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 분의 일에 거의 도착했다. 모두 무사히 두 권을 읽었고 다음 달 진행 할 책을 읽고 있는 회원도 있었다. 태백산맥으로 장편 모임을 열며 전라도 사투리에 익숙해져야 했고, 토지 평사리는 하동이라 경상도 사투리로 넘어가는데 시간이 걸렸다. 서희 일행이 터전을 용정으로 옮기니 이북 말씨가 나온다. 중국 사람이 쓰는 조선말까지 섞여있다. 사투리 사용이 적어지는 현대에서 다양한 사투리를 접하니 언어를 통해 여행을 다니는 듯하다.
삼각으로 엮인 애정 관계가 여기저기 보인다. 작품 초부터 격렬했던 용이, 월선과 임이네의 관계는 강청댁까지 포함해 사각 관계였다. 귀녀, 강포수와 칠성이의 관계는 공사의 구분이 애매하다. 두만이는 일 열심히하는 부인과 맛있는 식당 주인과 삼각 관계다. 길상이는 한 방향으로 애정을 표현하는 이들이 여럿이다. 금녀, 김두수와 윤이병은 2002년 개봉한 영화 《나쁜남자》를 연기한 조재현을 떠오르게 한다. 그리고, 서희, 길상이, 이상현의 관계다.
길상의 사랑이 범상한 남녀의 사랑일 수 없게 잘 조련되어온 것이었다 할지라도, 관음상을 향해 느끼듯이, 전혀 일방적이요 정밀한 그런 유의 사랑이었었다 할지라도, 어느 날 갑자기 그 대상이 이쪽으로 인하여 고통을 받게 된다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무상에서 보상으로 간주될 수 있는 일이요 상대의 고통이 고통으로 오되 희열이 따를 것이 거의 틀림이 없다. 그런데 길상은 왜 절망하는 것일까. 견디기 어려운 오뇌 속으로만 빠져들어 가고 있는 것일까. 더이상 접근할 수 없는 거리에서 이상현은 빙빙 돌다가 떠나고 말았다. 그들의 접근할 수 없었던 거리는 길상과 서희 사이의 거리이기도 하다. 서희의 대상으로서 상현은 사모와 기혼자, 이 두 상극 선상의 존재요 길상은 야망과 하인, 그러나 이것은 반드시 상극된 것은 아니다. 야망은 불순물이다. 불순물은 혼합될 수 있는 것이다. 상현과 사이에 질러놓았던 지름목은 길상과 서희 사이에 질러놓았던 지름목은 길상과 서희 사이에는 제거될 수 있는 것이며 그것을 드러내려는 서희의 모험을 길상은 잘 알고 있는 것이다. 서희가 원하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다 해주고 싶다던 그러나 길상은 그것만은 용납할 수가 없다. 서희와의 거리는 절체절명의 것이다. 왜냐? 자존심 따위, 사내로서의 오기 따위 그런 것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사랑의 순결 때문이다. 순결을 지키고 싶은 때문이다. 대체로 길상의 심정은 이런 정도로 밝혀볼 수 있겠고 서희의 경우, 길상이 생각했던 것처럼 서희 역시 그렇게 믿고 있음이 틀림없다. 10.
서희가 길상이에게 속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이 6권에 나온다. 이만큼 격렬히 애정을 보인적 없었다. 앞으로도 없을것 같다는 예감이 들어 메모를 남긴다.
서희는 망토를 벗어던지고 방바닥에 굴러떨어진 꾸러미를 주워 물끄러미 쳐다본다. 그러더니 다음 순간 그것을 길상의 얼굴을 향해 냅다 던진다.
"죽여버릴 테다!"
서희는 방바닥에 주질러 앉아 울음을 터뜨린다. 어릴 때처럼, 기가 넘어서 숨이 껄떡 넘어갈 것 같다. 언제나 서희는 그랬었다. 슬퍼서 우는 일은 없었다. 분해서 우는 것이다. 다만 어릴 때와 다르다면 치마꼬리를 꽉 물고 울음소리가 새나지 않게 우는 것뿐이다.
"난 난 길상이하고 도망갈 생각까지 했단 말이야. 다 버리고 달아나도 좋다는 생각을 했단 말이야."
철없이 주절대며 운다.
"그 여자 방에 그, 그 여자 방에서 목도리를 봤단 말이야, 으흐흐흐흣..."
길상의 눈동자가 한가운데 박힌다.
"그 꾸러미가 뭔지 알어? 아느냐 말이야! 으흐흐... 목도리란 말이야 목도리"
하더니 와락 달려들어 나동그러진 꾸러미를 낚아챈다. 포장지를 와득와득 잡아 찢는다. 알맹이가 밖으로 나왔다. 그것을 집어든 서희는 또다시 길상의 면상을 향해 집어던진다. 진갈색 목도리가 얼굴을 스쳐서 무릎 위에 떨어진다.
"헌 목도린 내버려! 내버리란 말이야! 흐흐흐... 으흐흐흣..." 127.
6권 중간까지 용정을 배경으로 서희와 길상, 이상현의 애정 관계가 일단락된다. 김두수의 이름으로 거복이가 활약하는 장면을 보여 용정에서의 긴장감은 점점 고조된다. 그리고, 배경은 경상도로 돌아온다. 기화는 봉순이의 기생 이름이다. 돈이 많아 양반을 산 이를 모시는 기생이 되었다. 다음 석이와 관수가 등장하고 혜관, 윤도집, 구천이가 등장해 새로운 조직을 출현시키기 위한 사전 작업을 한다. 큰 긴장감 없이 인물들이 등장하는 단계여서 봄과 여름사이 그즈음과 같다. 그들에게도 아픔과 슬픔에 드러난다. 평사리를 지나는 나룻배 위에서 석이는 마을을 등지게 몸을 돌린다. 그리고, 구천이는 차갑다.
소설 속 인물을 나열하며 드라마속 등장한 배우를 마주 놓아 본다. 김두수를 맡은 유해진이 너무 적절해 그 다음부터 자연스럽게 나열한다. 최서희 아역에 신세경 이름이 나온다. 연기자가 구축한 이미지를 통해 배역을 떠올려보는 역과정은 새롭고 색다른 재미를 준다. 6권에 해당하는 등장인물들의 나이를 가늠해 본다. 서희와 길상이가 성인이 된 만큼 등장인물의 나이가 많아졌다.
첫댓글 저 역시 사투리에 대한 생각이 많았어요
평사리에서 살던 사람들이 용정으로 옮겨서 또 다른 말투와 낯선 생활에 적응해야하는 모습이 우리가 이 책에서 또 다른 사투리에 적응해가야하는 것과 묘하게 겹쳐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