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듯한 명절
송 희 제 (아녜스)
지금껏 살아온 중에서 올해 갑진년 설날 연휴 하루하루는 우리 부부의 가슴이 뿌듯함으로 가득한 날들이었다. 그동안 결혼하여 40여 년 명절은, 자식으로서의 해야 할 본분을 다하고 도리와 의무감으로 지낼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모시던 홀 시모님이 돌아가신 후는, 역행으로 서울 큰댁으로 전날부터 가서 제사 준비를 하느라 더 바빴었다. 그러나 이제는 시대가 많이 변하고 있는 만큼 우리 시댁 제사 문화도 변화해 가는 중이다.
그러니까 시댁도 몇 해 전부터 모두 장손 집에 모여 지내던 제사를 형태와 횟수를 대폭 간소화했다. 가까운 대전 인근 종산에 가족 묘원을 만들어 놓아 가을 추석 때 모여 합동으로 지낸다. 우리는 대전에 살아 가까우니 평소에도 가끔 그 묘원을 찾곤 한다. 결혼하여 중병인 홀 시모님을 모시며 오래도록 맞벌이를 해선지 희비가 있을 땐 지금도 발걸음이 그곳을 향하게 된다.
우리 부부는 올 설 연휴 나흘 동안 하루하루마다 어떻게 지낼까 생각하며 계획을 세웠다. 우선 설날 당일에 두 군데흫 가기가 바쁠 것 같아 친정 산소가 부여 쪽에 천주교 묘지로 향했다. 우리는 그 먼 부여 쪽을 먼저 택한 것이다. 부모님과 오라버니, 자식 없는 큰언니 산소를 찾아뵈었다. 생전에 혼자 살 때 늘 큰언니의 그림자처럼 내가 같이 있어선지 지금도 부모님보다 내 가슴엔 큰언니가 더 자리하고 있다. 그래도 부모님과 오라버니 산소가 바로 옆에 있어 언니 산소가 덜 외로워 보인다.
설날 당일도 예전처럼 시댁 제사를 서울로 지내러 가지 않았다. 우리는 성당 일정에 따라 할 수가 있어 참 좋았다. 미리 성당에 시댁과 친정 조상님들을 위하여, 불쌍한 영혼 큰언니와 일찍 간 조카를 위하여, 낙태된 태아를 위하여도 기도와 지향을 둔 미사 예물을 바쳤다. 내가 올린 명단이 위패 게시판 제대 앞 맨 윗줄 가운데에 있다. 일찍 가서 앞자리에 앉았다. 줄지어 나가 분향을 하고 돌아가신 분들을 위하여 연도도 각자의 지향을 새기며 정성껏 올렸다. 그런 후에는 합동 미사도 올렸다.
전에 서울로 갈 때는 이런 일정에 따라선 직접 하지는 못하고 미사 예물만 바치고 제사로 대신했었다. 성묘도 명절날 서울서 차가 밀려 다음날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시댁 성묘까지도 당일 할 수 있게 되었다.
입교전이라 미사를 함께 올리지 못한 장남 네지만 가까이 살고 있는지라 성묘는 함께 하기로 랬다. 어린 두 손주까지 데리고 산소로 오기로 했다. 다른 때보다 미사를 늦게 끝내고 우리는 곧바로 선산에 갔다. 아들네 식구 4명은 이미 산소에 와있었다. 일곱 살 장손이 내 목소리를 듣고는 쪼르르 내려와 할머닐 반긴다. 예쁘기 그지없다. 유치원서 배움을 잘 받아들여 하는 짓이 참 예의 바르고 모범이라 더 사랑스럽다. 모두 함께 재배로 설날 성묘를 올렸다. 날씨까지 춥지 않았고 게다가 산에서 하산하는 비탈길이 눈과 비가 안 와 땅을 딛기에도 적당하였다. 그러나 막상 큰 아들네는 점심도 같이하지 못하고 서둘러 서울 처가로 향하였다. 좀 서운했다.
그러나 이번 명절 연휴는 토·일요일이 끼어 월요일까지이다. 아직도 이틀이나 남았다, 여유롭다. 설 이튿날인 일요일은, 주일미사를 드리고 우린 곧바로 용인으로 향했다. 둘째 아들 내외가 우리에게 안겨준 손자를 만난다 생각하니 마음이 마냥 설렌다. 둘째 네는 첫 손주를 결혼 후 7년 만에 낳았는데 아직 첫돌도 되지 않았다. 밀리는 차에 너무 오래도록 차를 타는 게 손주에게 힘들 것만 같아 우리는 일산서 오는 중간 지점쯤서 만나기로 한 것이다. 게다가 서울 처가에 갔던 장남 네도 와서 우린 9명의 가족이 함께 용인에 있는 리조텔에서 같이 합류하는 거로 되어 있으니 올 설은 특별한 명절인 셈이다. 이게 다 긴 연휴라서 함께 보냘 수 있는 거라 생각하니 그 연휴가 그저 고맙기만 했다. 두 아들이 우리 부부에게 안겨 준 어린 손주들 3명까지 함께 할 생각을 하니 만나기 전부터 기분이 벅차오른다.
서울과 일산, 대전에서 출발했는데도 우리 모두 비슷한 시간에 리조텔에 입실했다. 이렇게 아홉 명 온 가족이 모인 건 처음이다. 우리 부부는 손주 셋에 둘러싸여서 너무 반갑고 기뻐 환호성을 지른다. 그중에도 제일은 역시 둘째네 손자다. 결혼 7년 만에 태어난 손주가 너무 잘생기고 튼실해 보인다. 머리숱도 많고 뒤통수도 동글게 잘 생겼다 생각할수록 둘째 며늘아기가 고마웠다. 모두의 눈길과 관심이 아기에게 간다. 갑자기 많아진 아기 시야에 보이는 가족들. 얼굴이 낯설어 울려고 하는 표정까지도 우리에게는 즐거움이다. 그저 웃음바다다. 차남 네 손주 아기가 태어나기 전에 가족여행을 한 이후, 이번에 다 모였으니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튿날 아침은 내가 준비한 떡국으로 식사를 했다. 그런 후에 우리 부부는 두 아들 내외와 세 손주의 세배를 정식으로 받았다. 이보다 더 큰 감사와 행복이 있을 수 없다. 지금껏 살아온 중에서 올해 갑진년 설날 연휴 나흘이 내게는 가슴 뿌듯한 하루하루였다. 이렇게 기쁜 설날을 맞이하게 해 준 천주님께 감사를 드린다. 나는 연신 성호를 그으며 그저 흐뭇한 표정으로 손주 셋을 바라보고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