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남북정상회담 후에도 소이산에 올라 북녘을 향해 기도회를 가졌다. (사진: 국경선평화학교 제공) |
저는 미연합감리회(UMC)에서 진행하는 GMF(Global Mission Fellow) 청년 선교사로 2017년 10월 22일, 라이베리아에서 한국으로 왔습니다. 비무장지대(DMZ)에 인접한 민통선 내 국경선평화학교(BPS, Border Peace School)에서 평화를 공부하고 실질적인 활동을 배우는 중입니다. 국경선평화학교는 한반도와 국제사회 안에서 평화와 갈등 해결을 위해 일할 피스메이커를 키우는 학교입니다. 저는 이곳에서 평화를 배우는 동시에 마을의 청소년 평화교육가로서 평화영어, 유기농 수업 등 청소년 평화교육을 담당하고 있으며, 지역 주민을 위한 여러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일상 화요일, 우리는 주로 사무실에서 일을 합니다. 문서 및 파일을 편집할 뿐 아니라 소셜미디어를 통해 한국과 세계의 사람들과 기관들에게 우리의 활동에 관한 뉴스레터를 발송합니다.
수요일에는 국경선평화학교 교실에서 피스메이커 동료들과 함께 평화영어 수업에 참석합니다. 우리는 갈등 해결과 평화를 만드는 데 있어서의 비폭력적 접근, 평화 구축과 관련된 여러 주제에 관한 기사를 읽고 토론합니다.
목요일에는 밭에서 유기농법을 이용해 농사를 짓습니다. 제게 농사는 평화교육에서 처음 해보는 새로운 경험입니다.
저는 평화교육가로서 매주 금요일 두 시간씩 마을 노인병원에서 물리치료가 필요한 어르신들을 물리치료실까지 모셔다드리는 특별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가끔은 그분들을 휠체어에 태워 병원 복도를 거닐며 기분 전환을 시켜드리기도 합니다.
전쟁의 위기에서 내디딘 기념비적 첫걸음 한반도는 지금까지 70년 동안 분단되어 있었습니다. 제가 거주하는 DMZ 부근의 접경 마을 철원은 6·25 전쟁 당시 주요 격전지였고, 거의 폐허가 되었습니다. 북한 땅이었던 철원이 전쟁 후 남과 북으로 나뉘었는데 대부분의 농토는 남한이 차지하였습니다. 새로 만들어진 마을 철원에는 주민 5만여 명이 살고 있고, 그중의 절반은 농부입니다.
제가 이 땅에서 가장 슬픈 것은, 전쟁 후 지금까지 70년 동안 가족들이 서로 남과 북으로 헤어져 있다는 사실을 떠올릴 때입니다. 남북 갈등의 역사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아픔을 느끼고 상처를 입었는지 느낍니다.
제가 한국에 오기 전,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으로 인해 남북관계의 긴장은 상당히 고조되었습니다. 이 상황은 저와 제 가족에게 두려움을 안겨줬지요. 미국 대통령 트럼프가 북한에 핵미사일을 계속 제작하고 실험할 시 북한을 공격하겠다고 위협했을 때, 우리 가족은 모두 한반도에 전쟁이 날까 봐 걱정에 휩싸였습니다.
하지만 평창 올림픽 전후에 남북한 대표들이 여러 차례 회담을 갖고, 북한 올림픽 팀과 그들의 환영단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이 남한을 방문한 것을 보면서 안심했습니다. 그리고 최근 두 나라 간의 정상회담을 통해서, 곧 머지않아 평화협정이 될 수도 있겠다는 큰 희망을 우리는 보고 있습니다. 남북한 갈등에 종지부를 찍기 위한 기념비적인 첫걸음을 내디뎠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의 리더가 처음으로 국경선을 넘어 남한을 방문하는 것을 보면서, 저는 남북한의 사람들이 화해하고 서로 평화를 가꾸어 나갈 때가 왔다고 믿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평화교육가이자 국제평화활동가인 저에겐 정말 가슴 뛰는 일이며, 제가 평화활동을 이어가는 데에 큰 기쁨과 영감을 불어넣어 줍니다.
기도가 만든 평화, 117일 소이산 평화촛불기도 우리는 그동안 한반도에서 평화를 달성하는 길을 찾기 위해 한국 및 세계 각지에서 찾아오는 방문자들과 많은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매일 오후 3시, 소이산을 오르며 침묵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 학교의 중요한 일과 중 하나입니다. 특별히 지난겨울 평창올림픽이 한반도와 세계 평화를 위한 잔치(평화올림픽)가 되기를 염원하며 소이산에서 117일 동안 드린 평화촛불기도는 저에게 엄청난 경험이었습니다. 우리는 평소 ‘기도가 열쇠’라는 말을 사용하면서도 행동에 옮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산꼭대기에서 드리는 매일의 평화기도는 평화교육가로서 매우 새로운 경험과 배움이었습니다.
2016년 10월, 거의 모든 연령의 대한민국 국민들은 ‘광화문 촛불혁명’이라고 일컫는 평화시위에 참여했습니다. 이 운동은 국정농단을 일으킨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을 이끌어냈습니다. 일반 시민들이 그들의 합헌적인 권리를 행사하며 조직된 현대의 평화시위라는 점에서 의미가 컸습니다. 이 평화시위운동은 전국의 많은 개인들과 NGO들에게, 국가와 사회를 향해 불만(고충)과 감정을 전달하는 최고의 방법으로 인식되며 퍼져나갔습니다.
그즈음 국경선평화학교에서 우리만의 평화촛불운동을 했습니다. 우리는 ‘평화촛불운동’을 ‘한반도와 세계의 평화를 위한 평화촛불기도’로 바꿨습니다. 평화운동의 일부로, 우리는 매일 오후 3시 촛불을 가지고 소이산을 오르면서 모든 곳의 평화와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 기도해왔습니다.
겨울방학 동안에도 우리는 산을 오르고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이는 저에게는 큰 도전이었습니다. 저에겐 첫 겨울이자 첫 눈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차차 익숙해져 갔습니다. 우리는 바람이 차고 매서운 산 정상에서 평화촛불기도회를 열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대단한 성취였습니다.
우리의 평화촛불기도는 김정일 국무위원장과 문재인 대통령의 회담을 목격하는 것으로 응답을 받았습니다. 곧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일 북한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도 열립니다. 그들이 평화로운 대화를 나누기를 희망하고, 곧 그렇게 되리라 믿으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 나라를 떠나서 한국으로 와 이 엄청난 역사적 사건의 한 조각이 된 경험은 평화활동가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합니다.
평화와 화해를 위한 교회의 역할 우리끼리는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세계 어느 지역에서라도 갈등에 대해 다루려고 모일 때, 궁극적인 피스메이커는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반드시 교회가 평화와 화해에 대한 이슈들에 대해 가장 먼저 나설 수 있도록 격려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일치와 연합의 근본은 교회입니다. 교회는 많은 분야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미국 장로교의 평화 대표단은 2017년 11월 DMZ를 방문했을 때, 소이산에서 평화촛불기도를 함께 드렸습니다. 저는 미국 장로교와 한국 장로교의 그룹들을 만나 남북 갈등에 대한 생각과 의견을 나누고 한반도의 평화 협상과 통일을 위한 길을 함께 나눌 기회를 가졌습니다. 장로교 교회의 명망 있고 경험 많은 임원들과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진 것에 감사합니다. 교회는 인도주의적 사업과 신앙 구축에 대한 강한 동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평화와 화해를 위한 일에 사람들을 모을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조직입니다. 정부와 다른 기관들이 평화를 추구하는 교회의 사업을 지원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국경선평화학교에 온 이후로, 이곳을 방문해 소이산에 함께 기도하러 올라간 많은 목사님들이 있습니다. 저는 이 목사님들이 교회로 돌아가 주최한 평화와 화해 워크숍에 참여했습니다. 많은 교회의 이런 실천들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영감을 주고 한반도의 평화 구축에 기여하는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이 목사님들께서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를 장려하기 위해 쏟는 시간과 헌신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막 11:23)
기도는 상황을 바꿉니다. 기도는 그리스도인이 인생의 모든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는 데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기 위해서는 기도해야 합니다. 저는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국경선평화학교의 평화촛불기도를 비롯하여 한국의 더 많은 그리스도인의 기도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마음을 바꾸어 위협적인 핵전쟁이 아니라 북한이 남한과 미국과의 평화적인 대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에디슨 토 Edison De-Conti Toe 아프리카 라이베리아 출신으로 지난 2017년 10월, 미국연합감리교회의 지구촌 청년선교훈련과정(GMF)의 일환으로 국경선평화학교에 왔다. 국경선평화학교에서 피스메이커(Peacemakers) 교육 과정에 참여하면서 남북한 분단과 갈등 과정에서 평화를 건설하는 길을 배우고, 철원 마을공동체에서 청소년과 노인들을 위한 봉사활동을 한다. 작년 10월부터 국경선평화학교가 시작한 ‘한반도 평화를 위한 촛불 기도운동’에 참여하여 매일 오후 3시 소이산 평화기도순례를 하고 있다. 28세 청년인 그는 예수 찬양을 즐겨하여 도예찬이란 한국 이름을 갖고 있다.
번역_전영숙 국경선평화학교 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