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둠 속에서
김 정 한
김인철 군이 T국민학교에 부임한 것은 9월 20일이었다. 9월 20일이 마침 그의 생신이었던 만큼 그는 부임 날짜까지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인철 군은 고교를 갓 나온 청년 교사였다. 그가 나온 D고교(그때는 D고등보통학교라고 했다 )는 ‘스트라이크’가 잦고, 소위 불온사상을 가진 학생이 많다고 해서 졸업생들의 취직이 아주 어려웠다. (왜인과 그 앞잡아들은 애국 사상을 가진 사람들을 모조리 불온 분자로 몰아서 불공대천의 원수같이 족쳤다.)
인철 군은 시험을 보아서 간신히 교사 자격을 얻었다. 2종 훈도였다.
마침 가을 대 운동회가 임박해서 손이 모자랐던 터라, 그는 취직이 빨랐다. 합격 통지서를 받자 이내 발령이 되었다.
조혼을 했던 그는 철랑은 물론 충충시하에 맡겨둔 채, 단신 부임을 했다. 9월도 막바지니까 탱자가 노랗게 익어갈 무렵이었다. 고향의 탱자가 노랗듯이 그가 부임해가는 학교 울타리에도 탱자들이 노랗게 익어가기에 그는 다소 안심이 되었다. (사실 첫 부임길이 되어서 가슴이 약간 두근거렸던 것이다.)
“탱자, 탱자!”
그는 일부러 이렇게 뇌이면서 용기를 내어 교문을 들어섰다.
널따란 시골 운동장에는 수백 명 학생들이 가을 대 운동회 연습을 하고 있었다. 오후였다. 그는 학생들 쪽은 보지 않고 길차게 자란 해바라기들이 고개를 숙이고 있는 화단 곁을 통해서 직원실로 곧장 들어갔다. 물론 아무도 마중을 나와주지는 않았다. 약간 서먹했다.
‘수미’란 교장은 아주 키가 작은 데다 박박 깎은 두상마저 작았다. 몹시 동그랗고 작은 두상을 보자, 인철은 문득 탱자를 또 연상했다. 그 탱자 같은 두상의 앞면에 약간 튀어나온 듯한 입이 인상적이었다.
‘행티가 있겠는걸…….’
냉기가 도사린 듯한 ‘수미’ 씨의 입모습에서 그는, 식민지에 나와 있는 전형적인 일본인 관리란 것을 느꼈다.
“마침 운동회가 박두해서·…·부임 즉시부터 미안하지만 힘을 좀 바짝 내주시오.”
‘수미’란 교장은 이러고서 그 약간 튀어나온 듯한 입을 다시 다물었다.
“한창 운동회 연습 중이라…….”
황이란 교감도 수미 씨와 꼭 같은 소리를 했다. 학생들에게 부임 인사는 커녕, 직원들에게 수인사도 나누기 전에, 교감은 벼락치기로 이런 일 저런 일들을 서둘러 맡겨댔다.
“그러고 선생님이 맡을 이학년은 전연 운동회 연습이 안 돼 있으니까, 내일부터라도 곧 시작해주십시오. 다른 종목도 무엇하지만, 저학년이니까 우선 유희를 꼭 하나 해야 됩니다!”
이건 부탁이 아니라 바로 명령이었다.
‘유희?……. ’
인철 군은 댓바람에 가슴이 철렁했다. 유희란 생각해본 적도 없었거니와 전연 자신도 없는 일이었다. 그러나 처음부터 거절은 안 될 말이고, 테이블이라고 가리켜진 구석 자리에 가 앉아서 운동장 쪽을 내다보며, 그저 우두 망찰했다.
‘차라리 발령이 조금 늦었더라면·…·.’
아무래도 때를 잘못 맞췄구나 싶었다.
운동장 이쪽 저쪽에서 열심히 유희 연습들을 하고 있는 것을 보자, 인철은 더욱 속이 갑갑해왔다. 유희를 가르치기는커녕 아직 오르간도 제대로 못 치는 형 편이었으니까.
직원실에는 ‘수미’란 교장과 황이란 교감 둘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둘뿐인 그들조차 자리가 가까운데도 불구하고 별로 서로 말이 없었다. 물론 제각기 무슨 일들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인철은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곧 직원실을 나와서, 혼자서 교사 안을 죽 둘러보았다. 남녀 혼성으로 6학급, 6학년까지 있었으니까, 직원실을 한가운데로 하고 여섯 개의 교실이 죽 잇대 있는 긴 단층 교사였다.
교실 안에는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그는 우선 교실 입구에 걸려 있는 수업 시간표만을 대강 훑어보았다. 물론 그것도 무슨 필요가 꼭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었다. 그냥 지나가기가 무엇해서 그저 그렇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을 다 본 뒤에 그가 이상하게 ‘사실은 못마땅하게’ 느낀 것은 당연히 ‘조선어’라고 써야할 과목 이름을 ‘선어’라고 적어둔 것이었다.
‘선어가 뭐냐? 조선인을 선인이라고 깔보아 부르는 것과 마찬가질 거라!’
그저 환멸이 아니라, 참을 수 없는 모욕감과 분노에 가까운 것이 그의 가슴에 차올랐다. 그는 아직 젊었던 것이다.
거의 여섯시가 가까웠을, 어둑어둑할 무렵에야 직원들이 제자리로 돌아오고, 인철 군은 비로소 그들에게 소개되었다. 식사를 할 곳도 그 자리에서 결정되고, 잠은 우선 학교 숙직실에서 자기로 했다. 아직 여관 같은 게 없는 곳이라, 식사는 동료 한 분이 기식하고 있는 여 아무개란 학부형의 집이었다. 다행히 학교에서 그다지 멀지 않아서 좋았다.
그날 밤 인철 군은 학교 숙직실에 여장을 풀어놓고 오래도록 생각했다. 사회의 일 년생! 비록 서투르지만 모든 일에 대한 선택권이 자기에게 있는 것이다. 벌써 운동회니 유희에 관한 일 같은 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생활상의 걱정도 아니었다.
낯에 본 수업 시간표, 조선어를 ‘선어’라고 얕잡아 쓴 것에서 느꼈던 불쾌감 내지 모욕감이 내처 머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동시에 중일 전쟁을 일으킨 뒤 일본이 소위 황민화 운동에 더욱 혈안이 되어, ‘황국 신민의 서사’란 것을 제창시키며 조선인의 민족 정신과 문화를 모조리 말살하려드는 갖가지 일들이 하나하나 다시 머리에 떠올랐다. 분했다. 억지로라도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는 자기의 비굴성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20세기의 불안’이니 뭐니 하는 개발에 대갈 같은 발명은 하기가 싫었다.
고래가 잡힌다는 J포 쪽에서 뚜뚜하는 뱃고동 소리가 이따금씩 어둠을 뚫고 가까이 들려왔다.
재 하나 넘으면 동해 바다라 그런지, 아침은 한결 청명했다. 깨끗이 트인 가을 하늘에 바다를 스쳐오는 맑은 대기가 꽉 충만한 듯한 기분이었다.
찬란한 햇살을 얼굴에 흐뭇이 받으며 김인철 교사는 학생들 앞에서 부임인사를 했다. 우리우리한 눈으로 학생들 쪽을 쏘아보며,
“이제 막 교장 선생님이 소개해주신 김인철입니다…….”
사백여 명 학생들은 순간 눈이 휘둥그래졌다. 일본말 애용이 강요되던 때에 대뜸 우리말로써 부임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지금까진 그런 일이 전연 없었던 것이다.
‘수미’ 교장도 놀란 듯이 김인철 교사를 흘끗 쏘아보고는 이내 시퉁한 표정으로 굳어졌다. 다른 교사들은 그저 나무거울지럼 무표정하게 늘어서서 학생들 쪽만 지켜볼 따름이었다. 상급생들은 시퉁한 표정을 하고 서 있는 교장 선생 쪽을 한 번 흘겨보고는 시선을 다시 단상으로 모았다.
“바다가 가까운 이런 좋은 곳에서…….”
김인철 교사의 목소리는 한결 드높아졌다. 그가 담임하게 될 2학년 조무래기들은 숫제 어깨가 으쓱해진 듯한 얼굴들을 하고서 그의 뚜렷한 콧날을 쳐다보았다.
학생들은 아침 모임이 끝난 뒤 교실로 들어갈 때도 김인철 교사 쪽을 흘깃흘깃 돌아보았다. 어딘지 모르게 기쁜 표정들을 하였다.
김인철 교사는 물론 일부러 우리말로써 부임 인사를 했던 것이다. 그럴 때는 으레 일본말을 써야 된다는 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그러나 1,2학년 학생들까지 알아듣게시리 우리말을 써서 안 된다는 법도 없었다.
‘교장이 뭐라고 할 테지…….’
그는 일부러 제일 늦게 직원실로 들어갔다. 그러나 교장은 내처 시퉁스런 표정을 하고 있을 뿐, 그에게 대해 딴 말이 없었다.
문제는 운동회 때 할 유희였다. 자기의 실력도 문제지만 갯가나 산골에서 천덕꾸러기로만 자라난 아이들에게 유희 따윈 제대로 될 것 같지 않았다.
수업은 대개 세 시간 정도로써 끝났다. 다음은 운동회 연습이었다.
김인철 교사는 점심 식사를 마친 뒤, 강이란 여교사 곁으로 가서 유희에 대해 의논을 해보았다. 교감도 그런 말눈치였거니와, 자기도 강이란 여교사가 1학년 담임이고 하니 누구보다도 그런 일에는 적당한 조언자가 되어주리라 생각했던 것이다.
“교실에 가 계세요. 제가 그리로 갈게요.”
그녀는 친절하게 이렇게 말했다.
김인철 교사는 제일 서쪽에 있는 자기 교실에 가 기다렸다.
강이란 여교사가 뒤미처 따라왔다. 유희에 관한 책을 둘이나 가지고서.
“부임 인사를 우리말로 했었죠?”
그녀는 유희책을 펴들치며, 말은 엉뚱한 방향으로 흘렸다.
“왜요?”
“글쎄요. 교장 선생이 오늘은 종일 기분이 좋잖은 모양이지요.”
“그럼 제가 뭘 잘못한 걸까요?”
김인철 교사는 강 교사의 표정을 살피었다.
“뭐 별로 잘못한 것도 없겠지만…….”
강 교사는 약간 얼굴이 붉어졌다. 사범 출신으로 아직 미혼인 모양이었다. 나중에 안 이야기지만, 동생들이 중학을 마칠 때까지는 뒤를 돌봐야 되기 때문에 교원 노릇을 해야 된다는 것이었다. 얼굴이 약간 둥글고, 눈이 꽤 영리하게 보였다.
“허수아비란 게 졸 것 같아요. 노래는 아시지요?”
강 교사는 곧 화제를 돌렸다.
“허수아비?”
김인철 교사는 순간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는 ‘허수아비’란 말에서 전연 괘꽝스러운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요?…… 곡도 단순하고, 유희를 하더라도 동작이 간단하거든요. 이러고만 서 있으면 되니까요.”
강 교사는 두 팔을 짝 벌리고 한 발로써 서보였다. 벋디딘 정강마루가 한결 희게 드러났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부디 부탁합니다.”
김인철 교사는 제자라도 된 셈치고 그녀의 의견을 따르기로 했다.
어리댈 여유가 없었다. 그럴 시간이 없었다. 그는 바로 그 자리에서 ‘허수아비’의 유희를 배워야 했다.
강 교사의 말대로 동작은 그리 까다롭지 않았다. 한 발로 서서 몸만 잘 가늠하면 될 것 같았다. 두 번째 대목의 활을 내뻗는 시늉이 약간 힘이 들뿐이었다.
김인철 교사는 밤에도 혼자서 ‘허수아비’의 유희를 연습했다. 강 교사에게서 빌린 책을 책상 위에 펼쳐놓고는, 방 한가운데 서서 무릎을 용케 접고 한 발로 서는 연습, 그러고서 활을 힘차게 내뻗는 연습들을 열심히 되풀이 했다. 거울이 앞에 없어서 잘은 몰랐지만, 그만하면 과히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다음날부터는 바로 운동장에서 학생들에게 연습을 시켰다. 우선 학생들 둥그렇게 원을 지어 둘러서게 했다. 그 한가운데서 강 교사가 고맙게도 노래를 부르며 오르간을 쳐주었다.
두메 산골 산밭의
외다리 허사비는…….
강 교사의 소프라노는 단풍이 익어가는 앞산에까지 메아리쳤다. 노래는 물론 일본말로 된 것이었다.
김인철 교사는 오르간 앞에서 한 발로 선 채, 노래에 맞추어가며 유희의 시범을 했다.
여태 담임이 없어서 유희는커녕 다른 운동 연습도 제대로 못 하고 있던 아이들은 못내 기뻐하며 애써 배우려 했지만, 좀처럼 익혀지지는 않았다. 노래와 유희를 한꺼번에 가르치는 게 무리였을는지 모른다. 한 발로써만 오래 서 있자니 다리가 휘돌리기도 했다.
그러나 김인철 교사는 여간해서는 지기 싫은 성질이었다. 강 교사가 도와주는 것이 고마웠고, 그래서도 더욱 빨리 아이들에게 익혀주고 싶었다.
말경에는 그러던 김 교사 자신도 지쳐버렸다.
“한 둘 셋 !…….”
동작을 위한 호령도 하려네, 노래도 부르려네, 시범도 하려네 하자니, 금방 목이 쉬어버렸다. 앙감질을 하듯한 다리마저 말을 잘 안 들었다.
‘산에 사는 까마귀가 까악까악 비웃겠죠.’ 하는 대목에 가서는, 까마귀가 허사비를 보고 웃는 게 아니라, 바로 한 발로 서서 그렇게 노래 부르고 있는 자신을 비웃는 듯한 착각까지 일으켰다.
“오늘은 이 정도 합시다.”
김인철 교사는 갑자기 강 교사를 돌아보았다.
그는 얼굴이 온통 땀에 젖어 있었다. 활활 달아 있는 듯한 얼굴을 훔칠 때, 등골에도 땀이 스멀스멀 흐르고 있는 것을 비로소 의식했다.
모의 운동회라고도 할 수 있는 전교의 최종 연습을 마친 뒤, 교감은 강평에서 김인철 교사가 맡아 있는 2학년의 유희 성적을 꽤 좋게 평했다.
“시일이 없어서 염려했더랬는데, 다행히 김 선생의 젊은 열과 성으로써…….”
숫제 치켜올리듯 말했다.
교장 ‘수미’ 씨도 나쁘잖은 듯한 표정을 보였다.
그러나 그러한 칭찬과 기대는 바로 이튿날인 운동회 당일에 가서는 완전히 허물어지고 말았다. 아니 수천 명이 보는 앞에서 도리어 180도의 역효과를 내었다는 것이다. 적어도 학교측의 기대로서는 말이다.
매스게임의 가장 중요한 조건의 하나라 할 수 있는, 허사비들의 옷치장이 온통 통일되어 있지 않았다. 엉망이란 것이었다.
“이학년들의 그건 유희가 아니라, 마치 거지 가장행렬이지 뭐요?”
운동회가 끝난 뒤 ‘수미’ 교장은 얼굴을 벌겋게 해가지고 나무랐다.
하긴 거지 가장행렬 같기도 했다. 할아버지들의 커다란 저고리 헤어진 걸 입은 놈이 있는가 하면, 할머니들의 몽당치마를 두른 계집애, 그 위에 아버지들이 쓰다 버린 벙거지 ― 더러는 전도 떨어져나간 것들을 푹 눌러쓰기도 하고, 어떤 놈들은 숫제 노래 문구에 맞춰서 진짜 우장삿갓을 차리고 나왔으니 말이다. 다만 동일한 것은 모두 커다란 활들을 하나씩 들고 있는 것뿐이었다.
천만 뜻밖에 이런 떼거지 모습들을 하고서 운동장 한가운데로 죽 행진을 해오자, 천 명이 넘는 관중들은 물론, 주위에서 보고 있던 학생들도 허허 하고 웃어댔다. 그걸 보고 안 웃은 사람은 아마 ‘수미’ 교장과 황 교감 정도였을 것이다.
그러나 아무리 그러한 교장 교감일지라도 이미 운동장 한복판에 나온 그들을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김 인철 교사는 당당히 오르간을 울리며 소신대로 유희를 끝마쳤다.
학생들의 그와 같은 옷치장에 대해서 김인철 교사도 생각 아니한 바는 아니었다. 그러나 하루 잠깐 보이고 말 유희 한 장면을 위해서 학부형들을 괴롭혀가며 복장을 통일시킬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또 사실 들에 있는 그 많은 허사비들이 어디 똑같은 차림들을 하고 있던가 말이다. 차라리 집에서들 허사비를 만들 듯이 아무거나 있는 그대로를 가지고 꾸미는 게 ‘리얼리즘’으로서 좋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물론 학생들도 그편이 좋다고 했다.
운동회가 끝나면, 으레 면장과 주재소와 학부형 의 간부들과 지방 유지들을 모시고 선생들은 저녁 식사를 같이한다. 그 자리에서 ‘수미’ 교장은 김인철 교사의 신임 소개를 하면서도 아직 경험이 없는 젊은 선생이라 오늘 2학년들의 유희가 그 꼴이 됐노라고 사과 비슷한 말을 하였다.
“아니, 그게 더 재미있어 비(뵈)던데요!”
탁주 도가 주인이 이렇게 싸주듯 하자, 다행히 그 얘기는 그 이상 더 나오지 않았다. 당자인 김인철 교사는 그 일에 대해서는 시종일관 입을 다물었다.
‘수미’ 교장은 다음날 직원 모임에서도 내처 그 얘길 또 꺼냈다. 어지간히 화가 났던 모양이었다.
결국 이 유희 사건이 김인철 교사로 하여금 ‘수미’ 씨에게 잘못 보이게 한 두 번째 꼬투리가 되었다. 첫 번째 실수(?)는 물론 부임 인사를 조선말로써 한 것이었지만.
세 번째의 트집거리는 수업 시간표의 과목 이름을 자기 맘대로 고친 일이었다. 교실 입구마다 걸려 있는 수업 시간표에 모두 ‘선어’라고 적혀 있는 것을, 김인철 교사는 자기 담당인 2학년 교실 것만을 ‘선어’ 대신 ‘조선어’라고 고쳐놓았던 것이다.
물론 그는 미리 교감 선생의 의사를 타진해보았다. ― 학교령 이나 교수세목 같은 데도 그러한 표현이라고는 전연 보이지 않는데 어째서 하필 ‘조선어’ 과목만을 첫자를 떼어버리고 ‘선어’라고 쓰느냐고.
“다른 과목 이름은 모두 두 자씩인데 석 자가 되니까 쓰기도 무엇할 뿐 아니라, 통일을 기하느라고 그랬을 거요. 전부터 그렇게 해왔거든요. 물론 다른 학교에서도…….”
교감은 난처한 빛을 보이면서도 속이 빤히 내다뵈는 이런 뚱딴지 같은 대답을 했다.
김인철 교사는 어이가 없어서 더 따질 흥미조차 느끼지 않았다. 그저 알았노라는 내색 만 하고, 곧 자기 교실로 달려가서 ‘선어’라고 쓴 것을 ‘조선어’라고 의젓이 고쳤다. 주묵(朱墨)빛도 새로운 데다 석 자가 되니 한결 눈에 띄었다.
‘교장이 뭐라고 할는지도 모르 ? 하지만 학교령(學校令)에도 뚜렷이 ‘조선어’라고 돼 있지 않은가…….’
김인철 교사는 바로잡은 시간표 판을 당당히 걸어놓고 당당히 쳐다보았다.
‘허수아비’의 유희 때문에 가뜩이나 학교에서 말썽이 되어 있던 김인철 교사와 그가 맡은 2학년은 이러한 시간표로 해서 더욱 화제에 올랐다. 다행히 선생들 사이에서는 ‘비겁한 묵살!’이랄까, 별 말이 없었지만, 2학년밖에 안 되는 김 교사 반 조무래기들은 숫제 어깨가 으쓱해진 듯이 일부러 자기들의 시간표를 쳐다보며 좋아라 했다.
응당 누가 곧 고자질도 했을 거고, 또 공교롭게도 그 2학년 교실이 직원변소가 있는 교사 맨 서쪽 끝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교장도 진작 보았겠지만, 그저 뭉클하고 있을 따름, 그걸 가지고 김인철 교사를 향해서 새삼 어쩌고저쩌고 하지는 않았다. 다만 하루 아침 직원 모임 때 이런 말을 했다.
“단체 생활에는 단결이라든가 통일 정신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고, 도에서도 늘 그 점을 강조하고 있는 터인데, 어쩐지 최근에 와서 이 학교에는 잘 지켜지지 않는 것 같으니 금후 그런 점을 특별히 주의해주시도록 부탁합니다.”
이건 더욱 사무 타합 같지 않은 일종의 훈시였다. 김인철 교사는 물론 자기를 두고 하는 소린 줄은 알았지만 잠자코 듣기만 했다. 바로 찔러오지 못하고 혼자서 투덜거리는 것이 속으로 우습기도 했다.
‘별놈이 아니로구먼!’
김인철 교사는 출석부를 찾아 들기가 바쁘게 맨먼저 직원실을 나왔다. 그날은 첫 시간이 바로 ‘선어’ 아닌 ‘조선어’ 시간이었던 것이다.
부임 인사를 우리말로써 했다는 것으로부터 대 운동회 때의 학생들의 복장 사건, 그리고 수업 시간표에 있는 학과목 이름을 제멋대로 고쳤다는 사실(물론 자기 담임 학년만이었지만) ― 이러한 일련의 일들로 말미암아 ‘수미’ 교장은 김인철 교사를 아주 못마땅하게 여기었다. 그저 이단자 취급을 하는 것이 아니라, 소위 사상이 덜 좋은 사람으로 단정하는 모양이었다.
“역시 D고교 출신이니까…….”
이렇게 말하는 것을 강 교사가 듣고 와서 귀띔을 해주었다. 그녀는 같은 저학년 담임일 뿐 아니라, 유희 지도를 같이 해오는 동안에 김인철 교사와는 통할 수 있는 유일한 동료였던 것이다.
교장이 그러한 태도로 나오자, 다른 동료 교사들도 자연 김 교사를 경원하는 눈치들을 보였다. 결국 김인철 교사는 외돌토리가 된 셈이었다.
‘외돌토리면 어때!’
김인철 교사는 까마귀떼의 비웃음을 받는 ‘허사비’가 아닌 것을 되레 자랑스럽게 여기었다. 대신 학급 경영에 있어서는 어느 동료에게도 지기가 싫었다. 청소와 교실, 화단 등의 환경 정리에도 그랬고, 더욱이 지각 결석이 적은 것은 그가 맡아 있는 2학년이 전교에서 모범이었다. 이 점만은 ‘수미’ 교장도 김 교사의 열과 지도력을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 김인철 교사에게는 또 한 번의 고비가 다가왔다. 예의 동방요배(東方遙拜)에 관한 일이었다. 상부로부터의 하달 사항이라면서 학생들로 하여금 아침 모임 때마다 왜왕이 있는 동쪽을 향해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것이었다. (일인들은 이런 정치를 곧잘 했다. 그 뒤의 창씨 개명 때도 그랬고, 학병 지원 제도도 그런 식으로 얼버무렸거니와 명령이 아닌 권유 형식 이면서 결과는 명령과 똑같은 구실을 하도록 하는 수법이었다.)
‘수미’ 교장은 직원 모임 때, 도에서 보내온 공문을 일부러 낭독까지 하고는, 그 내용을 다시 설명했다.
“동방요배를 자진해서 실시하는 학교가 있는 데 대해서 각 초등학교의 의사를 물어왔는데 여러분들의 생각은 어떠신지?”
이 ‘그믐밤에 홍두깨 내밀듯’ 한 말에 대해서 교사들은 서로 눈치만 살필 뿐 아무 말들이 없었다. 줄곧 생활에 위협을 받아온 탓들인지 그야말로 꿔다둔 보릿자루처럼, 데쳐낸 고기 눈 같은 눈들만 껌벅이고 있는 꼴이 아니꼬워서, 제일 핫바리인 김인철 교사가 덜렁 나섰다.
“요즘은 형식적인 것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형식 위주가 되면 자연 내용이 소홀하게 되기 쉬우니까 좀더 연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생각은 딴 데 있었다.
“그건 김 선생 개인 생각이지요?”
‘수미’ 교장은 무엄하다는 듯이 다그쳐 물었다.
“물론입니다. 저 개인 의삽니다. 그걸 물은 게 아니던가요?”
김 교사의 반문에 대해서 ‘수미’ 씨는 답을 안 했다. 약간 튀어나온 입술이 더 볼록하게 다물려 있을 뿐이었다.
이럴 때 교감이란 것이 필요한 것이다. 눈깜짝이란 별명이 붙어 있는 황 교감은 눈을 더욱 자주 깜작거리면서,
“김 선생의 의견은 그렇고, 다른 분들은 별 이의가 없는 모양이니, 어떨까요, 이런 일은 대개 그대로 실시되는 게 상례니까, 우리도 그렇게 하는 것이?…….”
직원들을 둘러보던 그의 시선은 ‘수미’ 교장 쪽으로 이내 돌아갔다.
‘수미’ 씨는 이렇게 받아들이더니,
“이런 문제는 잘못하면 사상 문제로 해석되기 쉽거든요!”
라는 말을 특별히 덧붙였다. 그것은 은근히 김인철 교사에게 들어라 하는 말눈치 같았다.
다음날 교장 회의에 갔다가 돌아온 ‘수미’ 씨는 도내 교장들의 모임에서도 그렇게 하기로 결정을 보았다면서, T교에서도 즉각, 바로 그날부터라도 실시하자고 했다.
“이왕 할 바에는!”
그는 마치 무슨 중대한 임무라도 맡아온 듯한 표정을 하였다. 자칫하면 잔망스럽게만 보이게 마련인 작은 두상을 가진 그는, 그럴 땐 으레 약간 튀어나온 입술을 더욱 볼록하게 다무는 것이었다.
결국 그날 아침부터 동방요배란 허사비 놀이가 또 하나 늘어났다. 조회 개시와 동시에 학생들은 동쪽을 향해서 ‘우향 우’를 했다. 그날은 바로 교장 자신의 간단한 설명과 호령에 따라 교사와 학생 들이 모두 동쪽을 향해서 90도로 허리를 굽혔다.
김인철 교사는 암만해도 90도까지는 허리가 쉬 접어들지 않았다. 학생들 가운데서도 킥킥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날의 아침 모임은, 동방요배에 대한 교장의 장황한 훈화로써 끝났다. 아니 보통 모임 시간보다 약 반 시간이나 더 걸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동방요배로 말미암아 가끔 말썽이 있었다.
한 번은 일부 학생들이 요배 도중 한꺼번에 웃어버렸다. 앞줄에 있던 한 놈이 허리를 몹시 꺾다가 별안간 방귀를 뀌었기 때문이었다.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그놈이 또 소프라노에 가까웠던 것이다. 교장은 그 탱자 두상이 덜덜 진동을 할 정도로 화를 냈다. 물론 예배는 다시 했었지만 그는 직원실에 돌아와서도 내처 투덜거렸다.
김인철 교사가 맡아 있는 2학년 한 놈이 동방요배 때 무릎 밑까지 드리웠던 손으로 땅에 낙서를 하다가 ‘야마가와’란 일본인 교사에게 들켰던 것이다. 현장에서는 당자만 ‘야마가와’에게 주의를 받았지만, 나중에는 결국 교장의 귀에까지 그 말이 들어가서, 그것도 예의 방귀 사건과 함께 직원 모임에서 논란의 대상이 되었었다. ‘수미’ 교장의 주장에 의하면, 학생들의 예배 태도가 그렇게 불손한 것은 결국 교사들의 평소 지도가 부족했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더구나 요배를 한다는 놈이 땅에 낙서를 하고 나자빠졌다는 것은, 그건 단순히 요배 태도가 나빴다기보다 오히려 사상이 의심스럽다고 볼 수밖에 없습니다. 담임 선생으로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결국 담임에게까지 불이 튀어왔다. 사상! 드디어 식민지 교장의 본색을 드러낸 셈이었다.
김인철 교사는 그것을 눈치 못 챌 정도의 바보는 아니었다. 말이 사상 문제에까지 미친 이상 그냥 듣고만 넘길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수미’ 교장을 향해서 정색을 하였다.
“그건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좀 지나쳤다고 생각합니다. 큰절을 하다가 땅에 닿은 손가락이 뭘 좀 그렸다고 해서 그걸 가지고 아직 열 살도 못 되는 어린애의 사상이 어떠니하는 식으로 다룬다는 것은 언어도단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한 사고방식은 자칫하면 생사람을 잡는 결과밖에 되지 않을 겁니다. 교육자로서 취할 태도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인철 교사의 언성은 의외로 높아졌다. 그는 ‘교육자’란 말에 특별히 힘을 주었다.
골마루를 지나가던 학생들이 별안간 무슨 싸움아라도 벌어졌나 하고 직원실 안을 흘깃거렸다
김 교사의 말이 너무 불퉁스러웠던 탓인지, ‘수미’ 교장은 그 자리에선 더 말을 계속하지 않았다. 어떤 편이냐 하면, 그는 늘 정면으로 다가오는 게 아니라 이면에서 일을 꾸미는 성미였다.
교감은 난처한 듯이 눈만 더 잦게 깜작였다. 그러나 끝내 그러고만 있을 수도 없는 일이었다.
“학생들이 일부 웃었다든가, 땅에 낙서를 했다는 것은 확실히 나쁩니다. 그러나 그런 걸 가지고서 당장 사상 운운하는 것도 좀 지나친 일일는지도 모르지요.”
황 교감은 어느 한쪽을 두둔하는 것도 아닌 아리숭한 태도를 취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애매하게 구는 것이 그의 처세술이기도 했다. 그는 창가 골마루 쪽에서 안을 흘깃거리는 학생 들을 쫓아버리면서, 최 서방(사환)더러 냉큼 시업종을 치라고 명령했다.
동방요배 사건으로 ‘수미’ 교장과 그와 같이 정면 충돌을 한 뒤로부터, 김인철 교사는 교원이란 직업에 점점 정나미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긴 좋아서 교원이 된 것은 아니었다. 직장이라고 구해진 것이 교원이었을 뿐이다. 그러나 하다 보니, 비록 짧은 시일이었지만 비교적 빨리 어린애들에게 정이 들었던 만큼 실망도 컸다. 물론 교장과는 냉전 상태에 들어갔다.
이러한 상태는 김인철 교사로 보아서도 결코 반가운 일이 아니었지만, ‘수미’ 교장의 입장에서 볼 때는 더욱 괘씸한 일이었다. 우선 교장이란 체면상 견디기 어려운 일이었다. 여태까지는 잘하든 못 하든 그래도 교장의 위신은 지녀온 셈인데, 김인철 교사와 그런 일이 있고부터는 다른 부하들 보기에도 쑥스러울 정도로 위신이 떨어졌다고 속으로 꼴짝거렸다.
‘수미’ 씨는 매일같이 편지를 몇 통씩 썼다. 마치 그것이 교장으로서 해야 할 유일의 일이기나 되는 듯이.
최 서방의 말을 들으면, 이전보다 많이 내는 그 편지들 가운데는 으레 한두 장은 도청 학무과나 군청 학무계에 가는 것이 있다는 것이었다.
“아마 김 선생님에 관한 얘기도 많이 적었을 거예요.”
같은 저학년 담임으로 교실이 바로 곁인데다, 지난 운동회 이래로 그와 더욱 가까워진 강이란 여교사도 이렇게 귀띔을 해주었다.
“멋대로 적으라지!”
김인철 교사는 겉으로는 신풍스럽게 받아넘겼다.
“아녜요, 자기의 가까운 친척이 경찰에 있다던데요. 무슨 간부라든가.”
“그놈들이야 다 친척이나 마찬가지지요 머!”
말은 대범하게 했으나, 속에서 또 무엇이 치밀어올랐다. 그는 그날 밤 오래도록 잠을 이루지 못했다.
바로 그 이튿날이었다. 김인철 교사가 한창 수업에 열중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애들의 눈이 자꾸 복도 쪽으로 쏠리는 것 같기에 뭔가 하고 돌아보았더니, 뜻밖에 웬 캡을 쓴 사나이와 정복 순사 한 사람이 그의 교실 입구 짬에 걸려 있는 수업 시간표를 훑어보고 있는 눈치들이 아닌가!
그는 육감에, 왔구나 싶었다. 그저 참관이나 구경은 아니리라 ! 응당 수업 내용도 엿듣고 있었으리라 짐작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물론 당황할 필요는 없었다. 일부러 소리를 크게 내질러 학생들에게 그쪽을 보지 못하게 주의를 시킨 다음 수업을 계속했다.
두 진객은 능글능글 교실 안까지 흘깃거리며 천천히 복도를 지나갔다. 오만불손한 태도였다.
김인철 교사는 수업을 조금 일찍 끝내고 직원실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들은 벌써 거기에 없었다. ‘수미’ 교장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왔던 사람들이 도대체 뭔가요?”
김인철 교사는 황 교감을 보고 물었다. 말이 조금 퉁명스럽게 나갔다.
“학교 구경을 왔던 모양이지요. 한 사람은 본서에서 온 형사라던가요.”
교감의 말도 확실치가 않았다.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그도 과히 좋은 기분은 아닌 모양이었다.
“교장 선생은 어딜 갔나요?”
“같이 밖으로 나간 모양이군요. 아마 점심 대접이라도 하러 간 게 아닐까요?”
그도 짐짓 대범스럽게 나왔다. 그러면서도 담배 연기를 위로 내뿜는 그의 아랫입술은 평소때보다 쑥 내밀어져 있었다.
김인철 교사는 황 교감의 그와 같은 태도와 표정에서 ‘수미’ 씨보다 교육경력으로 보나 실력을 보아서는 훨씬 나은데도 불구하고 조선인이기 때문에 도리어 그의 밑에서 비위나 맞춰야 하는 그의 심정을 읽으려 하였다. 이상하게도 그날은 그러한 교감이 얄밉다기보다는 도리어 일종의 동정이 가기까지 했다. 그는 이미 나이가 오십을 지났었다.
‘벌써 저렇게 머리에 흰털이 많아졌지만, 희어 아니라 죽을 때까지도 아마 교장 한 번 못 해먹을걸……!’
황이란 사람은 누구처럼 얼른 ‘황국 신민’ ―일본 백성이 되지 못하는 인물이라고 김 교사는 간파했다. 너는 소심한 조선인이다. ‘조선인 할 수 없다!’고 누가 빈정거려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토요일 오후마다 대청소가 있었다.
대청소가 있는 날은 여학생들은 모두 교사 맞은편에 있는 교장 사택으로 갔다. 일종의 징발이다. (그 당시는 아직 여학생 수가 한 클라스에 열 명 내외였다.) 물론 교장 사택 안팎의 청소를 하기 위해서다.
으레 ‘수미’ 씨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징발된 학생들의 감독은 ‘야마가와’란 일본인 교사가 도맡아서 했다. 그는 6학년 담임이었다.
그날도 오륙십 명 여학생들이 교장 사택의 대청소에 열중하고 있었다. 김인철 교사의 담당 반 여학생들은 사택 입구에서 풀을 뽑고 있었다. ‘야마가와’가 부산하게 돌아다녔다.
확 열어젖뜨린 창문을 통해서 그러한 광경을 지켜보던 김인철 교사는 더 참을 수 없는 모욕을 느꼈다. 일본인 교장 집의 변소 마루까지 닦아줘야 하는 학생들만이 아니었다. 그것을 묵인하고 있는 자기 자신도 학생들에 못지않게 멸시를 당하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게다가 그날은 최 서방까지, 학교에 쓰일 석탄을 버젓이 여러 차례 교장 사택에 져 나르고 있었다. 사택의 목간 굴뚝에서는 시커먼 석탄 연기가 무덕지게 피어오르고 있었다.
“어어이 얘들아, 거기서 뭐들 하고 있어? 빨리 와서 학교 소제부터 해라!”
마침내 김인철 교사의 신경질적인 목소리가 사택 쪽으로 날카롭게 날았다.
유리창에 매달려 있던 상급생으로부터 물을 길어나르는 애, 심지어 풀을 뽑고 있던 애들까지 눈이 이쪽으로 쏠렸다. 모두 일손을 멈추고 잠깐 우두망찰하였다.
“빨리들 돌아와서 학교 청소부터 하란 말야! 말이 안 들리니?”
김인철 교사의 목청은 한결 날카로워졌다.
‘수미’ 교장의 탱자 같은 두상이 청마루께 나타나서 이쪽을 한 번 흘낏
하는가 싶더니 이내 안으로 사라져버렸다. ‘야마가와’도 이쪽 말은 못 들은 체 물을 길어 나르는 학생들의 감독만 하고 있었다.
“이학년 학생들은 빨리 교실로 돌아왓!”
김인철 교사는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었다. 지지리 못난 것들! 그는 자기 반 여학생들만이라도 기어이 불러와야 되겠다고 결심했다.
결국 2학년 여학생들만은 일을 중단하고 되돌아왔다.
“이담부터는 학급 청소만 해! 화단 풀이나 뽑고…….”
‘너희들은 종이 아니란 말야 !’까지는 말하지 않았다.
담임 선생의 갑작스런 불뚱이에 지레 질린 아이들은 어쩔 줄을 모르다가, 겨우 이쪽 말눈치를 알아챈 듯이 사내애들과 어울려서 학급 청소를 시작했다. 지금까지 학급 청소를 등한히 한 것이 짜장 미안하기라도 한 듯이 열심히 유리창에 매달렸다. 입으로 김을 호호 불어붙여가며 재게 놀리는 조그만 손들이 귀염다기보다는 차라리 애처롭게까지 보였다.
교사들과 주 당번 학생들에 의해서 매겨진 대청소의 성적이 월요일 아침마다 학생들 앞에서 발표되었다. 그 전에 미리 직원 모임에서도 얘기가 되었다. 이번에도 김인철 교사의 담당인 2학년이 일등이었다.
‘아직 눈들은 썩지 않았나보지…….’
김인철 교사는 이렇게 생각하면서, 지난 토요일에 있은 돌발적인 자신의 처사를 발명이라도 하듯―교장 선생님께 말씀드리긴 죄송합니다만 사택 소제에 학생들을 동원시키는 것이 과연 어떨는지, 교육적으로 보아서 꼭 필요한 일이라면 차라리 한 달에 한 번쯤 하는 게 어떻겠느냐는 의견을 던져보았다. 너무 긴장했던 탓인지 목이 약간 쉰 듯하고 안색도 차가워 보였다.
‘수미’ 교장은 무엄하다는 듯이 얼굴만 사납게 붉어져 있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일을 합리화하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무슨 말이 있어야 되겠지만 상대방이 대뜸 교육적 이유를 들고나오는 데는 그럴 만한 발명이 얼른 떠오르지 않는 모양이었다.
다른 동료들도 섣불리 입을 떼지 않았다. 요컨대 아침부터 직원실의 공기가 약간 험악해졌다. 이럴 땐 황 교감의 눈이 더욱 잦게 깜작이기 마련이었다.
“어떨까요, 지금은 토의할 시간도 없고 하니 다음 직원회로 미루는 것이 교감도 기껏 이런 말로써 난처한 고비를 얼버무렸다.
학생들의 아침 모임 때는 대청소의 1등 기가, 이번에도 김인철 교사가 맡아 있는 2학년에게 수여되었다. 어쩐 일인지 그날 아침은 학생들의 박수 소리가 더욱 우람한 것 같았다.
“저학년이면서도 계속해서 우승을 한다는 것은 기특한 일이여. 청소만 그럴 것이 아니라 공부와 행실에 있어서도 주의를 해주기 바란다!”
‘수미’ 교장은 훈화 속에서 ‘행실’이란 말을 특별히 강조했다. 딴은 가시가 있는 말이리라고, 김인철 교사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한 담임교사의 심중을 아직 알 턱이 없는 그의 반 학생들은, 그저 우승기를 도로 찾아오는 것만이 기쁜 듯이 만면에 웃음을 담았다.
‘야마가와’란 일본인 교사가 김인철 교사의 담당 반인 2학년 애를 하나 직원실로 데리고 들어왔다. 장철이란 굴젓눈이의 소년이었다.
“조선말로 뭐라고 욕설을 했지?”
‘야마가와’는 장철이란 소년을 자기 책상 앞에 세워놓고 미주알고주알 캐기 시작했다. 보아란 듯이 서두르는 말눈치가 짐짓 ‘수미’가 말하는 ‘행실’이 나쁜 애 ―일본말을 애용(愛用)하지 않은 애인 듯했다.
소년은 질려서 떨 뿐 얼른 대답을 못 했다. 아니, 그보다 일본말로써 어떻게 말해야 될지 몰라서 더욱 질려 있는 꼴이었다.
“조선말을 한 건 틀림없지?”
‘야마가와’ 선생은 시꺼먼 속눈썹을 세웠다.
“하이(네 )…….”
소년은 곧은불림으로 대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학교의 방침이, 교내에서 조선말을 함부로 쓰는 애들이 있으면 곧 선생님들에게 고자질을 하도록 돼 있으니까, 증거가 확실한 것이었다.
“국어(일본말)로 말해봐! 뭐라고 그랬지?”
“…….”
소년은 내처 입을 다물었다. 자기가 한 욕설을 일본말로 번역할 능력은 도저히 없었다.
“‘니기미 시바라’가 뭐지 ?”
“……,”
“요놈의 새끼! 그럼; ‘시비’가 뭐꼬? 어디 손짓으로 해봐!”
‘야마가와’는 주먹으로 테이블을 탁 치며 을러댔다. 장철이란 소년은 역시 말도, 차마 손짓도 못 하고서 백태가 덮인 눈에 눈물만 흥건히 담았다.
“‘시비’ 흉내도 못 내?”
‘야마가와’는 약이 오를 대로 올랐던지 목줄띠까지 새빨개졌다.
방과 후였으나 교장 이하 다른 직원들은 모두 제각기 일에만 바쁜 듯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1학년 담임인 강이란 여교사만이 다른 의미로 얼굴이 붉어져 있었을 뿐이었다.
“야마가와 선생!”
김인철 교사는 보다못해 소리를 빽 질렀다. 물론 심상찮은 표정이었다.
“내가 조사해보겠소. 내 반 애니까·…·.”
곧 장철 군을 자기 앞으로 불렀다. 그리고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기 위해서 일부러 우리말을 쓰되, ‘야마가와’가 특히 알아야 될 부분에 가서는 일본말도 섞었다.
김인철 교사가 조사한 바에 의하면, 오히려 장철 군에게는 크게 잘못한 것이 없어보였다. 늘(그날도) 자기 누나를 놀리고 괴롭히는 6학년 남학생이 자길 보고서 ‘명씨 눈’ ‘굴젓눈이’이라고 놀려대기에 그런 욕설을 했다는 것이었다.
“누나는 집에 돌아갔니?”
김인철 교사가 조사의 초점을 슬그머니 돌렸다.
“밖에 있임더.”
“이리 데리고 와!”
장철이 잠깐 나간 뒤 직원실 안 공기는 한결 긴장되었다. 김인철 교사는 성냥을 좌르르 그어 담배에 불을 붙여 물었다. 그리고 정신을 가다듬는 듯 연기를 두어 모금 푸푸 내뿜었다.
밖에서 동생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장철 군의 누나가 이내 동생의 뒤를 따라서 직원실로 들어왔다. 5학년이었지만 몹시 기가 죽어 보이는 얼굴을 김 교사 앞에 숙였다.
“육학년 남학생들이 놀린다지? 그래 뭐라고 놀리던가?”
김인철 교사는 일부러 언성을 낯춰서 물었다.
소녀는 얼른 대답을 못 했다. 그녀는 ‘야마가와’ 선생을 경계하는 듯한 눈치를 보였다.
“괜찮아, 바른 대로 말해봐! 그래 욕설은 꼭 국어(일본말)로만 하던가?”
소녀는 답을 안 했다. 안 한다는 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는 증거다.
“알았어. 동생 데리고 돌아가!”
어린 오뉘는 절만 꾸벅하고서 직원실을 나갔다.
“야마가와 선생, 당신도 다 들었죠?”
김인철 교사는, 사뭇 트릿해 있는 ‘야마가와’ 쪽을 건너다보았다.
“조사를 하시려거든 좀 똑똑히, 공평하게 하시지그래. 그러고 아직 철부지인 어린애들에게 ‘시비’를 손짓으로 시늉을 내라니, 도대체 그게 학교 선생으로서 감히 할 일이겠소? 그건 교육이 아니고 바로 상대를 모욕하는 겝니다. 아시겠어요? 아무리 국어 애용도 좋지만 그 따위 짓을 해서야…….”
만약 학부형들이 알아보시오, 큰일납니다. 큰일나요.”
김인철 교사의 말은 그저 따진다기보다 어딘지 모르게 일종의 위협 비슷한 데가 있었다. 그 증거로는 그렇게 팔팔하고 오만무쌍하게 날뛰던 ‘야마가와’도 뜨끔한 데가 있었던지 섣불리 발명을 하지 못했다.
“그러고 교감 선생님께도 부탁하고 싶은데요.”
김인철 교사는 교감 쪽을 건너다보면서,
“학생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는 되도록이면 담임교사에게 넘기도록 해주시오. 담임을 제쳐놓고 다른 선생이 조사를 한다는 것은 교육상 좋지 못하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을까요?”
“그러는 게 원칙이겠죠.”
황 교감도 딱한 표정을 지었다.
“원칙이 그렇다면 지키도록 해야죠!”
김인철 교사는 꼭 누구에게란 생각도 없이 이렇게 해던지고는 핑 나와버렸다. 너희들 멋대로 지껄여보라는 태도 같기도 했다.
‘국어 애용’ 이란 모토는 드디어 ‘국어 상용’으로 바뀌었다. ― 중일 전쟁을 일으킨지 불과 일 년 남짓한 사이에 화북(華北) 화중(華中)을 소위 파죽지세로 휩쓴 일본은, 그 여세를 몰아 조선인의 황민화 운동에 더욱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 내선일체란 것을 현실화한다는 핑계를 내세우고 ‘조선교육령’을 개정하는 동시에 일본말만 쓰라는 명령을 내렸던 것이다.
새로 발표된 교육령에 의하면 ‘조선어’가 결국 정규 과목에서 떨어져나와 소위 ‘수의 과목’으로 탈바꿈을 했다. 필요에 따라서는 안 가르쳐도 좋다는 어처구니없는 결과가 된 셈이었다.
법규와 명령에 없는 사항도 과잉 충성을 하느라고 식은밥 먹듯 하려 드는 판국에, 가뜩이나 그런 법이 생겼으니 눈치빠른 사람들이 그냥 있을 리 만무했다. 그리고 그것이 곧 대세같이 되었다.
김인철 교사가 근무하는 T국민학교에서도 곧 학부형들의 의견을 묻게 되었다. 조선어 교육의 가부를 ‘○’표로 표시하라는 인쇄물 뭉치들이 교감의 손을 거쳐서 각 교사들에게 배부되었다.
‘수미’ 교장은 의기 양양한 듯이 취지와 방법에 대해서 중언부언 되씹었다.
“교육령을 개정한 당국의 뜻을 십이분 고려해서 행여 유감스런 일이 없도록, 학생들에게 잘 타일러주기 바랍니다. 하기야 한두 학교가 반대한다고 해서 어찌될 건 아니지만…….”
‘수미’ 씨의 탱자 미리는 자신만만한 듯이 고정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일본말을 잘 모르는 저학년 조무라기들은 더욱 벙어리가 되고, 또 학부형들의 회답 내용도 ‘수미’ 씨의 기대와는 거리가 멀었다. 조선어를 가르쳐달라는 측이 훨씬 더 많았다. 거의 8할이나 되었다. 특히 눈에 뜨이는 것은, 김인철 교사와, 뜻밖에도 황 교감 담당 반의 학부형들로부터 조선어 교수를 희망하는 의사가 두드러지게 많이 나왔다는 것이었다. 다 같은 환경 다 같은 조건 밑에 있으면서도 클라스에 따라 그와 같이 현격 한 차이를 드러냈다는 것은 찬반 어느 한쪽 편이 억지로 명령을 했거나 아니면 조작을 했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수미’ 교장의 탱자 머리는 더욱 조그맣게 보였다.
“학년에 따른 찬반의 차가 너무나 심하군요. 이건 다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황 교감은 대범한 태도로써 이렇게 말했다. 그건 자기 반이 그렇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일종의 발명이라기보다는 그렇지 않은 반에서는 필연 어떤 불순한 힘이 작용했으리라는 것을 넌지시 찔러보는 격이었다. 그의 눈이 더디게 깜작거리는 것은 신중을 기한데서 오는 생리적 현상이라고 생각되었다.
“결과는 그렇지만 이 문제에 대해서는 도 학무과의 의견을 물어서 결정하겠습니다.”
‘수미’ 교장은 이렇게 얼버무리면서 겨우 틀거지를 유지했다.
이러한 일들에 대해서는 학생들에겐 일체 비밀을 지키게 되어 있었지만 어디서 말이 새었는지 한입 건너 두입 격으로 소문은 이내 좍 퍼지고 말았다. 동시에 선생들 사이에서도 이상한 공기가 떠돌았는가 하면, 학생들 간에서도 심상치 않은 분열이 싹트기 시작했다.
“피·…·졌지? 코야!”
조선어 교수를 가장 열렬히 반대한 6학년 ‘야마가와’ 선생 반 애들을 보면 5학년 교감 선생 반 애들이 곧잘 놀려댔다. 심한 애들은 ‘느근(너희들은) 일본 학교 가거라!’고까지 빈정거렸다.
그래서 내선 일체를 표방하고 취해진 ‘국어 상용’ 문제는 결과적으로는 조선인 학생들간에 뜻하지 않았던 분열만 조장하는 격이 되고 말았다.
김인철 교사는 그것을 슬퍼했다. 두려워했다. 그리고 제 겨레의 말조차 못 가르치게 된다면 굳이 교원으로서 남아 있을 흥미도 의의도 없다고 생각했다.
부임 이후 열심히 적어오던 그의 일기장에는 그러한 사연들이 상세하게 적혀졌다. 복자도 많았다. 비단 그런 문제만이 아니라, 일제의 식민지 교육정책 전반에 관한 비판적인 소감도 많았다.
김인철 교사는 그러한 일들을 그저 일기장 따위에 적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않았다. 만족할 수 없었다. 드디어 그는 엉뚱한 생각을 하였다.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혼자서만 그럴 것이 아니라, 동지들을 모아보자는 엄두를 내었다. 그래서 ‘조선인 교원 연맹’ 같은 것이라도 만들어볼 궁리를 했다.
그는 곧 자기가 아는 몇몇 친구들에게 그러한 내용의 편지를 내었다.
그러나 거기에 대한 회답이 오기 전에 경찰이 먼저 들이닥쳤다. 두 사복형사가 학교에 나타났다. 수업 도중에 그는 직원실로 불려가고, 이내 가택수색 ―그가 거처하는 숙직실 안의 수색이 시작되었다. 몇 권의 책과 일기장, 그리고 친구들에게서 온 편지와 쓰다둔 원고 부스러기들을 가려내었다. 불온하다는 것 이리라.
가택 수색이 끝나자, 김인철 교사는 경찰이 타고 온 택시에 실려 T국민학교의 교문을 떠났다. 담당 반 학생들과는 물론이고, 어리둥절해하는 동료들과 인사조차 나눌 새가 없었다. 워낙 갑작스런 일이라 별로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올 것이 왔구나 싶을 따름이었다. 다만, 직원실 앞에 세워져 있던 택시 곁에 모여서 신기롭게 구경들을 하고 있던(그들 가운데는 택시를 처음 보는 애들이 많았다.) 학생들 틈에서 자기와 펀뜻 눈이 마주친 굴젓눈이 소년의 애처로운 모습이, 흔들리는 차 안에서도 언제까지나 머리에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는 애처로운 소년의 표정 속에서, 언젠가 ‘야마가와’가 ‘조선말을 한 건 틀림없지 ?’하고 윽박을 때 ‘하이’라고 발음하던 그때의 눈물겹던 얼굴을 다시 찾으려고 했다.
김인철 교사가 연행된 곳은 그의 임지인 경찰서가 아니고, 뜻밖에 그의 고향인 경찰서였다. 고등학교 때부터 그의 얼굴을 잘 알아보던 정사복들이 숫제 환영이라도 하듯이 그를 맞이했다. (고등학교 시절에 그는 ‘스트라이크’ 일로 해서 두 번이나 거기에 끌려간 일이 있었다.)
“요새는 U에 가서 활동을 한다지?”
고등학교 학생들 사이에서 ‘사탄’이란 별명으로 불려지고 있던 검도 4단의 한 형사가 먼저 징글맞은 웃음을 던져왔다. 요즘 말하는 ‘무술 경관’ 같은 격의 인물이었다. 그래서 ‘활동’이란 말눈치부터가 욕을 좀 보이겠다는 으름짱으로 들렸다.
김인철 교사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날은 별다른 조사도 없이 감방으로 밀려들어갔다. 독방으로 처넣는 것을 보고서는 꽤 중죄로 다룰 모양이구나 싶었다. 틀림없이 ‘수미’나 ‘야마가와’의 일방적인 고자질의 탓이 아니면, 아마 자기가 낸 편지가 도중에서 압수됐으리라 추측되었다. 그러나 제일 염려가 되는 것은 역시 일기장이었다. 분한 나머지 무슨 소리들을 내갈겼는지 자기도 기억이 감감하였다.
식사는 예나 조금도 다름이 없었다. 개도 잘 안 먹을 시커먼 보리 곱삶이에, 용케도 썩힌 군내 나는 김치 잎사귀 그대로였다.
김인철 교사는 그래도 살아야 되겠기에 억지로 두어 술 꾹꾹 씹었다. 그러자 문득, 보리 곡식마저 호된 공출을 뺏기고, 어린것들과 함께 시래기 갱죽을 훌훌 마시고 있을 농민들의 처지가 떠올라서 더욱 목이 메는 것 같았다. 그의 고향도 수해가 잦은 낙동강 하류의 가난한 농촌이었다.
감방, 더구나 독방은 인간뿐 아니라, 문명과는 완전히 단절된 곳이었다. 10촉도 안 되는 노란 전등빛이 인간과 변기통을 내려다보고 있는 차디찬 널빤지 위에서 김인철 교사는 오래도록 같은 생각을 되풀이하고 있었다. ‘수미’, ‘야마가와’, 황 교감, 강이란 여교사, 굴젓눈이 소년과 그의 누나, 그리고 자기가 이렇게 된 줄은 깜빡 모르고 있을 고향의 가족들·…·분하고 슬픈 생각이 꼬리를 물어 쉬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도 이슥했을 때였다. 그런 이슥한 시간에 문간 쪽이 별안간 부산하더니 새 손님들이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말씨로 보아 일본 여자들인 듯했다. 어림에 육칠 명이 되어보였다. 그게 또 마침 김인철 교사의 곁방에 들었다.
그녀들은 감방에 들어와서도 계속 담당 순경을 향해 두덜거렸다. 함부로 해던지는 말투가, 아마 술집이나, 그런 데서 꽤 굴러먹던 여성들 같았다. 담당 순경과의 오고가는 말들을 종합해보면, 만주에 밀입국을 하려다가 붙들려 온 모양들이었다.
“내지(일본 본토)에서 못 살아 조선에 나왔고, 조선서도 살 길이 막혀 만주에 간다는데, 그것이 무슨 죄가 되어요? 그럼, 못 사는 사람들은 꼼짝말고 그대로 굶어죽으란 말인가요?”
말들이 아주 거칠었다.
‘이곳 ×찬 놈들보다 오히려 나은 편이군!’
김인철 교사는 씁쓸하게 웃었다. 숫제 동지라도 생긴 듯한 심정이었다.
아침이 되자 그녀들은 다소 불뚱이가 가라앉았는지, 담당 순경을 보고 농담조로 휴지를 더 청했다. (보통은 남녀를 막론하고 손바닥 반 너비만한 헌 신문지 조각을 한 장 아니면 두 장 정도 나눠줄 따름이었다.) 게다가 또 진짜 휴지를 달라는 것이었다.
“한 장씩이면 됐지 머. 진짜 휴지는 없고…….”
담당도 농으로 받았다.
“뭐라구요? 우리들이 남자들과 같은 줄 아세요? 쓰는 데가 두 군데란 말예요. 게다가 한 군데는 아무런 종이나 못 쓰잖아요?”
“쳇, 남자들은 둘이 아니건데!”
담당 순경도 약간 기분이 이상했던지 줄곧 킥킥거렸다.
“고까짓 것들도 ××인가요? 성냥개비 하나도 잘 못 ×어가는 걸 가지고서!…….”
농담과 응석이 겹친다.
“그래, 주지 주어. 보드라운 건 없으니까 이걸로 쓰시구려.”
담당은 여감방 앞까지 다가오는 모양이었다.
조반이 끝나자 이내 불려나간 일녀들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아마 그대로 훈계방면이 된 모양이었다.
구류간은 다시 잠잠해졌다. 이따금 듣기 힘든 신음 소리가 들려올 뿐이었다.
“신사적으로 하라면 신사답게 응해줘야지!”
사흘째 되는 날 김인철 교사는 보통 심문 장소가 아닌 무도장으로 안내되었다. 본관에서 조금 떨어진, 서원들이 검도나 유도 연습을 하는 널따란 홀이었다. 한가운데 임시로 깆다둔 듯한 테이블이 하나 놓여 있었다.
김인철 교사는 그 앞에 꿇어 앉히었다. 반성을 해보라는 것이다. 그러나 새삼 반성할 아무것도 없었다. ―부임 인사를 조선말로 한 것, 동방요배를 형식적인 것이라고 말한 것, 자기가 맡아 있는 2학년 학부모들이 전교를 통해서 제일 많이 조선어 교육을 희망해왔다는 사실 등―그들이 말하는 소위 일련의 항일(抗日) 행위에 대해서는 이미 사실대로 말했다. 그 밖에 일기장에 쓰인 여러 가지 민족적인 불평도. 다만 교원 연맹에 대한 그들의 터무니없는 억측만은 시인할 수가 없었다.
‘사탄’과 또 한 형사는, 신문지를 한 장씩 둘둘 말면서 비죽비죽 웃었다.
‘어쩌려는 건가?…….’
김인철 교사는 한 번 흘끗하고는 내처 마룻바닥만 내려다보았다. 곧 두 팔을 뒤로 꺾인 채 의자 다리에 대고 묶였다. 팔목이 끊어져나가는 듯 아팠다. 이를 악물었다. 아픔과 각오가 겹친 표정이랄까?
드디어 그의 두 콧구멍에는 신문지 말은 것이 굴뚝처럼 깊게 푹 꽃혔다. 그리고 대롱처럼 된 신문지 끝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종이는 천천히 타올랐다. 매운 연기와 열기가 사뭇 코로 빨려들어서 폐에까지 들어갔다. 금방 상기된 눈알이 아닌가 싶은, 뜨겁고 굵은 눈물이 마구 흘러내렸다. 두 팔을 뒤로 묶인 위에, 양쪽 관자놀이 짬을 ‘사탄’의 억센 손아귀에 꽉 눌리었기 때문에 어찌해볼 도리가 없었다. 말 못 할 고통에 대한 신음만이 그에게 주어진 유일한 자유였다. 아니, 그 신음의 자유마저 침해되기 마련이었다. 눈썹이 타고 코 끝 살가죽이 익어가는 듯했다. 온 얼굴이 불에 데인 낙지처럼 뒤틀리었다. 눈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정말 야만스런 고문이었다. 김인철 교사는 거의 의식을 잃었다. ˙
“한 번 더 해드릴까?”
두 사내는 숫제 재미있는 듯이 웃어댔다.
김인철 교사는 어금니가 부서져라 악문 입을 끝내 열지 않았다. 그는 그들을 벌써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괜히 헛고생 말고, 인제 바른 대로 대지그래 ? 누가 시켜서 교원 연맹을 만들려고 했지?”
‘사탄’은 맹수처럼 기나긴 송곳니를 드러냈다. 벌써 사횰째 되풀이해온 질문이었다.
“혼자서 생각한 일이요.”
김인철 교사는 그 사흘째 되는 날도 똑같은 대답을 했다. 사실 그 이상 대답할 말이 없었다. 그것이 사실이었으니까.
“이 억보 같은 놈!”
김 인철 교사의 궁둥이에는 또다시 ‘사탄’의 우악스런 발길이 와닿았다. 웬일인지 고통은 어제보다 덜했다. 의자에서 풀린 다음, 어깨와 엉덩이에 다시 야구방망이의 세례를 받았다. 그러나 툭툭 하는 둔탁스런 육체의 소리만 겨우 귀에 잡히고, 그 육체의 한 부분이 죽어간다고만 느꼈을 따름이었다. 진작은 일어날 수도 없었다. 그 우리우리하던 눈조차 완전히 광채를 잃었다.
그날 밤 그는 하복부의 심한 고통과 더불어 심한 하혈을 했다. 마룻바닥이 이내 피로 젖었다. 치질로 다소의 출혈은 있어왔으나, 그렇게 옷 겉에까지 배어나오기는 그것이 처음이었다. 지나가던 일본인 담당이 창살 사이로 그것을 보더니, 어디서 낡은 방석 하나를 가져와 던져 넣어주었다. 그 방석에도 피가 배었다.
취침 시간이 가까웠을 무렵이었다.
“이 새끼, 왜 벌써 누웠어?”
독기가 풍기는 ‘사탄’의 목소리였다. 기척도 없이 어느 새 와서 안을 엿보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김인철 교사는 놀라지를 않았다. 상대가 ‘사탄’이란 것을 알자, ‘저것도 동포랄 수 있을까? 개보다 못한 놈!’하고 속으로 외쳤다. 울었다.
“빨리 일어낫!”
‘사탄’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
김인철 교사는 일부러 동작을 더디게 했다. 사실 또 빨리 일어날 기력도 없었다.
“깔고 있는 건 뭐야?”
어둑어둑한 불빛에서도 볼 건 다 보았던 모양이다. 그저 한악할 뿐 아니라, 냄새도 잘 맡았다.
“방석이요.”
김인철 교사의 무뚝뚝한 대답은 왜 묻느냐는 어투로 들렸다.
“뭐라구?”
‘사탄’은 당장 담당 순경을 불러 문을 열게 하더니,
“이리 가져왓! 건방진 녀석 같으니!…….”
감방 안으로 넙적한 손을 불쑥 내밀었다.
웬 거냐고 출처를 묻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고, 김인철 교사는 생각했다. 만약 물었더라면?·…·사람이 주더라고 들이댔을 것이다.
김 인철 교사가 잠자코 피에 젖은 방석을 꺼내주자, ‘사탄’은 덥치듯이 받아들기가 바쁘게 그것으로 김교사의 얼굴을 이쪽저쪽 마구 후려갈겼다. 툭툭 하는 소리만 컸을 뿐 그다지 아프진 않았지만, 김인철 교사의 얼굴은 눈만 빼놓곤 온통 끈적끈적한 피칠이 되었다. 시뻘건, 무서운 상이 되었다.
“이방은 소등(消燈)해요!”
‘사탄’은 담당 순경을 돌아보고 이렇게 말하고는, 어디로 핑 사라져버렸다.
김인철 교사는 얼굴에 묻은 피를 굳이 닦으려고 하지도 않고(닦을 물건도 없었거니와) 그대로 곧추 앉았다. 흡사 달마대사가 피를 뒤집어 쓴 듯한 모습이었다. 벌써 ‘사탄’만이 밉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백팔 번뇌가 그의 뇌리를 저몄을는지도 모른다.
‘사탄’의 당부대로 그의 독방만 곧 불이 나갔다. 그럴수록 먼 미광(微光) 속에 희미하게 비친 김인철 교사의 모습은 더욱 달마 대사를 닮아갔다.
― 1970년
2016년 12월 26일 읽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