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로스팅의 첫 걸음, 생두
사용되는 기구나 머신으로 뭘 사용하든, 볶아야 하는 것은 변함없이 생두다. 따라서 홈 로스팅을 위한 첫 번째 준비물이자 가장 중요한 요소 역시 생두다.
○ 생두는 어디서 구입해야 할까?
생두는 전문 수입업체나 커피관련 온라인 쇼핑몰 등에서 쉽게 구입 가능하다. 전문 수입업체는 주로 10~30kg 이상 큰 포장으로 판매하지만, 최근 홈 카페 시장을 의식하여 1kg 단위의 소매용 판매도 이뤄지고 있으며, 온라인 쇼핑몰의 경우 1인 소비에 적합한 200~250g 단위도 판매하고 있다. 물론 단위가격은 구매량이 커질수록 저렴해지지만, 적절하지 않은 환경에서 생두를 장기보관하는 것은 좋지 않기 때문에, 소비량이 많지 않은 홈 로스터들에게는 1kg 이하가 적당하다.
○ 어떤 생두를 구입해야 할까?
생두는 국가별, 산지별, 등급별로 다양한 종류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맛있는 커피의 기본, 원두]편을 참고하기 바란다. 좋은 커피라고 해서 무턱대고 고가의 생두를 구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커피에 절대적인 기준이 없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초보 로스터는 불(온도)을 다루는 데 서툴러서 자칫 태워버리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욕심을 내기보다 저렴한 생두를 구입하여 능숙해질 때까지 충분한 연습을 거치는 것이 좋다. 그 이후에 개인의 취향과 판단에 따라 단종 스페셜티 커피에 접근해보는 것도 좋겠다.
○ 생두 구입 후 해야 할 일
커피를 수확하고 가공해 자루에 담는 과정에서 작은 돌이나 나뭇가지 등 이물질이 들어가거나 결점두(Defect Bean, 불량생두)가 미처 걸러지지 않고 포함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생두 품질관리가 중요한 문제이기 때문에 대부분 판매자가 기계로 한 번 더 걸러내긴 하지만, 생산과 유통 단계에서 여러 공정을 거쳐 잘 걸러낸 생두일수록 비싸지는 것은 당연하다.
비싼 생두를 구입하든 그렇지 않든, 결국 최종 생산물인 원두의 품질문제는 로스터의 책임이다. 따라서 로스터라면, 로스팅 전에 생두를 넓게 펼쳐서 이물질과 결점두를 골라내는(Hand pick) 것이 바람직하다. 이물질에 비해 결점두는 지나치기 쉬운데, 이는 커피의 맛과 향에 크게 영향을 미치기도 하므로, 로스팅하기 전 골라내는 것이 좋다.
결점두에는 다양한 종류가 있지만, 홈 로스팅에서는 외관으로 구분되는 것만 골라내도 충분하다. 특히 푸른색과 검은색 생두는 대표적인 결점두이며, 지나친 적갈색을 띈다면 그 역시 결점두일 가능성이 크다. 또한 생두가 정상적인 둥근 반구 형태가 아니라면 다른 생두보다 일찍 타버려 안 좋은 향미를 내기도 하므로, 일부가 깨지거나 조각난 생두, 쭉정이도 골라낸다. 구멍이 나거나 썩은 것, 표면에 지나친 주름이 있는 생두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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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종류의 결점두
○ 생두의 보관은?
생두는 직사광선에 노출되지 않고 온도 및 수분의 변화가 적은 곳에서 보관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 겨울철 난방장치가 설치된 바닥에 생두를 놓거나 외부의 찬 기온과 맞닿는 베란다에 보관하게 되면, 결로 등으로 인해 생두가 변질되거나 얼어붙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여름철에는 곰팡이가 생기기 쉽기 때문에, 최대한 습기가 없고, 통풍이 잘되는 곳에서 보관해야 한다. 생두 역시 보관이 길어질수록 신선도가 떨어지고 변질될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소화해 낼 수 있는 만큼만 구입해 보관 기간을 줄이는 것이 바람직하다.
수망과 도자기 로스터를 이용한 홈 로스팅
수망 로스팅은 생두를 불에 직접 볶는 직화식으로, 눈과 코로 생두의 변화를 쉽게 확인할 수 있으며, 와일드한 맛과 향을 느낄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도자기 로스터는 손잡이가 달린 도기 안에 생두를 넣고 볶는 형태로, 전도 · 대류 · 복사 모든 열전달 방식이 동시에 일어나, 직화식에 비해 안정적인 로스팅이 가능하다. 도자기 로스터는 한 가지 디자인으로만 나오기 때문에, 선택에 고민이 없다는 장점(?)도 있다.
○ 수망 구입 Tip
수망은 온라인 쇼핑몰을 통해서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제품으로 가격이 저렴하며, 크기와 디자인도 다양하기 때문에 선택의 폭이 넓은 편이다. 약간의 손재주가 있다면 주방용품에서 판매하는 수망 두 개를 철사로 연결해 손쉽게 제작도 가능하니, 도전해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이 될 수 있겠다.
기성제품을 구입할 때는 뚜껑이 견고하게 부착돼 있고, 조작이 편리한 제품을 고르는 것이 좋다. 결속장치가 부실하면 교반(생두를 골고루 섞어주는 것) 중 생두가 공중부양하는 사태가 일어나기도 하며, 원두 배출 시 뜨겁게 달궈진 뚜껑을 열다 화상을 입을 위험이 있다.
수망의 크기에 따라 투입되는 생두의 양도 달라진다. 지름이 13cm 정도 되는 수망에는 생두 20~40g 정도가 적당한데, 크기에 비해 많은 양을 투입하게 되면 로스팅이 골고루 이뤄지지 않아 얼룩덜룩한 결과물이 나오기 쉽다.수망이 커질수록 투입가능한 생두의 양이 늘어나고, 무게도 함께 증가한다. 여기에 지속적인 교반활동이 더해지면 어깨와 손목에 무리가 될 수 있으므로, 처음부터 큰 수망을 택하기 보다는 작은 크기부터 시작하는 것이 좋다.
○ 수망 로스팅 과정
○ 도자기 로스터 로스팅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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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망과 도자기 로스터를 이용한 결과물. 보다 안정적인 로스팅이 가능한 도자기 로스터의 결과물이 좀 더 크게 부풀어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프라이팬을 이용한 홈 로스팅
프라이팬은 가정에서 하나 이상씩 보유하고 있는 친숙한 주방기구이자, 오래전부터 사용돼 왔던 재래식 로스팅 기구이기도 하다.
○ 로스팅용 프라이팬?
집에서 쓰고 있는 프라이팬보다는 로스팅을 위해 따로 구입할 것을 권한다. 로스팅용이 따로 마련돼 있는 것은 아니지만, 깊이가 어느 정도 있는 궁중팬이 로스팅에 용이한 편이다. 교반 시 생두가 골고루 섞일 수 있도록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크기는 직경 20cm, 깊이는 7~8cm 정도면 적당하다. 뚜껑이 있는 팬이면 좋지만, 만약 없다고 해도 같은 크기의 냄비 뚜껑으로 쉽게 대체가 가능하다. 강화유리로 된 뚜껑은 열지 않고서도 생두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사실 실버스킨과 커피오일이 뒤엉켜 유리 안쪽에 들러붙기 때문에 이내 무용지물이 된다. 무엇보다 무게가 상당히 나가기 때문에 추천하지 않는다.
○ 프라이팬 로스팅 과정
홈 로스팅 팁
○ 배출과 냉각
채반 사이즈에 맞는 작은 미니선풍기, 쿨링팬 대용으로 충분하다.
앞서도 강조했던 내용이지만, 배출과 냉각은 거의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 원두는 배출된 후에도 가지고 있는 열로 계속 로스팅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원하는 로스팅 포인트에 도달했다면 배출 후 신속하게 냉각하여 로스팅을 끝내야 한다.
차가운 냉동고는 뜨거운 원두를 빠르게 식힐 수 있지만, 급격한 온도차로 인해 원두 표면에 습기가 맺힐 수 있기 때문에 적합하지 않다. 자연바람을 이용해 식히는 것이 가장 좋으며, 주로 선풍기나 부채, 소형 쿨링팬을 이용한다.
○ 주변에 떨어진 실버스킨 청소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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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팅이 끝난 뒤의 가스레인지 주변 모습, 실버스킨이 가득하다.
로스팅을 할 때마다 흩날리는 실버스킨은 홈 로스팅을 어렵게 만드는 주범 중 하나다. 특히 가스레인지 주변에 실버스킨이 수북이 쌓이게 되는데, 기름때가 남아있었다면 들러붙어서 쉽게 제거되지 않는다. 특히 이렇게 실버스킨이 뭉쳐있는 상태에서 불이라도 옮겨 붙는다면 화재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로스팅 전에 가스레인지 위를 깨끗하게 닦아두고, 진공청소기로 간단하게 청소하는 것이 좋다. 원두를 배출할 때 싱크대 안에 채반이나 망을 받치고 원두를 쏟아내면 뒷정리도 편리해진다.
○ 기타
로스팅 시 발생하는 연기는 가스레인지의 후드를 이용하여 빼내면 된다. 양이 많지 않기 때문에 가정용으로도 충분하다.
홈 로스팅에 날개를 달아 줄 아이템
○ 온도계 / 타이머
홈 로스팅 시 가장 확실한 지표가 될 수 있는 것은 온도와 시간이다. 생두의 변화는 눈으로도 확인이 가능하지만 정확하게 구분해내기가 어렵고, 그 변화를 일정하게 유지하기도 쉽지 않다. 감에 의존하기보다는 온도계와 타이머를 이용해 온도와 시간을 기록해두면, 결과물을 비교할 때 용이하다. 전문가들은 로스팅 시간에 따른 내부의 온도 및 생두의 변화를 기록한 로스팅 프로파일을 작성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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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팅 프로파일<출처: ⓒ초인목우>
프라이팬이라면 뚜껑에 온도계를 꽂는 것으로 충분하지만, 수망이나 도자기 로스터의 경우 온도를 재는 것이 쉽지 않다. 이때는 적외선 온도계를 이용한다면 어느 정도 지표로 삼을만한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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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이팬에 구멍을 뚫어 튀김용 온도계를 장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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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외선 온도계는 3~4만원 대에 구입이 가능하다.
○ 저울
각 로스팅 기구에 맞춰 적절한 양의 생두를 넣는 것이 좋다. 이는 일정한 결과물을 얻기 위해 필요한 조건 중 하나다. 홈 로스팅은 투입양이 적기 때문에 그램(g)단위로 측정이 가능한 저울을 선택해야 한다. 아날로그, 디지털 방식의 저울이 출시되고 있다. 저울은 로스팅 외에도 그라인딩을 비롯한 다방면에서 요긴하게 활용되므로, 보다 나은 홈 카페의 결과물을 원한다면 구입을 추천한다.
자유롭게 즐기는 홈 로스팅
각 기구 별 로스팅 과정은 일반적인 방법을 설명했을 뿐, 절대적인 수치나 과정을 의미하지 않는다. 반드시 이 과정을 정답처럼 따라 할 필요는 없다. 투입되는 생두의 양, 화력, 교반 정도에 따라서 로스팅 시간과 결과물이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을 참고로 하면서 본인이 로스팅 원리와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맛에 영향을 미치는 부분들은 잘못된 경우도 한 번쯤 경험해보는 것도 좋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는지를 배우게 되는 훌륭한 커피수업이 된다. 예를 들면 결점두를 골라내지 않고 로스팅해보거나, 덜 볶거나, 더 볶아진 원두를 맛보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해볼 수 있다. 홈 로스팅의 장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결과물은 본인이 책임지고 처리(?)하면 된다. 스스로 글에 얽매이거나 갇혀 있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