다. 다양한 변종이 많을수록 자신을 위협하는 적을 공격하기가 유리하기 때문이다.

변종을 특히 잘 만드는 바이러스는 RNA를 유전자로 가진 바이러스들이다. 인플루엔자(독감)·사스·에이즈(AIDS)·에볼라 등 악명 높은 바이러스들은 하나 같이 RNA 바이러스 ‘가문’에 속한다. 사촌인 DNA 바이러스에 비해 불안정한 RNA 탓에 별별 녀석들이 다 태어난다. 이로 인해 작년에 잘 듣던 독감 예방주사가 올해의 변종 바이러스엔 효능이 거의 없는 경우가 종종 생긴다. 이에 따라 독감 예방주사를 맞은 사람들이 다시 독감에 걸려 고생하게 된다. 야생오리에서 살던 바이러스와 닭에 감염된 바이러스가 돼지 몸에서 만나 유전자가 서로 섞이면 문제가 훨씬 심각해진다. 그 후 돼지와 접촉한 인간을 감염시키는 ‘생전 처음 보는 변종’이 생기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18세기 유럽을 휩쓴 두창(천연두) 같은 대재앙이 재현될 수 있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은 새로운 적(敵)이다. 인간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바이러스는 지구상에서 자리 잡고 살면서 동·식물 숙주 속에서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인간’이란 새로운 동물이 나타났다. 인간이란 새로운 종(種)을 유심히 관찰하던 바이러스들이 ‘가문(家門)회의’를 열었다. 여기서 내린 결론은 인간이 바이러스인 자신들의 생존에 있어서 인간은 최고의 ‘유토피아(Utopia·이상 사회)’란 것이다.

 

인간들은 일부러 밀림까지 들어와서 야생동물을 사냥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바이러스와 접촉할 기회가 많아졌다. 인간들이 모여서 살기 시작한 것도 바이러스에겐 호사(好事)였다. 인간을 한꺼번에 감염시켜서 바이러스 자신의 후손들을 널리 퍼뜨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축을 기르기 시작했다는 것도 바이러스들이 ‘환호’할 만한 일이었다. 가축은 바이러스가 인간과 접촉하게 하는 가장 훌륭한 중간 매개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간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야생동물을 데려다가 집에서 기르기까지 했다.

 

바이러스들의 ‘가축 이용 작전’은 대성공이었다. 소와 잘 소통하는 두창 바이러스를 인간에게 감염시킨 것이 단적인 예다. 인플루엔자(독감 바이러스)는 조류·말·돼지 등 동물 세상에 두루 퍼져 있다. 이런 동물과 수시로 접촉하는 인간을 감염시키기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다. 게다가 세계가 하루권이다.

두창·에이즈·사스·아시아독감, 그리고 이번 에볼라까지 인간은 바이러스에게 연타를 맞고 있다. 과연 이 전쟁에서 인간은 승리할 수 있을까?

 

현재 기술 수준으로 봐 에볼라 예방백신과 항체 치료제는 몇 개월이면 만들 수 있다. 이런 면에서 인류는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한 수 위인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두창을 완전 박멸한 화려한 경력도 있다. 하지만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아프리카에서 발원한 미지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 전달되는 경로엔 늘 야생동물이 있다.

밀림 개발로 이 야생동물들이 사는 곳이 줄어들고, 밀렵으로 야생동물의 수가 감소하면서 여기에 살고 있던 바이러스들이 새로운 살 곳을 찾아 나서고 있다. 새 주인이 닭·돼지 등 가축일 수도 있고, 사람일 수도 있다.

 

 

바이러스를 잘 알고 미리 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 일러스트 박정주

 

 

외출 후엔 손·얼굴 비누로 씻어야

 

오랫동안 바이러스를 추적해온 미국의 바이러스 학자 네이선 울프 같은 과학자들은 이런 징후가 늘고 있음을 우려한다. 바이러스가 살고 있던 지역을 인간이 침범하면서 이들과 부딪치는 상황이란다. 인류는 이 상황을 이해하고 ‘역풍’에 대비해야 한다.

필자의 대학 식당엔 작년에 조류 인플루엔자(AI)가 유행할 때 사용했던 손 소독 통이 아직 그대로 있다. 당시 수시로 사용하던 그 통을 올 들어 쓴 기억이 없다. 바이러스에 관심이 있는 필자도 기본 위생습관이 엉망이다.

 

지금 당장 에볼라가 한국에 상륙할 확률은 높지 않고, 환자가 발견되더라도 격리 후 치료한다면 퍼질 염려도 거의 없다. 이보다는 해마다 에볼라보다 더 많은 사상자를 내고 있는 인플루엔자에 노약자나 어린이는 특히 조심해야 한다. 사람이 여럿 모인 곳에 다녀오면 손·얼굴 등 노출된 곳은 반드시 비누로 씻어 혹시 붙어있을지도 모르는 바이러스를 제거하는 것이 중요하다. 감염병 위험지역을 여행할 때는 해당 감염병에 대한 예방주사를 맞고 깨끗한 음식·물을 찾아 마시는 것은 기본이다.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조수아 레티버그는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남는 데 있어 가장 위험한 적은 바이러스”라고 지적했다. 하지만 바이러스를 정확히 알고 인류의 약점을 파악해 잘 대비한다면 바이러스가 백번 공격해도 지구상의 인류는 위태롭지 않을 것이다. 지피지기 백전불태(知彼知己, 百戰不殆)인 것이다.

 

 

김은기 서울대 화공과 졸업. 미국 조지아텍 공학박사. 한국생물공학회장 역임. 피부소재 국가연구실장(NRL) 역임. 한국과학창의재단 STS사업단www.biocnc.com에서 바이오 콘텐트를 대중에게 알리고 있다.

 

/ 중앙SUN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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