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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대간도전기(제2부) ----완결편
2005년 8월 30일(화요일), 흐리고 안개 <18일째> 하늘재-포암산-대미산-작은 차갓재 무려 두 달여를 기다렸던 대간행이다. 문경에서 택시를 불러 하늘 재에 도착하니 아침 6시 50분이다. 집 떠날 때부터 허리와 무릎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씩씩하게 출발해 보자. 오늘 18구간 째 하고 있지만, 어느 코스든 처음 한 두 시간은 심한 오르막이다. 포암산 역시 한 시간을 계속 오르다 보니 정상이다. 오르는 능선 대부분이 잡목으로 우거져 있고 안개가 짙어서 시계는 거의 제로 수준이다. 포암산에서 대미산까지는 지루한 편이나 육산이기에 험한 길은 없다. 대미산 정상에서 문수봉을 간다는 단체 등산객들을 만났지만 곧 헤어졌고 꾀꼬리봉 갈림길에서 포항에서 왔다는 대간 종주자를 만났는데 무지무지 반갑다. 야영을 하며 갈 거라는데 역시 짐이 무겁다. 웬만하면 같이 가면 좋으련만, 속도에 자신이 없다며 날더러 먼저 가란다. 하긴 나도 처음엔 저랬었지. 할 수 없이 작별을 하고 대미산 정상 바로 아래에 눈물샘에서 라면으로 점심 해결하고 물도 보충하고 간단히 샤워까지 하고 나니 그렇게 상쾌할 수가 없고 더 이상 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다. 땀으로 젖은 옷도 빨아 입으니 정말 시원하다. 떠나기 싫은 눈물샘을 눈물로 고하고 작은 차갓재에 도착하니 오후 네 시다. 벌재까지 갈까 말까로 고민하다가 결국 안생달로 하산했고 마을입구의 술도가 집에서 민박을 했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곧바로 샤워부터 하고 빨래를 했는데, 아! 뿔싸! 바지에 휴대폰을 넣은 채 물에 담그고 말았다. 이런 낭패가~ 건조기를 빌려 열심히 말리는데 족히 한 시간은 걸린 것 같다. 예비 밧데리로 갈아 끼우니 통화가 되어 천만 다행이다. 충전기도 안 갖고 왔는데 이런 실수를 하다니, 산 넘어 산이다. 저녁은 그 집 식구들과 함께 하고 일찍 자리에 들었다. TV나 라디오도 없고 피곤하기도 하고 할 일이라고는 잠자는 일밖에. 2005년 8월 31일(수), 맑음 <19일째> 안생달-황장산-벌재-문봉재-저수재 생달 약주 도가를 운영하시는 주현덕 이장님 댁에서 아침까지 먹고 복분자 한 병을 기념으로 받고 어제 하산한 작은 차갓재로 향하는데 산길로 접어들자마자 길가에 엄청나게 큰 독사가 한 마리 있다. 길이가 두자는 족히 넘어 보인다. 저놈한테 물리면 곧바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하니 머리칼이 바짝 선다. 휴~ 내가 먼저 보았으니 망정이지 정말 아찔하다. 지난겨울, 황장산 바로 앞에 있는 황정산을 온 적이 있어 짐작은 했으나 바위산 특유의 난코스와 오르내림이 심하다. 또, 어제 산행으로 근육이 뭉쳐 있어 몸도 무겁기만 하다. 네 시간 정도 걸려 벌재에 도착하니 벌써 약간은 지쳐 있다. 이런 길을 어제 밤에 오려고 했다니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만약 무리해서 야간 산행을 했다면, 오늘 이 글을 못 썼을 지도 모르겠다. 하늘재에서 벌재까지 하루코스라고 하나 실제 걸어보면 상당히 무리라는 것을 걸어보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것이다. 벌재 왼편 조금 아래 황장약수가 있는데, 마침 포장마차가 있다. 잘되었다싶어 라면두개와 꼬치 두개를 사 먹었는데 오천원이란다. 너무 비싸 먹은 거 다 올릴 뻔 했다. 배가 불러서인지 문봉재 오르는데 많이 힘들다. 양말은 땀으로 젖어 가끔씩 바위 그늘이라도 나오면, 등산화 벗어 발을 쉬게 해준다. 주인 잘못만나 고생하는 내 발이 불쌍하다. 저수재에 다 왔는가 싶은 고갯길이 있어 헤매는데 지도에도 나와 있지 않은, 장구재라고 작은 팻말에 써 있다. 역시 지도는 모두 다 믿을 것은 못된다. 20분쯤 더 지나 저수재에 도착하니 휴게소가 있고 민박도 가능한데 더운물이나 따뜻한 방은 없단다. 그래도 택시를 부르지 않아도 되고 아침에 바로 출발할 수 있기에 얼마냐니까 7천원이란다. 오늘 땡잡은 거나 마찬가지다. 비록 사무실 바닥에 메트리스 깔고 이불 덮고 자는 거의 야영 수준이지만, 이것도 감지덕지 아닌가? 봄에 민박했던 빼재의 신풍령 휴게소와 너무 흡사하다. 찬물로 빨래하고 샤워도 하니 좀 살 것 같다. 캔 맥주 두병으로 목을 축이고 얻어온 복분자 까지 마시니 취기가 오른다. 저녁 식사 때, 아침밥 한 공기를 더 준비해 놓고 주인내외가 퇴근한 넓은 휴게소에 나 혼자 남으니 세상에 나밖에 없는 기분이 든다. 내일 아침은 죽령까지 가야 하는데, 일찍 일어나 밥 해먹고 출발해야 하겠지? 2005년 9월 1일(수), 맑음 <20일째> 저수령-시루봉-묘적봉-도솔봉-삼형제봉-죽령 대궐(?)만큼이나 큰 집에서 혼자 밤 보내고 05시 30분에 기상, 라면 한 그릇에 밥 한 그릇 말아 배 불리 먹고 아무도 없는 휴게소를 떠나 산길을 밟았다. 지하수라고는 하나 차갑기만 했지 녹내가 나는 것이 물맛이 영 아니지만, 죽령까지는 물 보충할 곳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물통에 물을 모두 채웠다. 촉대봉 오르면 내리막. 시루봉 오르면 배재. 싸리재 오르면 뱀재. 솔봉 오르면 또 내리막을 수 없이 하다보니 정말 힘들다. 오늘따라 날씨마저 무덥고 가시덤불과 잡목으로 길도 잘 보이지 않는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저수재에서 죽령코스는 좀 쉽고 전망도 좋다고 했는데 아닌 것 같다. 그나마 도솔봉 오르는 길과 정상은 경치가 좋다. 잡목과 수풀을 헤치고 걷다 보니 등산로에 땅벌들이 수 십 마리가 날고 있는 것을 모르고 지나치다가 발목에 한방 쏘였는데 무척이나 따갑고 아프다.(나중의 일이지만, 거의 일주일가량 부어 있었고 가려웠다) 겉옷과 속옷 모두 젖어 새 옷으로 갈아 입어보았지만 ,별로 소용이 없다. 그만큼 오늘 날씨가 더웠고, 약 4시간 가량은 사타구니가 불편해 어기적거리며 걸은 것 같다.삼형제 봉에서 죽령으로 내리는 길은 그야말로 하산 길의 정수를 보여주듯, 끝없이 내린다. 내린 만큼 또 올라야 하는 것을 알기에 휴! 좋아 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죽령거의 다 와서 오른편바위틈에서 샘물이 나는데 물맛이 최고다. 장수말벌들은 땀에 젖어 쉰 냄새가 나는 옷을 좋아하는지 쉬는 시간 내내 괴롭히더니, 샘물에서 상의와 수건을 빨아 입고 샤워를 하고 나니 기분이 상쾌 통쾌할 뿐 아니라 벌들도 달려들지 않는다. 시원한 기분으로 죽령에 도착하니, 주막집이 있다. 풍기 인삼동동주와 두부김치를 시켜 목도 축이고 요기도 하면서 피로를 풀어 본다. 죽령마루에는 숙박시설이 없기 때문에 단양대강이나 풍기로 가야 하는데, 난 택시를 불러 단양으로 향했다. 내일은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하니 산행은 힘들 것 같고 서울 백모님이나 찾아뵐까 하고 버스터미널 근처에 여관을 잡았다. 오늘따라 유난히 많았던 장수말벌들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겁만 잔뜩 먹었던 하루였던 것 같다.하긴 저놈들한테 재수 없게 쏘이면 죽을 수 도 있으니 겁도 먹을 만하겠지. 무슨 좋은 퇴치법 없으려나? 죽령대강택시 2만원 011-485-2911 이준국 씨 2005년 10월 1일(토), 하루 종일 비 <21일째> 죽령-연화봉-비로봉-국망봉-상월봉-늦은맥이고개-고치령 꼭 한 달 만에 다시 찾은 죽령이다. 남부와 중부권은 대부분 버스로 이동하였으나, 여기부터 강원도지역은 중앙선 야간열차를 이용하는 게 시간과 일정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번에는 개천절 연휴와 딸아이 시험기간이라 최대한 시간을 내기로 했다. 경주에서 12시06분에 출발하는 열차에 몸을 싣고 풍기로 향했다. 지난달 비로인해 중단했던 죽령-고치령 코스인데 오늘 날씨가 불안하다. 출발지인 경주는 비가 멎어가고 있었는데, 도착지인 풍기는 제법 많이 내린다. 03시 10분, 날은 어둡고 비는 내리고. 어쩐다? 오전 중으로 그칠 것이라는 예보는 있었지만, 산 날씨는 아무도 모른다. 시간도 보낼 겸 식사도 할 겸해서 역 부근의 야식 집에 들러 밥 한 그릇 먹고 나니 4시다. 비가 계속 내리고 있으나 죽령에서 천문대까지는 콘크리트로 포장이 되어 있어 빗길에 오르는데 큰 지장이 없을 것 같아 비 맞을 각오를 하고 택시를 불러 죽령에 도착하니 4시 50분이다. 사방은 칠흑같이 어두웠지만 우의를 입고 랜턴을 밝히며 출발했다. 오늘 고치령 까지 가려면 거리가 멀기에 더 이상 기다릴 수만도 없는 처지다. 한 시간여를 세찬 비를 맞고 오르니 여명이 밝아 오는데 이미 양말과 등산화는 젖어 버렸다. 고어텍스이든 방수화든 소용이 없다. 앞으로 10시간은 더 가야 하는데, 이런 낭패가 없다. 그렇다고 되돌아 갈 수 는 더욱 없는 일 아닌가? 비바람과 구름에 쌓인 비로봉에 오르니 9시다. 지난겨울에 왔을 때도 눈보라가 얼마나 세찬지 정상에는 잠시만 머물렀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이다. 조망도 없고 해서 서둘러 국망봉 쪽으로 방향잡고 가는데 혼자 이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생각에 서글픔마저 든다. 신발은 질척거리고 날씨는 춥고 비는 계속해서 내린다. 수시로 신발과 양말을 벗어 물기를 짜내고 신어보지만, 이내 다시 질퍽거린다. 잠시 비가 잦아드는 틈을 이용해 준비해간 김밥으로 점심 해결하고 떨리는 몸으로 다시 출발, 늦은맥이 고개에 다다르니, 구인사로 향하는 이정표가 훼손되어 있어 지도 없이 가기가 곤란하다. 아마 절에서 통행을 제한해서인가 생각되어진다. 날씨가 추워 쉬는 시간도 줄이고 해서이겠지만 고치령에 도착하니 15시가 넘어선다. 상당히 빨리 주파한편이다. 그런데 고치령에서 택시를 부르려니 전화가 안 된다. 특정지역에서 특정회사 것만 되는 경우가 여러 번 있었지만, 비도 오는데 낭패다. 혹시나 걸어가다 보면 통화가 될 수 도 있거나 차가오면 신세를 져야지 하는 마음으로 마을을 향해 하산을 하는데, 한 시간이 다 되어도 올라가는 차만 세대 지나가지 내려오는 차는 단 한 대도 없다. 결국, 걸어서 마을까지 하산한 셈이다. 이 삼거리 마을에는 민박집이 두 곳이 있는데 오늘따라 영업을 안 한단다. 정말 지긋지긋하게 복 없는 날이 되어버린 하루였다. 하는 수 없이 지나는 차로 순흥 으로 나가 여관을 잡고 젖은 옷과 등산화를 빨아 탈수 하고나니 피로가 몰려온다. 인근 식당에서 오징어 볶음으로 식사하고 남은 양념으로 밥을 볶아 내일 점심 도시락으로 준비하고 일찍 자리에 들었다. 오늘이 풍기 인삼축제를 한다는데, 11시간을 꼬박 비를 맞고 걸은 나에게는 먼 나라 얘기일 수밖에 없다. 내 몸이 내 것이 아닌 것 같고 내일 또 도래기재까지 가야 하겠기에. 2005년 10월 2일(일), 흐림 <22일째> 고치령-마구령-갈곷산-선달산-박달령-옥돌봉-도래기재 04시30분에 일어나 라면으로 아침 해결하고 풍기택시를 불러 고치령 마루에 도착하니, 06시 10분, 여명이 밝아 온다. 날씨는 잔뜩 흐렸지만, 비는 오지 않고 바람도 선선해 어제 아침에 비하면 천국이다. 고치령 중턱에서 내려오는 택시가 있어 혹시 대간하는 사람 태워주고 오냐니까 맞다 고한다. 나보다 속도가 느린 사람이면 중간에 만날 수 있겠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처음부터 속도를 내 봤지만, 끝내 추월하지 못했다. 나중에 선달산 근처에서 단체 등산객들을 추월했는데 앞서간 사람은 젊고 얼마나 속도가 빠른지 도저히 따라 갈수 없는 사람이란 얘길 듣고 더 이상 속력을 내지 않기로 했다. 마구령까지는 비교적 쉽게 진행했으나, 갈곷산과 선달산은 경사가 심해 힘이 들었다. 선달산 정상부근에서 도시락으로 점심 해결하고 박달령에 이르러 산신각 옆의 휴게소에서 양말과 등산화를 벗고 짧은 휴식을 취했다. 박달령 북편 100미터 아래쯤에서 식수 보충하고 나니, 박달령에서 하산한다는 단체 등산객들이 내려온다. 작별을 고하고 다시 혼자 도래기재까지 산행, 도착하니 4시가 넘어선다. 표지판에 영월방면 2키로 지점에 금정민박이라는 번호가 있어 전화를 해보니 가능하단다. 참으로 다행이다. 역시 궂은날이 있으면 맑은 날도 있는 법, 차를 보내달라고 하니 잠시 후차가 와서 민박집에 도착하니 간이 휴게소가 딸린 식당이다. 샤워시설은 10미터, 화장실은 20미터쯤 떨어져 있어 불편했지만, 방이 따뜻하고 할머니 인심도 좋고, 무엇보다 택시를 불러 멀리 가지 않아도 되기에 시간과 경비를 절약할 수 있어 좋았다. 민박은 2만원이지만 저녁밥 잘 먹고, 점심도시락으로 김밥을 부탁하니 해주시겠단다. 확실히 오늘은 어제보다 행복한 날이다. 참고로 춘양택시를 부르면 2만원이다. 왕복차비를 받아야 한단다. 2005년 10월 3일(월), 흐림 <23일째> 도래기재-구룡산-곰넘이재-신선봉-깃대배기봉-태백산-사갈령-화방재 이번 구간은 중간 탈출로가 없을뿐더러 식수 구하기도 힘든 곳이라 혼자 산행하기에 많이 망설여졌지만, 달리 방법이 없고, 또 이제껏 혼자도 잘 해왔기 때문에 그대로 강행하기로 했다. 출발시 물 세통과 2% 음료수 한통을 짊어지니 배낭이 묵직하다. 주인차로 도래기재까지 올라 06시경에 구룡산을 향했다. 이번산행의 일정이 모두 만만치 않아 시간과 거리 모두 내 체력을 시험하고 있다. 하루 10시간은 기본이고 거리도 25키로 내외로 짧지 않지만, 가는데 까지 갈 작정이다. 곰넘이재 지나 방화선이 끝나고 신선봉 근처부터는 줄곧 키 낮은 관목과 산죽으로 온종일 산죽 밭만 헤맨 기분이다. 물을 구하려면 계곡 아래까지 내려가야 하는데, 처음부터 많이 짊어지고 왔기 때문에 물은 충분했다. 오지라서 그런지 태백산까지 8시간을 오는 동안 한 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천제단이 있는 태백산에 도착하니, 개천절을 맞아 가족단위의 등산객들로 붐비고 있고, 천제단 안에는 점을 보는 사람들로 꽉 차 있었다. 정상에서의 조망은 정말 좋았고 날씨도 괜찮다. 정상에서 화방재까지도 2시간이나 소요돼 오늘도 많이 걸은 편이다. 화방재에는 민박, 식당, 매점이 한 건물 안에 있어 쉬어가기 좋았고 저녁때 소주도 한 병마셨다. 쉬려고 방엘 들어와 보니 세멘트에 사는 작은 개미들이 벽과 장판 밑에 수천마리도 넘는 듯 했다. 방을 바꿔 달랬더니 다른 방도 마찬가지라며 살충제를 준다. 완전 개미들의 천국을 개미지옥으로 만든 나쁜 인간이 된 기분이다. 오늘밤에는 비가 조금 온다는데 제발 아침에는 날씨가 좋게 되기를 기원하며 잠자리에 든다. Z~Z~Z 2005년 10월 4일(화), 새벽에 비온 후 흐림 <24일째> 화방재-함백산-두문동재(싸리재)-매봉산-피재 계속종주 4일째다. 몸은 많이 피곤하고 무리가 되었지만, 오늘도 출발하기로 했다 .밤새 비가 왔지만, 아침에는 그쳐 그나마 다행이다. 식당 주인을 깨워 아침을 먹고 점심 도시락까지 준비해서 출발했다. 등산로 곳곳이 비에 젖어 있고 수풀도 헤쳐 나가야 하기 때문에 스패츠를 신고 스틱으로 빗물을 털어 가며 함백산을 향했다. 수리봉 까지는 옷을 적시며 올랐지만, 만항재부터 길이 넓어 더 이상 젖은 옷 걱정은 안했다. 함백산 정상은 바람이 무척 강하게 불어 오래 있지 못하고 바로 내려섰다. 어제 태백산도 그랬지만, 정상부근의 주목 군락지가 한 폭의 그림 같았고 단풍도 아름답다. 식당주인말로는 오늘도 대간선상에서 물을 구할 수 없다기에 또 많이 짊어지고 왔는데 사거리 안부 80미터 아래쪽에 샘물이 있다. 은대봉 정상에서 도시락을 먹는데, 추워서 강시 되는 줄 알았다. 금대봉지나 매봉산에 이르니 풍력발전기 5대가 있었는데 TV에서나 봤지 실물은 처음인데 크기가 굉장하다. 프로펠러 직경이 50미터라는데 2기만 가동되는지 쉭쉭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또 서쪽 면으로는 온통 고랭지 채소 밭이라 매봉산이라기보다 매봉밭이 더 어울리겠다. 오늘은 비교적 거리도 짧고 험한 곳이 없어 일찍 피재에 도착했다. 7시 출발, 3시에 도착했으니,8시간만 산행을 한 셈이다. 피재에서 택시를 불러 태백으로 내려 왔는데 5000원 거리다. 내일은 댓재까지 가려면 일찍 출발해야 되기에 여관에 짐 풀고 저녁을 먹고 김밥 집에 점심도시락까지 준비 한 뒤 자리에 든다. 항상 먹을거리와 잠자리, 빨래가 문제이다. 계속종주의 문제이기도 하고 매력이기도 하다. 2005년 10월 5일(수), 맑음 <25일째> 피재-건의령-푯대봉-덕항산-큰재-황장산-댓재 태백역 앞에 기사식당은 24시간 영업한다기에 편한 마음으로 저녁 식사 후 아침 예약을 해뒀다. 도시락은 옆의 분식집에서 준비하고 자리에 들었다. 아침 6시에 식사하고 택시로 피재 도착하니 7시 10분이다. 조금 지체되기는 했지만, 건의령을 향해 출발했다. 높은 산이나 봉우리는 없었지만, 대간 특유의 오르내림은 심했고 푯대봉까지는 표지기가 있었지만, 덕항산, 큰재까지는 전혀 없다. 푯대봉 지나 1161고지까지 등산로 보수작업을 하시는 몇 분을 만났는데, 나같이 산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여간 고마울 수 가 없다. 덕항산 지나 환선봉에서 점심식사하고 있는 단체 등산객들을 만났는데 다른 사람들 못 오르게 봉우리 꼭대기에 둘러 앉아 보기에 좋지 않다. 몰상식이란 이럴 때 쓰는 말이리라. 큰재 못 미쳐 고랭지 채소밭을 지나는데 버려진 배추 한 포기를 먹어보니 맛이 너무 좋다. 물도 많고 고소하기도 하고 배추 먹고 맴맴이 아니고 힘낸다. 오늘 구간이 좀 길어 댓재에 도착하니 6시로 어둑어둑해진다. 휴게소에 들러 막걸리 한 통과 파전을 시키고 민박을 물어보니, 25,000원이란다. 오늘까지 계속종주로 너무 무리한 것 같아 내일은 하루 쉴까 하고 생각하니, 이왕 쉴 거면 동해로 내려가 바다구경이라도 하는 게 좋을 듯싶어 택시를 물어보니 3만원한단다. 잠시 망설여지는데, 음식솜씨나 말투가 거슬려 동해로 갈 것으로 굳히고, 택시를 부르려 하는데 주인아저씨로 보이는 사람이 봉고가 있으니 태워 준단다. 택시 기다리는 시간을 줄일 수 있어 좋다싶었는데 가격은 3만원 똑같단다. 그러면 그렇지. 세상에 이유 없이 친절을 베푸는 사람, 과연 얼마나 있을까? 날은 컴컴하고 피곤도 하여 봉고로 동해시로 내려와 여관을 잡고 짐을 풀었다. 그래, 내일은 아무 생각 없이 하루 푹 쉬자. 너무 무리해서 건강을 해치면 좋을 게 없지.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말, 개구리가 더 멀리 뛰기 위해 몸을 움츠린다는 말, 등의 미사여구로 나를 위로해 본다. 2005년 10월 7일(금), 비 <26일째> 댓재-두타산-청옥산-고적대-이기령-원방재-백봉령 오전 5시에 택시를 불러 댓재로 출발, 30분 후에 도착했다. 사방은 어둠에 싸여있고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 있다. 비가 온다는 예보는 있었으나, 두타산을 향해 한 시간쯤 올랐을까? 벌써 후두둑 내리기 시작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힘들더라도 어제 이 구간을 지나고 오늘 쉴 것을. 이젠 후회해도 소용없다. 30여분 간을 불을 밝히고 올랐고 두타산, 청옥산, 고적대까지 오르는데 비와 구름으로 조망은 별로다. 날씨만 좋다면, 백두대간 중에서 이 구간이 가장 아름답다고 하지 않던가? 참으로 안타깝다. 오른쪽 낭떠러지 아래로 무릉계곡이 있고 멀리 동해 바다가 보일 텐데. 그래도 간혹 구름 사이로 보이는 무릉계곡은 참으로 아름다웠지만, 이내 구름이 가려 버린다. 첫날 11시간의 우중산행 경험이 있어 처음부터 스패츠를 착용했으나, 5시간을 못 견디고 양말이 젖어 버렸다. 등산로는 잡목과 싸리나무, 키 작은 소나무 등으로 매우 힘들었고 빗물로 인해 더욱 어려움을 겪었다. 특히 이기령, 원방재 지나는 길이 더 나빴다. 점심때는 비 젖은 옷을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비가 잠시 멎은 틈을 이용해 원방재에서 식사를 했다. 하루 종일 비가 내렸고 양말의 물기는 계속 짜가며 진행했다. 첫 날과 거의 같은 상황이었는데 한 가지 다른 게 있다면 휴대전화기를 바지 주머니에 넣지 않고 배낭 앞주머니에 넣는 바람에 비에 젖어 배터리가 방전되었는지 통화가 안 된다. 혹시 무슨 사고라도 생기면 보통 낭패가 아닐 수 없다. 부지런히 걸어 백봉령에 도착하니 고개마루 동해 쪽으로 포장마차가 있지 않은가? 역시 사람 죽으라는 법은 없는 듯하다. 주인아주머니와 남자손님 2명이 있었고 난 마른 옷으로 갈아입은 뒤 전화기가 고장 나서 그러니 택시를 불러 줄 수 있냐고 부탁하자 남자분이 동해시로 갈 거면 태워 주겠다고 한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물에 빠진 생쥐가 지푸라기 잡는 심정이 이럴까? 난 또 비에 젖은 쥐띠 생 아닌가? 차를 얻어 타고 동해까지 무사히 올 수 있었지만, 오늘도 무지하게 고생 많이 한 날이다. 이번에 대관령까지 갈 계획이었지만, 너무 힘들어 여기서 접어야겠다. 심신이 지쳤고 처자식에게 미안한 마음도 있고 내일 경주로 내려가야겠다. 다음 구간은 다음에 생각하기로 하자. 그래도 이번에 꽤 많이 온 것 같다. 6구간을 했으니 말이다. 2005년 10월 22일(토), 흐린 후 맑음 <27일째> 백봉령-생계령-석병산-두리봉-삽당령 0시06분 야간열차로 경주에서 출발, 동해시에 06시 30분에 도착했다. 영주에서 환승할 때만해도 비가 조금씩 내렸는데 다행히 동해시는 비는 오지 않고, 잔뜩 흐려 있다. 밤새 내렸는지 청옥산과 두타산 정상 부근에는 첫눈이 하얗게 산을 덮었다. 역 앞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택시로 백봉령에 도착하니 07시 40분이다. 눈이 내린 관계로 산행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으나 그래도 생계령까지는 괜찮았다. 지도에 카르스트 지형이라고 표기된 곳에는 움푹 파인 곳이 여럿 있는데 정말 특이하다. 낙엽이 쌓인 위에 눈이 내려 내리막에서는 꽤 미끄럽고 발목이 여러 번 삐끗거리지만, 기분은 색다른 게 좋다. 백봉령 바로 앞에 있는 자병산은 시멘트 원료로 쓰이는 돌 채취로 산봉우리가 잘려 나가 산의 모습을 잃어가고 있어 보기에 안타깝다 생계령부터 삽당령까지는 등산로를 가로막는 산죽과 덤불에 쌓인 눈이 녹기 시작하면서 옷과 등산화를 적셔 온다. 스패츠를 하고 스틱으로 물기를 털어가며 고군분투 진행했으나, 얼마 못가 다 젖어 버리고 만다. 몇 시간을 그렇게 걸었는지 나중에는 발이 문제가 아니라 손목과 손바닥이 아파 온다. 차라리 비를 맞고 가는 게 더 나을 듯싶다. 등산하는데 스틱은 여러 모로 효자노릇을 하지만, 산죽 때문에 두 손 두발 다 들고 나머지 하나 있는 것 마저 들어 버릴 정도였다. 그래도 한 가지 좋았던 것은 마루금은 흰눈이 덮인 겨울이고, 산 중턱 아래는 단풍이 울긋불긋한 가을이니, 두 계절을 동시에 느끼며 걷는 산행이란, 고생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받고도 남음이 있다. 다 젖은 채로 삽당령에 도착하니 천막을 치고 할머니 한 분이 영업을 하신다. 따끈한 생강차 한잔을 마시고 임계 택시를 불러 하산, 여관에 투숙하는데 젖은 옷과 등산화를 세탁해 말려 준단다. 이렇게 고마울 수가~ 주변 식당에서 저녁 먹고 분식집에서 내일 점심으로 김밥 준비한 후 오늘 하루를 마무리한다. 2005년 10월 23일(일), 맑음 <28일째> 삽당령-석두봉-화란봉-닭목재-고루포기산-능경봉-대관령 어제 내려온 택시로 삽당령에 아침 06시 20분에 도착해 산행을 시작했다. 약간 어두웠으나, 임도를 따라 20분정도 오르니 날이 밝아오고 이내 산길로 접어들었다. 석두봉 오르는 길이 가파르기는 해도 등산로는 대체로 좋은 편이다. 오늘도 산죽지대는 많아도 눈이 녹아 어제보다는 훨씬 쉽다. 화란봉에서 급경사 내리막을 거쳐 닭목재에 도착하니 농산물 창고로 보이는 건물 앞에서 공사하는 사람 몇 명이 있을 뿐, 민가나 식당, 식수는 없다. 식수가 부족해도 걱정이 덜 되는 것은 음지 곳곳에 눈이 쌓여 있어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더위를 많이 타고 물을 엄청 마시는 내게는 여름보다 겨울산행이 좋을 수 있다. 닭목재 조금 더 지나 양지 풀밭에서 점심을 먹고 맹덕 한우 목장이란 곳을 지나는데, 지금은 폐쇄된 듯, 소도 사람도 보이지 않는다. 고루포기산 다다르기 직전의 봉우리 오르기가 급경사라 좀 힘들지만, 여기만 오르고 나면 임도를 따라 가기에 쉬워진다. 임도를 조금 걷고 있는데 뒤에서 키 작은 아저씨가 뛰어 온다. 어디서 오느냐고 물으니, 새벽 4시에 백봉령에서 출발해 여기까지 왔단다. 윽! 나 기절할 뻔했다. 하루에 40킬로 이상을 걷다니?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작은 고추가 맵다더니, 키 큰 나는 이게 뭡니까? 능경봉은 한참을 내려가다 다시 한참을 올라가게 되어 있어 힘들고 지친다. 능경봉에서 대관령까지는 완만한 내리막인데 오늘은 바람이 무척 세게 분다. 옛날 휴게소는 영업을 하지 않아 바람 피할 곳도 없고 해서 횡계 택시를 부르려는데 차가 한대 서면서 같은 방향이면 타란다. 얼마나 고맙던지 얼른 올라타고 얘기를 나누다보니 올 7월에 백두대간 종주를 마쳤단다. 내게는 선배님이셨고, 그래서 등산배낭을 맨 사람에게 호의를 베풀 아량이 있었나 보다. 횡계까지만 가려고 했는데 원주까지 가신다기에 아예 원주까지 신세를 졌다. 고속도로가 밀려 중간에 국도로 빠져 두어 시간동안 대간종주에 대해 여러 얘기를 나눌 수 있어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과부 심정은 홀아비가 안다고 산행하는 사람의 고충은 산행을 해본 사람만이 알리라. 25일은 군 생활 당시 소대장이었던 분이 연대장으로 취임을 하기에 화천에 가야 하기 때문에 일단, 내일은 경주로 가고 며칠 후에 다시 올 예정이다. 2005년 10월 29(토), 맑고 바람 셈 <29일째> 대관령-선자령-전망대-매봉-소황병산-노인봉-진고개 약 일주일 만에 다시 시작한 산행은 지난번처럼 경주에서 밤차로 출발해 강릉역에 도착하니 07시 20분이다. 집에서 준비해 온 김밥도시락이 여유가 있어 곧바로 택시를 타고 대관령에 도착하니, 07시 50분이다. 역시 지난번 하산 할 때와 같이 바람이 무척 세서 눈을 제대로 못 뜰 지경이다. 얼마나 바람이 세면 풍력 발전기가 10여기 건설되어 있고 지금도 계속 공사 중일까? 등산로는 산길이라기보다 차도로 되어 있는 곳이 많고 산길도 목초지와 함께 있어 노랫말처럼 목장 길 따라 산길거니는 기분이다. 곳곳에 계속 건설되고 있는 풍력 발전기 공사관계로 차량과 사람들의 왕래가 많다. 동해 전망대에는 포장마차처럼 매점이 하나 있는데 단체로 온 사람들로 붐벼 그냥 지나쳤다. 매봉 지나 소황병산 오르는 길에 습지가 있어 계곡물이 풍부해 여름에 오면 더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노인봉 대피소에서 산장지기 성량수씨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눴는데, 산행에 관한 한 특별한 인물임에는 틀림없다. 곡차 한잔 마시고 노인봉 정상에 잠시 올랐다가 곧바로 진고개로 향했다. 노인봉 대피소와 정상부근에는 무릉계곡에서 올라오는 사람들로 붐비고 있어 시끄러워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진고개 휴게소에는 많은 차량과 사람들로 꽉 차 있어 대간 길과 대조를 이룬다. 휴게소에서 민박집 전화를 소개받아 전화를 하니 금방 차를 갖고 왔는데 거리개자니라는 동네이다. 차량제공과 식사를 포함하기는 해도 하루 5만원이면 적지 않다. TV나 욕실이 딸려 있지 않아 불편도 하지만, 멀리 택시를 부르지 않아도 되기에 이것도 감지덕지다. 오늘 구간은 소황병산까지 목장지대로 되어 있어 사계절 언제 와도 좋겠지만, 푸른 초원이 바람에 넘실대는 여름이 더 좋을 듯하다. 2005년 10월 30일(일), 맑고 바람 셈 <30일째> 진고개-동대산-두로봉-응복산-마늘봉-약수산-구룡령 집에서 만들어온 김밥이 아직 남아있어 오늘 먹을거리는 준비하지 않고 일찍 출발했다. 아직 사방이 어두워 랜턴을 켜고 동대산을 오르는데 제법 가파르고 힘들었지만, 정상에 도착하니 멀리 동해에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언제나 신비로움과 희망을 주는 일출이기에 더 좋다. 숨을 고르고 물 한 모금 마시려는데, 아! 이런 일이! 수통을 민박집에 두고 왔다. 어쩐지 배낭이 조금 가볍더라니. 이걸 어쩐다? 여름 같으면 산행을 포기하고 식수를 택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겨울 턱 밑이니 어떻게든 해보려고 산행을 계속 하기로 했다. 죽으라는 법 없이 다행스럽게도 풀줄기 밑 둥에 맺혀 있는 서리꽃인지 뭔지 얼음이 있어 그걸 먹으며 오전 갈증을 달랬다. 보온병에는 따끈한 차가 좀 있었지만, 오후를 대비해 아꼈고 얼음이 있는 곳에서는 최대한 많이 먹었다. 두로봉 정상 오르기 전에 대간 종주한다는 일행 3명을 추월했는데 진고개에서 나보다 한 시간 빨리 출발했다니 내 걸음도 느린 편은 아닌 듯하다. 만월봉, 응복산, 마늘봉 모두 경사가 가파르고 쉽지 않다. 허긴 어느 한 구간 특별히 쉬운 곳도 없다. 더구나, 처녀 시집가는 날 등창난다고, 식수를 빠뜨리고 온 오늘구간은 대간선상에서 물을 구할 수가 없다. 보온병의 차를 아껴아껴 마시며 구룡령에 도착하니 휴게소는 폐쇄되어 영업을 하지 않고, 도로변에 아낙 세 명이 농산물을 팔고 있다. 대간도 중 하늘재에서 만난 이용찬님의 도움으로 명개리에 있는 승희민박집 전화번호를 알아내 전화를 하니 어제와 같이 차량이 올라오고 민박 가격도 같다. 길가 아낙네에게서 산 옥수수 막걸리 한통을 저녁 식사 때 다 마시고 거나해질 때, 잠자리에 든다. 강원도에 오면, 꼭 옥수수 막걸리를 마시는 것은, 옛날, 춘천 큰어머니 집에서 담그신 술맛을 잊지 못한 향수 때문인가 보다. 2005년 10월 31일(월), 맑고 바람 셈 <31일째> 구룡령-갈전곡봉-연가리골샘터-조침령 승희민박에서 아침을 먹고 도시락은 밥과 김을 따로 준비해서 출발, 구룡령에 07시 20분에 도착했다. 오늘구간은 거리도 다소 짧고 큰 산이나 봉우리가 없어 좀 여유도 부리고 쉬우리라 생각했는데, 그렇지만도 않았다. 피재에서 댓재 구간이 오르내림이 심해 피곤했는데 오늘이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 아흔아홉 고개가 있다면, 여기가 아닐까 할 정도로 수도 없이 오르내리느라 지친다. 또, 표지기나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도 없어 지루하게 느껴진다. 월요일이라 예상은 했지만, 7시간 넘게 산행하면서 산에서 단 한사람도 만나지 못했다. 낙엽이 발목까지 쌓여 있는 곳이 많아 자주 삐끗거리기는 했으나, 앙상한 가지사이로 보이는 조망은 좋은 편이다. 대관령부터 연일 계속되는 강한 바람에, 땀나기가 무섭게 식어버려 춥기까지 하다.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불어주길 고대하고 지금은 바람 안부는 따뜻한 양지를 그리워 하니 사람 변덕이 이렇다. 옛 조침령 이라 표기된 곳을 찾지 못하고 지나치는 바람에 정작 조침령에 도착해서는 여기가 맞는지 아닌지 잠시 헷갈렸으나, 조금 더 올라가니 조침령이라 쓰인 비석이 있어 여기서 끊기로 하고 예약해둔 조명호씨 민박집에 전화를 하니 곧 차를 갖고 고개 마루까지 올라왔다. 민박집에 도착하여 빨래하고 샤워하고 짐 정리하니 홀아비가 따로 없다. 대간하는 사람들은 여기서 끊거나, 단목령에서 끊을 경우 조명호씨에게 연락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쇠나드리에는 펜션이나 민박이 몇 있기는 한데 차량제공을 해주지 않는다 하니 여기로 할 수밖에. 집:033-463-7790,9361 HP:011-9793-7790 참고로 부인의 주먹밥 도시락은 일품 이었다 .잘 먹었습니다. 2005년 11월 1일(화), 흐리고 바람 <32일째> 조침령-양수 발전소-단목령-점봉산-망대암산-암릉지대-한계령 민박집 차편으로 아침 06시 30분경에 조침령에 올라 산행을 시작했다. 30여분 오르니 동해 일출이 장관이다. 늦가을 청명한 날씨에 연일 일출을 볼 수 있어 좋다. 오늘도 바람이 굉장하고, 어제는 감기기가 있었는데 따뜻하게 잔 덕분에 더 나빠지지는 않았다. 다만, 계속되는 산행으로 발목과 무릎은 아픈 상태이다. 산에서 웬 굴착기 소리가 들려 살펴보니 숲 사이로 양수발전소 저수지가 보인다. 나중에 점봉산 정상에서도 잘 보였으나, 그냥 지나쳤다. 단목령까지 3시간 정도 걸렸으니 빨리 온 셈이다. 단목령 이정표 다다르기 100여 미터 전 계곡 아래에는 풍부한 물소리가 시원스럽다. 점봉산 오르는 길에 등산로 정비하시는 분들과 마주쳤고 몇 마디 나눈 후 다시 오른다. 바람이 좀 잔잔한 곳에서 젊은 새댁이 싸 준 주먹밥을 먹는데 정말 맛있다. 남설악이라 불리는 점봉산 정상에는 바람이 강하여 오래 머물지는 않았으나, 맞은편에 바라다 보이는 설악산의 웅장함에는 경탄과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내일은 저 품에 안길 수 있겠지. 망대암산 까지는 예상소요 시간보다 빨리 진행했으나, 한계령까지 내려오는 길은 쉽지가 않다. 암릉과 위험구간을 여러 번 오르내리는데 그만 외쪽 발목을 접질리고 말았다. 3일간을 걸어오면서 몇 번 삐끗거리기는 했으나, 이번에는 완전히 젖혀져서 한동안 움직이지도 못했다. 아! 이래서 혼자 하는 산행이 힘들고 위험하다는 것이구나.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다. 다시 일어서려는데 발이 안 떨어진다. 스틱과 한 쪽 발로 어렵게어렵게 절뚝거리며 하산하는데 장애인이 따로 없다. 필레약수로 가는 도로까지는 내려 왔는데 한계령 휴게소까지는 작은 능선을 하나 더 넘어야 한다. 발도 아프고 하여 차도를 따라 한계령까지 갈까 하다가 끝까지 마루금을 밟고 싶어 끊어진 등산로를 찾는데, 쉽지 않다. 도로 양쪽 절개지에 철망이 쳐져 있고 약수터 방향 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산으로 오르는 절벽이 있는데 처음에는 표지리본과 길이 희미하게나마 산죽 사이로 있지만, 조금 오르니 없어져 버렸다. 이 구간은 사람들이 많이 안 다니는지 오르는 길도 내리는 길도 뚜렷하지가 않아 주의해야 한다. 정말 어렵게 휴게소까지 도착해 막걸리 한 통 마시고 차편을 알아보니 오색까지 가는 버스 편이 있지만, 시간이 정확하지 않아 10여 분전에 미리 도로에서 기다려야 한다. 나도 오늘 9분전서부터 기다렸는데 10분이 지나도 차가 오지 않아 매표소에 가서 확인해 보니 12분 전에 통과했단다. 20분이나 추운바람 맞았는데 화가 난다. 다행히 빈 택시가 있어 오색까지 올 수 있었는데 콜택시는 15,000원 받는단다. 긴장이 풀렸는지 한걸음 걷기도 힘들고 발목은 퉁퉁 부어오른다. 경험상 내일은 산행이 힘들 것 같다. 정상적인 몸으로도 힘든 대청봉과 공룡 능선 구간이 아닌가? 그럴 바에는 경주로 내려가서 방폐장 유치 주민투표를 해야겠다. 아무튼 자고 일어나 보자. 여기서 마무리를 못하면 11월 15일 이전에 다시 시간을 내기도 힘들고 아쉽기는 하지만, 무리를 할 수 도 없는 노릇이다. 되는대로 하는 수밖에. 2006년 10월 14(토), 맑음 <33일째> 한계령-갈림길-중청봉-대청봉-희운 각-공룡능선-마등령- 비선대 작년 11월1일, 발목부상이 악화되어 중단했던 대간 마지막 세 구간을 거의 일년 만에 다시 시작했다. 경주에서 강릉행 밤 열차로 출발, 강릉에 오전7시15분에 도착, 고속버스로 양양까지, 양양에서 시내버스로 한계령에 도착하니, 9시 30분이다. 잠시 머뭇거릴 시간도 없이 곧바로 산행을 시작했다. 표를 끊고 갈림길로 향하는데 마침 단풍철이고 토요일이라 단체로 산을 찾은 등산객들이 무척이나 많다. 배낭은 크게 무겁지 않아 속도감 있게 진행했다. 귀때기청 갈림길까지 한 시간만에 올랐고 ,끝청 중청 대청까지 네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원래 계획은 희운각 대피소에서 1박을 할 예정이었으나, 너무 많은 사람들로 인해 비박도 힘든 상황이다. 할 수없이 야간 산행을 각오하고 공룡능선을 오르는데 다행히 마등령 쪽으로 향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 편이라 조금은 안심이 된다. 어제 밤부터 잠을 못자고 계속 산행을 해서 피곤도 하고 지치기도 했지만, 오늘밤 잠이라도 자려면 죽으나 사나 설악동까지는 가야 한다. 미시령까지도 생각은 해 봤지만 ,혼자서는 무리이다. 험한 능선 길을 부지런히 걸어 마등령에 도착하니, 이미 캄캄한 밤이다. 랜턴을 꺼내 내려가려는데, 중고생 단체가 희미한 랜턴으로 하산을 망설이고 있고 ,날더러 함께 가자기에 앞장을 섰다. 30여명을 데리고 내려오는데 경사가 급하고 야간이라 여간 조심스럽지가 않다. 몇 번 다닌 길이라 해도 불빛에 의존해서 내려가기 때문에 속도를 낼 수 가 없어 매표소까지 오는데 거의 세 시간이나 걸려 10시가 다 된다. 너무 힘들어 설악동에서 잘까 하다가 미시령으로 접근하기 좋은 속초까지 나와 짐을 풀었다. 오늘 너무 무리를 해서 내일은 쉬어야 할 것 같다. 오늘 멀리서 기차로 오고 산행도 12시간을 넘겨 했으니 내 몸이 내 것이 아니다. 그래도 공룡능선을 넘어 올 때, 좌우로 펼쳐진 설악의 풍경은 감탄을 금치 못할 만큼 아름답고 짜릿했다. 바위 산행을 해 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적극 권할 수 있는 코스가 아닌가 한다. 2006년 10월 16일(월), 흐림 <34일째> 미시령-너덜바위-황철봉-저항령- 마등령-비선대 예상대로 첫날 너무 무리한 관계로 어제 하루 쉬고 오늘 아침 일찍 택시로 미시령으로 향했다. 마등령에서 시작하지 않은 것은 이 구간이 입산통제라서 할 수 없는 노릇이다. 아침 6시40분에 도착, 곧바로 철조망을 넘었다. 비가 왔는지 나무가 젖어 있고 날씨도 흐려서 조망은 영 시원찮다. 지도에는 두 곳으로 나와 있는 너덜지대는 곳곳에 여러 개가 있어 산행속도를 떨어 뜨릴뿐 아니라 가뜩이나 좋지 않은 발목에 신경이 곤두선다. 그래도 오르막 너덜은 좀 나은 편인데 황철봉 지나 내리막 지대는 많이 힘들고 속도도 느리다. 저항령 넘어오는 길도 만만치 않고, 그제 내려온 마등령 금강굴 구간도 다리를 피곤하게 한다. 비선대에서 소공원까지 평지 걷는 것도 지루하다. 내일 다시 미시령에서 시작해야 되기 때문에 속초로 나가 숙박, 저녁은 섭국이라는 걸 사 먹었는데 홍합 매운탕 같은 것이 맛이 좋다. 드디어 내일은 진부령 고개를 볼 수 있겠구나, 기대된다. 2006년 10월 17일(화), 흐림 <35일째> 미시령-상봉-화남재-신선봉-새이령-병풍바위-마산-홀리-진부령 백두대간 남쪽구간 마지막 날이다. 어제처럼 아침 6시 50분에 미시령 도착해서 휴게소 오른편 철조망을 넘어 상봉을 향해 오르는데, 마지막 날을 시샘하는지 바람이 보통이 아니다. 몸을 가누지 못 할 정도의 바람을 맞으며 한참을 오르는데 길가 샘터에 누군가 텐트를 치고 숙박을 한다. 날씨는 어제와 별반 다르지 않아 조망은 없다. 상봉 부근에는 구름까지 덮여 한치 앞도 잘 안보일 지경이고, 바람만 거세다. 상봉에서 신선봉 지나 한동안은 암릉 구간이라 밧줄 설치된 곳도 많고 좀 위험하지만, 암봉 지나면서부터는 위험구간은 없다. 암봉에서 병풍바위까지는 지도의 등고선 표기와 거리가 지형과 맞지 않아 잠시 헷갈리기도 했지만, 마산봉에 오르고 난 후부터는 탄탄대로만 남은 느낌이다. 마산봉에서 나와 마찬가지로 오늘로 대간종주를 마친다는 남자 두 명을 만났는데 어제 저항령 부근에서 만났던 분 들이라 여간 반갑지가 않다. 홀리까지는 계속 내리막길로 어렵지 않고, 홀리에 도착하니 스키장 콘도건물도 있고, 포장도로도 잘 나 있다. 민가가 여러 채 있어서 길을 잘못 들었나 싶을 정도의 평지고 길 따라 걷다가 야산으로 들 다를 하다보니, 진부령 표지석이 있는 도로에 도착한다. 아! 드디어 진부령이다. 지리산에서 시작한 한걸음 한걸음이 쌓여 결국 여기까지 왔구나! 작년 11월에 끝내려고 했던 대간종주가 발목부상으로 1년 정도 늦어졌지만, 막상 끝내놓고 보니 섭섭한 마음도 있고, 홀가분한 기분도 든다. 여기까지 오는데 여러 가지로 힘든 상황도 많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은 나 자신이 자랑스럽고 또 내게 시간을 내준 가족에게도 감사하며 종주에 여러 모로 도움 준 친구에게도 진심으로 감사한다. 참고로 진부령은 다른 고개와 달리 식당도 여러 개 있고, 바로 앞에 향로봉을 지키는 부대도 있다. 대중교통편도 많이 있는 편이고 택시도 많아 차편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첫댓글 35일간의 대장정 엄청나게 수고 했구먼, 나도 도전 해 봐야 하는데,요즘 부쩍 아내가 같이 도전하자는데 몇년이 걸릴지....수고했네그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