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여행기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제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나라는 (그래봐야 3개국이지만) 스위스였습니다. 너무 예쁘고 평화스러웠거든요. 그냥 스위스 시골에서 1시간 정도 앉아있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어요. 돈을 쓸 때만 빼고요. 모든 것이 너무 비쌌습니다.
(저희 가족은 쇼핑은 일절하지 않고 오로지 먹고 마시는데만 돈을 썼는데, 이런 식으로 먹으면 3인가족 한끼에 약 75 스위스 프랑, 대략 한국 돈으로 9만원 정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끔씩은 COOP이라는 수퍼마켓 체인점에서 샌드위치를 사다 먹었는데, 그런 것도 한 개에 대략 우리 돈으로 8~9천원 정도 했어요.)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솔직히 스위스 여행 떠나기 전까지는 스위스 인들에 대해서 별로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다보니 예쁜 땅에 살게 된 덕분에, 지나가는 관광객 등쳐먹고 사는 족속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여행을 해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부지런하더라고요. '아, 저렇게 부지런하면 정말 다들 부자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스위스 기차인 SBB입니다. 시간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지키더군요.)
저는 파리에서 떼제베 기차를 타고 바젤(Basel)에 먼저 들어간 뒤,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먼저 루체른 (Luzern)으로 가서 도시 구경을 하고, 그 다음엔 경치좋은 지역을 이동하는 골든 패스 (Golden Pass)라고 하는 기차를 타고 브리엔츠 (Brienz)로 간 뒤, 거기서 여객선을 타고 브리엔츠 호수를 가로 질러 인터라켄 (Interlaken)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그린델발트 (Grindelwald)로 가서 하룻밤 묵은 뒤, 그 다음에 다시 기차로 체르마트 (Zermatt)로 가서 이틀밤을 묵으며 마터호른 (Matterhorn) 구경을 하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뜻하는 바는 기차로 여행을 많이 했다는 뜻이지요.
(기차 객실 안의 창가 받침대에 붙어 있던 노선도입니다. 인터라켄은 글자 그대로 호수 (laken) 사이에 있다는 뜻으로, 브리엔츠 호수와 튠 호수 사이에 있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저 위 쪽에 아이거니 융프라우니 하는 산 이름들이 보입니다.)
저희 가족은 4일짜리 스위스 패스 (Swiss Pass)라는 것을 끊어서 그것으로 기차를 부담없이 몇번이고 자유롭게 탈 수 있었어요. 이 스위스 패스라는 것은 기차든 버스든 유람선이든 스위스 내의 대중 교통 시설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인데, 처음에 살 때는 좀 비싸기는 해도, 막상 써보니 부담없이 타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저희 가족처럼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멍하니 보면서 끊임없이 감탄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에버랜드 자유이용권보다 훨씬 더 좋은 티켓이었습니다. 또, 기차든 버스든 유람선이든 스위스 교통수단들은 정말 시간을 잘 지켜서 (이탈리아하고는 많이 비교되었습니다) 상당히 신뢰성이 갔고요.
(스위스의 웹사이트들은 한국 것 못지 않게 빠르고 잘 되어 있습니다. 위 그림은 제 스맛폰에 설치했던 SBB 열차 시간표 앱인데, 보시면 몽트뢰에서 제네바 공항으로 갈 때 몇번 플랫폼에서 타면 되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승객이 붐빌지 한산할지, 심지어 제네바 역에서 내려서 제네바 공항까지 걸어서 몇분 걸린다는 것까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 대단한 정성이에요.)
기차 및 유람선 여행을 하면서 몇가지 인상깊었던, 혹은 의아하게 느꼈던 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탈때는 표 검사를 전혀 하지 않고, 가끔씩 기차 내에서 검표원이 돌아다니며 표 검사를 하는데, 그 사이에 새로 탄 사람도 있고 도중에 내린 사람도 있을텐데 그걸 대부분 다 기억해서 새로 탄 사람들만 표 검사를 하더군요. 하긴 기차에 사람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았으니까 가능한 일이겠지요.
2) 그 검표원들은 대부분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 같았는데, 저희에게 말은 영어로 하면서, 검표를 끝내고 돌아설 때는 거의 대부분 'Merci' 라고 불어로 인사를 하더군요. 'Danke'라고 독일어로 인사하는 경우는 딱 1번 봤고, 대부분 불어, 가끔 영어로 Thank you 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창 밖으로 몸을 내밀지 마시오 라는 경고문을 한개의 기차 창틀에 3개국어로 나란히 써놓았더군요. 제가 nicht는 not 에 해당하는 단어라는 것 빼고는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데, 아마 저 hinauslehnen 이라는 단어가 (밖으로) 몸을 기울이다 라는 뜻인가봐요 ? 영어나 불어에 비해서 독일어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습니다. 불어로 저 Ne pas se pencher en dehors 는 '밖으로 몸을 기울이지 마시오'라는 뜻입니다.)
3) 창 밖의 '윈도우즈 배경화면 같은' 풍경을 바라다 보면, 산 중턱 매우 가파른 경사면에도 집을 짓고 사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대체 저런 집에서는 수도와 하수를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워낙 바위산이다보니, 땅을 파도 지하수가 나올 것 같지가 않았거든요. 또 저런 집에서 살면 어디 일하러 나갔다 돌아올 때 정말 한걸음한걸음이 헬스클럽 다니는 것과 맞먹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스위스의 강원도라고 할 수 있는 Wallis (발리스, 불어로는 Valais 발레)로 들어서니까 진짜 만화 영화 속에서나 보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그 위에 놓인 철교, 그리고 그 절벽 위 경사면에 아담하게 놓인 예쁜 마을들이 자주 보이더군요. 대체 저 마을의 집들은 상수도와 하수도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일까요 ?)
4) 전체 나라가 정말 너무나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보면 스위스가 예쁜 이유 중 하나가 대부분의 국토가 푸른 초지로 덮혀 있기 때문인데, 사실 저렇게 푸른 초지를 '윈도우즈 배경화면'처럼 유지관리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원래 자연의 힘은 놀라워서, 조금만 관리를 게을리해도 온갖 잡초로 뒤범벅이 되기 쉬운데, 아마 주말 농장이라도 해보신 분들은 저렇게 가파른 경사면을 알뜰살뜰 초지로 가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상상이 가실 것입니다. 특히 돌아와서 스위스 농업에 대해 검색을 좀 해보니, 자신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목장을 경영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어떤 사람의 질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다... 저렇게 소떼를 풀어키우는 초지에 왜 시커먼 소똥이 점점이 흩어져 있지 않는가 ? 실제로 소떼를 키우는 나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극히 평범한 스위스 시골 풍경)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무도 달지 않았는데, 제 생각으로는 스위스 농부들이 진짜 부지런하여 일일이 그런 소똥을 주워다가 말려서 연료로 쓰든가 아니면 퇴비로 활용을 하든가 하는 것 같아요. 그러지 않고서는 그렇게 깨끗한 초지가 나올 수가 없거든요.
5) 그 드넓은 초지가 그 모양이니, 집집마다 창가에 키우는 화분에서 예쁜 꽃들이 마치 플라스틱 조화처럼 활짝 피어있는 모습은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특히 집집마다 그냥 알루미늄 샤시로 된 이중 유리창을 설치하지 않고, 스위스 전통 양식의 유리창에 예쁜 색깔을 칠한 나무 덧창을 구비하고 있는 모습도 정말 아름다왔습니다. 효율보다는 전통과 외관을 더 중요시하는 모습이... 아, 정말 부럽더군요.
(맨 위 사진에서 특히 건물들이 예쁜 이유는 저 빨간색 목재로 된 덧창과 창가마다 심어놓은 화분 덕분입니다. 저런 목재 덧창은 알루미늄 이중창에 비해 유지보수가 매우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어갑니다. 맨 마지막 사진은 관리한지가 좀 오래 되어 허름해진 건물을 일부러 골라 찍은 것입니다. 집 주인이 곧 페인트칠이든 목재 교환이든 해줘야 하겠더군요. 우리나라 펜션들이 주로 스위스의 저런 주택들을 본떠 만든 것인데, 그래도 저런 세부 부분은 차마 따라 할 수가 없는 것이, 유지 보수를 위한 수고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거든요.)
6) 기차나 식당이나,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은 크게 나누어 2개국 사람들이던데요 ? 중국인들과 미국인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2개국이 현재 지구를 지배하고 있지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떼를 지으면 무척 용감해지니까 목소리 크기에서 그들에게 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큰 규모의 한국인 단체 여행객은 못 만났어요.
(제가 묵었던 NF 호스텔이라는 그린델발트의 호스텔입니다. 창 밖에 무려 아이거 정상이 그대로 보입니다 !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인데, 동양인들에게 특히 친절하다고 해서 와이프가 골랐어요. 주인장 노인 부부가 정말 친절하기도 하고 또 정말 부지런하시더군요. 저는 스위스 전통 주택의 저 지붕이 대체 뭘로 만든 것인지 정말 궁금했는데, 저희 방 창문을 통해 만져보니 뭔가 금속성 같기도 하고 석재 같기도 하고... 뭔지 도통 모르겠더군요. 특히 각 뗏장을 저 마지막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철사를 구부려 만든 걸쇠로 고정해 놓았던데, 철사의 재질이 뭔지 녹이 안 슨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주석인가 ?)
(저 곳 홈페이지는 아래와 같은데, 어차피 여기를 통해서는 예약이 안되고 부킹 닷컴인가를 통해서 예약을 해야 해요. 단, 이 호스텔에 가시려면 오후 6시 반쯤 끊기는 버스를 놓치면 정말 곤란하니 꼭 일찍 가셔야 합니다. http://www.nfh.ch/grindelwald_e/the_nf-hostel_.php )
스위스는 깨끗하다라는 인식은 저희가 첫날 묵은 그린델발트의 NF 호스텔에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3층으로 된, 아마 방이 한 십여개 정도 되는 규모의 호스텔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으로 이용하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거기 화장실 유지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감탄했습니다. 손님들이 꽤 많았는데, 언제 들어가도 화장실 세면기에 물 한방울 안튀어 있는 거에요. 한번은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거기 물비누가 세면기 옆에 조금 떨어진 것을 분명히 보았었는데, 약 15분 뒤에 다시 화장실에 갈 일이 있어 가보니 그 사이에 그 물비누 떨어진 것이 닦여 있을 정도였습니다. 보면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손님들 응대하고 식사 차리고 시설 관리하느라고 (웃는 얼굴이었지만) 진짜 정신없이 바빴을 것 같은데, 대체 누가 저걸 다 닦고 있는 것인가 하고 궁금했는데, 나중에 와이프가 그 '우렁각시'를 봤다고 하더군요. 약 30대 후반~40대 초반 정도 되어보이는 스위스 여자가 무표정하게 빨래니 뭐니 하는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것을 봤답니다. 인사를 하니 무표정하게 인사를 하기는 하는데, 인생이 무척 고달프고 무료한 표정이었다고 하더군요. 우리에게는 정말 지상 천국 같은 스위스에서도, 거기가 생업인 사람들은 나름대로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긴 그렇게 모든 것이 깨끗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겠어요.
(저 NF 호스텔의 공동 화장실 및 제가 묵었던 가족실의 내부 모습입니다. 이탈리아 호텔보다 훨씬 깨끗했습니다.)
그걸 보니까 얼마전에 중국 출장 다녀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소속된 회사의 연구소 하나가 북경에 있는데, 그래도 그런 회사 연구소 내부의 화장실이니까 중국 내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이지요. 그런데, 이미 오전만 되어도 남자 소변기들 밑에 흘린 소변이 아주 넘쳐 흘러서 그 앞에 서려면 남의 쉬를 밟지 않고는 설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국내의 저희 회사 사무실의 화장실에도 당연히 바닥에 몇방울 소변이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수준과는 레벨이 달랐어요. 특히 일본 사무실에 가보면 정말 단 한방울도 안 떨어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정말 비교가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아마 중국인들의 소변 보는 솜씨가 서투르고 일본인들의 솜씨가 귀신같다기 보다는, 얼마나 청소를 자주 하느냐에서 차이가 나는 모양인데, 그 청소에서도 기겁을 할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중국 연구소 화장실 한쪽 구석에 긴 대나무 집게 비슷한 것이 꽂혀 있는 것을 봤었거든요. 저는 속으로 대체 저건 뭔가 궁금해 했었는데, 어느날 그 정체를 알게 되었어요. 중국 청소부 아저씨가 바닥을 닦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 집게를 들고 다니면서 남자 소변기에 떨어져있는 그... 그... 혐오스러운 털들을 집어다... 어디 쓰레기 봉투에 넣는 것도 아니고 그냥 화장실 바닥에 툭 떨어뜨리더라고요 !!! 아, 정말... 그 모습과 그때 그 작업을 하면서 '뭘 봐' 하는 식으로 뚱하게 제 얼굴을 쳐다보던 그 청소부 아저씨의 눈빛이 생각나면 지금도 약간 몸서리가 쳐집니다...
저는 같이 간 우리 애에게 좋은 교육거리라고 생각되어서, '봐라 스위스가 관광대국으로 이름을 날리는 이유가 단지 알프스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렇게 부지런하게 일하기 때문이란다'라고 식당에서 떠벌떠벌 설명을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아이가 진짜 그런지 한번 보자라면서 식탁 옆에 걸린 액자의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쓰윽 닦았는데... 정말 먼지 하나 없더군요. 나중에 로마 호텔에 체크인 했을 때, 그때 기억이 나서 호텔 방 액자 위를 손가락으로 문질러보니, 으아~ 먼지가 아주 그냥... 아, 이 이탈리아 양반들...
(화장실 이야기로 머리 속을 더렵혔으니 다시 브리엔츠 호수 사진으로 안구 정화 시현...)
이야기가 좀 샜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스위스 내에서 들른 도시는 바젤, 루체른, 인터라켄, 체르마트, 몽트뢰, 제네바 정도였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그림처럼 아름다왔던 루체른 정도였고, 워낙 대충 훑어만 봐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솔직히 바젤이나 제네바 같은 대도시는 그냥 평범했습니다. 몽트뢰에서는 도시 자체보다도, 그 인근에 있는 시옹 (Chillon) 성을 방문해서 12~13세기의 진짜 중세 성의 구조를 보고 온 것이 저에게나 저희 애에게나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운 도시인 루체른, 그리고 도중에 폭포 구경하러 잠깐 들렀던 라우터브루넨의 공동 묘지... 스위스는 공동 묘지까지 이렇게 예쁘던데요 !!!)
(레만 호수가의 바위섬 위에 지어진 전형적인 중세 성채 시옹 성의 내외부입니다. 생각한 것보다 중세 성채 내부에는 공간이 그리 많지 않더군요. 영주와 그의 직계 가족 외에 성채 내 수비병력이나 하인들은 정말 성탑 아래 헛간 같은 곳에서 자야 했겠던데요 ?)
결국 스위스가 관광 대국으로 이름높은 것은 도시보다는 그 외 지역이 아름답기 때문이고, 그 아름다움의 80%는 자연의 혜택, 20%는 스위스 사람들의 부지런함 덕분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도 중국의 장가게 같은 곳은 (비록 저는 안 가봤지만) 알프스 못지 않게 아름답다고 들었으나, 다들 평생 꼭 가보고 싶어하는 관광지로는 뽑히지 못하쟎아요 ? 장가게 일대에 중국인들 대신 스위스 인들이 살고 있었다면 이야기는 또 다를 수 있겠지요.
그런데,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평소의 제 신념에 따르면, 스위스 사람들이 이렇게 온 국토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고 사람들이 먹고 살만 해야 합니다. 그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스위스 농촌 주민들의 몫인데, 대체 스위스 농부들은 한국 농부들보다 얼마나 더 부지런하길래 그렇게 모든 것을 예쁘게 꾸며 놓고 살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점이 들더군요. 이건 제가 어려서부터 가져온 의문점, 즉 '우리나라 사람들이 머리도 더 좋고 일도 더 많이 한다는데 대체 왜 우리나라보다 서양이 더 잘 살까' 하는 것과도 연관된 질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냄새나는 거름을 줘야 하는 논농사 말고 왜 스위스처럼 온 나라를 초지로 만들고 거기서 소나 양을 키우지 못할까 ? 보니까 스위스에서는 다 목축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괜찮은 땅이 있으면 정말 열심히 비탈면을 개간하여 계단식으로 포도나 살구 같은 것을 키우는 예쁜 과수원을 만들던데,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할까 ?
(스위스 농부들도 척박한 땅을 최대한 활용하느라 햇빛이 잘드는 경사면은 철저히 활용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 아래 사진을 자세히 보면, 한발자욱만 더 가면 위험천만한 낭떠러지인데, 그 절벽 바로 가장자리까지 계단식 밭으로 개간하여 뭔가 작물을 심어놓은 모습을 보십시요.)
제가 여행에서 돌아와서 회사로 출근을 하자니 당연히 죽을 맛이었는데요, 그때 늘상 드는 생각이 '골치아프고 스트레스 받는 회사일을 관두고 (스위스는 못갈테니) 강원도에라도 들어가서 과수원 같은 거 하면 평화롭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네이버나 다음에서 '살구 과수원'이라는 검색어로 끼적끼적 검색을 하고 있는 저를 보고 와이프가 끌끌 혀를 차더군요... 하긴 회사 나가기 싫다고 네이버 지식인에서 과수원 일을 배워서 과수원을 하겠다는 남편을 보고 와이프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
(제가 네이버 검색 계속하면서 6천평 규모의 과수원과 거기에 딸린 집, 그리고 몇년간 운영 자금을 계산해보니, 대략 6~7억원 이상 들겠던데요. 그런데, 과수원 하면 수익이 얼마나 날런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 돈을 써가면서 망할 것을 각오하고 정말 시골에서 과수원을 운영할 것인가 라고 생각하면 많이 망설여지지요. 가령 이제 복숭아가 다 익있는데 태풍이라도 들이닥친다면 ? 정말 저처럼 책상에서 펜대나 굴리던 키보드 워리어로서는 정말 오싹한 일입니다. 뉴스보니까 다음주 초에 태풍이 올 거라는데, 농가 피해가 없기를 바래야지요. 아래 사진은 우리 농촌의 험악한 모습인데, 비닐하우스는 우리 농민들의 부지런함을 대표하는 시설이긴 하지만, 저런 폐비닐에 의한 폐해에 대해서도 뭔가 해결책을 빨리 연구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우리나라 농가들은 해마다 점점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다들 농촌을 탈출한다고 하쟎아요 ? 귀농한다고 내려가신 분들도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딪혀 많이들 되돌아오시고요. 그래서 대체 스위스 농부들은 어떻게 해서 잘 살 수 있나를 찾아봤어요. 그랬는데... 결과적으로는 실망했습니다.
(예쁜 농장에 사는 양떼야, 너희들은 뭘 뜯어먹고 살길래 그렇게 예쁘니 ? -- 정부 보조금 먹는다 !~ )
스위스 농가 수입의 거의 80%가 국고 보조금이더군요. 한마디로 스위스 농가들도 그 자체로는 경쟁력이 전혀 없어서 국가가 먹여살려주는 것이더라고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저 멀리 미국은 고사하고 전 국토가 양지바르고 촉촉한 평야 지대라서 그야말로 농업 선진국인 프랑스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그 척박한 스위스 땅에서 농업이 국제 경쟁력을 가질 리가 없지요. 다만 스위스 정부는 안보상 식량 자급률을 높인다는 점도 있고, 또 무엇보다 '스위스 국토를 생기있게 만들어주는 대표 산업인 농업을 보존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농가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가령 농산물에 대해 엄청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여 스위스 농가를 돕는 것이지요. 다만 그런 관세 정책도, 스위스가 WTO에 가입한 이후 어려워져서, 지금은 유기농 농법 기준을 준수하는 농가들에 대해 직접 보조금을 주는 형태로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슈네가 전망대에서 내려오면서 들린 식당에서 먹었던 식사입니다. 쏘세지야 항상 맛있는 것이니 일단 제외하고, 저 감자도 참 맛있었고, 특히 저 샐러드에 든 파 비슷한 leek가 약간 매운 맛이 나는 것이 무척 독특하면서 맛있었습니다. 저 요리에 사용된 감자는 100% 스위스 산이라고 하는데, 스위스는 전체 식량의 70%를 자체 생산량으로 충족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국경 근처의 스위스 국민들은 차를 몰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독일 등으로 가서 그곳의 값싼 식품을 잔뜩 사들고 돌아온다고 해요. 돈에는 국경이 없쟎아요 ?)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역시 농가들이 계속 폐업을 하고 있다고 해요. 전체 산업 인구의 3% 정도만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나마 그 숫자도 계속 감소 추세에 있습니다. 가령 1990년도에는 농가 가구수가 92,815 가구였으나, 약 20년이 지난 2009년도에는 44,992 가구로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지요. 이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변화로서, 농가 1가구당 경작하는 농지/초지 면적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거든요. 원래 어떤 산업이든지 기계화하고 효율화하려면 대형화되는 수 밖에는 없으니까요. 덕분에 1990년에는 농가 1가구당 경작 면적이 11.5 헥타아르였다가 2009년에는 21.5 헥타아르로 늘어났대요.
헥타아르라고 하니까 실감이 안 나실텐데, 제가 어줍쟎게 강원도의 살구 과수원을 꿈꾸며 네이버 지식인을 검색한 결과 주워들은 것이, 우리나라에서 자체 인력으로 살구 과수원을 전업으로 하려면 농가 1가구당 약 1.5 ~ 2 헥타아르가 적정하다고 되어 있더군요. 2 헥타아르면 평수로 약 6천평이고 미터법으로 따지면 200m X 100m 정도의 면적이에요. 웬만한 초등학교 운동장 3개 정도되는 면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과수원이 목축용 초지는 물론 밀밭에 비해서도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아직도 스위스 농가에 비해 우리나라의 농가는 규모가 많이 영세한 편인 셈이지요.
(체르마트에서 묵었던 호텔의 아침 식사입니다. 저 사진 속 오른쪽의 죽 비슷한 것은 뮤즐리 Muesli 입니다. 제가 출장가서 (제 돈으로 사먹는 것은 이번이 처음) 호텔 아침 식사에 나오면 반갑게 먹던, 귀리를 과일과 우유에 섞은 음식입니다. 몰랐는데, 방금 찾아보니 이 음식은 20세기 초반 스위스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네요. 저 햄 중에 살라미 말고 얇고 붉은 것은 생햄인 프로슈토입니다. 두번째 사진 빵 옆의 잼은 살구 잼인데, 체르마트가 있는 발레 주의 특산품이 살구래요. 그런데 아침부터 너무 많이 먹는 것 아니냐고요 ? 저는 부페 식당에 들어가면 반드시 본전 뽑고 나옵니다. 과체중은 나의 긍지...)
스위스 농부들은 결국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노바티스나 네슬레 같은 세계적인 스위스 대기업들, 그리고 시커멓기로 유명한 스위스 은행이나 스위스 귀금속/시계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먹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렇게 스위스 농가들을 먹여살리느라 고액의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불만이 없을까요 ?
(윗그림이 스위스의 수출품 비중, 아래 그림이 수입품 비중입니다. 물론 수출액이 수입액을 훨씬 초과하는 구조입니다. 스위스는 금 한톨 안 나오지만 금의 주요 수출국이고, 카카오콩 한개도 안 자라지만 초콜렛의 주요 수출국이지요. 그리고 노바티스 같은 세계적인 의약품 회사도 많습니다. 다만 저 수입품 목록 중에 연료로서의 석유가 안 보이는 것이 이상하네요.)
스위스는 26개의 칸톤(Canton)이라는 독립 지방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연방제 국가이다보니, 연방 세금 외에 각 칸톤 세금을 따로 더 내야 합니다. 게다가 스위스는 직접 민주주의로 유명한 나라라서, 칸톤 세금은 세율을 주민들이 직접 투표로 정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역시 세율이 높은 편은 아니에요. 전체적으로 GDP 대비 약 30% 정도입니다. 스웨덴 및 프랑스의 45%나 덴마크의 49%에 비하면 매우 낮은 편이지요. 한국은 약 27% 정도입니다. 덕분에 스위스로 본사를 옮기는 프랑스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단 법인세율이 프랑스의 34%보다 훨씬 낮은 12%에 불과하니까요. (한국은 2억 미만 기업은 10%, 200억 초과 기업은 22%) 언어나 문화 등에 있어 비슷한 점이 많고, 또 실제 본국과의 거리까지 가까우니, 프랑스 기업들이 큰 어려움없이 본사를 옮길 수 있는 것이지요. 스웨덴의 유명한 가구 업체인 이케아 회장은 아예 스위스 로잔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스위스는 프랑스 등 주변 EU 국가로부터 '대단히 얄미운' 얌체국가로 찍혀 있습니다.
사실 스위스는 나폴레옹, 알프스를 넘다 http://blog.daum.net/nasica/6862503 편에서 보셨듯이, 가난한 국가에 불과했습니다. 토지가 척박하고 별다른 산업 기반이 없는데다 교통까지 불편하니 당연한 일이었지요. 오죽하면 목숨을 내걸고 몸을 파는 일인 용병업이 주요 외화 획득 수단이었겠어요. 스위스 용병들의 용맹성과 충직함은 잘 알려져서, 16세기 초 이탈리아 노바라 (Novara) 전투에서는 프랑스 측과 밀라노 공작 측 쌍방이 모두 스위스 용병들을 고용하여 내세울 정도였습니다.
(알프스를 넘는 스위스 용병들. 아낙네도 함께 이동하는 것이 이채롭지요 ?)
(16세기 초 북부 이탈리아의 마리냥 Marignan 전투에서 스위스 용병단을 격파하는 프랑스의 프랑수와 1세의 위엄. 한때 무적을 자랑하며 밀라노를 점령하여 밀라노를 영구적으로 스위스 영토로 삼으려 했을 정도였던 스위스의 군국주의 팽창 정책은 이 전투로 인해 크게 꺾이게 됩니다.)
스위스가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은 사실 20세기 들어서 2번의 세계대전을 겪는 와중에 중립국으로서의 어부지리를 누린 점, 그리고 세계의 검은 돈이 다 흘러들어오는 스위스 비밀 은행의 어두운 측면 덕택이 큽니다. 제 선입견과는 달리, 전체 GDP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3% 정도로서, 의외로 관광업 비율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대외적으로 철저히 독립적인 정책을 쓰는 스위스는 당연히 유로화도 사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스위스 프랑을 사용합니다. 한때는 이로 인해 득을 많이 보았는데, 워낙 스위스 재정과 통화가 안정적이다 보니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너무 올라가서 스위스의 수출에 큰 지장을 주었지요.)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스위스에서 높이 사고 또 배워야 할 점은 있습니다. 스위스 농촌이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스위스 농민들이 부지런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스위스 인들은 스위스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시골에 남아 초지와 과수원을 가꿔야 한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세금을 더 내서라도 농민들이 과수원과 목장에서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점에 대해 합의를 했다는 점입니다.
(루체른 역 앞에 있는 큰 호텔인 모노폴입니다. 특이했던 점이 걸어놓은 국기 중에 태극기도 있다는 점이었는데, 가만 보니 스위스를 가장 많이 찾는 8개국의 국기를 걸어놓은 것 같더군요. 스위스 국기와 유럽 연합 국기를 빼면, 스페인, 일본, 프랑스, 독일, 한국, 중국, 인도, 미국입니다. 이탈리아가 없는 것은 뜻 밖이었습니다. 가만 보면 정말 한중일 삼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유럽 전역에 진짜 많은 듯...)
우리나라도 이제 어느 정도 경제적인 풍요를 이룬 셈입니다. 특히 명목상의 1인당 GDP (nominal GDP)가 아니라 구매력 기준의 GDP (GDP at Purchasing Power Parity)로 보면 오히려 이탈리아보다 더 부유한 나라입니다. (GDP PPP로 따지면 한국이 약 3만3천불, 이탈리아는 약 3만불) 하지만 한국이 그런 GDP를 보여주는 것은 주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덕분이고, 그래서 국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골 지역을 가보면 중국 등지에 비해 뭐 크게 나을 것도 없는 모습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은 우리나라도 추곡 수매나 쌀 재배직불금 등등 여러가지 농가 지원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농촌을 좀더 아름답고 살기 좋게 만들 방법이 없을지, 그를 위해서 우리가 스위스에서 배울 점이 '스위스 비밀 은행' 말고 뭐 더 없을지 고민을 해보면 좋겠어요. 정말 아름다운 스위스 전원 풍경을 보면서, 국회의원들이 이런 곳에 외유성 시찰 출장을 나올 것이 아니라, 정말 현역 농촌 지도자들이 장기간 스위스 농촌에 연수를 나와서 그들의 비결을 좀 배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체르마트에서 묵었던 작은 호텔 Matterhornblick. 윗 사진에서 보시 듯이 객실 창밖으로 마터호른 정상이 큼직하게 보이는 명당 자리입니다. 사진으로는 저렇게 작게 나오는데, 실제로 보면 엄청 크게 보입니다. 주인도 친절하고, 위에서 보신 것처럼 아침 식사도 괜찮고, 방도 깨끗하고, 아주 좋았어요. 체크 아웃하면서 직원에게 이 호텔이 한국에서는 별로 안 알려져 있는 것 같다고 하니, 그 여직원이 웃으면서 실은 이번 여름 시즌에 한국인들이 많이 왔었다고 하면서, 약간 머뭇거리더니 모두 그룹으로 온 단체 여행객이었는데 'very good people' 이라고 어색하게 웃더군요.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룹으로 뭉치면 상당히 용감해지고 유쾌해지쟎습니까 ? 그 양반은 한국인 단체 여행객들에게서 곤란한 상황을 좀 겪은 것 같더군요 ㅋㅋ )
(슈네가 전망대에서 본 마터호른과, 거기서 약 2시간 정도 천천히 걸어내려오는 하이킹 길입니다. 안내서에 '유모차를 끌고 내려와도 될 정도의 길' 이라고 소개되어 있던데, 정말 유럽인 가족들은 유모차를 끌고 내려오더군요.)
이번에도 여행기입니다. 이번 여행에서 제게 가장 깊은 인상을 준 나라는 (그래봐야 3개국이지만) 스위스였습니다. 너무 예쁘고 평화스러웠거든요. 그냥 스위스 시골에서 1시간 정도 앉아있기만 해도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었어요. 돈을 쓸 때만 빼고요. 모든 것이 너무 비쌌습니다.
(저희 가족은 쇼핑은 일절하지 않고 오로지 먹고 마시는데만 돈을 썼는데, 이런 식으로 먹으면 3인가족 한끼에 약 75 스위스 프랑, 대략 한국 돈으로 9만원 정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가끔씩은 COOP이라는 수퍼마켓 체인점에서 샌드위치를 사다 먹었는데, 그런 것도 한 개에 대략 우리 돈으로 8~9천원 정도 했어요.)
전에 말씀드렸습니다만, 저는 솔직히 스위스 여행 떠나기 전까지는 스위스 인들에 대해서 별로 좋지 않은 선입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쩌다보니 예쁜 땅에 살게 된 덕분에, 지나가는 관광객 등쳐먹고 사는 족속들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 여행을 해보면서 생각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사람들이 너무 부지런하더라고요. '아, 저렇게 부지런하면 정말 다들 부자되겠다' 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스위스 기차인 SBB입니다. 시간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지키더군요.)
저는 파리에서 떼제베 기차를 타고 바젤(Basel)에 먼저 들어간 뒤,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먼저 루체른 (Luzern)으로 가서 도시 구경을 하고, 그 다음엔 경치좋은 지역을 이동하는 골든 패스 (Golden Pass)라고 하는 기차를 타고 브리엔츠 (Brienz)로 간 뒤, 거기서 여객선을 타고 브리엔츠 호수를 가로 질러 인터라켄 (Interlaken)으로 가서, 거기서 다시 기차를 타고 그린델발트 (Grindelwald)로 가서 하룻밤 묵은 뒤, 그 다음에 다시 기차로 체르마트 (Zermatt)로 가서 이틀밤을 묵으며 마터호른 (Matterhorn) 구경을 하는 코스를 택했습니다. 뜻하는 바는 기차로 여행을 많이 했다는 뜻이지요.
(기차 객실 안의 창가 받침대에 붙어 있던 노선도입니다. 인터라켄은 글자 그대로 호수 (laken) 사이에 있다는 뜻으로, 브리엔츠 호수와 튠 호수 사이에 있는 교통의 요지입니다. 저 위 쪽에 아이거니 융프라우니 하는 산 이름들이 보입니다.)
저희 가족은 4일짜리 스위스 패스 (Swiss Pass)라는 것을 끊어서 그것으로 기차를 부담없이 몇번이고 자유롭게 탈 수 있었어요. 이 스위스 패스라는 것은 기차든 버스든 유람선이든 스위스 내의 대중 교통 시설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티켓인데, 처음에 살 때는 좀 비싸기는 해도, 막상 써보니 부담없이 타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특히 저희 가족처럼 스위스의 아름다운 자연 환경을 멍하니 보면서 끊임없이 감탄하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에버랜드 자유이용권보다 훨씬 더 좋은 티켓이었습니다. 또, 기차든 버스든 유람선이든 스위스 교통수단들은 정말 시간을 잘 지켜서 (이탈리아하고는 많이 비교되었습니다) 상당히 신뢰성이 갔고요.
(스위스의 웹사이트들은 한국 것 못지 않게 빠르고 잘 되어 있습니다. 위 그림은 제 스맛폰에 설치했던 SBB 열차 시간표 앱인데, 보시면 몽트뢰에서 제네바 공항으로 갈 때 몇번 플랫폼에서 타면 되고 시간이 얼마나 걸리고, 승객이 붐빌지 한산할지, 심지어 제네바 역에서 내려서 제네바 공항까지 걸어서 몇분 걸린다는 것까지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참 대단한 정성이에요.)
기차 및 유람선 여행을 하면서 몇가지 인상깊었던, 혹은 의아하게 느꼈던 점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1) 탈때는 표 검사를 전혀 하지 않고, 가끔씩 기차 내에서 검표원이 돌아다니며 표 검사를 하는데, 그 사이에 새로 탄 사람도 있고 도중에 내린 사람도 있을텐데 그걸 대부분 다 기억해서 새로 탄 사람들만 표 검사를 하더군요. 하긴 기차에 사람이 그렇게까지 많지는 않았으니까 가능한 일이겠지요.
2) 그 검표원들은 대부분 독일어를 모국어로 쓰는 사람들 같았는데, 저희에게 말은 영어로 하면서, 검표를 끝내고 돌아설 때는 거의 대부분 'Merci' 라고 불어로 인사를 하더군요. 'Danke'라고 독일어로 인사하는 경우는 딱 1번 봤고, 대부분 불어, 가끔 영어로 Thank you 라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창 밖으로 몸을 내밀지 마시오 라는 경고문을 한개의 기차 창틀에 3개국어로 나란히 써놓았더군요. 제가 nicht는 not 에 해당하는 단어라는 것 빼고는 독일어를 전혀 모르는데, 아마 저 hinauslehnen 이라는 단어가 (밖으로) 몸을 기울이다 라는 뜻인가봐요 ? 영어나 불어에 비해서 독일어는 단어 하나로 모든 것을 표현하는 특징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아 재미있었습니다. 불어로 저 Ne pas se pencher en dehors 는 '밖으로 몸을 기울이지 마시오'라는 뜻입니다.)
3) 창 밖의 '윈도우즈 배경화면 같은' 풍경을 바라다 보면, 산 중턱 매우 가파른 경사면에도 집을 짓고 사는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대체 저런 집에서는 수도와 하수를 어떻게 처리하는지가 정말 궁금했습니다. 워낙 바위산이다보니, 땅을 파도 지하수가 나올 것 같지가 않았거든요. 또 저런 집에서 살면 어디 일하러 나갔다 돌아올 때 정말 한걸음한걸음이 헬스클럽 다니는 것과 맞먹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스위스의 강원도라고 할 수 있는 Wallis (발리스, 불어로는 Valais 발레)로 들어서니까 진짜 만화 영화 속에서나 보는 깎아지른 듯한 절벽과 그 위에 놓인 철교, 그리고 그 절벽 위 경사면에 아담하게 놓인 예쁜 마을들이 자주 보이더군요. 대체 저 마을의 집들은 상수도와 하수도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일까요 ?)
4) 전체 나라가 정말 너무나 깨끗하게 잘 정돈되어 있었습니다. 보면 스위스가 예쁜 이유 중 하나가 대부분의 국토가 푸른 초지로 덮혀 있기 때문인데, 사실 저렇게 푸른 초지를 '윈도우즈 배경화면'처럼 유지관리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입니다. 원래 자연의 힘은 놀라워서, 조금만 관리를 게을리해도 온갖 잡초로 뒤범벅이 되기 쉬운데, 아마 주말 농장이라도 해보신 분들은 저렇게 가파른 경사면을 알뜰살뜰 초지로 가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쉽게 상상이 가실 것입니다. 특히 돌아와서 스위스 농업에 대해 검색을 좀 해보니, 자신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목장을 경영하는 사람이라고 소개한 어떤 사람의 질문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다... 저렇게 소떼를 풀어키우는 초지에 왜 시커먼 소똥이 점점이 흩어져 있지 않는가 ? 실제로 소떼를 키우는 나로서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지극히 평범한 스위스 시골 풍경)
그 질문에 대한 답변은 아무도 달지 않았는데, 제 생각으로는 스위스 농부들이 진짜 부지런하여 일일이 그런 소똥을 주워다가 말려서 연료로 쓰든가 아니면 퇴비로 활용을 하든가 하는 것 같아요. 그러지 않고서는 그렇게 깨끗한 초지가 나올 수가 없거든요.
5) 그 드넓은 초지가 그 모양이니, 집집마다 창가에 키우는 화분에서 예쁜 꽃들이 마치 플라스틱 조화처럼 활짝 피어있는 모습은 오히려 당연하게 느껴질 정도였습니다. 특히 집집마다 그냥 알루미늄 샤시로 된 이중 유리창을 설치하지 않고, 스위스 전통 양식의 유리창에 예쁜 색깔을 칠한 나무 덧창을 구비하고 있는 모습도 정말 아름다왔습니다. 효율보다는 전통과 외관을 더 중요시하는 모습이... 아, 정말 부럽더군요.
(맨 위 사진에서 특히 건물들이 예쁜 이유는 저 빨간색 목재로 된 덧창과 창가마다 심어놓은 화분 덕분입니다. 저런 목재 덧창은 알루미늄 이중창에 비해 유지보수가 매우 힘들고 비용도 많이 들어갑니다. 맨 마지막 사진은 관리한지가 좀 오래 되어 허름해진 건물을 일부러 골라 찍은 것입니다. 집 주인이 곧 페인트칠이든 목재 교환이든 해줘야 하겠더군요. 우리나라 펜션들이 주로 스위스의 저런 주택들을 본떠 만든 것인데, 그래도 저런 세부 부분은 차마 따라 할 수가 없는 것이, 유지 보수를 위한 수고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거든요.)
6) 기차나 식당이나, 큰 소리로 떠드는 사람들은 크게 나누어 2개국 사람들이던데요 ? 중국인들과 미국인들이었습니다. 사실 이 2개국이 현재 지구를 지배하고 있지요. 우리나라 사람들도 떼를 지으면 무척 용감해지니까 목소리 크기에서 그들에게 지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큰 규모의 한국인 단체 여행객은 못 만났어요.
(제가 묵었던 NF 호스텔이라는 그린델발트의 호스텔입니다. 창 밖에 무려 아이거 정상이 그대로 보입니다 ! 할머니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인데, 동양인들에게 특히 친절하다고 해서 와이프가 골랐어요. 주인장 노인 부부가 정말 친절하기도 하고 또 정말 부지런하시더군요. 저는 스위스 전통 주택의 저 지붕이 대체 뭘로 만든 것인지 정말 궁금했는데, 저희 방 창문을 통해 만져보니 뭔가 금속성 같기도 하고 석재 같기도 하고... 뭔지 도통 모르겠더군요. 특히 각 뗏장을 저 마지막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철사를 구부려 만든 걸쇠로 고정해 놓았던데, 철사의 재질이 뭔지 녹이 안 슨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습니다. 주석인가 ?)
(저 곳 홈페이지는 아래와 같은데, 어차피 여기를 통해서는 예약이 안되고 부킹 닷컴인가를 통해서 예약을 해야 해요. 단, 이 호스텔에 가시려면 오후 6시 반쯤 끊기는 버스를 놓치면 정말 곤란하니 꼭 일찍 가셔야 합니다. http://www.nfh.ch/grindelwald_e/the_nf-hostel_.php )
스위스는 깨끗하다라는 인식은 저희가 첫날 묵은 그린델발트의 NF 호스텔에서 절정에 달했습니다. 3층으로 된, 아마 방이 한 십여개 정도 되는 규모의 호스텔이고, 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이 운영하는 곳이었는데,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동으로 이용하는 곳이었습니다. 특히 거기 화장실 유지하는 것을 보고 정말 감탄했습니다. 손님들이 꽤 많았는데, 언제 들어가도 화장실 세면기에 물 한방울 안튀어 있는 거에요. 한번은 화장실에 가서 손을 씻고 거기 물비누가 세면기 옆에 조금 떨어진 것을 분명히 보았었는데, 약 15분 뒤에 다시 화장실에 갈 일이 있어 가보니 그 사이에 그 물비누 떨어진 것이 닦여 있을 정도였습니다. 보면 할아버지나 할머니나 손님들 응대하고 식사 차리고 시설 관리하느라고 (웃는 얼굴이었지만) 진짜 정신없이 바빴을 것 같은데, 대체 누가 저걸 다 닦고 있는 것인가 하고 궁금했는데, 나중에 와이프가 그 '우렁각시'를 봤다고 하더군요. 약 30대 후반~40대 초반 정도 되어보이는 스위스 여자가 무표정하게 빨래니 뭐니 하는 허드렛일을 하고 있는 것을 봤답니다. 인사를 하니 무표정하게 인사를 하기는 하는데, 인생이 무척 고달프고 무료한 표정이었다고 하더군요. 우리에게는 정말 지상 천국 같은 스위스에서도, 거기가 생업인 사람들은 나름대로 힘들게 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하긴 그렇게 모든 것이 깨끗하려면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겠어요.
(저 NF 호스텔의 공동 화장실 및 제가 묵었던 가족실의 내부 모습입니다. 이탈리아 호텔보다 훨씬 깨끗했습니다.)
그걸 보니까 얼마전에 중국 출장 다녀온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가 소속된 회사의 연구소 하나가 북경에 있는데, 그래도 그런 회사 연구소 내부의 화장실이니까 중국 내에서도 어느 정도 수준 있는 사람들이 이용하는 화장실이지요. 그런데, 이미 오전만 되어도 남자 소변기들 밑에 흘린 소변이 아주 넘쳐 흘러서 그 앞에 서려면 남의 쉬를 밟지 않고는 설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 국내의 저희 회사 사무실의 화장실에도 당연히 바닥에 몇방울 소변이 떨어져 있기는 하지만, 그 수준과는 레벨이 달랐어요. 특히 일본 사무실에 가보면 정말 단 한방울도 안 떨어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거든요. 정말 비교가 되는 경험이었습니다.
아마 중국인들의 소변 보는 솜씨가 서투르고 일본인들의 솜씨가 귀신같다기 보다는, 얼마나 청소를 자주 하느냐에서 차이가 나는 모양인데, 그 청소에서도 기겁을 할 만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중국 연구소 화장실 한쪽 구석에 긴 대나무 집게 비슷한 것이 꽂혀 있는 것을 봤었거든요. 저는 속으로 대체 저건 뭔가 궁금해 했었는데, 어느날 그 정체를 알게 되었어요. 중국 청소부 아저씨가 바닥을 닦을 생각은 하지 않고, 그 집게를 들고 다니면서 남자 소변기에 떨어져있는 그... 그... 혐오스러운 털들을 집어다... 어디 쓰레기 봉투에 넣는 것도 아니고 그냥 화장실 바닥에 툭 떨어뜨리더라고요 !!! 아, 정말... 그 모습과 그때 그 작업을 하면서 '뭘 봐' 하는 식으로 뚱하게 제 얼굴을 쳐다보던 그 청소부 아저씨의 눈빛이 생각나면 지금도 약간 몸서리가 쳐집니다...
저는 같이 간 우리 애에게 좋은 교육거리라고 생각되어서, '봐라 스위스가 관광대국으로 이름을 날리는 이유가 단지 알프스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사람들이 이렇게 부지런하게 일하기 때문이란다'라고 식당에서 떠벌떠벌 설명을 했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아이가 진짜 그런지 한번 보자라면서 식탁 옆에 걸린 액자의 윗부분을 손가락으로 쓰윽 닦았는데... 정말 먼지 하나 없더군요. 나중에 로마 호텔에 체크인 했을 때, 그때 기억이 나서 호텔 방 액자 위를 손가락으로 문질러보니, 으아~ 먼지가 아주 그냥... 아, 이 이탈리아 양반들...
(화장실 이야기로 머리 속을 더렵혔으니 다시 브리엔츠 호수 사진으로 안구 정화 시현...)
이야기가 좀 샜습니다만, 결과적으로 스위스 내에서 들른 도시는 바젤, 루체른, 인터라켄, 체르마트, 몽트뢰, 제네바 정도였습니다. 그 중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곳은 그림처럼 아름다왔던 루체른 정도였고, 워낙 대충 훑어만 봐서 그런 점도 있겠지만 솔직히 바젤이나 제네바 같은 대도시는 그냥 평범했습니다. 몽트뢰에서는 도시 자체보다도, 그 인근에 있는 시옹 (Chillon) 성을 방문해서 12~13세기의 진짜 중세 성의 구조를 보고 온 것이 저에게나 저희 애에게나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정말 그림처럼 아름다운 도시인 루체른, 그리고 도중에 폭포 구경하러 잠깐 들렀던 라우터브루넨의 공동 묘지... 스위스는 공동 묘지까지 이렇게 예쁘던데요 !!!)
(레만 호수가의 바위섬 위에 지어진 전형적인 중세 성채 시옹 성의 내외부입니다. 생각한 것보다 중세 성채 내부에는 공간이 그리 많지 않더군요. 영주와 그의 직계 가족 외에 성채 내 수비병력이나 하인들은 정말 성탑 아래 헛간 같은 곳에서 자야 했겠던데요 ?)
결국 스위스가 관광 대국으로 이름높은 것은 도시보다는 그 외 지역이 아름답기 때문이고, 그 아름다움의 80%는 자연의 혜택, 20%는 스위스 사람들의 부지런함 덕분이라고 저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도 중국의 장가게 같은 곳은 (비록 저는 안 가봤지만) 알프스 못지 않게 아름답다고 들었으나, 다들 평생 꼭 가보고 싶어하는 관광지로는 뽑히지 못하쟎아요 ? 장가게 일대에 중국인들 대신 스위스 인들이 살고 있었다면 이야기는 또 다를 수 있겠지요.
그런데, '곳간에서 인심난다'라는 평소의 제 신념에 따르면, 스위스 사람들이 이렇게 온 국토를 깨끗하고 아름답게 가꾸려면 당연히 돈이 필요하고 사람들이 먹고 살만 해야 합니다. 그런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는 것은 결국 스위스 농촌 주민들의 몫인데, 대체 스위스 농부들은 한국 농부들보다 얼마나 더 부지런하길래 그렇게 모든 것을 예쁘게 꾸며 놓고 살 수 있는 것일까 라는 의문점이 들더군요. 이건 제가 어려서부터 가져온 의문점, 즉 '우리나라 사람들이 머리도 더 좋고 일도 더 많이 한다는데 대체 왜 우리나라보다 서양이 더 잘 살까' 하는 것과도 연관된 질문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냄새나는 거름을 줘야 하는 논농사 말고 왜 스위스처럼 온 나라를 초지로 만들고 거기서 소나 양을 키우지 못할까 ? 보니까 스위스에서는 다 목축업만 하는 것이 아니라, 좀 괜찮은 땅이 있으면 정말 열심히 비탈면을 개간하여 계단식으로 포도나 살구 같은 것을 키우는 예쁜 과수원을 만들던데, 왜 우리는 그렇게 못할까 ?
(스위스 농부들도 척박한 땅을 최대한 활용하느라 햇빛이 잘드는 경사면은 철저히 활용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 아래 사진을 자세히 보면, 한발자욱만 더 가면 위험천만한 낭떠러지인데, 그 절벽 바로 가장자리까지 계단식 밭으로 개간하여 뭔가 작물을 심어놓은 모습을 보십시요.)
제가 여행에서 돌아와서 회사로 출근을 하자니 당연히 죽을 맛이었는데요, 그때 늘상 드는 생각이 '골치아프고 스트레스 받는 회사일을 관두고 (스위스는 못갈테니) 강원도에라도 들어가서 과수원 같은 거 하면 평화롭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습니다. 실제로 네이버나 다음에서 '살구 과수원'이라는 검색어로 끼적끼적 검색을 하고 있는 저를 보고 와이프가 끌끌 혀를 차더군요... 하긴 회사 나가기 싫다고 네이버 지식인에서 과수원 일을 배워서 과수원을 하겠다는 남편을 보고 와이프 반응이 어떻겠습니까 ?
(제가 네이버 검색 계속하면서 6천평 규모의 과수원과 거기에 딸린 집, 그리고 몇년간 운영 자금을 계산해보니, 대략 6~7억원 이상 들겠던데요. 그런데, 과수원 하면 수익이 얼마나 날런지 모르겠지만, 그 정도 돈을 써가면서 망할 것을 각오하고 정말 시골에서 과수원을 운영할 것인가 라고 생각하면 많이 망설여지지요. 가령 이제 복숭아가 다 익있는데 태풍이라도 들이닥친다면 ? 정말 저처럼 책상에서 펜대나 굴리던 키보드 워리어로서는 정말 오싹한 일입니다. 뉴스보니까 다음주 초에 태풍이 올 거라는데, 농가 피해가 없기를 바래야지요. 아래 사진은 우리 농촌의 험악한 모습인데, 비닐하우스는 우리 농민들의 부지런함을 대표하는 시설이긴 하지만, 저런 폐비닐에 의한 폐해에 대해서도 뭔가 해결책을 빨리 연구해야 할 것 같아요.)
일단 우리나라 농가들은 해마다 점점 수지타산이 안 맞아서 다들 농촌을 탈출한다고 하쟎아요 ? 귀농한다고 내려가신 분들도 이런저런 어려움에 부딪혀 많이들 되돌아오시고요. 그래서 대체 스위스 농부들은 어떻게 해서 잘 살 수 있나를 찾아봤어요. 그랬는데... 결과적으로는 실망했습니다.
(예쁜 농장에 사는 양떼야, 너희들은 뭘 뜯어먹고 살길래 그렇게 예쁘니 ? -- 정부 보조금 먹는다 !~ )
스위스 농가 수입의 거의 80%가 국고 보조금이더군요. 한마디로 스위스 농가들도 그 자체로는 경쟁력이 전혀 없어서 국가가 먹여살려주는 것이더라고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것이, 저 멀리 미국은 고사하고 전 국토가 양지바르고 촉촉한 평야 지대라서 그야말로 농업 선진국인 프랑스가 바로 옆에 붙어 있는데, 그 척박한 스위스 땅에서 농업이 국제 경쟁력을 가질 리가 없지요. 다만 스위스 정부는 안보상 식량 자급률을 높인다는 점도 있고, 또 무엇보다 '스위스 국토를 생기있게 만들어주는 대표 산업인 농업을 보존하기 위해서' 전략적으로 농가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있다고 합니다. 가령 농산물에 대해 엄청난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여 스위스 농가를 돕는 것이지요. 다만 그런 관세 정책도, 스위스가 WTO에 가입한 이후 어려워져서, 지금은 유기농 농법 기준을 준수하는 농가들에 대해 직접 보조금을 주는 형태로 지원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슈네가 전망대에서 내려오면서 들린 식당에서 먹었던 식사입니다. 쏘세지야 항상 맛있는 것이니 일단 제외하고, 저 감자도 참 맛있었고, 특히 저 샐러드에 든 파 비슷한 leek가 약간 매운 맛이 나는 것이 무척 독특하면서 맛있었습니다. 저 요리에 사용된 감자는 100% 스위스 산이라고 하는데, 스위스는 전체 식량의 70%를 자체 생산량으로 충족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정작 국경 근처의 스위스 국민들은 차를 몰고 프랑스나 이탈리아, 독일 등으로 가서 그곳의 값싼 식품을 잔뜩 사들고 돌아온다고 해요. 돈에는 국경이 없쟎아요 ?)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위스 역시 농가들이 계속 폐업을 하고 있다고 해요. 전체 산업 인구의 3% 정도만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는데, 그나마 그 숫자도 계속 감소 추세에 있습니다. 가령 1990년도에는 농가 가구수가 92,815 가구였으나, 약 20년이 지난 2009년도에는 44,992 가구로 거의 절반으로 줄어들었지요. 이건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변화로서, 농가 1가구당 경작하는 농지/초지 면적이 점점 늘어난다는 것이거든요. 원래 어떤 산업이든지 기계화하고 효율화하려면 대형화되는 수 밖에는 없으니까요. 덕분에 1990년에는 농가 1가구당 경작 면적이 11.5 헥타아르였다가 2009년에는 21.5 헥타아르로 늘어났대요.
헥타아르라고 하니까 실감이 안 나실텐데, 제가 어줍쟎게 강원도의 살구 과수원을 꿈꾸며 네이버 지식인을 검색한 결과 주워들은 것이, 우리나라에서 자체 인력으로 살구 과수원을 전업으로 하려면 농가 1가구당 약 1.5 ~ 2 헥타아르가 적정하다고 되어 있더군요. 2 헥타아르면 평수로 약 6천평이고 미터법으로 따지면 200m X 100m 정도의 면적이에요. 웬만한 초등학교 운동장 3개 정도되는 면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 과수원이 목축용 초지는 물론 밀밭에 비해서도 손이 많이 가기는 하지만, 아직도 스위스 농가에 비해 우리나라의 농가는 규모가 많이 영세한 편인 셈이지요.
(체르마트에서 묵었던 호텔의 아침 식사입니다. 저 사진 속 오른쪽의 죽 비슷한 것은 뮤즐리 Muesli 입니다. 제가 출장가서 (제 돈으로 사먹는 것은 이번이 처음) 호텔 아침 식사에 나오면 반갑게 먹던, 귀리를 과일과 우유에 섞은 음식입니다. 몰랐는데, 방금 찾아보니 이 음식은 20세기 초반 스위스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네요. 저 햄 중에 살라미 말고 얇고 붉은 것은 생햄인 프로슈토입니다. 두번째 사진 빵 옆의 잼은 살구 잼인데, 체르마트가 있는 발레 주의 특산품이 살구래요. 그런데 아침부터 너무 많이 먹는 것 아니냐고요 ? 저는 부페 식당에 들어가면 반드시 본전 뽑고 나옵니다. 과체중은 나의 긍지...)
스위스 농부들은 결국 다른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 그러니까 노바티스나 네슬레 같은 세계적인 스위스 대기업들, 그리고 시커멓기로 유명한 스위스 은행이나 스위스 귀금속/시계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낸 세금으로 먹고 사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이렇게 스위스 농가들을 먹여살리느라 고액의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불만이 없을까요 ?
(윗그림이 스위스의 수출품 비중, 아래 그림이 수입품 비중입니다. 물론 수출액이 수입액을 훨씬 초과하는 구조입니다. 스위스는 금 한톨 안 나오지만 금의 주요 수출국이고, 카카오콩 한개도 안 자라지만 초콜렛의 주요 수출국이지요. 그리고 노바티스 같은 세계적인 의약품 회사도 많습니다. 다만 저 수입품 목록 중에 연료로서의 석유가 안 보이는 것이 이상하네요.)
스위스는 26개의 칸톤(Canton)이라는 독립 지방들이 모여서 만들어진 연방제 국가이다보니, 연방 세금 외에 각 칸톤 세금을 따로 더 내야 합니다. 게다가 스위스는 직접 민주주의로 유명한 나라라서, 칸톤 세금은 세율을 주민들이 직접 투표로 정한다고 합니다. 하지만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고, 역시 세율이 높은 편은 아니에요. 전체적으로 GDP 대비 약 30% 정도입니다. 스웨덴 및 프랑스의 45%나 덴마크의 49%에 비하면 매우 낮은 편이지요. 한국은 약 27% 정도입니다. 덕분에 스위스로 본사를 옮기는 프랑스 기업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일단 법인세율이 프랑스의 34%보다 훨씬 낮은 12%에 불과하니까요. (한국은 2억 미만 기업은 10%, 200억 초과 기업은 22%) 언어나 문화 등에 있어 비슷한 점이 많고, 또 실제 본국과의 거리까지 가까우니, 프랑스 기업들이 큰 어려움없이 본사를 옮길 수 있는 것이지요. 스웨덴의 유명한 가구 업체인 이케아 회장은 아예 스위스 로잔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때문에 스위스는 프랑스 등 주변 EU 국가로부터 '대단히 얄미운' 얌체국가로 찍혀 있습니다.
사실 스위스는 나폴레옹, 알프스를 넘다 http://blog.daum.net/nasica/6862503 편에서 보셨듯이, 가난한 국가에 불과했습니다. 토지가 척박하고 별다른 산업 기반이 없는데다 교통까지 불편하니 당연한 일이었지요. 오죽하면 목숨을 내걸고 몸을 파는 일인 용병업이 주요 외화 획득 수단이었겠어요. 스위스 용병들의 용맹성과 충직함은 잘 알려져서, 16세기 초 이탈리아 노바라 (Novara) 전투에서는 프랑스 측과 밀라노 공작 측 쌍방이 모두 스위스 용병들을 고용하여 내세울 정도였습니다.
(알프스를 넘는 스위스 용병들. 아낙네도 함께 이동하는 것이 이채롭지요 ?)
(16세기 초 북부 이탈리아의 마리냥 Marignan 전투에서 스위스 용병단을 격파하는 프랑스의 프랑수와 1세의 위엄. 한때 무적을 자랑하며 밀라노를 점령하여 밀라노를 영구적으로 스위스 영토로 삼으려 했을 정도였던 스위스의 군국주의 팽창 정책은 이 전투로 인해 크게 꺾이게 됩니다.)
스위스가 잘사는 나라가 된 것은 사실 20세기 들어서 2번의 세계대전을 겪는 와중에 중립국으로서의 어부지리를 누린 점, 그리고 세계의 검은 돈이 다 흘러들어오는 스위스 비밀 은행의 어두운 측면 덕택이 큽니다. 제 선입견과는 달리, 전체 GDP에서 관광업이 차지하는 비율은 약 3% 정도로서, 의외로 관광업 비율은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대외적으로 철저히 독립적인 정책을 쓰는 스위스는 당연히 유로화도 사용하지 않고 독자적인 스위스 프랑을 사용합니다. 한때는 이로 인해 득을 많이 보았는데, 워낙 스위스 재정과 통화가 안정적이다 보니 스위스 프랑의 가치가 너무 올라가서 스위스의 수출에 큰 지장을 주었지요.)
하지만 그래도 우리가 스위스에서 높이 사고 또 배워야 할 점은 있습니다. 스위스 농촌이 그렇게 깨끗하고 아름다운 이유는 스위스 농민들이 부지런하기 때문만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스위스 인들은 스위스가 아름답기 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가 시골에 남아 초지와 과수원을 가꿔야 한다는 점을 잘 이해하고 있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자신들이 세금을 더 내서라도 농민들이 과수원과 목장에서 일을 계속 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해줘야 한다는 점에 대해 합의를 했다는 점입니다.
(루체른 역 앞에 있는 큰 호텔인 모노폴입니다. 특이했던 점이 걸어놓은 국기 중에 태극기도 있다는 점이었는데, 가만 보니 스위스를 가장 많이 찾는 8개국의 국기를 걸어놓은 것 같더군요. 스위스 국기와 유럽 연합 국기를 빼면, 스페인, 일본, 프랑스, 독일, 한국, 중국, 인도, 미국입니다. 이탈리아가 없는 것은 뜻 밖이었습니다. 가만 보면 정말 한중일 삼국에서 온 관광객들이 유럽 전역에 진짜 많은 듯...)
우리나라도 이제 어느 정도 경제적인 풍요를 이룬 셈입니다. 특히 명목상의 1인당 GDP (nominal GDP)가 아니라 구매력 기준의 GDP (GDP at Purchasing Power Parity)로 보면 오히려 이탈리아보다 더 부유한 나라입니다. (GDP PPP로 따지면 한국이 약 3만3천불, 이탈리아는 약 3만불) 하지만 한국이 그런 GDP를 보여주는 것은 주로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덕분이고, 그래서 국토 대부분을 차지하는 시골 지역을 가보면 중국 등지에 비해 뭐 크게 나을 것도 없는 모습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은 우리나라도 추곡 수매나 쌀 재배직불금 등등 여러가지 농가 지원책을 이미 시행하고 있습니다만, 우리 농촌을 좀더 아름답고 살기 좋게 만들 방법이 없을지, 그를 위해서 우리가 스위스에서 배울 점이 '스위스 비밀 은행' 말고 뭐 더 없을지 고민을 해보면 좋겠어요. 정말 아름다운 스위스 전원 풍경을 보면서, 국회의원들이 이런 곳에 외유성 시찰 출장을 나올 것이 아니라, 정말 현역 농촌 지도자들이 장기간 스위스 농촌에 연수를 나와서 그들의 비결을 좀 배워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체르마트에서 묵었던 작은 호텔 Matterhornblick. 윗 사진에서 보시 듯이 객실 창밖으로 마터호른 정상이 큼직하게 보이는 명당 자리입니다. 사진으로는 저렇게 작게 나오는데, 실제로 보면 엄청 크게 보입니다. 주인도 친절하고, 위에서 보신 것처럼 아침 식사도 괜찮고, 방도 깨끗하고, 아주 좋았어요. 체크 아웃하면서 직원에게 이 호텔이 한국에서는 별로 안 알려져 있는 것 같다고 하니, 그 여직원이 웃으면서 실은 이번 여름 시즌에 한국인들이 많이 왔었다고 하면서, 약간 머뭇거리더니 모두 그룹으로 온 단체 여행객이었는데 'very good people' 이라고 어색하게 웃더군요. 원래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룹으로 뭉치면 상당히 용감해지고 유쾌해지쟎습니까 ? 그 양반은 한국인 단체 여행객들에게서 곤란한 상황을 좀 겪은 것 같더군요 ㅋㅋ )
(슈네가 전망대에서 본 마터호른과, 거기서 약 2시간 정도 천천히 걸어내려오는 하이킹 길입니다. 안내서에 '유모차를 끌고 내려와도 될 정도의 길' 이라고 소개되어 있던데, 정말 유럽인 가족들은 유모차를 끌고 내려오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