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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충사
조로아스터교 [Zoroastrianism]
예언자 조로아스터의 가르침에 종교적·철학적 기반을 두고 있으며,
유일신 아후라 마즈다(Ahura Mazda)를 믿는 고대 페르시아 종교이다.
이원론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한자로는 배화교(拜火敎), 중국에서는 현교(祆敎)라 한다.
키루스 2세는 메디아의 수도 에크바타나를 점령하고
대항한 카르디아, 리디아, 이집트 가운데 그는 우선 리디아를 쳐서 수도 사르디스를 함락하고,
소아시아 연안의 많은 그리스계(系) 식민도시를 수중에 넣었다.
카르디아로 진격 바빌론을 무혈점령하고,
바빌론에 유폐되어 있던 이스라엘인을 해방시켜 본국으로 돌려보냈으며,
유대교의 신전조영(神殿造營)도 허가하였다.
종교나 관습에 전혀 간섭하지 않는 것은 이 왕조의 방침이었다.
아프가니스탄, 페르시아 전역으로 전파되었다.
유일신을 믿는 종교임에도 고대 토착 종교와 혼합되었으며,
기원전 4세기경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기도 했다.
‘아베스타(Avesta)’는 조로아스터교의 경전으로,
주신(主神)인 아후라 마즈다 또는 그의 제령(諸靈)이 예언자 조로아스터에게 계시한 것으로,
우주의 창조, 법, 전례, 조로아스터의 가르침 등이 기록되어 있다.
알렉산드로스대왕이 페르시아를 정복했을 때 방대한 양의 진본들이 소멸되었다고 한다.
현존하는 ‘아베스타’는 옛날 단편들을 모아 21책으로 된 경전이 편집된 듯하나,
현재까지 거의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은 그 일부인 ‘벤디다드(Vendidad)다.
창조와 최초의 인간 이마(Yima)에 대한 이야기도 기록되어 있다.
유일신 사상, 내세관, 선과 악으로 대비되는 세계관 등은
유대교, 그리스도교, 불교, 이슬람교 등에 큰 영향을 미쳤다.
중동 지역에 이슬람이 도래하면서 그 교세가 크게 약화되었다.
불을 숭배하는 종교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이는 조로아스터교의 제례 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조로아스터 신자들은 불이 타오르는 작은 제단 앞에서 제례를 치르는데,
신자들은 불 자체를 숭배한 것이 아니라,
동물이나 나무 막대기 헌주 등의 봉헌물에 불꽃과 냄새를 피워 경배를 표현했던 것이다.
종교의 창시자 조로아스터의 본명은 스피타마 자라투스트라(Spitama Zarathustra)이며,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신빙성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거의 없으며
현명하고 선한 이상적인 인간으로 묘사된다.
열두 살에 집을 떠났고, 서른 살에 강력한 신비체험과 영감을 얻어
이후로 자신의 새롭고 독창적인 메시지를 가르치기 시작했다고 전해진다.
서른 살이 되던 해에 아후라 마즈다 신의 천사장으로부터 유일신에 대한 계시를 받게 되며,
8년 동안 아후라 마즈다의 나머지 다섯 천사들이 하나씩 나타나 진리를 전해주었다고 한다.
계시 받은 진리를 대중들에게 전하기 시작했으나,
모두 그를 광인(狂人)이라 생각하고 그 말을 듣지 않았다.
이원론적 일신교(一神敎)로, 고대 인도-이란 또는 인도-게르만의 종교적 공유재산에
근원을 둔 신들이나 제령(諸靈)을 최고신 아후라 마즈다 아래 통괄하고,
우주를 선과 악의 두 원리로 설명한다.
아후라는 ‘주(主)’를 의미하며, 마즈다는 ‘지혜’를 의미하므로
아후라 마즈다는 ‘지혜의 주’를 의미한다.
당시 대부분의 종교가 여러 신을 섬기는 다신론적 종교였음을 감안한다면,
아후라 마즈다 외의 다른 신을 모두 거짓으로 선언한 가르침은 획기적인 것이었다.
유대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가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아후라 마즈다가 사람들에게 나타날 때 직접 나타나지 않고,
여섯 가지 불사의 존재 혹은 천사장을 통해 나타나며,
여섯 중 셋은 남성적이고, 다른 셋은 여성적이다.
여섯 가지 존재는 각각 지혜·사랑·봉사·경건·완전·불멸을 상징하고,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아후라 마즈다의 속성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이 여섯 가지 존재를 아메샤 스펜타(amesha spentas)라고 부른다.
경전 ‘아베스타(Avesta)’에 의하면,
태초에 아후라 마즈다에서 두 영(靈)이 나왔는데 하나는 선을 선택한 영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천사인 스펜타 마이뉴(spentas mainyu)이고,
다른 하나는 악을 택한 앙그라 마이뉴(angra mainyu, 훗날의 아흐리만 ahriman)이다.
앙그라 마이뉴는 다른 이름들로도 불렸는데,
그 중 가장 많이 불리는 이름은 샤이틴 혹은 사탄이다.
그의 주위에는 악마의 무리가 있어서 명령에 따라
사람을 시험하거나 괴롭히는 일을 수행한다.
세계에서 최초로 악마에 대한 계보를 체계화 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다.
세상은 선과 악이 싸우는 투쟁의 현장이며,
인간은 타고난 이성과 자유 의지를 활용하여 이 둘 중 한쪽을 선택해야 한다.
인간은 선을 선택하여 완전함에 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하며,
선택의 결과에 따라 인간의 운명이 결정된다.
선과 악은 한쪽이 존재해야지만 다른 한쪽도 의미를 가지기 때문에
‘아후라 마즈다의 쌍둥이’라고 부른다.
선의 천사들이 원래의 자연종교적 ·물신숭배적(物神崇拜的) 특성이 약화되고
아후라 마즈다의 뜻대로 움직이는 비주체적 천사가 되고,
반대로 악의 천사들은 주체성을 회복하고 아후라 마즈다와 직접 대결하게 된다.
종말론은 2단계로 되어 있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3일 동안 몸에 그대로 남아서 한평생 행한 일을 돌이켜보고,
제 4일이 되면 심판대로 간다고 믿는다.
사자(死者)의 육체는 그들의 독특한 장사(葬事)법인 풍장(風葬) ·조장(鳥葬)에 의해
독수리와 들개들의 밥이 되지만, 영혼은 천국의 입구에 도달한다.
그곳에서 천사 미드라가 죽은자의 삶의 행위를 저울에 올려놓고 심판을 한다.
저울이 악한 쪽으로 기울면 그 영혼은 지옥으로 가고,
약간이라도 선한 쪽으로 기울면 그 영혼은 천국으로 간다.
심판을 받은 영혼은 계곡을 가로질러 놓인 다리를 지나는데,
선한 영혼은 넓고 편안한 다리를 건너서 계곡 너머의 천국으로 가고,
악한 영혼은 칼날 같은 다리를 건너다가 결국 계곡 아래의 지옥으로 떨어진다.
사후 세계에는 천국과 지옥 외에도 '하밍스타간 (Hamingstagan)'이라는 곳이 있다.
하밍스타간은 양쪽 어디에도 갈 수 없는 사람들을 위한 중간 상태를 말하며
혼합된 지역이라는 뜻을 가진다.
선한 행동과 악한 행동을 저울질했을 때에 전체적으로 균형 이룬 사람들이 가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가톨릭교가 인정하고 있는 연옥설과 유사하지만,
연옥에서 용서받은 영혼은 죄를 씻고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고 하는
가톨릭교의 교리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한편 천국과 지옥에 간 영혼은 거기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니라
아후라 마즈다가 예정해 놓은 종말에 이르러 구세주가 나타나면,
모든 영혼들이 부활하고, 악한 영혼은 순화되어 선한 영혼과 합류한다.
그러나 사탄과 악령들은 완전히 소멸된다.
유대교 [Judaism]
유일신인 야훼를 신봉하면서 스스로 신의 선민(選民)임을 자처하며
메시아(구세주)의 도래 및 그의 지상천국 건설을 믿는 유대인의 종교이다.
기원은 고대 이스라엘인의 종교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보통 유대교라고 하면 바빌론 유수(BC 586∼BC 538년) 이후,
'모세의 율법'을 근간으로 하여 발달한 유대인의 고유 종교를 말한다.
기원전 2000년대 말에 사울왕으로부터 시작된 고대 이스라엘왕조는
기원전 6세기 초 신바빌로니아에 의하여 무너졌다.
그 당시 전 국토는 괴멸적 타격을 입고 초토화되었으며,
지배층·지식층·기술자 다수가 포로로서 바빌론으로 연행되어 갔는데 ‘바빌론 유수’라 한다.
이 사건은 이스라엘 종교사와 그 후의 유대교의 성격에도 그 흔적을 남겼다.
기원전 538년 페르시아의 키로스 2세에 의한 메소포타미아 정복은
반세기에 걸친 바빌론 포로기(期)에 종지부를 찍고 이스라엘 포로민의 해방을 가져왔다.
그들 일부가 야훼신이 그들 조상에게 주기로 약속하였다는 땅 팔레스티나로 돌아와
폐허가 된 예루살렘과 성전을 복구하였고,
문서학자인 에즈라의 지도 아래 선민사상적 유일신 신앙을 종교적 이념으로 하는
민족집단으로서 그들의 역사를 재개하였다.
이 시기에 과거의 역사가 신학적으로 검토·반성되었고, 그에 따라 전승(傳承)이 재편성되었다.
유대교의 경전(구약성서)은 기원전 1세기에 결집이 거의 완료되었지만,
그 기본적인 구성은 기원전 6세기인 이 시기에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창세기’ 1∼2장의 '천지창조' 이야기도 이 시기에 유래되었고,
그들의 신학도 이때에 역사의 원점을 향하여 역투영(逆投影) 시켜 정립되었는데,
세계의 시초를 신화적·설화적이 아니라 신학적으로 설정함으로써 마지막,
즉 종말사상의 궁극적 전개가 가능하도록 구성해 냈다.
모든 종교적 전승 속에 역사와 또 공간과 시간이 끊임없이 수용(受容)·정리된 시기라고 할 수 있다.
유대교 역사상에 종말론이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 것은
페르시아 사상의 영향을 크게 받은 후인 기원전 2세기 이후였다.
그리스도교는 바로 이 종말론적 정신풍토 속에서 태어났다.
유대교 본래의 특색은 율법(律法)에 있다.
율법의 기초는 계약의 개념으로서,
이것은 원래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경제적·사회적 통념이었는데,
그것을 신(神) 대 인간의 관계 속에 끌어들인 점이 유대교의 특성이다.
‘이스라엘 민족의 신은 그들 민족의 조상을 선택하여 그의 백성으로 삼았고,
그 자손들에게 약속한 땅을 주어 그들을 지키고 축복한다’는 것이 선민사상의 개념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조상 대대로 믿어온 신에게만 오직 정성을 다하고,
자신들을 신의 백성으로 선택한 야훼신 이외의 신들은 섬기지 않는다.
이 계약이행의 내용은 신의 편에서는 '헤세드(은혜)'이고,
백성 쪽에서는 신이 부여한 율법의 준수이다.
율법을 지키지 않는 것은 계약위반이므로 신의 분노를 초래한다.
보편(普遍)종교에 비하여 유대교는 보통 민족종교로 정의된다.
이스라엘인은 처음부터 완전한 초월적·절대적 일신의 관념에 도달하여 있는 것이 아니다.
분명히 어느 면에서는 ‘제2 이사야’와 같이 고도의 종교적 보편성을 나타내면서,
한편 신 관념에서 합리화, 즉 주술성(呪術性)의 극복을 추진하고 있는 면도 있기 때문이다.
유대교는 예수가 일반 민중을 상대로 한 종교적 인격자라고는 인정하지만,
그리스도교가 주장하는 하느님의 아들, 즉 메시아로는 인정하지 않으며,
현재까지도 메시아를 기다리는 대망(待望)을 존속하고 있다.
그래서 실제로 메시아라고 호칭되거나,
자칭하여 다수의 추종자를 끌어들인 인물이 근세에 이르기까지 때때로 나타나고 있다.
현재의 이스라엘을 성립시킨 시오니즘 운동의 배후에도
성지(聖地) 귀환 촉진의 한 요인으로서 현대적인 메시아 사상이 깔려 있다.
유대교의 경전인 구약성서는 후에 그리스도교의 경전으로도 되었고,
유대교에서는 그 이후의 구전(口傳)의 율법과 고대 말기에
그 해석을 집대성한 ‘탈무드’를 경전에 추가하였으므로,
그래서 정통적 유대교는 유대교의 특색을 여기에서 찾는 경향도 있다.
시대에 따른 율법해석이나 전승(傳承) 형성이 랍비(스승: 율법교사)의 지도 아래
꾸준히 이어지고 있으며, 정통파 개혁파 등 여러 파가 생겨나고 있다.
예루살렘의 랍비 본청(本廳)은 유대교의 2대 종합집단인
아슈케나짐과 스파라딤을 통합하는 형태로서, 최고 권위를 이루고 있으며,
민법 특히 혼인법의 규제를 통하여 교단 유지의 구실을 하고 있다.
유대 또는 유다이아는 전통적으로 팔레스타인 지방의 남단을 부르는 고대의 지명이다.
수많은 민족들이 이 지역에서 역사의 부침을 거듭해 왔는데,
그 중에서도 유대인이 유명하다. 유대교의 토라 전승에 따르면
이 지역은 유대인의 시조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이 살았고 묻힌 조상의 땅이다.
연합이스라엘왕국 또는 헤브라이왕국은 고대 이스라엘에 있었던 왕국 중의 하나였다.
사울왕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당대에 그 위가 끊어졌고,
얼마 동안 왕국은 다윗의 유다와 이스보셋의 이스라엘로 나뉘어졌다.
다윗은 양을 치는 목동 출신이었는데, 하나님께 불순종하여
악신에게 시달리던 사울왕을 음악연주로 치료한 일이 인연이 되어 왕실에서 살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전쟁 영웅으로 부각된 후 이를 시기한 사울에게 쫓겨 다녔다.
다윗은 이러한 곤경을 이겨내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사울이 죽은 후 왕위에 올랐다.
그는 왕이 된 후에도 사울의 후손 즉, 이전 왕실과 내전을 벌이면서 권력투쟁을 벌였다.
이스보셋은 전왕 사울의 아들로 분열기 때 북쪽 지파들의 왕이었다.
사울이 블레셋의 공격을 받아 죽을 당시 사울의 아들들 중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남쪽에서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자 사울 군대의 장수였던 아브넬이
마하나임에서 길앗과 아수르족, 이스르엘, 에프라임과 베냐민을 통합하여
이스보셋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웠다.
그러나 권력의 대부분을 아브넬이 장악하고 다윗에 대항해 전쟁을 치렀으나 크게 패했다.
아브넬은 이스보셋의 아버지 사울의 후궁이었던 리츠파를 범하는 일을 저지르고
이스보셋을 배반하고 다윗에게로 갔다.
아브넬이 다윗의 부하 요압에게 암살당하자 이스보셋은 크게 흔들렸고,
그러다가 장수 레갑과 바아나에 의해 살해당했다.
내전에서의 승리로 권력이 어느 정도 안정되자,
다윗은 기우제를 명분으로 사울의 후손 모두를 숙청했다.
하지만 그는 아들 압살롬의 쿠데타로 피난을 다니는 등, 권력기반은 불안하기 그지 없었다.
구약성서는 다윗이 충신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이를 숨기기 위해
우리아를 맹렬한 전쟁터에서 죽인 것에 대한 죄의 열매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일 왕국으로 통합한 다윗은 이후 여러 이민족들을 쳐부수고 죽을 때가 되자
자신의 아들이자 후계자인 솔로몬을 왕으로 세운 뒤
왕이 되려던 아도니야와 그의 무리들을 처벌하고 죽었다.
왕위는 솔로몬까지 이어지다가 르호보암왕 때 이스라엘왕국과 유다왕국으로 분열되었다.
모세시대에서 그들의 시대까지의 역사인 ‘신명기(申命記)’에서 ‘열왕기(列王記)’까지가 편찬되었다.
5세기 후반에 느헤미야, 에즈라 등이 귀국하면서 새로운 법전(法典)이 나오고
민족이 재건되었으며, 유대교가 성립되었다.
페르시아제국의 키루스 2세에 의해 해방되어 유대인들이 귀환하였으나 이어
알렉산드로스대왕 이후 잠깐 동안 프톨레마이오스왕조와 이어 셀레우코스왕조의 지배를 받았다.
유다 마카베오의 셀레우코스왕조에 대한 반란 이후 하스모니아왕조가 들어서면서
유대인 왕국이 들어섰으나 결국 내분으로 로마의 통치를 받았는데,
로마제국은 유대를 직접 다스리지 않고, 헤로데 대왕과 그의 후손들로 구성된
헤로데 왕가를 유대의 지역권력으로 임명하여 다스렸다.
135년 바르 코크바의 반란으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모든 유대인을 추방하였고,
이후 유대인은 자신의 땅과 국가가 없이 디아스포라를 해야만 했다.
유대인은 1948년 이후에야 자신들의 국가 이스라엘을 세워 다시 이 지역으로 돌아왔다.
그리스도교 [Christianity]
나사렛 예수를 그리스도(메시아)로 믿는 종교이다.
원어(原語)는 크리스티아노스(Christianos)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하는데,
그 뜻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이다.
그리스도교의 기점과 근거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이며 인류의 구원자로 믿는 것을 신앙의 근본교의로 삼는다.
크게 로마가톨릭교회, 동방정교회(正敎會), 프로테스탄트교회의 세 갈래로 갈라졌으며,
이 밖에도 동방정교회 내의 몇몇 독립적인 교회들과 프로테스탄트교회 내의
수많은 종파들이 세계 곳곳에 퍼져 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교를 영원하고 참된 진리를 내포한 종교이자,
보편적인 구원의 종교라는 기본원리 아래서 이해하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그리스도교의 본질을 순전히 역사주의적 입장에서 밝히려는 논의도 일어나고 있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우주의 창조주이며,
모든 존재의 근원으로서 자존(自存)하는 신이며,
그의 본질은 '사랑(agape)'이다.
이 사랑은 하느님의 존재와 떨어져 있는 별개의 것이 아니라,
바로 하느님의 존재 그 자체로서의 사랑이다.
하느님은 그 사랑으로써 세상의 창조와 구원 사업을 이룩하는데,
그 사업은 바로 인류의 역사 속에 구현된다.
구약성서에 의하면, 하느님은 자신의 창조와 구원 사업을 펼치기 위하여
역사 속의 한 민족인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계약을 맺었는데,
그것은 "나는 너희의 하느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된다"는 것이었다.
이 계약의 근거와 핵심이 바로 사랑이다.
그러므로 이 계약을 '사랑의 계약'이라고 한다.
본질이 선(善)이요 사랑인 하느님은 인간과의 계약에 절대적으로 충실하여,
이스라엘 민족이 우상을 섬겨 계약을 파기했을 때에도 하느님은 사랑의 계약을 지켰다.
하느님은 그 계약의 실현인 인간구원의 역사를 이루기 위하여 자신이 스스로 사람이 되었다.
요한의 복음서 1장 14절에서는 이것을 "말씀(Logos)이 사람이 되셨다"고 표현하였는데,
이때의 말씀은 바로 하느님의 본질인 사랑이 이 세상에 구현되는 원리로서,
이의 육화(肉化)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가장 특징적인 신관(神觀)인 삼위일체(三位一體)의 하느님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교의 하느님은 인간과 인격적 관계를 맺은 신으로서,
그 자신이 3위의 인격을 가지고 있다.
곧 성부(聖父), 성자(聖子), 성령(聖靈)의 3위로서,
이 셋은 각기 독립적인 위격(位格)이면서도 별개의 존재가 아니고
3위로써 하나의 하느님을 이룬다고 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삼위일체 교리이다.
3위는 하나의 하느님이 인간에게 자신을 드러내는 양식(樣式)의 차이로,
아버지로서의 하느님은 역사의 주인이요 심판자로서 구약성서를 통하여 자신을 드러내었다.
아들로서의 하느님은 사람이 되어 세상에 살았고,
또 죽었다가 부활하여 지금도 살아 있는 예수 그리스도이며,
성령으로서의 하느님은 역사 속에서 항상 새로운 생명의 힘으로 작용하고 활동하는 영적 존재이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에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의 구체적인 형상으로서,
그의 본질은 역시 사랑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아버지인 하느님의 구원사업에 함께 참여하여,
이 세상에서 자신을 낮추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사랑을 구현하였으며,
그의 사랑의 삶과 죽음과 부활에 의하여 인간은 하느님의 구원을 약속 받았다.
이것이 그리스도교 교의(敎義)의 핵심이며, 본질을 이루는 원리이다.
이와 같은 교의를 그리스도교에서는 하느님이 인간에게 계시(啓示)한 것으로 믿는다.
하느님에 대한 지식은 인간의 이성이나 양심 또는 자연을 통해서도 알 수 있으나,
자연계시에 의한 하느님에 관한 지식은 부분적인 것이며 불완전한 것으로서,
다만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올바로 하느님을 알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스도에 의한 계시종교(啓示宗敎)라는 특수성을 가지지만,
그 계시는 인류역사 속에서 구현되기 때문에 또한 역사적인 종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는 인류역사와의 맥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Jesus)는 고대 그리스어 이에수스(Ίησους)의 라틴어 표기이며,
이에수스는 다시 여호수아(히브리어: Jehoschua) 혹은 예슈아(히브리어: Jeschua)를
코이네 그리스어로 옮긴 말이다.
Jehoschua의 어원은 접두어 Je- (히브리어: JHVH/YHWH: Jahveh 야훼, 하느님)와
히브리어 Hoshea(구원, 구세라는 뜻을 가진 호산나)를 덧붙여 이루어진 말이다.
역사적 실존 인물로 예수를 가리킬 때에는 흔히 그가 자란 고장의 이름을 덧붙여서
‘나사렛(Nazareth) 예수’라 부른다.
신약성서에서는 예수의 부모의 이름을 앞에 붙여 부르기도 한다.
‘요셉의 아들 예수’ (루가 복음서 2:21), ‘나사렛 요셉의 아들 예수’ (요한 복음서 1:45)
또는 ‘마리아의 아들 예수’ (마르코 복음서 6:3, 마태오 복음서 13:55).
유대인의 종교적 예법에 따르면 ‘기름을 부음 받은 사람’이란 드높은 사람,
다시 말해 왕이나 선지자, 제사장, 메시아에게 주어지는 의미의 말이므로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메시아 예수라고 풀이될 수 있다.
예수를 한자로 음역하면 耶蘇(야소)라고 한다.
역사가 타키투스는 110년경에 쓴 ‘연대기(Annalia)’ 15권에서
예수가 티베리우스 황제가 로마제국을 다스릴 때 폰티우스
필라투스 총독에게 처형당했다고 기술하였다.
예수에 대해서 기술하고 있는 사료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신약성서이다.
그리스도교에서는 신약성서 복음들 중에서 공관 복음서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들은 공관 복음서가 예수의 언행을 가장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공관복음(共觀福音, Synoptic Gospels) 또는 공관복음서(共觀福音書)란 고대 그리스어의
syn (함께)와 opsis (봄)이 합쳐진 낱말 Synopsis를 한자어로 직역한 것으로서
구체적으로 세 복음서, 마태오/마태, 마르코/마가 그리고 루가/누가 복음을 일컫는다.
예수의 언행은 한 세대 또는 두 세대 동안 구전 과정을 거쳐 기록되었다.
복음서는 단순히 과거의 예수의 역사가 아니며,
그를 구세주로 믿은 고대교회의 신앙고백이 크게 반영되어있다.
그래서 같은 사건을 언급하는데도, 복음서마다 다르게 묘사되어있다.
복음서는 예수전승을 그대로 받아 적거나,
예수의 행적을 연표처럼 시간 순으로 적거나,
예수의 행적을 직접 보고 쓴 것이 아니라,
예수 전승을 자신들의 신학에 따라 편집한 저자들의 신학자로서의 견해가 반영되어 있다.
복음서를 예수의 자료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예수가 태어난 곳은 루가 복음서와 마태오 복음서에는 베들레헴이라고 쓰여져 있는 반면,
마르코 복음서와 요한 복음서에서는 예수가 나사렛 출신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이 기록들은 언뜻 읽기에 서로 모순이 없는 것 같지만,
여기에는 복음사가들의 편집 의도가 담겨 있다.
신학계에서는 예수의 베들레헴 탄생 설을 구약성서에 맞춘 그리스도교의 교리로 해석하기도 한다.
예수의 생애
복음서의 기록에 따르면 예수는 성모 마리아에게서 태어났다고 한다.
예수의 양아버지 요셉은 목수였다고 하며,
어머니 마리아는 어떤 집안에서 자랐는지 알려져 있지 않다.
예수의 잉태 및 탄생과 관련된 기록에 따르면 성모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기 전에 대천사 가브리엘에게 아이를 낳을 것을 고지 받았다.
그러고 나서, 약혼한 몸으로 동거하기 이전에 성령에 의해 예수를 잉태한 사실을
신앙심이 두터운 약혼자 요셉에게 고백하자,
요셉은 적지 않은 심적 갈등을 겪은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요셉은 나중에 꿈에 나타난 대천사 가브리엘의 계시에 따라 마리아와 결혼을 하였고,
예수를 낳았다고 한다.
마태오 복음서와 루가 복음서는 또한 예수의 족보를 기록하고 있다.
요셉은 다윗왕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강조되고 있다.
마태오 복음서는 요셉의 선조를 아브라함까지 끌어올렸고,
루가 복음서는 심지어 아담에 이르기까지 족보를 까마득히 펼쳤다.
예수에게 성 마리아와 성 요셉 이외의 다른 가족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약간의 논란이 있다.
평생 동정설을 성서적인 근거 부족으로 인정하지 않는 성공회와 개신교에서는
예수의 직접적인 형제가 있었다고 성서를 해석하고 있다.
반면, 성모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믿는 로마가톨릭과 동방정교회에서는
성서에 언급된 자들은 그의 사촌 동생들이었다고 해석하고 있다.
예수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그러나, 예수가 사람이라는 사실을 설명하려는 루가의 편집의도가 들어 있는
루가의 복음서의 몇 구절이 조금이나마 예수의 어린 시절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예수의 12세 때 유월절에 유월절을 지키려고 부모와 예수가 예루살렘에 올라갔다.
전례를 마치고 예수는 예루살렘에 머물렀지만 부모는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하룻길을 갔다가 방황하면서 아이를 찾았다고 한다.
예수를 찾은 지 사흘 뒤에 다시 예루살렘 성전 안에서 만났을 때,
예수는 유대교의 랍비, 곧 율법교사들과 율법에 대하여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모두가 그 지혜와 대답을 기이하게 여겼다고 했다.
이에 부모가 왜 여기에 있느냐고 묻자,
예수는 '제가 제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할 줄을 알지 못하셨습니까?'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는 예수 자신과 온 인류의 아버지가 하느님이라는 것을
이 때의 예수가 인식하고 있었던 것을 보여 준다.
그 뒤에, 계속해서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는 요셉의 직업을 이어
목수 일을 배우며 자랐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를 루가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느님과 사람의 사랑을 받았다'고 간단하게 적고 있다.
예수는 어느 정도 성장한 이래 나사렛을 떠나 출가하였다.
예수는 세례자 요한에게서 세례를 받은 뒤에 홀로
광야로 들어가 40일 동안 금식했다고 전해진다.
그 뒤에 높은 곳에 올라가 마귀에게서 세 가지의 유혹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고 난 뒤 사탄은 그를 떠났고, 천사들이 나아와 그를 도왔다고 하였다.
예수는 초기에 사람들이 그를 보기 위해 모이자,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산 위에서 이들에게 설교하였다.
이 산은 갈릴레아 호수 북쪽 타브가와 가파르나움 사이에 있는 한 야산이었다고 전해져 온다.
어떤 사람이 행복한지에 대한 가르침이다.
악인을 대적하지 말고, 원수를 사랑하라, 은밀히 구제하라, 비판하지 말라가 있다.
성서에 따르면 예수는 자신의 죽음이 임박한 것을 알고,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간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예수는 민중들의 환대를 받는데, 이는 예수를 정치적 혁명가로 생각해서였다.
자신들에 대해 비판적인 예수를 위험 인물로 본 유대교의 대제사장들은
가리옷 사람 유다와 결탁하여 그를 체포하였다.
체포된 그는 유대인들의 자치기구인 의회에서의 재판을 거쳐 빌라도의 재판을 받게 된다.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혔을 때, 그의 십자가에는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민족지도자를 뜻하는 '유대인의 왕(INRI)'이라는 죄패가 달렸으며 예수를 처형한 세력은 로마제국의 공권력이었다.
더구나 예수는 예루살렘에 입성했을 때 환호를 받을 만큼 민중들의 지지를 받는 유명 인사였으므로
빌라도에게 그는 위험 인물이었다.
결과적으로 예수는 두 명의 강도들과 함께 잔인한 처형 방법인 십자가형에 처해졌다.
예수는 십자가형에 처해지기 전 자신이 매달릴 십자가를 짊어지고
골고다 언덕을 올라가며 구타와 조리돌림을 병행하여 당했다.
이 도중 예수가 모진 구타 끝에 체력이 다하여 쓰러지자 구레네 출신의 '시몬'이라는
역사(力士)가 예수를 대신해 십자가를 짊어졌다.
그리스도교 교리에 따르면 그리스도는 부활한 뒤에 하늘에 오름을 받았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한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시며
11제자들을 축복하시고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사도 바오로는 다른 사도들과는 달리, 역사 속의 예수를 직접 본 적은 없다.
하지만 그는 개종 후, 사도들에게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이야기(예수 전승)를 들었으며,
이를 근거로 지중해 지역에서 활발히 선교 활동을 하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외모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현재 수많은 이들에게 각인된 예수의 얼굴은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받아들인 로마,
즉 오늘날의 이탈리아를 기준으로 제작된 예수의 초상화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복음서는 마태오의 복음서, 마르코의 복음서, 루가의 복음서, 요한의 복음서를 말한다.
전통적으로 저자들은 마태오, 마르코, 루가, 요한으로 여겨지는데, 모두 유대 사람이었을 것이다.
최근에 들어와서도 복음서는 종종 예수에 관한 전승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고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문서나 구전형태로 전해지던 예수 전승(Jesus Traditional)을
복음서 저자 고유의 그리스도론에 맞추어 편집한 신학문서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교는 313년 공인되고, 380년 로마의 국교로 선포되었으며,
니케아 종교회의를 비롯한 그 후의 몇 차례 종교회의에서 다양했던
그리스도교의 교리들은 하나의 도그마로 완성되었다.
로마교회 최초의 종교회의인 제1회 니케아 공의회는 325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소집하여
소아시아의 니케아에서 열렸으며,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몰고 아타나시우스파의 삼위일체설을 정통으로 삼은
니체노 신경을 갑론을박 끝에 가까스로 가결시켰으며, 여러 가지 교회법을 반포하였다.
알렉산드리아교회의 사제(司祭) 아리우스는,
‘성부·성자·성신(성령)의 세 위격(位格)은 대등하며, 오직 성부만이 영원하다.
성자는 모든 피조물과 같이 창조되었을 뿐, 신이되 피조물과 신의 중개역할을 하고,
신이 그에게 세상을 구원하도록 선택한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신의 은총을 입어 하느님의 양자로 선택 받은 것이다’라고 주장하였다.
이에 대해 아타나시우스는 아리우스의 주장은 성자를 반신(半神)으로 전락시켰으며,
성자만이 인간과 하느님을 화해시킬 수 있다는 구속 개념을 훼손하였다고 반박하였다.
니케아 공의회에서는 이 같은 아리우스의 주장을 이단으로 규정하고 배척하였으나,
그 뒤 아리우스와 그 일파는 콘스탄티누스 1세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하여
콘스탄티우스 2세 아래서는 전 로마제국을 지배할 만큼 세력을 떨쳤다.
콘스탄티우스 2세 때 아리우스파는 ‘성자는 성부와 같지 않다’라고 과격한 입장을 선언하여
온건파를 자극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 무렵부터 엄격(嚴格) 아리우스파와 반(半)아리우스파의 분열이 일어난데다
황제의 죽음(361년)까지 겹치자 급속도로 몰락하였다.
제1회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는 니케아 신경(信經)을 재확인하고 아리우스파 문제에 종지부를 찍었다.
그 뒤로도 아리우스파는 제국의 북쪽 게르만인(人)들 사이에 널리 퍼져
게르만인의 민족적 종교라고도 할 만한 위치를 얻었다.
그 후 로마황제들과 로마교회는 아리우스파를 이단으로 파문하고 철저하게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교는 르네상스 시대까지 로마 및 유럽의 정신 세계를 지배하였다.
그 외, 사도신경,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칼케돈 신경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인 동시에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칼케돈 신경과 에페소 신경에서는 예수의 신성과 인성이 분리되었다는
네스토리우스의 견해에 반대하여,
성모 마리아에게 하느님의 어머니(Theotokos)라는 호칭을 붙임으로써
예수를 하느님이자 인간으로 고백한다.
일부 신학자들은 초대교회에서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고백한 것에 대해서
로마제국의 황제숭배에 반대해서라고 말하기도 한다.
로마제국의 베스파시아누스 황제는 자신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했는데,
그리스도교인들은 예수가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여 황제 숭배에 반대했다는 것이다.
근대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를 윤리적으로 모범을 보인 도덕적 모범으로 이해하였는데,
이는 그들의 도덕적 이상을 예수에게 투영하였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임재를 인간행위와 역사에서 경험한다고 주장하는 유일신교이다. 유대교는 광의로는 아브라함·이사악·야곱 등 족장시대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4,000여 년에 걸친 유대 민족의 종교현상 전부를 뜻하며, 협의로는 BC 5세기 유대 민족이 바빌론 유수에서 이스라엘로 돌아와 유대교를 재건한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2,400여 년 동안 믿어온 신앙체계를 가리킨다.
==========================배화교, 혹은 자라투스트라교(영어식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 약 1800년경에 중동의 박트리아 지방에서 자라투스트라에 의해 세워진 종교이다. 기원전 600년 경에 오늘날 이란 전역에 퍼졌으며 기원전 5세기에는 이미 그리스 지방에 까지 전해진 것으로 보인다. 조로아스터교는 창조신 아후라 마즈다 (Ahura Masda)를 중심으로 선과 악의 질서 및 세계를 구분하는게 특징으로, 이러한 이원론적 교리는 그리스도교, 유대교, 이슬람에 영향을 주었다
================================
유대교의 역사는 기원전 5세기 즉 2400년이 되는 겁니다..
기독교의 역사는 저기서 5세기를 뺀 역사 2009년이 되는거죠..
조로아스터교의 역사는 3800년이 되는 겁니다..
즉 유대교 이슬람교 가 생기기전 1200년 전쯤부터 조로아스터교는 종교로 존재하며 군림 했다는거죠..
그러하므로 조로아스터교의 일원론적 이원론..이게 유대교 기독교에서 받아들여진겁니다..
유대교 자체가 2400년의 역사뿐이 없는데 그전으로 시간을 정하는건 있을수 없습니다..
구약..즉 유대교의 구전으로 전승되다 기록으로 만들어진 문서 입니다..
이 기록은 기원전 1세기때 완성 되었다 합니다..
즉 예수가 태어나기 100여년 전에 완성된 경전 이라는거지요..
기독교는 유대교의 한 분파가 갈라져 세운 종교임은 누구나 아는거구요..
여기서 구약이 뭐 비씨 천년이다 이런말 하는 분들은 억지인겁니다..
어찌 기독교 모태 유대교가 생기기 전에 경전이 만들어 질수 있나요..
지금에 예천불지는 조로아스터교의 이원론을 후기 유대교 기독교가 받아들여 기독교가 채택된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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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로아스터교와 그리스도교가
너무나 비슷하다면
어느 쪽이 표절한 것일까?
로마 원력으로(C.E.)
예수는 4살,
크리슈나 600살,
조로아스터 600~700살,
선배가 태어나지도 않은 후배를 표절?
인도의 크리슈나(Krishna)는 힌두교에서 두 번째로 추앙받는 위격의 성자(聖子)이다.
B.C 7세기경(약 2,600년전) 크리슈나(Krishna)는 인도의 한 부족에서 태어나,
태양신을 숭상했으며, 실천윤리를 중시하는 통속 종교를 창도(唱導)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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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죽은 뒤 그는 자신의 신 바가바트와 동일시되어 마침내 전통적 바라문교의
태양신과 일치됨으로써 바라문교의 신이 되었다.
풍부한 전설과 여러 가지 성격을 갖고 있어,
시대와 장소에 따라 여러 가지 다른 요소가 부여된 사실을 짐작케 한다.
중세 이후에는 애인 라다(Radha)와의 사랑을 중심으로 에로스적(的) 신앙이 강조되어
문예 ·회화 ·조각 ·종교시 등의 중요한 모티프가 되었다.
[두산세계대백과 EnCyber ]
예수와 인도의 메시아 크리슈나 사이의 유사점은 너무나도 많다.
신화 연구가인 제럴드 매시는 크리쉬나로부터 100가지가 넘는 유사성을 주장하였으며,
외경까지도 함께 분석한 그레이브는 두 인물들간의 무려
300여 가지에 달하는 유사점을 열거했다.
1. 크리쉬나는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
2.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다(어려서 아버지를 돕다).
3. 크리쉬나의 탄생을 천사와 현인들 그리고 목동들이 지켜보았으며
그는 황금과 몰약과 유황을 선물로 받았다
(당시 유행하던 이런 이방 신화를 마태복음 저자나 누가복음 저자가
마가복음 자료에 덫붙여 넣은 것이다).
4. 그는 아기를 죽일 것을 명령한 폭군에 의해 박해와 살해 위협을 받고 피신하다.
5. 크리쉬나는 왕가의 후손이었다
(예수신화를 만든 유대인도 억지로 다윗왕과 연계시킨다).
6. 갠지즈 강가에서 세례를 받았다(세례개념도 여기서 유대교로 유입됨).
7.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했다(죽은자를 살려내는 기적..등이 주).
8. 죽은 자를 일으켜 세웠으며 나환자와 귀머거리 그리고 맹인을 치료했다
('침을 뱉어 눈에 바르고 샘물에 가서 씻어라'는 내용도 크리슈나 기적이 원형이다).
9. 크리쉬나는 사람들에게 자비와 사랑을 가르치기 위해 우화와 비유를 즐겨 사용했다.
10. 가난한 자들과 더불어 살았고 그들을 사랑했다
(당시 시분이 높은 제사장들과 적대적인 면에서도 예수신화와 동일).
11. 제자들 앞에서 변모된 모습을 나타내었다.
12. 크리쉬나는 나무 위에서 혹은 두 도둑들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
(이 점은 예수신화가 그대로 빌려다 만든것같다.
죽음의 과정에서 두 강도 사이에서 죽었다는 사건의 전개는
위의 모든 일치점과 더불어 절대 우연일 수는 없다).
13. 그는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갔다
(승천; 승천교리도 조라아스터교와 크리슈나의 교리를
예수신화가 그대로 빌려갔다고 볼 수 있다.
이 승천교리는 마가복음 뒤에 교부들이 후에 원본에 덫붙인 것임이
비평문헌학적으로 밝혀진지 오래다).
14. 그는 牧者 하나님, 萬主의 主로 불리어졌으며 구세주,
최초로 태어난 자,
죄를 떠맡은 자,
해방자,
보편적인 말씀(희랍의 로고스 개념<요한복음>과 거의 같다)으로 여겨졌다.
15. 그는 힌두 트리니티, 즉 삼위일체 중에서 두 번째 위격이었고
자신을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예수가 한 말과 거의 같다).
16. 크리쉬나의 제자들은 그에게 순수한 정수를 의미하는
‘예제우스(jezeus)’라는 칭호를 바쳤다.
Krishna는 인도에서 Krishuto로도 발음을 한다고 한다.
(홀거게르스덴의 저서 "인도에서 예수의 생애"중에서)
크리쉬나 - 비슈누의 화신
크리쉬나(Krishna)는 <마하바라타>와 <바가바탐> 경전의 주인공이며
비슈누신의 여덟 번째 화신이기도 하다.
크리쉬나는 또한 인도에서 가장 사랑받는 신 중의 하나이다.
크리쉬나도 수많은 일화를 남겼다.
그는 왕이었으며 수많은 여인인 고피(Gopi)들의 우상이었다.
그의 가르침은 <바가바드 기타>란 경전 중에서 삶의 핵심을 응축하여 가르쳤다.
그의 부인인 라다(Radha) 또한 인도에서의 이상적인 여인상으로 표상되기도 한다.
"크리쉬나"에서 "크리스트나"로 변하고 "크리스트나"에서 "크리스트"가 나왔다고
홀거게르스덴의 저서 "인도에서 예수의 생애"중에 나와 있다.
초기 로마 교회가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로마 교회는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말살하기 위한
잔혹한 계획을 세우고 이교도의 신성한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말살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AD 100-165),
테르툴리아누스(AD 160-220),
이레나이우스(AD 130-202) 등 초기 ‘교회의 아버지(교부(敎父))’들도
분명 너무나 곤혹스러운 나머지,
그 유사성이 악마의 모방 탓이라고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오시리스,
고대 그리스에서는 디오니소스의 이야기
(예수의 일생과 99% 일치하고 있다.)
⊙오시리스-디오니소스는 육체를 가진 신이며 구세주이고 ‘하나님God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는 하나님이며 어머니는 인간처녀(동정녀)이다
⊙그는 3명의 양치기가 찾아오기 전인 12월 25일에,
⊙동굴이나 누추한 외양간에서 태어난다
⊙그는 신도들에게 세례 의식을 통해 다시 태어날 기회를 준다.
⊙그는 결혼식장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기적을 행한다.
⊙그가 나귀를 타고 입성할 때 사람들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고
찬송하며 그를 맞이한다
⊙그는 세상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부활절 무렵에 죽는다
(이집트에 오시리스 부활절이 있었음).
⊙죽은 지 사흘 만에 부활해서 영광되이 하늘로 올라간다(승천).
⊙신도들은 최후의 날 심판 자로 그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다린다.
⊙그의 죽음과 부활은 그의 몸과 피를 상징하는 빵과 포도주 의식으로 기념된다.
(선과 악,
구세주,
동정녀 잉태,
외양간에서의 탄생,
세례(세례는 원래 유대교에 없었고 크리슈나와 조로아스터에서 배운 것),
8복의 가르침 가르침,
물을 포도주로,
어린나귀 타고 입성,
종려나무,
찬송,환영,
부활,
심판,
구원,
몸=떡, 피=포도주=>빵과 포도주 기념식(디오니소스교와 완전히 동일함)
....이런 모든 논리는 여기 조로아스터교의 영향을 받고 예수신화가 만들어진다.)
이 내용들은 오시리스.디오니소스의 이야기의 핵심만 간략히 추린 것이다.
초기 로마 교회가 그런 사실을 감추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는 걸 알게 되었다.
로마 교회는 이교도의 미스테리아 신앙을 말살하기 위한
잔혹한 계획을 세우고 이교도의 신성한 문헌들을 체계적으로 말살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AD 100-165),
테르툴리아누스(AD 160-220),
이레나이우스(AD 130-202) 등 초기 ‘교회의 아버지(교부(敎父))’들도
분명 너무나 곤혹스러운 나머지,
그 유사성이 악마의 모방 탓이라고 필사적으로 주장했다.
이런한 예수 이전 수백 수천년 전의 유사성에 초기 기독교 교부들이 받은
충격은 가히 엄청난 것이었음을 알 수 있다.
[예수는 신화다]라는 책을 못나오게 기절사색을 한 한국 기독교 지도자라는
자들과 다를바 없이 그들도 예수의 신화의 원조를 붕괴시키기 위해
(진실과 상관없이 자신의 기득권부터 지키려는 몸부림)
철저히 예수신화 원조 말살 정책을 수립하게 된다.
이런 로마의 종교 정책의 이유로 기독교의 원형 발굴이 어려움을 겪어왔다.
조로아스터란?
인도에서 성전 Vedas의 마지막 장인 Upanishad 가 씌어질 무렵,
기원전(B.C.E.)600-700 년경에 지금의 이란인 페르시아에
Zoroaster 란 현인이 있어서
지금의 서양문명의 한 근원을 이루는 중요한 신앙적 사상을 전파하였다.
조로아스터는 두가지의 신이 존재한다고 가르쳤는데
하나는
아후라 마즈다 (전지전능한 창조주, 선의 신) 이고
또 하나의 신은
앙그라 마인유(어둠, 악의 신) 이다.
선의 신은 선한 세상을 창조하였고
이 세상에는 선만 있으며 광명만 있도록 만들었다.
여기에 시기를 느낀 앙그라 마인유 라는 신은 광명의 세상에 어둠을 드리워
그림자가 있게 만들었고,인간을 유혹하여 악하고
사악한 일을 하도록 만드는 일이 업이 되었다.
이러한 어려운 세상을 돕기 위해서
"사오샨트" 라는 구세주가 동정녀의 몸에 잉태되어
세상에 태어나 인류에게 선의 길이 무엇인지를 가르치고
깨닫게 만들며 선을 실행하도록 인도하고 구원을 얻는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한 결과로 구세주로 인해 깨달은 인간들이 노력을 함으로써
"아후라 마즈다"가 애초에 만든 원래의 세상으로 환원하려는 노력이 생기게 되며,
구원이 이루어 질수있는 어느 시점에 도달하면 아후라 마즈다는
앙그라 마인유 신을 쳐부수는 일로 불로서
말세를 고하며,모든 인간을 심판하게 된다.
드디어 어둠은 사라지고 광명뿐인 세상의 성취가 이루어지며,
그때에 구세주의 재림이 있게되고,
속세에서 구세주의 가르침대로 선한 생활을 한 사람들은 주검에서 부활하여
영생을 얻게 되며,드디어 어둠의 세상은 악의 신 앙그라 마인유와 함께 완전히 제거되고,
광명뿐인 세상을 이룩하여 구원을 받은 자들은 고통없는
극락의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재림과 심판, 지옥, 부활, 영생의 위 교리는 요한계시록에 그대로 유입되었다.)
여기에도 천사가 있고 제사장이 있으며 부활이 있다.
결국 그리스도교 사상의 원리와 무엇이 다른지 구별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러한 신앙체계는 예수가 나타나기 6-7세기 전에 완성되어 아주 널리 퍼졌고,
페르시아가 망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페르시아 사람들이 신봉하던 신앙이었다.
(지금도 테헤란 남동쪽 550km에 위치한 착착사원(chak chak)과
인도 뭄바이에 파시르로 신도와 사원 원형이 잘 남아있다.
페르시아의 나라 이란의 '차하르-샨베수리'...등 각종 명절도
거의 이 조로아스터교의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러한 사상은 구약 유대인들의 Yahweh 신과 공존했었고
이 조로아스터교가 그대로 유대인들의 종교로 둔갑하여
예수왕림 300년후에 현재 우리가 아는 훌륭하게 조직된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되면서 탄생하게 되었고,
전 세계에 전파된것이 기정사실이다.
기독교의 원조인 조로아스터교가 사라지고
그리스도교가 만연하게 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기원전 480년에 새 페르시아 왕인 Xerxes가 10년전 선왕 Darius의
참패를 보복하기 위해 막대한 대군을 거느리고 희랍을 침공했으나
해군선박의 교묘한 작전으로 페르시아는 대패하고 망하게 되었다.
그러나 전투와는 달리 페르시아와 희랍사람들은 서로의 문화와 사상을 존중하고
관대하여서 서로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였고 타협으로 평화를 유지하는
것을 당연한 일로 여기는 사회였었다.
그후 희랍의 한 소국인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3세 대왕은 데모크라시의
근본사상을 뿌리깊이 갖고 있어 그의 점령지의 통치는 이해와 관용으로 일관되었다.
대왕은 페르시아도 마찬가지였는데 기원전 586년에 바빌로니아에서 탈출한
유대인들이 Jerusalem에 정착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러한 사회풍토와 관습으로 인하여 11세기 로마의 십자군이 예루살렘으로 쳐들어 갔을 때
그때까지는 그곳의 크리스쳔과 유대교도와 회교도들은 종교적 갈등없이
서로가 화목하게 잘 살고 있었다.
http://cbingoimage.naver.com/data2/bingo_37/imgbingo_85/lemonjin81/23110/lemonjin81_46.jpg
불행히도 예루살렘을 점령한 십자군들은
그리스도교,유대교,회교도들을 가리지 않고
수십만명의 인구를 모두 죽여버렸다.
로마제국시대에 예수교가 들어왔고,
골고다 언덕에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는 교리가 생기고,
네로황제등에 의해서 박해가 극성을 부리고
극단적인 반그리스도교적인 사회가 약 300년 흐르는 동안에
그리스도교가 정식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되었으며
곧이어 그리스도교만이 허용되는 사회로 탈바꿈을 하게 되었다.
당시 로마제국은 세계를 통일한 막강한 나라였고,
로마황제의 결정이 전세계에 영향을 끼치는 때였다.
그리하여 그 교세가 파죽지세로 세계에 번지게 되었고
다른종교가 철저한 박해를 받게 되었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수 있다.
당시 로마의 카이사르가 선택한 종교인 로마 가톨릭 교회와 조금이라도 다르게 믿는 종교라면,
비록 그 종교가 근원이 같은 그리스도교라 할지라도 이단으로 낙인 찍히게 되고
결국 화형을 당하거나 갈기갈기 찢어지는 죽음을 당하는 때였다.
이렇게 조로아스터교와 그리스도교가 너무나 비슷하다면
어느 쪽이 표절한 것이란 생각이 오해일까?
_다시 크리슈나와 예수의 유사성을 생각해본다._
인도의 크리슈나(Krishna)는 힌두교에서 두 번째로 추앙받는 위격의 성자(聖子)이다.
B.C 7세기경(약 2,600년전) 크리슈나(Krishna)는 인도의 한 부족에서 태어나,
태양신을 숭상했으며, 실천윤리를 중시하는 토속 종교를 창도(唱導)했다.
천사와 현인들 그리고 목동들이 크리슈나의 탄생을 지켜봤다고 한다.
크리슈나(Krishna)는 동정녀 처녀에게서 태어났으며,
그의 아버지는 목수였고, 갠지스강 강가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다.
크리슈나는 나무 위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고,
그는 그를 죽인자들 가운데에서 일어나 하늘로 올라갔다고 전해진다.
그는 하나님으로 불리워졌으며 구세주로 불리워졌다.
그는 흰두교의 삼신일체 가운데 두 번째 위격이었고,
자신을 아버지에게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그는 많은 기적과 이적을 행했으며, 나환자와 맹인, 귀머거리를 치료했다.
크리슈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한다.
"나는 모든 것의 생명이며, 세상을 떠받치는 자이며, 세상의 길이며, 그 피난처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는 길이요,진리요, 생명이다라는 말과 너무나도 비슷하다.
*.아마 이런 크리슈나(크리스트=그리스도)의 가르침이 유대인 귀에 들어왔을 때
그들이 과연 예수라는 신화와 종교를 만들지 않고 가만 있었다면
그들이 과연 유대인일까?
유대인의 습성을 아는 분들은 박장대소할 것이다
출처 -개종카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