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단상(斷想)
[성철 큰스님 일화 감상]
♡ 한산 · 습득의 시
성철 스님은 한산 · 습득의 시 중 다음과 같은 시를 좋아했다.
그대 못 보았는가? 삼계(三界)는 진정 어지러이 시끄럽도다. 무명(無明)을 아주 끊지 못한 탓이니 한 생각 밝아 마음이 밝은 곳에 오고 감도 없고, 죽음도 없노라.
<원문> 君不見 군불견 三界之中紛擾擾 삼계지중분요요 祇爲無明不了絶 지위무명불료절 一念不生心澄然 일념불생심징연 無去無來不生滅 무거무래불생멸
🌿 성철 스님 법어
"욕심이 자취를 감추면 마음의 눈이 열려서 순금인 자기를 바로 봅니다."
출처 : 문일석 지음 <파리나 개미도 부처님 같이 존경하라> -------------------------------------------------------------------------------------------------------------------
이 시는 짧지만 한산(寒山) · 습득(拾得) 선사의 선적(禪的) 세계관, 그리고 성철 큰스님께서 평생 강조하신 무명(無明)을 끊고 한 생각을 바로 밝히는 공부가 아주 선명하게 드러나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1. 「君不見(군불견)」 ― 그대 못 보았는가?
군불견(君不見) "그대 못 보았는가?"
단순히 "보았느냐?"라고 묻는 말이 아닙니다. 선사들의 말씀에서 견(見)은 단순한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 바로 보고 깨닫는 것을 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이 첫마디는 이렇게 읽어도 좋겠습니다.
"그대는 아직도 이것을 보지 못하는가?"
무엇을 보라는 것일까요? 바로 눈앞에서 끊임없이 일어났다 사라지는 세상의 모습과 그 근본 원인인 자 기 마음입니다.
2. 「三界之中紛擾擾(삼계지중분요요)」
삼계지중분요요(三界之中紛擾擾) "삼계 가운데 어지럽고 시끄럽구나."
삼계(三界)는 불교적으로 욕계 삼계 가운데 욕계(欲界) · 색계(色界) · 무색계(無色界)를 말하지만, 여기서는 단순한 우주 공간의 분류만으로 이해할 필요는 없습니다.
중생이 살아가는 세계는 늘 탐욕 · 성냄 · 어리석음 때문에 분주합니다.
삼계는 늘 시끄럽습니다. 늘 탐하고 집착하고, 옳다 - 그르다, 좋다 - 싫다며 다투고 따지다가 고성이 오고 가다가는 멱살을 잡고 그래도 분이 안 풀리면 주먹다짐을 하게 되고. 쟁송 하여 시비를 가리기도 하는 등 하루도 시끄럽지 않은 날이 없을 정도입니다. 왜 그럴까요?
습득 선사는 다음 구절에서 그것을 밝혀 줍니다.
3. 「祇爲無明不了絶(지위무명불료절)」
지위무명불료절(祇爲無明不了絶) "다만 무명을 완전히 끊지 못했기 때문이다."
祇는 '토지신 기, 클 기, 편안할 기', 또는 '마침 지, 다만 지, 편안할 지'입니다. 여기서는 '다만'으로 쓰였습 니다.
이 구절은 이 시의 핵심 가운데 하나입니다.
무명(無明)은 단순한 무지가 아닙니다. 불교에서 무명은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는 근본적인 어리석음입니 다.
무상한 것을 영원한 것으로 보고, 무아인 것을 '나'라고 붙잡고, 인연 따라 생겨난 것을 실체라고 집착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마음속에 무명이 남아 있으면 자연스럽게 좋으면 붙잡고 싶고, 갖고 싶어 탐하게 됩니다. 또한 싫 으면 밀어내고 싶고 미워하고 배척하고 성내게 되고 분노하게 됩니다. 내 생각과 다르면 옳고 그름을 따 지게 되고, 다투게 되고, 언쟁과 고성, 급기야는 분노로 발전해 싸움이 일어나게 됩니다.
따라서 세상이 시끄러운 것이 아니라, 정확히 말하면 무명에 휘둘리는 마음이 세상을 시끄럽게 만드는 것 입니다.
4. 「一念不生心澄然(일념불생심징연)」
일념불생심징연(一念不生心澄然) "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마음이 맑고 고요하다."
이 구절은 매우 유명하고 깊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뜻으로 단순하게 이해하면 안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일념불생(一念不生)은 생각 자체를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생각이 일어나더라도 그 생각을 붙잡아 '나'와 '내 것'으로 만들지 않는 것에 가깝습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가 나에게 거친 말을 했다고 가정해 봅니다.
말 자체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마음에서 '감히 나한테 저런 말을 해?'라는 생각이 일어납니다.
여기서 그 생각을 붙잡으면 분노가 커지고, '두고 보자.', '나도 한마디 해야겠다.' 하면서 또 다른 생각이 꼬 리를 뭅니다.
이것이 바로 일념이 일어나고 또 일념을 낳는 과정입니다.
반대로, '아, 지금 화가 일어났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그 생각을 붙잡지 않으면, 그 한 생각은 그대로 지나 갑니다.
그러면 마음은 다시 맑아집니다. 그래서 심징연(心澄然), 마음이 맑고 투명해진다는 것입니다.
5. 그런데 왜 「일념불생(一念不生)」인가요?
우리는 보통 생각이 생기면 내가 생각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생각은 내가 명령해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소리를 들으면 마음이 반응하고, 어떤 말을 들으면 기억이 떠오르고, 좋은 것을 보면 탐심이 생기고, 싫은 것을 보면 성냄이 생깁니다.
모두 인연 따라 일어났다 사라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수행자는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죄악시하지 않고, 생각에 끌려가지 않는 것을 배웁니다.
생각, 감정, 분노, 욕심이 일어나면 알아차리고, 그리고 붙잡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그동안 자주 이야기했던 알아차림과 정심정행의 실제 모습입니다.
6. 「無去無來不生滅(무거무래불생멸)」
무거무래불생멸(無去無來不生滅) "가고 옮도 없고, 나고 멸함도 없다"
이 마지막 구절은 더욱 깊습니다.
"사람이 죽어도 죽지 않는다"는 식의 단순한 불멸설로 읽어서는 안 됩니다. 선사들이 말하는 핵심은 본래 적인 마음의 자성을 분별하여 생멸하는 실체로 붙잡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생각 하나가 일어납니다. 그리고 사라집니다. 감정 하나가 생깁니다. 그리고 사라집니다. 기쁨도 생겼다가 사라지고, 슬픔도 생겼다가 사라지고, 분노도 생겼다가 사라집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때마다 일희일비(一喜一悲)하며 감정을 표출하며 붙잡습니다. 바로 이 붙잡음이 생멸의 세계를 더욱 굳게 만드는 것입니다.
7. 《금강경》과 연결하면 더욱 선명합니다
《금강경》의 이 구절이 떠오릅니다.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과거의 마음도 얻을 수 없고,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현재의 마음도 얻을 수 없으며,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미래의 마음도 얻을 수 없다.
과거의 마음은 이미 지나갔습니다. 현재의 마음은 머무는 순간 이미 지나갑니다. 미래의 마음은 아직 오 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붙잡으려 해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이것을 깊이 보면 무주(無住)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마음에 일어나는 모든 것이 인연 따라 생겼다가 사라지는 것을 보면 무상(無常)이 드러납니다.
그 어디에도 고정된 실체를 찾을 수 없음을 보면 무상(無相)과 무아(無我)가 드러납니다.
그러니 이 습득 선사의 시는 결국 우리가 공부해 온 無常 → 無我 → 無住 → 마음의 본래 청정으로 자연스 럽게 이어집니다.
8. 성철 큰스님께서 이 시를 좋아하신 까닭은 무엇일까요?
성철 큰스님의 수행관을 생각하면 이 시를 좋아하셨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철 스님께서는 늘 철저한 자기 수행과 참선, 화두를 통한 마음의 근본 깨침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런 관 점에서 보면 이 시는 아주 간결합니다.
세상이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 무명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 한 생각에 끌려가지 말라. 그 결과는 무엇인가? → 마음이 맑아진다. 마음이 맑아지면 무엇을 보는가? → 생멸을 넘어선 도리를 본다.
참으로 선(禪)의 요체를 압축해 놓은 듯합니다.
이 시끄러움 속에서 한 생각 바로 돌려 생각과 마음을 맑게 하면 오고 감도 없고 머무름도 없고 나고 죽음 도 없으리니 해탈의 경지라 하겠습니다.
9. 특히 「일념(一念)」을 잘 살펴야 합니다
저는 이 시에서 일념(一念)을 가장 중요하게 보고 싶습니다.
우리의 하루를 돌아보면 인생 전체가 사실 한 생각 한 생각의 연속입니다.
한 생각이 탐욕이 되기도 하고, 한 생각이 분노가 되기도 하고, 한 생각이 자비가 되기도 합니다.
일념자비 천하안락(一念慈悲 天下安樂)이요, 일념진한 자타구상(一念瞋恨 自他俱傷)이라 하였으니 "한 생각 자비이면 천하가 안락하고, 한 생각 성냄이면 나와 남이 함께 상한다."라는 말씀과도 정확하게 통합니다.
결국 인생을 바꾸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니라 지금 일어나는 한 생각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 탐욕 분노 일어나면 얼른 알아차리고
집착이 일어나면 재빨리 놓아주세.
한 생각 바로 안다면 무명(無明)을 밝히리라. 한 생각을 바로 보면 내는 말이 달라지고,
내는 말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지고,
행동이 달라진다면 인연 또한 달라진다네.
결국 습득 선사의 시가 우리에게 일러주는 것은 아주 소박하면서도 준엄합니다.
세상을 고치기 전에 내 한 생각을 살펴본다면 말과 행동이 달라져 정심정행으로 우리가 바라는 해탈의 길 로 향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은 먼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지금 일어나는 한 생각을 놓치지 않는 데서 시작된다고 생각해 봅니다.
한 생각 알아차리면 번뇌가 쉬고, 한 생각 자비로우면 나와 남이 함께 편안해집니다.
오늘은 불교의 5대 명절 중 하나인 우란분절입니다. 불교의 효도의 날입니다.
효도에는 왕상왕빙(王祥臥氷)의 효도 있고 정난각목(丁蘭刻木)의 효도 있지만 최고의 효는 목련구모(目連 救母)의 효일 것입니다.
또한 무엇보다 살아생전에 바른 지견을 갖게 해 드리는 것이 최고의 효라고 생각합니다.
오늘도 불보살님의 은은한 가피 속에 심신의 안정과 건강과 안전을 생각하며, 자애와 연민, 복과 지혜를 닦아 통찰지를 갖추고 정리를 따라 정심정행하며, 대경에 일어나는 한 생각 바로 알아차리면 탐진치에 이끌리지 않음을 알아 맑고 향기로운 하루, 효를 행하는 뜻깊은 백중 우란분절을 보내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_()_ _(())_
향기로운 불교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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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_()_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