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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1/18(주) 주일예배 / 제목 : 성경에서 말하는 기업인의 윤리 (엡 6:5~9) p.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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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 (6)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7) 기쁜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8)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9)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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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 오늘도 이렇게 주님 앞에 나오신 여러분에게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와 능력과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앞뒤좌우로 인사하실 때에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합니다 축복합니다” 라고 인사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제 말씀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에베소서 6장 5절로 9절까지의 말씀을 가지고 ‘성경에서 말하는 기업인의 윤리’ 라는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서론 / 2015년도는 을미년이지요. 양띠 해입니다. 양은 온순하고 평화로움의 상징이지요. 성경에서도 양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목자 되시고 우리는 그의 양입니다. 그러므로 양은 좋은 목자를 만나면 최고인 것입니다. 우리의 영원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오늘도 신뢰하시고 목회자를 중심으로 주님이 주시는 안식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은 지난 12월부터 시작된 땅콩 회항 사건이 주는 의미를 성경에 비추어서 생각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은 종과 주인의 윤리입니다. 오늘날로 적용하자면 기업인과 노동자의 윤리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순서나 분량 면에서 볼 때에 노동자의 윤리가 더 앞서고 많지만, 오늘은 기업인의 윤리를 먼저 언급하고자 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현실은 노동자의 윤리보다 기업인의 윤리가 더 문제가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벌어진 땅콩 회항 사건이 그것을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영향력이나 책임도 더 막중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기업인의 윤리를 성경적으로 고찰해보고자 합니다.
본론 / 성경적인 기업인의 윤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1.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먼저 소재가 되고 있는 땅콩 회항 사건의 전말을 보고자 합니다. 조현아 씨(氏)는 대한한공의 사주의 딸입니다. 사주의 딸이라는 이유로 40세의 젊은 나이로 이미 부사장 자리에 올랐습니다. 이날 일등석에 앉아 서비스를 받을 때, 봉지 채 받은 땅콩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분노한 조현아씨는 사무장과 승무원에게 모욕적인 행동을 했고, 급기야 활주로를 향해서 가던 비행기를 회항시켜 사무장을 하차시켰습니다.
비행기와 관련된 규정들은 매우 엄격한데 그는 월권을 했고 사무장에게 심한 모욕감을 주었습니다. 국민들은 재벌 일가의 횡포에 분노했고, 결국 조 부사장은 모든 자리에서 물러나고 구치소에 구속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해프닝인가요? 아닙니다. 이 사건은 우리나라 재벌, 또는 기업주들이 가지고 있는 윤리의식을 그대로 보여준 사건이었습니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노동자는 자신의 노동을 제공하고 기업주는 이에 대해서 금전을 제공하는 계약관계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노동자와 기업주는 단순히 노동과 자본의 교환일 뿐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는 계약관계가 노동계약이 아니라 노비계약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노동을 제공한 자는 자신의 인격까지 볼모로 잡혀있기 때문입니다. 그 일례로 기업주는 노동자의 노동 외의 인격적인 부분까지 통제하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회사라는 것도 공동체이고 또 주식회사의 경우 기업주는 그중 일부를 소유하고 있을 뿐인데 마치 개인의 소유물처럼 내 회사니까 내 마음대로 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벌어진 땅콩 회항 사건이 이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일각에서는 한국 사회를 천민자본주의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한국사회가 중세 봉건성을 탈피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는 기업주가 어떻게 행동해야 한다고 가르칩니까? 9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9절) “상전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이와 같이 하고 위협을 그치라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자1 여기에서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먼저 위협을 그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상전이라고 해서 함부로 권세를 부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4장 1절에서도 (골4:1) “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들은 기업인이 노동자들을 정당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종들의 상전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고, 너희 또한 하나님의 종이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기업인이나 노동자 할 것 없이 모두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다만 상전은 이 땅에서 하나님께서 위임한 종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역할을 감당하지 않고 월권을 행사한 상전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는다는 말씀이 바로 그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의롭고 공평하시기 때문에 세상에서처럼 기업인이라고 하여 봐주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정부에서는 연초부터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 구속된 재벌들을 사면하려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이처럼 세상 법정과 권력은 돈 많은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는 가볍게 물리고, 형기도 다 채우지 않고 사면시키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법정에서는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의롭고 공평하시기 때문입니다. 9절 하반절에서 그 이유를 말하고 있지 않습니까? “이는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일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라” 상전의 윤리에 대해서 오늘 말씀에서는 단 한 구절에 그치고 있지만 그 사회적 영향력은 매우 큽니다. 우리 또한 언젠가는 기업주가 되거나 또는 한 조직에서 상전의 위치에 오를 때가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를 대비해서 어떻게 처신하는 것이 주님이 원하시는 행동인지를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합니다.
성경적인 기업인의 윤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1.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2. 정의로운 방법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고 부를 획득해야 합니다.
상전에게는 최대의 성과를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기업주는 자신의 기업을 성장시키고 안정시키는 것이 가장 기본입니다. 한 조직의 수장은 자신의 조직을 관리하면서 최대한의 성과를 내도록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 자리에 있는 이유입니다. 이는 달란트 비유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주님께서 멀리 타국에 가면서 그 종들에게 각각 달란트를 맡겼습니다. 종들은 그 달란트를 가지고 이윤을 남겨야 합니다. 많은 이윤을 남긴 자들을 향해 주님은 “착하고 충성된 종”(마25:21,23)이라고 하였습니다. 누가 착합니까? 많은 이윤을 낸 자들입니다. 누가 악합니까? 부지런하게 일하지 않은 자들입니다.
종교개혁 이후 모든 수도원들이 철폐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우리 삶의 현장이 수도원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기업인은 세속 수도사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와 물질과 시간을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 사용하지 않고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고도의 절제와 자기 부인을 요구하는 수도사들입니다. 막스 베버는 그의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이런 개신교 정신이 자본주의를 발달시켰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청교도 목사 리처드 백스터는 부의 추구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어떤 방법보다 더 많이 벌 수 있는 합법적인 방법을 가르쳐 주시는데도, 여러분이 이 방법을 거부하고 이익이 적은 방법을 택한다면, 여러분은 여러분의 소명 가운데 하나를 거스르는 것이며, 하나님의 종이 되기를 거부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은총을 받아들여 하나님이 요구하실 때 하나님을 위해 그 은총을 사용하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육체와 죄악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해서라면 여러분은 부자가 되려고 힘써도 된다.”
성장하고 부자가 된다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치부를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 속에서 성실한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처럼 영향력이 생기면 그것을 기회로 더 많은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업인의 이웃 사랑은 회사를 안정되게 발전시켜서 직원들이 안정된 직장에서 근무할 수 있도록 해야 되는 것입니다. ‘부’라는 것은 우리의 생존과 밀접한 연관이 있고, 성실과 절제의 결과로 얻어지는 것입니다. 물론 물질적인 부 외에 다른 다양한 가치들도 있음을 우리는 또한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청교도 목사 리처드 백스터가 말한 부의 추구에 대해서 오해해서는 안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다고 해서 부를 획득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도 된다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인정하는 불의하지 않은 방법으로 부를 축적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정의로운 방법으로 부를 획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점에서 ‘록펠러의 부의 획득’은 재고할 가치가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록펠러는 한국에서 십일조 신앙으로 성공한 대표적인 사람으로 각광을 받고 있습니다. 얼마나 큰 회사였는가 하면 자기 회사에 십일조 담당 부서만 무려 20여명에 이를 정도였습니다. 그는 또한 자선과 기부로 유명합니다. 미국의 명문 시카고 대학은 록펠러가 세운 것입니다. 12개의 종합대학과 4,900여개의 교회를 세우고 도와주었습니다. 페니실린의 약제화나, 결핵, 디프테리아 등 질병 치료에 그의 기부금이 절대적 공헌을 하였습니다.
1928년 착공한 록펠러 센터는 당초 계획보다 훨씬 큰 고층빌딩으로 확대 건축되었는데 그 이유는 1920년대 말의 경제 공황을 해소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유엔 건물의 땅도 록펠러가 기증한 것입니다. 미국의 뉴욕에서는 수도료와 가스비가 공짜인데 모두 록펠러가 내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 할지라도 그가 부를 축적한 과정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록펠러가 세웠던 석유회사 ‘스탠더드 오일’은 독점기업으로 유명합니다. 자기 자본을 기초로 싼 값으로 물건을 판매하여 동종 기업들을 도산시킵니다. 유사 기업들을 회유하고 뇌물을 주어 자기 기업으로 합병시킵니다. 독점 기업을 세운 후에는 가격을 올려 그동안의 손해를 보상합니다. 록펠러는 석유와 철도 부분에서 전 미국의 95%를 독점하였습니다. 당시 록펠러는 모든 것을 먹어 치우는 괴물로 그린 만평들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록펠러의 이런 행동 때문에 미국에서는 독과점 금지법을 제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록펠러는 “당대에 가장 혐오스러운 인물”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으며, 테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은 “록펠러가 얼마나 선행을 하든 그 부를 쌓기 위해 저지른 악행을 갚을 수는 없다.”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국의 재벌이나 기업들의 부의 축척 과정은 많은 부분에 있어서 건전하지 못했습니다.
국가에 의한 과도한 지원과 특혜, 저임금, 부당 경쟁, 뇌물, 부동산 투기 등의 과정을 거쳐서 오늘날에 이르렀습니다. 지금도 재벌들은 자본을 무기로 국내의 영세 상인들의 영역에 침투해 들어가고 있습니다. 하청기업에 부리는 횡포도 여전합니다. 그래서 부의 축적은 사회적 상식과 정의에 근거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불의한 방법에 의해서 쌓은 재물에 대해서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하는 방식의 부의 축적은 하나님이 절대로 기뻐하시지 않습니다.
작은 영세업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진한 매출을 올려보려고 다른 가계에 비해서 월등하게 낮은 가격으로 물건을 파는 것입니다. 그러면 고객들은 누구나 싼 물건을 사고 싶어하기 때문에 싸게 파는 집으로 몰려들 것입니다. 그리고 고객들은 한 술 더 떠서 다른 가계에 가서 부채질을 합니다. 아무개 가계는 이것을 얼마에 파는데 왜 이곳은 비싸게 파느냐면서 이곳에서도 싸게 팔라고 선동합니다.
이럴 때에 평범한 가계들은 얼마나 많은 고통을 받게 됩니까? 자기 하나 잘 되자고 동일한 물건들을 싸게 팔면 동종 업종을 하는 가계들은 매출 부진으로 자칫 잘못하면 폐업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의 눈에 피눈물이 나게 하는 방식의 부의 축적은 하나님이 절대로 기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비록 작은 업체라도 이런 기업인의 정신을 가지고 함께 상생하는 협동정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경적인 기업인의 윤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1.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2. 정의로운 방법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고 부를 획득해야 합니다.
3. 노동자에게 정당하고 적정한 수준의 임금을 받도록 배려해야 합니다.
상전들에게 있어 종이나 아래 사람들은 자신이 보호해야 될 가족이고 또 사랑해야 할 이웃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것입니다. 오늘 말씀처럼 기업주들은 노동자들을 위협하지 말아야 하고 그 자존감을 멸시해서는 안 됩니다. 기업이 이윤을 좇아가다보니 노동자를 사람이 아니라 소모품으로 취급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나라 기업의 일반적인 풍토가 그렇습니다. 자신의 기업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안정되고 편안한 분위기에서 일할 수 있도록 인격적인 대우를 하는 것, 그것이 신앙인 기업주의 마땅한 윤리입니다.
이랜드라는 회사가 있습니다. 이랜드는 한국교회가 자랑하는 크리스천 기업의 모델이었습니다. 편법이 지배적이던 한국 사회에서 정상적인 과정을 통해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탈세하지 않고 정상적으로 세금을 낸 모범기업이었습니다. 정직과 성실을 중시하며 경영진들이 검소한 생활 모습을 보였습니다. 회사 내부에서는 정기적으로 예배를 드리고 신앙생활을 위한 편익을 제공했습니다. 회사 순수익의 10%를 책정하여 사회복지 기금으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한순간에 추락하고 말았습니다. 비정규직에 대한 처우 문제 때문이었습니다. 이랜드가 2007년 기업을 인수하면서 홈에버와 뉴코아의 비정규직 수백 명을 대량 해고하였고 그 투쟁이 근 5백 일 동안 이어지면서 사회적인 지탄을 받았습니다. 최근에는 ‘카트’라는 영화가 개봉되어 이랜드 사태가 다시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현재 비정규직이 9백만 명에 이릅니다. 기업의 생존이나 비용절감이라는 이유로 비정규직을 양산하는 일은 한국 사회에서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이랜드 사태는 기업주를 향한 하나님의 기대수준은 이보다 더 높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일터와 기업자체를 천국으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천국은 다른 곳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이 일하기 좋아하는 곳입니다. 수입과 근로조건이 안정적인 곳입니다. 그 회사의 경영철학이 사람을 사랑하고 사회를 위해 봉사하게 만드는 곳입니다. 직원들을 행복하게 하면 회사 생산성으로 연결이 됩니다.
세상 기업은 이미 그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의약품과 화장품으로 유명한 존슨앤존슨(J&J)사가 그렇습니다. 존슨앤존슨은 이미 1943년부터 ‘우리의 신조’라는 것을 만들어 기업의 목표를 분명히 하였습니다. 그들의 기업 우선순위는 첫째가 고객, 둘째가 직원, 셋째가 경영층, 넷째가 사회, 다섯째가 주주입니다. 이 우선순위가 중요합니다. 일반적인 기업의 목표와는 정반대입니다.
이윤중심이 아니라 고객과 직원 중심의 체계입니다. 이중 두 번째 우선순위인 직원에 대한 신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두 번째 책임은 우리와 함께 일하는 공장과 사무실의 직원들에게 있다. 그들은 안정된 직업을 보장받아야 한다. 정당하고 적정한 수준의 임금을 받도록 배려한다. 종업원들은 공정한 경영, 합리적 근로시간, 깨끗하고 질서정연한 작업환경, 제안과 고충처리를 위한 조직과 체계를 가져야 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직원들이 근무하기에 천국과 같은 사업현장을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치부가 아니라 회사 자체가 목적입니다. 그것이 우리의 소명이며 우리의 이웃사랑입니다. 한 기업이나 조직을 안정되게 운영하는 것은 하나의 교회를 세우는 일 못지않게 소중합니다. 또 다른 기업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공정무역 운동을 일으킨 커피 판매업체 ‘푸라비다(Pura Vida)’입니다. 공정무역이라는 것은 제3세계에서 싼 값에 원료를 사들여 비싸게 파는 방식을 지양하고, 가난한 제3세계 사람들에게 제 값을 받게 하자는 운동입니다. 일반 기업들은 예컨대 에디오피아의 커피를 1kg에 100원에 사들여 서구에서는 근 200배가 넘는 값에 팝니다.
그러니 이들 나라는 여전히 기근에 시달리고, 그 인근 나라인 소말리아는 해적질을 하고 살 수밖에 없는 형편이 됩니다. 크리스 던리와 존 세이지라는 사람은 1980년대 말에 신앙적 소명의식에서 공정무역 커피판매 업체 ‘푸라비다’를 세웁니다. 이들이 공정무역 운동을 시작하면서 세운 사명선언문이 매우 감동적입니다.
“첫째, 우리는 다른 사업방식이 있음을 믿는다. 탐욕이 아닌 선으로 움직이는 사업방식. 자본주의를 연민의 통로로, 믿음을 행동을 위한 엔진으로 보는 사업방식이 있음을 믿는다. 둘째, 우리는 이 땅 자체가 우리의 최대 생산라인이며 우리가 잘 돌볼수록 이 땅은 더 많은 소산을 내놓는다는 것을 믿는다. 셋째, 우리는 모든 사업은 무엇보다 인간들로 구성되며 우리가 공정하게 대할수록 인간들의 삶은 더 의욕이 넘치고 생산적이 된다는 것을 믿는다. 넷째, 우리는 가장 만족스러운 형태의 기업 이윤은 이윤창출을 가능하게 해준 사람들과 공동체에 돌려주는 이윤임을 믿는다. 다섯째, 우리는 푸라 비다가 이 철학으로 성공할 수 있다면 세상의 다른 모든 기업도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런 신념을 가지고 그들은 자본주의의 일반적인 생산방식과 가치에 도전했습니다. 공정한 가격을 지불했고, 그 수익금을 커피생산국의 가난한 아동과 가족들을 돕는 데 사용했습니다. 비록 그 규모는 스타벅스의 3천분의 1 수준이지만 그들의 이런 도전이 아름답습니다.
결론 / 이제 말씀을 맺고자 합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말씀을 살펴본 것처럼 우리 사회는 건전한 기업인의 윤리가 필요합니다. 윤리 없이 부의 축적에만 목적이 있다 보니 사회가 정의롭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존경받는 부자나 기업이 별로 많지가 않습니다. 오히려 사회적 갈등은 심하고 직장에 다니는 것이 고통스러운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상전의 윤리는 자신의 소유나 관리 하에 있는 종원업들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상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입니다. 주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는 양들로 하여금 생명을 얻고 더 풍성히 얻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은 제자들이나 무리들을 위협하지 않고 오히려 희생하고 섬기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처럼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회사나 기업체를 경영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회사나 기업체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목장이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아무쪼록 착하고 충성된 종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요약정리 / 성경적인 기업인의 윤리는 어떠해야 하는가?
1. 노동자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합니다.
2. 정의로운 방법으로 최대의 성과를 내고 부를 획득해야 합니다.
3. 노동자에게 정당하고 적정한 수준의 임금을 받도록 배려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