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질주의 경제관
잠언 12:9,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오늘 본문의 말씀은 지혜로운 경제적 삶에 대한 교훈 중 하나입니다. 성경은 부에 대한 경고를 많이 하고 있음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부 자체가 가지는 위험성에 대하여 수없이 경고한 바 있습니다. 부는 자칫하면 하나님도 잊어버리게 될 수 있는 요소입니다. 부는 분명 그 자체가 신적인 위력을 가진 것처럼 위세를 부려서 자칫 많은 사람들이 부를 숭배하게 만드는 요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시면서, 하나를 중히 여기면 다른 하나를 경히 여길 수밖에 없는 존재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분명히 부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자리를 넘볼 수 있는 매혹적인 존재이므로, 이를 늘 경계해야 합니다.
또한 부가 모든 행복을 다 가져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부요함이 가족 간의 사랑을 가져오는 것도 아닙니다. 부요함이 삶의 지혜를 가져다 주는 것도 아닙니다. 부요함이 편리함은 가져올 지 몰라도 마음의 풍요와 행복을 보장해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부유할 때 사람들은 이기적일 수 있습니다. 고난 중에 서로 위해주던 형제도 재물이 생기면 재산 싸움하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물질이 불행의 이유일 때가 얼마나 많이 있는지요. 저 아프리카 수많은 나라의 내전이 주로 석유와 금이 매장되어 있어서, 그것을 차지하려는 부족간의 갈등과 그것을 부추기는 군벌과 재벌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차라리 부요함 대신에 평화와 공의와 사랑을 더 추천하곤 합니다.
잠언 11장 4절 말씀에, “재물은 진노하시는 날에 무익하나 공의는 죽음에서 건지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6장 8절 말씀에, “적은 소득이 공의를 겸하면 많은 소득이 불의를 겸한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6장 19절 말씀에, “겸손한 자와 함께 마음을 낮추는 것이 교만한 자와 함께 하여 탈취물을 나누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7장 1절 말씀에,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제육이 집에 가득하고도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19장 1절 말씀에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입술이 패역하고 미련한 자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22장 1절 말씀에, “많은 재물보다 명예를 택할 것이요 은이나 금보다 은총을 더욱 택할 것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28장 11절 말씀에, “부자는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나 가난해도 명철한 자는 자기를 살펴 아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잠언 28장 6절 말씀에, “가난하여도 성실하게 행하는 자는 부유하면서 굽게 행하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여러 잠언의 말씀들은 분명 물질적 부요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재물보다 공의로움이 낫고, 재물의 소유보다 겸손의 덕을 가짐이 낫고, 재물이 집에 가득한 것보다 집안이 화목한 것이 낫고, 재물의 많음보다 명예롭고 은총을 입는 것이 낫고, 재물의 많음보다 성실한 덕이 낫고, 재물의 많음보다 자기를 살피는 지혜 있음이 더 낫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현 시대에 만연한 물질 지상주의 풍조를 경계하고 이를 멀리해야 하겠습니다. 돈이면 뭐든지 좋다고 하는 생각처럼 비천한 생각은 없음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그렇다고 재물을 멸시하거나 물질을 성실하게 획득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면 그것은 또 하나의 악입니다. 재물이 없이 건강하고 균형있는 삶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재물을 통하여 우리는 의식주를 해결해갈 수 있기 때문에, 성경은 성실하게 재물을 얻는 것을 귀한 가치로 보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주 성도들에게 가르쳤던 말씀이,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라”는 것이었지 않습니까? “자기 손으로 일하여 자기의 쓸 것을 공급하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자기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여 일가를 이룬 사람을 지혜자는 칭찬합니다.
잠언 22장 29절 말씀에, “네가 자기의 일에 능숙한 사람을 보았느냐 이러한 사람은 왕 앞에 설 것이요 천한 자 앞에 서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직업의 귀천에 대하여 성경은 일체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야곱의 아들 요셉은 자기 형제들이 가족과 가축들과 함께 애굽에 들어왔을 때 그들의 직업이 애굽 사람들이 천하게 여기는 가축 치는 목축업자임을 바로 왕 앞에 당당히 말하도록 격려했습니다. 어느 직업이든지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여 물질을 정직하게 모은다면 그것은 아름다운 일이요 복된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잠언 12장 9절 말씀은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비천히 여김을 받을지라도 종을 부리는 자는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보다 나으니라”
비천히 여기는 직업이요 일이 좀 험하고 다른 사람들이 꺼리는 일일지 몰라도, 성실하게 일하여 물질을 번다면, 그것이 지혜로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스스로 높은 체하고도 음식이 핍절한 자’는 겉은 뻔지르르하지만 속은 실속이 전혀 없어 물질적으로 곤고한 사람을 가리킵니다. 물질적으로 소득이 별로 없으면서 겉만 멀쩡하게 보이는 것보다 차라리 보기에 일이 험하고 힘이 들지만 실속있게 일하여 실질적인 생활력이 있는 것이 낫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을 공동번역 성경은 “먹을 것 없는 양반보다 일거리가 있는 상놈이 낫다”라고 재미 있게 번역을 했습니다.
오늘날 구직의 노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피시방에나 다니는 몰지각한 청년들이 있다고 합니다. 자기가 이렇게 많이 배웠는데, 이름없는 중소기업에서 일하기 싫다는 것입니다. 기름묻힌 장갑 끼고 일 못하겠다고 한다고 합니다. 그 결과 부모님들은 속이 타들어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실속 없이 허영과 허세를 추구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삶입니다. 우리는 실속있게 경제적인 삶을 잘 영위해야 합니다. 그것이 덕이 되고 아름답게 보입니다. 멋있게 보입니다. 정직한 땀방울과 기름 묻은 손은 주님이 기쁘게 마주잡으시는 보배로운 손입니다.
분명코 ‘물질이 최고다’라고 생각하고 돈만 있으면 된다는 물질 만능주의 풍조는 잘못입니다. 아무리 많은 재물을 가진다 해도 그 재물이 영생과 행복과 평안과 지혜와 은총을 갖다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실제적인 현실은 도외시하고 실속 없는 허세주의도 우리는 피해야 합니다. 실속이 없으면 자기도 곤고하고 가족들과 다른 사람들을 돕지 못하고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경적 교훈을 따라 실질주의를 따라야 합니다. 비록 사람 보기에는 비천하게 보일지 몰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성실하고 정직하게 물질을 번다면 족합니다. 그리하여 내 쓸 것과 가족을 부양하고 선한 일에 나누며 하나님의 사업에 힘쓴다면, 그는 하나님 보시기에 참 아름답고 귀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두가 어느 분야에서든지 성실하게 땀 흘려 일하여 그 분야에서 최고가 되고, 인정받고, 또한 물질적으로도 합당한 보상을 얻어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가장님들과 장래의 우리 자녀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시다. 주님, 실제적인 경제적 삶을 잘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늘날 많은 젊은이들에게 직장의 문을 열어주시고 그들로 하여금 성실하게 일하여 자기의 앞날을 잘 가꾸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옵소서. 우리의 자녀들의 앞길을 복된 길로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목사님 좋은글 감사합니다
성실하게 살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예 집사님~^_^신집사님도 속히 완전 건강하시기 바라고요~~저녁예배 때 봬요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