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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제철의 신화--박정희와 박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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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두 거인의 만남
1]
경북의 구미가 고향인 박정희와 경남의 양산이 고향인 박태준.
박태준의 육사生徒 시절에---,
박정희가 육사교수로 그에게 <탄도학>을 가르쳤다.
박정희는 수학을 특히 잘했던 제자-박태준을 신뢰-사랑했다.
두 巨人들의 인연은 이른바 師弟之間에서 출발한다.
세월은 흘러 박정희가 5.16혁명을 준비하던 중, 박태준을 부른다.
「임자는 혁명동지에서 제외된다. 내가 혹시 죽는 경우에는
나의 가족들을 돌봐주게---.」
박정희는 수많은 혁명동지들 중에서 박태준에게
이런 “기막힌 명령”을 한 것이다.
박정희가 얼마나 박태준을 신뢰하고 사랑했는지를 짐작케 한다.
그러나 박태준은 박정희의 지시를 항명한다.
5.16 혁명당일---.
박태준은 <5.16혁명의 상황실>로 달려가 혁명에 가담한다.
스승 박정희와 조국을 집착하는 박태준의 구국정신ㆍ우국충정이
드러나는 장면이다.
2]
언젠가 박정희는 박태준을 청와대로 불렀다.
[임자! 철은 산업의 쌀이야. 쌀이 있어야 밥을 해 먹지 않겠나?
그러니 자네가 제철소를 하나 지어줘야겠어.
제철소를 꼭 만들어야 하는데, 이놈도 못하겠다고 하고, 저놈도 못한다니--,
임자가 맡아줘야겠어.
박태준은 확신이 서지 않아 몇 차례 固辭를 하였다.
그러나 박정희는
<나는 임자를 잘 알아. 이건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어떤 고통을 당해도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자기 한 몸을 희생할 수 있는 인물만이 할 수 있어.
아무 소리 하지 말고 맡아야 해!]
박정희의 명령으로 박태준은 1968년에
이름뿐인 유령회사인 [포항종합제철]을 설립한다.
포항 백사장에 2층짜리 목조건물을 하나 세워놓고,
거기에 상주하면서 [포항제철]을 만들 구상을 한다.
그 목조건물은 [Rommel House]라고 불렸다.
Rommel은 2차대전--아프리카 전투에서
[사막의 여우]로 불렸던, 그 유명한 독일의 야전군사령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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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포항제철의 연혁과 현황
1]
1968년 포항종합제철㈜로 법인설립.
1970년에 年생산 103만톤의
포항제철소 제1기-설비건설에 착공하여,
1973년 준공.
그 뒤 총 4단계의 확장공사를 거쳐,
1981년 2월에 완공<도합 13년>.
1985년에 광양제철소는 年생산 270만톤의 제1기-설비건설에 착공하여
1987년에 준공. 1986년에 포항공대를 개교시켰으며,
1987년 포항산업과학연구원을 설립. 1988년에 기업공개-上場.
2000년에 산업은행이 보유한 정부주식을 모두 매각하여 민영화.
1992년에 광양제철소-제4기의 설비가 준공. 포항제철은 조강능력 2800만톤
(포항제철소 ; 1,200만톤/ 광양제철소 ; 1,600만톤)의
세계적 규모의 철강회사로 성장ㆍ비약(飛躍).
1994년 뉴욕 증권시장에 상장되었고, 같은 해 10월에 런던 증권시장에 상장.
1994년 3월에, 회사의 이름을 POSCO㈜ 로 변경.
유럽연합ㆍ러시아ㆍ인도ㆍ중국ㆍ일본ㆍ베트남ㆍ싱가포르ㆍ중남미 등지에
해외 사무소가 있다.
특히 중국의 현지법인인 [Posco-China]가 있으며,
일본 도쿄에는 [Posco 지점]이 있다.
Posco 건설, 창원특수강, Po-steel, Pos-Data, Posco-경영연구소,
Posco-Terminal 등 14개의 <국내 출자社>와
Posco America Corporation(POSAM), Posco Australia Pty. Ltd(POSA),
Posco Asia Co. 등 18개의 <해외 출자社>를 거느리고 있다.
도합 32개의 계열회사를 거느린 [Mammoth-철강군단].
2]
Posco[포항제철]은 <2005.12.31 기준>으로 하여 年間 대략---,
자본금 20조-자산 28조-영업이익 6조-총매출 26조원이다.
미국과 일본을 누르고 6년 연속하여,
[세계 제1위의 철강회사]로 군림했다.
포항제철--현대조선--삼성전자의 3개 회사가
동종업계에서 <세계 제1위의 회사>로 우뚝 섰다.
남조선의 <3총사-Symbol회사>는 지구촌의 구석구석을 파고들어
<태극기>를 꽂아놓고 [한국민족의 혼]을 불태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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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포항제철의 필요성 및 출발
<철강>은 「산업의 쌀」이다.
<철강산업>은
공업입국-중화학공업의
창달을 이루는 출발점-주춧돌이다.
기계ㆍ자동차ㆍ선박ㆍ항공기ㆍ반도체-전자-컴퓨터ㆍ석유화학ㆍ
발전소 등을 포함하는
중화학공업의 창달에 필수적인 基幹-根幹産業이다.
1961(개인국민소득-$76)년 5.16혁명의 7년 후---,
1968년(개인국민소득-$200내외) 4월 1일에,
[포항종합제철]의 법인이 설립된다.
그러나 선뜻 공장건설의 자금(약 1억불-천억원-)을 빌려주겠다거나
철강기술의 전수를 해주겠다는 나라가 없었다.
당시 한국은 세계 최빈국의 상태였다.
수치로는 현재 Bangladesh(200불/1,750불)의 약 1/8 정도였다.
草根木皮-기아(飢餓)ㆍ문맹(文盲)ㆍ질병ㆍ전염병의 나라.
찢어지게 가난했던, 보릿고개의 나라-넝마주이의 나라였다.
세계지도에서 잘 보이지도 않는,
동북아의 [조그마한 쥐꼬리의 절반-남조선]이었다.
백방으로 탐문ㆍ호소한 결과, 드디어 미국에서 연락이 왔다.
먼저 공장부지를 확보하면「철강차관단」에서
돈과 기술을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 무렵에 박정희 대통령은 박태준이라는 인물을 떠올린다.
강렬한 눈빛과 굳게 다문 입술을 가진 젊은 박태준을
[포항제철-Project]의 지휘자로 생각한 것이다.
장소는 바닷바람의 모래벌판으로 유명했던 포항의 영일만---.
박태준의 회상---저녁까지 부지작업을 한 후 이튿날 자고나면,
어제 작업한 부분들이 모래바람에 소실되거나 잡탕이 된 적이 허다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이 브리핑을 받기 위해 모래벌판에 앉아있으면
그 분의 눈ㆍ코ㆍ목에 모래가 들어가 수시로 재채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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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건설자금(1억불)의 마련과 일본의 철강기술 이전
박태준은 1969.1.31. 포항제철의 건설자금을 빌리기 위하여
미국의 피츠버그를 방문했다.
「철강 차관단(KISA)」은 세계굴지의 철강업체 8개로 구성된 단체이다.
박태준은 KISA의 간부들을 만나 지원ㆍ협력을 호소했다.
그러나 KISA의 대표격인 [포이 회장]은
「세계은행(IBRD)의 보고서」를 인용하면서 지원불가의 결과를
박태준에게 통보한다.
Bangladesh 보다도 더 찢어지게 가난한 거지나라에
당시의 거금-1억불을 포항제철-건설자금으로 빌려줄 리가 없지---.
[바위에 달걀을 치는 格]이 아니냐.
KISA-세계은행(IBRD)으로부터 차관제공과 기술이전의 거부통보를 받은
박태준은 망연자실(茫然自失)했다.
불안-초조-허탈한 마음으로 귀국 비행기에 올랐다.
중도에서 <하와이>에 내려 <와이키키 해변>을 걸었다.
[1억달러가 없어서 공업입국-중화학공업의 창달을 포기해야 한다 ?
민족의 100년 大計를 포기해야 한다 ?
나를 신뢰하고 기다리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무슨 보고를 어떻게 해야 하나 ?
일본에 가서 돈을 빌려볼까 ?
대일청구권자금까지 받아냈으니 무슨 염치로…」라는 생각을 하던 중---,
대일청구권자금」의 잔금(농업자금 $8,000만)이 생각났다.]
박태준은 청와대로 전화를 하여 成事여부를 기다리는 박정희 대통령에게
[KISA-IBRD-수출입은행]의 거절ㆍ홀대ㆍ박대를 보고했다.
마지막 남은 유일한 희망은
대일청구권자금의 잔금($8,000만)에 대한 전용(轉用)가능성
(농업용→공업용)이었다.
박 대통령은 기막힌 Idea이지만, 일본의 승낙이 가능하겠느냐는 우려였다.
일본은 한국의 공업화-근대화를 바라지 않고 있었다.
귀국 후 준비과정을 거친 박태준은
1969. 2. 12. 도쿄로 날아가 유학시절부터 잘 알고 지냈던
일본의 거물 야스오카 - <일본철강연맹>의 회장과
이나야마<야하타 제철소의 사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야스오카 회장은 그 해 8월 도쿄에서 열린 한일각료회의 과정에서
박태준에게 정계의 거물들을 소개ㆍ연결시켜 주었다.
박태준은 그들을 설득ㆍ호소ㆍ부탁을 해나갔다.
그리고 일본의 3대 철강王들을 찾아다녔다.
철강王들은 박태준을 피하기 위하여 일부러 휴가까지 떠났지만,
박태준은 수소문하여 악착같이 그들을 추적하여
설득ㆍ호소ㆍ부탁을 해 나갔다.
특히 [오히라 - 통산상]의 반대가 거세어 그를 세 차례나 만나
간곡한 부탁을 했다.
세 번째 만남에서 박태준은 전날 도서관에 가서 조사한 자료를 내밀었다.
일본 역시 1인당 GNP 100달러 수준일 때,
영국으로부터 철강차관을 도입하여 제철소를 건립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한국은 1인당 GNP가 200달러는 되고, 한반도 안보를 위해서라도
제철소를 건립해야 함을 역설했다.
갑자기 [오히라-통산상]의 실눈이 드러났다.
「그걸 어디서 Pick-up 했나요 ?」
「일본의 정부간행물보관소를 뒤졌습니다.」
「사실은 내 숙부가 한국의 동남쪽에 사셨던 적이 있습니다.
경상북도 영일군 대송면의 어느 국민학교에서 교장으로 봉직했습니다.」
「예 ? 그곳이 바로 포항제철공장이 들어서는 공장부지입니다.」
「정말 우연의 일치군요」
마지막 장애물을 한쪽으로 슬며시 밀어내는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결국 일본의 고위층과 철강王들이,
박태준의 집요한 설득ㆍ호소ㆍ부탁에 손을 든 것이다.
청구권자금의 용도변경(농업용→공업용)과
철강기술의 이전을 승낙한 것이다.
1970년도 한국의 그 웅장했던 산업혁명-중화학공업의 창달이 출발되는
<歡喜의 起床-나팔>이었다.
1969 8월 22일, [일본철강연맹]은 [이나야마 회장]의 주선으로
「한국제철소건설의 협력위원회」를 구성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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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운동권-데모꾼들의 저항과 <종이-마패>
1]
1970년 4월 1일 착공식에서 박태준은 이렇게 말한다.
[공사 기일을 맞추지 못하면 우리 모두가
저 오른편에 보이는 영일만에 들어가 빠져 죽는다.]
[대일청구권 자금은 [선조들의 피의 댓가]이다.
이 돈으로 제철소 건설에 실패하면
우리는 모두 죽어 마땅하다]
바닷바람이 휘몰아치는 허허막막한 영일만의 모래벌판에는
우선 기술자ㆍ건설요원들과 가족들이 거처해야 할 숙소가 있어야 했다.
출발 당시 숙소 문제가 여러모로 어렵고 복잡했다.
포항제철의 부지를 마련할 당초부터
언론ㆍ야당(김대중-김영삼)ㆍ운동권-데모꾼들은 반대-저항을 하였다.
부채와 적자로 대한민국을 말아먹는다는 것이다.
시작도 하기 전에 <당연실패>를 예단하고 있었다.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大役事]이니---, 그럴 만도 했다.
항차 공장건설의 시공도 하기 전에
어떻게 사원 아파트부터 짓느냐는 조롱-힐난이 있었다.
투입된 국내외의 무수한 기술자ㆍ인력들이
허허막막한 모래벌판--영일만의 건설현장에서
불철주야 업무ㆍ작업에 전심ㆍ전력하는 大役事였다.
생활환경의 보장ㆍ안전이 필수였다. 현장부근의 [사원 APT]가 급선무였다.
2]
또 하나의 문제는 큰돈ㆍ용돈을 뜯기 위하여
수시로 포항제철의 공사현장을 출입하는 [인간-쓰레기]들이었다.
<큰 돈을 만지는 박태준>을 그대로 둘 리가 없지---.
박태준의 약점을 파헤치고 공갈하여, <검은 돈>을 갈취(喝取)하겠다는 것.
정치인ㆍ공무원ㆍ언론인---. 이들은 박태준을 몹시도 괴롭혔다.
<검은 돈봉투>를 건너지 않는 박태준은
정보기관들로부터 수차 가택수색을 당하기도 했다.
괴로웠던 박태준은 박정희에게 사의(辭意)를 표명했다.
그러자 박정희 대통령은 박태준에게 <종이 마패>를 써주었다. 즉,
「박태준을 괴롭히는 사람은 지위高下을 막론하고 가만두지 않겠다」는
뜻을 白紙에 또박 또박 적어 서명을 해준 것이다.
이와 더불어 박정희 대통령은 박태준에게
포항제철의 인사ㆍ자금 및 경영에 관한 모든 권한을 전권 위임했다.
이 때부터 박태준의 철강신화는 시작된다.
우선 박태준은 <사원의 공개채용과 투명경영>을 원칙으로 삼았다.
박정희 대통령이 써준 이「종이 마패」는
박태준에 대한 박정희 대통령의 인간적 신뢰였고,
두 巨人들간의 우정적 표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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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포항제철과 한강의 기적
1]
회사가 설립되고 5년이 지난 1973년 6월 9일.
마침내 <제1고로>에서 쇳물이 쏟아져 나왔다.
박태준은 포항제철에서 첫 쇳물이 쏟아져 나올 때---.
<지난 5년간의 고난ㆍ역경ㆍ풍파>를 생각하여
하염없이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고 전한다.
드디어 우리에게도 거대한 철강공장이 생긴 것이다.
포항제철은 설비가동 1년 만에, 흑자를 기록한다.
첫해에 242억원의 흑자를 기록한 이래, 2004년까지
단 한해도 예외 없이 흑자를 기록했다.
그리고 1973년 이래 2004년까지
설비와 자산규모는 125배로 성장했고,
매출액은 287배로 성장하고,
순이익은 239배로 성장했다.
포항제철은 그동안 국가에 5조원의 세금을 납부했고,
포항공대의 설립 등 사회기금으로 1조 8000억원을 지급했다.
2]
[박정희와 박태준]이라는 師弟之間-혁명가-선구자-개척자들이 일궈낸
이른바 「한국민족의 大役事-영일만의 기적」이었다.
포항제철의 가동은 한국이 진정한 [경제적 독립국가]임을
해외에 선포한 셈이다.
1961. 516혁명을 전후하여 한국은 외국의 원조로 국가운영을 했던
[쥐꼬리의 나라--보릿고개의 나라--넝마주이ㆍ거지의 나라]였다.
그러나 1970년대에 비로소 국민기업이 납부한 세금으로
국가재정을 감당하였다.
GNP가 35배나 껑충 뛰는 [활기찬 조센징--살맛나는 국가]가 된 것이다.
3]
또 한 가지 특기할 사항은---,
박정희 대통령이 포항제철-준공식을 몇 달 앞둔, 1972년 10월 17일.
부국강병<중화학공업의 창달과 자주국방의 고착>을 Motto로 하여
유신헌법을 채택한 점이다.
국민투표에서 국민들의 절대적인 지지ㆍ성원을 받았다.
(김대중ㆍ김영삼은 결사반대)
「산업혁명--민족경제의 100년 大計」를 成事시키기 위한
[중화학공업의 창달과 자주국방의 구축]
박정희는 유신헌법을 통하여 <제도의 정비>를 완료하였고,
새마을 운동을 통하여 <국민총화>를 일궈냈다.
박정희는 서구에서 약 150년 걸려 성공한 중화학공업의 창달을
1/8년이라는 [지극히 짧은 기간]에 일궈냈다.
유신헌법--[자유]보다는 [빵]을 먼저--선택과 집중--
국민들의 단결과 효율성--중화학공업의 창달--
민족중흥--한강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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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맺는 말
1]
박정희-박태준-정주영-이병철은
황무지ㆍ시궁창인 쥐꼬리의 나라--보릿고개의 나라--
넝마주이ㆍ거지의 나라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온 국민들을 하나로 똘똘 뭉쳐
중화학공업의 창달--민족중흥--한강의 기적을 일으킨
혁명가ㆍ선각자ㆍ개척자들이다.
[無에서 有를 창조]한 우리들의 자랑스러운「민족의 영웅들」이다.
[2005년 기준 ; 세계 제10위의 경제대국, 제12위의 무역대국]
[대한민국]은
탁월한 혁명가ㆍ산업영웅들과 <1류민족인 한국민족>이
하나로 똘똘 뭉쳐 일궈낸
「세계적인 명품-걸작」이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운동권과 데모꾼--빨갱이들은
반대ㆍ방해ㆍ저항을 했을 뿐이다.)
2]
선진열강들의 포항제철에 대한 부러움과 놀라움은 대단하다.
현재 Posco의 회장-이구택(경기고-서울공대)은
박태준이 뽑은 포항제철의 공채 제 1기다.
양자강은 뒷물이 앞물을 차면서 바다로 흘러가듯---.
[이구택-회장]의 세계적인 활약상도 대단했다.
박태준이 뿌려놓은 무수한 철강의 인재들이
세계를 누비면서 <1등-포항제철>을 영원토록 지켜낼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포항제철에 건설자금을 빌려주는 일은 바보짓」이라고
당초에 보고서를 올렸던 미국의 자페-박사는 술회한다.
「내 보고서에는 틀린 내용이 전혀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박정희ㆍ박태준이란 인물들이 나의 보고서를 엉터리로 만들었을 뿐이다」
언젠가 중국의 등소평은 [신일본제철]을 찾아가
중국에도 [포항제철]같은 제철공장을 하나 만들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No.]
[Why ?]
[중국에는 <한국의 박태준>과 같은 걸출한 인물이 없기 때문이다.]
3]
박정희 대통령의 십팔년-재임기간 동안에 창조된 걸작들.
새마을 운동--조국의 근대화--한강의 기적--중화학공업의 창달--
자주국방--부국강병--민족의 중흥.
소양강ㆍ충주Dam--화력발전소--경부고속도로--비료공장--포항제철--
현대자동차--현대조선--삼성전자--원자력발전소 등.
국민들의 절대다수는 박정희 대통령을 지휘관으로 하여
하나로 똘똘 뭉쳤다.
99%의 국민들(김영삼ㆍ김대중ㆍ운동권ㆍ데모꾼ㆍ빨/갱이 제외)은
[새마을의 노래ㆍ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세]를 부르면서
신들린 무당이 되어-- 미/친년의 널뛰기를 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 <朝ㅈ빠지게> 일을 하고 또 했다.
(가져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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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포항하면 포항제철소 상징적으로만 알았지 이렇게 깊은 내력을 알려줘서 정말 고마워 많은 공부가 되었네
"임자! 철은 산업의 쌀이야. 쌀이 있어야 밥을 해 먹지 않겠나? 그러니 자네가 제철소를 하나 지어줘야겠어. 제철소를 꼭 만들어야 하는데, 이놈도 못하겠다고 하고, 저놈도 못한다니--, 임자가 맡아줘야겠어." 우리나라에 이러한 지도자가 또 나올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