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居 秋 暝 산속의 가을 저녁
선 거 추 명
王 維
空 山 新 雨 後 빈산에 산뜻 비 뿌리고 나니
공 산 신 우 후
天 氣 晩 來 秋 저녁 날씨는 가을 기운이 감돈다.
천 기 만 래 추
明 月 松 間 照 밝은 달빛 솔 사이를 비추고
명 월 송 간 조
淸 泉 石 上 流 맑은 샘물 돌 위에 흐른다.
청 천 석 상 류
竹 喧 歸 浣 女 빨래터 여인들 돌아갈 새 대숲이 소란하고
죽 훤 귀 완 녀
蓮 動 下 漁 舟 고깃배 내려가니 연잎이 요동친다.
연 동 하 어 주
隨 意 春 芳 歇 천지의 조화 따라 봄 향기 사라진다 해도
수 의 춘 방 헐
王 孫 自 可 留 왕손은 스스로 머물러 있으리이다.
왕 손 자 가 류
이 시 역시 망천에 있는 별장에서 지어진 시이다. 경물의 모습을 한 구 한 구 새기며 한 폭의 그림을 연상하며 보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산수시의 명편으로 꼽힌다. 작가가 그린 그림 속에는 작가가 의도한 뜻과 정이 알알이 새겨져 있다.
1구부터 8구까지 한결같이 작가의 고결한 감성과 그가 추구하는 이상적 경계가 흐르고 있다. 언어의 구성은 매우 담백하고 소박한 평상어로 엮어져 있다.
1연부터 보면 역시 시인이 이상적 세계라고 생각하며 자주 시어로 등장시키는 공산으로 시작되고 있다. 속기가 없고 맑은 정기가 흐르는 산에 막 비가 내렸다. 얼마나 깨끗해졌으랴! 얼마나 신선한 공기가 흐르랴! 얼마나 산뜻해 보일까? 때의 설정은 저녁이다. 저녁이 되자 날씨는 조금 쌀쌀해졌다. 시인은 ‘아! 가을이 왔구나’ 하고 느낄 정도로 표현한 것으로 보아 초가을을 접하는 시기이다.
산은 비에 씻긴 뒤 저녁이 되니까 서늘한 기운으로 감싸이게 되었다. 만물은 신선하고 찬 기운 도는 맑은 초가을 저녁, 시인은 엄숙하고 숭고한 산과 나무를 바라보며 진지하고 숙연한 명상에 잠겼다. 그리고 자연을 찬미하여 자신도 모르게 자연과 점점 동화하는 순수하고 고결한 마음의 자신을 발견하였다. 정적이 감도는 고요한 가을 경치를 깔고 있다.
3, 4구에서는 화가다운 왕유가 경치를 바라보며 포착한 소재와 그것을 화선지에 담은 구도를 보게 되는데, 뛰어난 관찰이다. 신운이 감도는 그림이요. 시구이다. 신운설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함련을 무아의 경지, 자연합일의 경지라 하여 최상의 절묘한 시구라고 칭찬한다. 밝은 달빛은 소나무 사이를 비추고, 맑은 골짜기 샘물은 돌 위를 흘러내린다.
3구의 색채는 소나무, 성품이 본래 고결한 이 나무는 푸른빛이다. 산의 하늘은 이미 어둠이 깔렸을 테고 달은 밝은 달이니 하얀 빛을 은은히 내뿜으며 푸른 솔 사이에 내려앉았을 것이다. 정적의 경물 묘사로 고도의 품격을 갖춘 심오한 자연미를 나타내고 있다.
4구에서는 경물이 신비로운 자연미를 내뿜으면서 율동하고 있다. 4구에서 우리는 지금껏 정적과 고요가 흐르던 분위기에 시인은 움직임과 자연의 노랫소리를 첨가시키는 변환의 구성법을 시도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청각적 효과의 수법으로 전환되면서 경물은 고요한 움직임의 자태를 갖춘 우아한 아름다움으로 나타나 조화하는 자연의 일부분을 형성하고 있으며 자연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신비한 생명으로 소생시키고 있다.
맑은 물이 골짜기 따라 돌 위에 흐를 때에 그 물길은 어스름 달빛을 받아 살짝, 그리고는 아주 작게 반짝이고 있었으리라. 샘물의 노래는 고전음악의 가는 바이올린 현처럼 고고하고 청결하게 흘러서 자연의 노랫소리는 이미 속기의 노래와는 달리 최상의 음악으로 조용히 신비로움을 발하고 있다. 이는 얼마나 아름다운 자연의 모습인가!
단지 열 개의 글자를 배열하여 숭고하기 그지없는 자연의 질서와 조화의 아름다움을 깊이 읊고 있다. 자연에 영원히 죽지 않는 활기찬 생명력을 부여하면서 찬란하지도 않고 눈에 띄지도 않는 조용한 자연의 경관을 다만 바라볼 뿐인데, 깊이 숨어 있는 숭고한 뜻을 소박한 표현 속에 나타낼 수 있는 예술적 역량은 어디에서 오는지, 이는 평소에 그가 닦은 성품과 성향에서 오리라.
모든 사람의 눈에 쉽게 발견될 수 없는 자연미는 고결한 시인의 인격미이고 더 나아가 그가 늘 이상으로 품어오는 사회, 이상적 생활의 아름다운 경계를 대표하고 있다.
심지가 고결한 현자나 은사가 꿈꾸는 이상적 세계이다. 시인 왕유는 산수의 묘사를 통하여 시 속에 그가 평상시에 품어 온 인생의 삶에 관한 자신의 신념을 말하려는 데에도 커다란 의도를 보이고 있다. 이는 후반부의 묘사에서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다.
5, 6구를 보면 중심은 자연에 있다. 커다란 질서와 조화를 이룬 자연의 테두리 안에서의 작은 현상을 조각하고 있는 작가의 마음을 읽어야 한다. 결코 인간이 중심이 아니고 인간은 자연의 일개 물(物)일 뿐이다.
그림을 그리려면 그림 속에서도 등장하는 남녀가 커다랗게 중심인양 그려져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중심이 대나무의 웅성거림과 연꽃의 움직임에 있도록 왕유가 시구를 의도했기 때문이다.
경련을 풀어 쓰면 이렇다. 대나무 숲속에서 소리가 나고 왁자지껄 한바탕 떠드는 소리가 들려와서 가만히 들어보니까 냇가에서 빨래하고 저녁 되어 집으로 돌아가는 시골 아낙네들의 말소리였다.
청각적 효과를 내고 있어서 6구의 시각적 묘사와 대비로 구성되었다. 우선 이 집으로 가는 아낙네들은 어떤 여인상일까? 6구에서도 의도의 중심은 자연의 현상에서 맥락을 찾아야 한다.
중심은 연꽃이다. 시인은 눈을 돌려 계곡을 내려다보니 물줄기 따라 연잎이 흔들려 움직이며 무엇가가 내려가고 있었다. 움직임을 따라 눈길을 주다보니 이는 고기를 잡고 귀가하는 어부들이 탄 고깃배 때문이었다.
연잎과 고깃배와 어부는 서로 자연스럽게 도와주는 관계이다. 자연의 한 부분으로서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셋이 모여 아름다운 화합을 만들어내고 역동하는 자연의 한 형상을 창조하고 있는 것이다. 사심 없이 협조하고 함께 노래하는 본연의, 천연의 청순한 자연의 모습인 것이다.
먼저 아낙네는 시골 여인들이라 교양 있게 소곤거리지 못하고 자연그대로 순박하게 태어난 그대로 말할 뿐이다. 순수하기 그지없는 자연인의 대표이다. 인위적인 속세의 때가 묻지 않은 천진난만한 여인들이다.
어부들은 자연의 섭리에 따라 지어진 대로 생활을 영위하는 자연인이다. 아마 이들은 고기를 많이 잡았으면 많은 대로, 적으면 적은 대로, 저녁 되면 반사적으로 귀가하려 배를 저어가며 흥겨운 노래를 부르리라. 여기에 등장하는 여인과 남정네는 인위적 가식이 없는 또 근심걱정이 필요 없는 선량한 사람들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왕유가 의도하는 뜻일 것이다. 이는 자연의 주체에서 바라다 본 인간의 이상적인 모습이며 동시에 시인이 바라는 인간상이다. 한편으로는 인간이 빠진 자연은 완전한 자연이 아니다. 사람의 소리와 형상이 들어가서 더 아름답고 완벽한 자연의 모습이 된다.
인간과 물(物)이 연결되고 커다랗게 하나의 자연이라는 테두리에서 신이 준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모습이 영원히 이상적인 자연의 상태요, 이는 곧 왕유가 실현하고 싶은 문학상의 예술의 경계에 해당된다. 아낙네와 어부는 평화로운 자연의 한 율동이었다.
마지막 연인 7, 8구를 보면 뜻에 따라 수의(隨意)라는 시어의 뜻은 이는 자연의 순환, 섭리, 진리, 질서에 해당한다. 대자연의 뜻에 따라서, 지금은 가을이니까 봄 향내를 뽐내던 꽃과 나무들이 그들의 수명을 다해서 이제는 시들고 떨어지고 없어진다고 해도 나 왕유는 스스로 원해서 기꺼이 이곳에 머루를 거라고 노래하고 있다.
자연의 의지로 자연스럽게 계절의 변화에 순응하여 봄 나무가 진다한들 그것이 무슨 대수란 말인가. 봄 가면 여름오고 여름가면 가을오고, 또 겨울오고 그리고는 또 봄이 오리라. 이는 대자연의 자연스럽고도 당연한 순환의 질서이다.
소생과 죽음까지도 즐겁게 받아들이는 물아일치의 경지, 관조의 상채를 경험하고 있는 작가의 초월적 인격이 반영되어 작품에 나타나고 있다. 이 시의 정조(情調)는 결코 쓸쓸함, 비애, 고독, 외로움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와는 정반대로 한적하고도 유유하고 고결한 영혼이 숨 쉬고 있다.
영원히 이상적인 세상을 체험하는 찰나에 느끼는 환희로부터 오는 황홀한 경물의 아름다움을 선보이는 작가의 의도가 전체화면을 꽉 채우는 구성으로 창작되어 있다.
시는 動(동)과 靜(정)의 경물을 적소에 배합시켜 자유롭게 우아한 곡선을 그리면서 약동하는 자연의 활동세계를 풍요롭게, 힘차게, 당당하게 독자에게 보여주는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이는 물론 왕유가 꿈꾸었던 이상경계의 환경이요, 생활이었다.
참고 문헌: 송영주, 『중국시와 시인』, 시간의 물레, 2009.
첫댓글 왕유의 시가 참 아름답다는 걸 새삼 느낍니다^^
눈을 감고 시의 풍경을 상상해보았어요 ㅎㅎ
쓸쓸하지만, 기분 좋은 쓸쓸함이군요 ㅎ
아! 어제 교수님께서 수업에서 언급하셨던 그 시네요^^ 왕유의 시는 쓸쓸함보다는 한적하고 고결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좋은 자료 잘 읽었습니다.^^*
감각적인 시네요. 잘 읽었습니다~
정말 이 시는 가을의 쓸쓸함이 잘 담겨 있는것 같아요. 가을 탈 때 이 시를 읽으면 안 되겠어요. 너무 외로워서요ㅠㅠ
정말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