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님과 동행
사랑 안에서...
본문/롬5:5절
5 소망이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가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 하나님과 같이 걷는 것, 하나님의 영역에서 걷는 것은 사랑으로 행해야만 합니다. 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죽었던 주리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살려주시고 주님의 영접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요1:12)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그 아버지는 요3:16절의 말씀처럼 사랑의 아버지 입니다.(엠3:19/19 그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자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구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거듭날 때 하나님의 사랑의 영이 내 안에 내주 하십니다.(갈5:16-23절,) 하나님의 성품은 사랑이십니다.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요일4:7절)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4:8절)
우리에게 신령한 사랑이 없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믿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들이며 우리 속에 사랑의 하나님(성령)이 내주하십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는 거듭날 때부터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사랑이 있는 자나 거듭난 진정한 신자들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사용해야 합니다. 그들이 한 달란트를 가지고 싸서 묻어 놓았던 사람과 같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심령에 성령으로 부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같은 종류의 사랑이 우리의 심령과 우리의 영에 부어졌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가족입니다.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요13:35절에서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가족이 되었는지를 알 수 있느냐 하면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그것으로 알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사랑은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신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가족의 사랑의 법은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13:34절) 그가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습니까? 우리가 사랑을 받을 만 했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우리가 정말 사랑스럽지 않은 상태에 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성경은 그렇게 말합니다.
자녀들이 받은 사랑이란
자연적 인간의 사랑이 아닌, 신령한 사랑임,
우리가 말하고 있는 것은 자연적 인간의 사랑이 아니고 신령한 사랑입니다. 우리들은 요즈음 자연적 인간의 사랑에 대하여 많이 듣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사랑 같은 것이 없습니다. 자연적 인간의 사랑은 이기적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이 사랑과 비슷한 종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는 하남의 사랑 같은 것은 없습니다. 자연적 인간의 사랑은 이기적인 사랑입니다. 자녀를 낳은 어머니의 사랑을 하나님의 사랑과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자신이 낳은 자녀 아닙니까? 그것도 이기적인 것입니다. “이 아이는 내 아이다”라고 말이죠?
보통 신앙의 부모들 가족 속에 문제아가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은 누구보다도 자녀들을 사랑하는 방식이 달라서 때로는 문제아로 만드는 경우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을 들어보면 나는 내 자녀를 사랑했습니다. 사랑으로 키웠습니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면서 자녀들을 사랑이라는 미명하게 가둬놓고, 때로는 강압적이고, 때로는 너무 방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자녀들은 부모님의 간섭을 떠나 세상으로 떠나가고 있습니다. 어떤 부모들은 너무나 집안에만 가둬놓고 키우는 부모들도 있습니다. 그러다가 자녀들이 삐뚤어져서 교회와 가정 밖으로 나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자녀들이 결혼하면 사위와 며느리들과 삐뚤어진 관계를 맺고 사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그 개인은 성령 충만합니다. 구원받은 주님이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매일 교회에 나가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이 그 자신을 지배하게 하는 대신 대부분의 부모나 남편이나 딸은 자연적 인간의 사랑으로 지배하려고 합니다. 육신을 따라 삽니다. 자식들에게 항상 잘못을 캐고 항상 그것들을 말합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문제는 갖는 이유는-그들이 사랑 안에 걷지 않는다면-어머니는 오래 동안 이 소년의 삶에 중심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심령에 있지만 한 달란트를 싸서 묻어 놓는 것과 같이 묻혀있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용하지 않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 안에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께서 주신 성령 안에서의 사랑을 갖고 사용한다면 그 사랑이 우리를 지배하게 한다면 우리의 삶에 큰 변화가 일어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가정들의 많은 문제들을 고칠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사랑은 문제를 조장하지 않습니다. 분열을 낳지 않을 것입니다. 이 사랑은 싸우고, 불평하고, 움켜잡고, 때리고 욕을 하며 적대시 합니다. 신령한 사랑은 욕을 먹어도 욕을 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들을 지배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자라나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사랑 안에서 성장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취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사랑 안에서 완전해지고 성숙해져 가는 것을 말학 있습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아직도 완전해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될 수 있고 우리들 중 몇몇은 그런 자리로 올라설 수 있습니다.
새창조 가운데 우리는 수요일마다 다음과 같은 고백과 선포를 하십니다.
-고전1:2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나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거룩하여졌습니다. 나는 거룩한 자입니다. 몸도 마음도 생각 도 모두 거룩합니다. 나는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에 전혀 관심이 없습니다. 나는 죄를 능히 이길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무엇을 얻을수 있나에는 관심이 없고 무엇을 줄수 있는 지에 관심이 있습니다. 이것이 사실 모든 사람이 사는 생활속에 일어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무나 이기적입니다. 그리고 신자들도 이런 이기적인 자연적인 사랑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모든 중심이 “나”입니다. 내가 실망했어, 내가 손해봤어, 나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내가 그것을 할수 없어, 전부 다 “나”입니다.
이것은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전에 부목사로 있었던 교회는 회의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각자의 의견이 얼마나 강한지, 그것이 끝이 나지 않았습니다. 회의가 끝이 나지 않아, 예배를 마치고 또 밤늦게 회의를 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은혜가 없는 대부분의 교회의 실상입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자신이 생각하는 의견들을 끝까지 주장을 합니다. 저는 그런 교회에서 10년간 있었습니다. 그런 교회는 문제가 끊이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에베소교회를 향하여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기겠다고 하신것처럼 한국교회가 사라질 위험성이 아주 큽니다. 한국교회 선교 130년 만이 엄청난 큰 시련이 찾아왔습니다. 대한민국 자체가 사라질 위기가 처해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자유를 잃어버리고 인민 민주주의 공화국으로 가버린다면 교회는 북한과 같이 제 첫 번째로 사라져야 할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김일성주의 주사파들이 대한민국 정치를 장악하게 된 가장 큰 원인은 바로 교회의 책임에 있습니다.
이것은 누구도 회피할 수 없는 진실입니다. 그러나 누구도 이 부분에 있어서 반성하고 하나 되는데 앞장서는 지도자들이 없는 실상입니다. 이런 교회는 사라질 것입니다. 실지로 초대교회는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유럽교회가 문 닫았습니다. 마지막 미국교회도, 그리고 우리 한국교회도 문이 닫혀 지려고 합니다.
대한민국 목회자나, 신자들 대부분이 갓난 아이같은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습니다. 항상 신생아로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자라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 받았다면 반드시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들어왔습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성품이 자리 잡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사랑을 사용하여야 합니다. 우리가 내 안에 하나님이 주신 그 사랑으로 살지 않고 계속해서 겉 사람과 육신적인 사랑의 삶을 따라간다면 계속해서 하나님의 사랑이 갇혀버리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서 밖으로 표출하도록 사용해야 합니다.
아가페 사랑에 대하여
이 하나님의 사랑은 어떤 것입니까? 하나님이 주신 사랑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고전 13장에 나오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인내하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이것이 사랑의 정의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사랑을 하면서 온유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면서 오래 참으면서 친절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참으면서 “나는 참을 만큼 참았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이제 더 이상은 못 참겠어”라고 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아니하고 투기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자들은 질투하며 삽니다. 그것은 자연적인 사랑의 모습입니다.
사랑은 그의 권리와 길을 주장하지 않고 자기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이것들이 진정으로 저와 여러분 안에서 자리 잡기를 바랍니다. 신자들은 “권리를 주장하는자”가 아닙니다. 사랑은 자기권리를 주장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믿고 그 하나님의 사랑이 내 안에 있다면 우리는 이것을 나타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해야 할 길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행한 일들을 나타내거나 자랑하지 않습니다.
사랑에는 온도계가 있습니다. 사랑에는 계량기가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행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보는 것은 아주 쉽습니다. 여러분이 나에게 행하여진 악을 계산하고 있다면 그것은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 성령으로 충만하게 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행한 악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저도 이런 말을 잘 합니다. 저런 사람들을 그냥 두어서는 안되.
우리는 각자가 약점도 많고 주님의 사랑안에 온전히 거하지 못해 문제점과, 잘못된 부분들이 많이 드러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그 사랑으로 충만한 자로서 권리와 특권을 사용하기보다는 계산하지 않고 질투하지 않는 사랑을 해야 합니다.
“사랑은 그에게 행해진 악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적일 때 우리가 행한 악을 계산하지 앟았기 때문에 이것은 하나님 식의 사랑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보내 주리를 구원하셨습니다. 그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사랑은 악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습니다.”
우리는 남의 잘못을 너무나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의 허물을 들추어서 소문을 퍼뜨립니다. 자기의 문제도 아닌 남의 문제에 대하여 주목을 합니다. 자신들의 문제를 외면한 채 남의 문제에 대해서 서로 말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라면 남을 세워줄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에는 나보다 남을 앞세우며 살아라고 합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고....”
우리는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라는 말을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 묻어 버렸습니다. 나는 참을 만큼 참았어 라는 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떤 것도 참을 수가 있습니다.
자연적인 사랑은 모든 항상 부정적인 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많습니다. 항상 문제 앞에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행하면 그 어떤 결과가 나와도 결코 실패한 삶이 아닙니다. 우리가 사랑으로 행하는 모든 행동은 쓸모없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큰 사랑으로 행하기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그중에 먼저 사랑을 더 사모해야 합니다. 고전 13장에 보면 마지막 날에는 예언도 필요 업습니다. 모든 은사도 끝납니다. 방언도 끝이 납니다. 지식도 다 폐하여 없어집니다. 그러나 사랑은 영원합니다. 사랑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그러므로 그 사랑을 추구하셔야 합니다.
우리는 은사를 사모해야 합니다. 예언을 사모해야 합니다.
방언을 추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찬양과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우리는 성령 안에서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려야 합니다. 고전12:31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31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그러나 이 모든 은사들 중에 사랑이 없다면 소리나는 징과 울리는 꽹과리밖에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고전 13장의 말씀을 추구해야 합니다.
예언을 사모합시다. 방언을 추구합시다. 그것도 각종 방언의 은사를 사모합시다. 믿음의 은사를 사모합시다. 지식을 추구합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모두 사랑으로 합시다. 우리는 사랑의 가족에 속하게 되었고 사랑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알게 되었으니 사랑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배우기를 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성장하기를 원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랑 안에서 성장하기를 원하여 사랑 안에서 완전해질 때까지 자라갑시다. 나는 사랑 안에서 아직 완전해지지 못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떻습니까?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완전해질 수 있다고 성경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골1:28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나는 현재 완전하지는 않지만 날마다 새로워집니다. 나는 날마다 예수님을 따라 자라고 있으며 머잖아 완전해질 것입니다.”
다음 세상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 가능한 것입니다. 우리 중 몇몇은 온전하여질때까지 승리할 것입니다. 나는 지금 완전하지 않다고 그만둡니까? 완전을 향하여 성숙과 성장을 향하여 계속 전진할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그분의 사랑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