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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이스탄불 4 - 톱카프왕궁 여인들의 거처 하렘을 구경하고 아야소피아에 가다!
이스탄불 시내 오스만 투르크 시대 왕궁인 톱카프 궁전 에 입장해서 정원과 보물관
등을 구경하고는 정자 코슈큐 와 정원에서 보스포루스해협을 보며 잠시
휴식한 다음에 입장료 외에 10 리라 티켓을 추가로 끊어서 하렘 으로 들어갑니다.
하렘 이란 궁궐 내의 후궁이나 가정의 내실을 가리키니 금단(禁斷) 의 장소 를 의미하는
아랍어 하림(harīm) 이 터키어로 변한 것이라는데 이슬람 관습에 아라비아 풍습이
계승된 것이 많으니 여성이 베일 로 얼굴을 덮는 풍습도 이슬람 이전부터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렘은 이슬람시대 부터 엄격하게 지켜져 남녀간의 풍기 를 규제하였으니 코란에도
이슬람교도의 예언자 무함마드의 집 특히 아내들에 대한 수칙이 기록되어 있으니
예언자의 아내들에게 말할 경우에는 장막 뒤에서 해야 하고 맨얼굴 을 보여도 죄가
되지 않는 경우는 아버지나 형제 자매 가까운 친척과 여신자와 자신의 노예에게 뿐입니다.
이후 예언자의 아내들뿐만 아니라 이슬람사회 에 까지 미쳤으니 이러한 가르침을 바탕
으로 중세 이슬람 사회의 여성들은 하렘에서 격리된 생활 을 하면서.... 가정
이나 종교 행사에 참여하고 하맘(목욕탕) 에 가는 것 외에는 외출을 피하였다고 합니다.
하렘 은 왕후 귀족 · 부호의 가정에서 두드러졌는데.... 환관으로 하여금 하렘의
여성을 돌보게 하거나 단속토록 했으니 환관 은 대개 흑인이나 백인 노예
였는데 거세수술(去勢手術) 은 유대교도 또는 그리스도 교도 가 담당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하렘의 풍습은 오스만투르크제국을 방문한 유럽인이나 천일야화 (千一夜話)
등의 작품을 통해 세계에 알려졌는데 1909년 오스만제국 술탄 압둘하미트 2세가
퇴위 하자 하렘에 있던 여성들은 가족들에게 되돌아 가고..... 하렘은 폐쇄 되었습니다.
제2정원 정의의탑 the Tower df Justice 아래 매표소 에서 티켓을 추가로 끊어 30분 마다
가이드투어 로 입장하는데 하렘은 300개 방 과 46개 화장실, 8개 목욕탕과 4개 병원,
4명의 부인과 노예 후궁이라 불리는 록셀란 을 합쳐 300명 까지 거느릴수 있으니...
술탄의 자식과 흑인 노예인 환관을 합치면 최대 500명 가량이 생활했다고 여겨 집니다.
술탄의 어머니 "발리데 술탄" 이 하렘을 관리하는데, 부인 중에서 아들을 처음 낳은 여자
를 "바크 카딤" 이라고 해서 하렘 내에서는 제2인자 가 되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정실 부인 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인데, 예전에 술탄이 티무르 에게 포로가
되고 황후가 맨몸으로 시중을 든 수치 를 피하기 위해서 술탄은 결혼을 하지않는 것이지요?
하렘 입구에는 큰 거울이 걸려 있어서 관광객들이 한번씩 몸을 비추어 보는데,
드디어 문을 들어서니 우선 캄캄하니 어둠에 눈이 익숙해지면 이어
뜰이 나오고 스테인드 글라스 라고 불러야 하나.... 창 문이 참으로 아름답네요!!!
그러고는 푸른 빛이 주조를 이루는 신비로움마저 느끼게하는 벽의 타일 이
여행자들의 시선 을 붙잡고는 놓아주지 않네요..... 술탄은 황후를
들이지 않고 부인등 여자들을 노예인 "록셀란" 상태로만 거느린다고 합니다.
이어 화려한 건물 안으로 들어서니 아!!!! 이중 삼중 천장에 저 금빛 도는
아름다운 문양 이라니..... 거기다가 돔형으로 둥근 원으로
보이는 둥근 보라색 천장 의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넋을 홀립니다!!!
이어 흑인 환관의 방, 오달리스크 정원, 황태후의 안뜰, 술탄의 방, 애첩
들인 록셀란의 방이 나타나는데 수백년 세월은 흘러 하렘의 방들에
기거했던 소녀들은 사라졌건만, 혹시라도 그녀들의 체취가 남아 있으려나....
방안의 장식이 더욱 훌륭하여 채색타일 과 모자이크와 사방무늬들이 빛을 발하고
있으니 카펫 깔린 방 가운데 화로 하나! 화로 주위에 둘러 앉아 무슨 즐거운
얘기의 꽃을 피웠을까요? 아니면 시샘 으로 가슴은 불처럼 달구어 졌을까요?
어느 궁궐이나 내원은 있지만, 여긴 전성기 때에는 화려함의 극치 를 이루었던 곳입니다.
하렘 260개 방 중에 20개만 개방 하는 것이지만... 세월은 흘러 이제 텅빈 방에서 그 옛날
일을 상상해 보는데... 복도 너머 어디선가 여자들의 자지러지는 웃음소리 가 들리는
것도 같은데!!! 프랑스어로 Femme ( 여자 ) 와 Fatale ( 운명 ) 을 합쳐서는....
"팜므파탈" 이란 "운명적인 여자" 를 뜻한다고 하는 말을 언젠가 들은 적이 있습니다!
남성을 유혹해 죽음의 상황 으로 치닫게 만드는 "숙명의 여인" 을 뜻한다는데 신라 시대
미실, 의지왕의 여자들, 조선의 장녹수, 어우동, 정난정이며 배비장전의 기생 애랑
이며, 서양에서 팜므파탈은 이브, 데릴라, 유디트, 살로메, 호엔로헤, 마타하리 등을
꼽을수 있는데 여기 오스만 투르크 궁전 하렘의 여인 에게도 전해지는 얘기가 있습니다!!!
14대 술탄 아흐멧 은 톱카프 궁전에서 연회를 베풀던중 춤을 추던 "쾨셈이라는
집시여인" 에게 반해버려서는 그녀를 왕비로 삼아....... 총애를
독차지하니 상심한 첫째 왕비는 홧병 으로 죽고 이어 술탄이 사망 하게 됩니다.
쾨셈 은 첫째 왕비의 13세 난 오스만을 술탄에 올린뒤 섭정 하며 마약을 술에 타서 여자 와
함께 넣어주어 술탄의 정신이 혼미해지자 정신병자로 몰아 퇴위 시킨후, 에디쿨레로
유배 보내서 죽이고는 그러고는... 자신의 아들인 무라트 4세 가 11세로 즉위하는데,
처음에는 어머니 쾨셈이 섭정 을 하였지만 술탄은 나이가 들자 누나와 동생을 살해 합니다.
쾨셈 은 엄마의 은공 을 모른다고 분노하지만 이 비난을 들은 아들인 술탄이 어머니가
이복형 오스만 에게 했던대로 할 뿐이라고 대꾸하니 겁에 질려서 두려움 에 찬....
쾨셈은 남은 막내아들이나 살리려고 불구로 만들어 왕권에 도전의사가 없음 을 보입니다.
이후 무라트 4세 가 죽자 동생 이브라힘이 술탄 에 오르는데 불구로 인해 마음이
비뚤어진 탓에 어머니 쾨셈에게 대항 하여 커튼으로 목졸라 죽이게
되는데... 이후 터키의 알렉산더 대왕 이라고 불리는 술탄 술레이만 1세 는
이슬람문명 을 서양에 퍼뜨린 사람인데 "위대한" 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왕 입니다.
그런데 술탄의 부인 봄장미 가 첫 아들을 낳으니 첫부인 이 되었을 무렵 하렘에
"러시아 여자" 라는 뜻의 록셀란 이 들어오니 왕의 총애를 독차지 합니다.
록셀란은 1년도 못되어 셀림 이라는 아들을 낳는등 여섯을 출생하는데
매주 금요일에는 남편은 첫부인 과 지내야 하는 이슬람 율법 이 걸리는지라.......
봄장미 처소로 찾아가 싸움을 건후 얼굴에 상처 를 이유로 술탄의 부름에 불응하니
술탄은 첫부인 봄장미를 만나지 않겠다는 서약 을 하게 만드는데, 봄장미의
아들 무스타파가 성인 이 되아 속국의 통치자 로 나가자 어머니도 같이
쫓아 보낸후.... 하렘의 여인들 을 유복한 투르크인들에게 차례 차례 출가 시킵니다.
그런 후에는 록셀린 은 관습상 술탄은 결혼을 못한다니 그럼 내가 노예로 늙어 죽어야
하느냐 라고.... 대들어 정식 으로 결혼하여 황후가 되는 유일한 여인 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러고는 아들 셀림이 술탄 이 되도록 하기 위해 무스타파를 반역죄 를
씌워 죽였건만 결국은 아들이 왕위에 오르기 전에 록셀란이 먼저 죽었다 고 합니다.
따지고 보면 술탄이 지배하는 오스만 투르크는 법적으로 자유인은 술탄(왕) 한 사람 뿐이고
나머지는 왕의 여자들이나 대신이며 군인과 신민들 모두 술탄의 노예 에 불과했던
것을! 관람후에 하렘 밖으로 나오니 따가운 햇빛에 꿈에서 깨어난 양 현실로 되돌아 옵니다.
역시나 히잡 과 검은색 차도르 는 약과이고 부르카 를 입은 여인 들의 모습에서
새삼스레 이슬람 국가 에 와 있음을 느끼는데..... 성벽 으로 다가가서는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보스포러스 해협 그 푸른 물을 보고는 왕궁을 나옵니다.
톱카프 왕궁 정문을 나와 5분쯤 걸으면 동로마제국의 영화 인 성 소피아 사원 이 나오는데.....
4년전에 왔을 때는 한국 식당 간판을 보고 신기해 했었네요? 오늘은 10리라에 티켓을
끊어 붉은 벽돌 외관과 적갈색의 장중한 돔 을 지닌 아야 소피아 성당 Ayasofya 에 입장 합니다.
아야 소피아 는 360년에 콘스탄티누스 2세 에 의해 세워진 교회로 390년에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재건 한 것을 훗날 전차 경주장에서 응원전을 펼치다가....
과열되는 바람에 이른바 니카의 난 이라는 폭동 이 일어나 대성당은 모두 파괴 되었습니다.
그러자 어렵사리 폭동을 진압하고 이탈리아와 아프리카 까지 진격해 로마의
영토를 되찾아 콘스탄티누스에 이어 "대제" 라는 칭호로 불리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 황제 가 537년에 심혈을 기울려 성당을 재건 하게 됩니다!
밀레토스의 이시도로스 가 설계한 가로 81미터 세로 70미터 3량의 바실리카 양식 인데
신의 영역인 천상 을 표현하려 했던 것일까요? 지름 33 미터의 원으로 된 천장
뚜껑은 돔의 형식이나 완성도 가 다른 건축물에 비해 높은데, 하기아 소피아 성당
의 건축에 동원된 사람들로는 기술자가 100명에 노동자는 무려 만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하기아 소피아 ( 성스러운 예지를 뜻한다! ) 성당이 준공되는 날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는
그 아름다움에 감탄해 "오 솔로몬이여! 내가 당신을 이겼소" 하고 외쳤다던가요?
이후 비잔틴 제국 황제의 대관식이나 전쟁에서 승리를 축하하는 자리로 활용 되었습니다.
대성당 내의 아름드리 녹색 기둥 은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에페스의 아르테미스 신전 에서 가져 왔고.....
붉은 기둥 은 레바논 바르베크의 아폴론 신전 에서 가져 왔다고 합니다.
직경 31미터의 거대한 원형 돔은 높이가 무려 54미터나 되니 하늘나라를
연상 시키는데.... 모자이크 가 램프불 에 반짝거리는 모습을 봅니다.
그러니까 이 성당은 기독교 그리스 정교의 본산지 로 천장에 보이는 그리스도를
품에 안은 마리아상 과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모자이크 상 이 볼만하네요!!!!
하지만 시련도 있었으니 8~9세기에, 그러니까 730년 시리아 출신 비잔틴 황제 레오
3세 가 십계명의 우상숭배 금지를 원용하여 성상 파괴운동 이 일어났고.....
1203년 제4차 십자군 이 베네치아의 꼬임으로 일탈해 콘스탄티노플을 침략할때
소피아 성당에 침입해 보물을 약탈 하느라 성상화가 파괴 되는 혼란이 있었던 것이네요?
그런데 한가지 의문은 기독교 성당이 이슬람 치하 에서 어떻게 살아 남았을까? 유럽
기독교도들 은 그리스, 로마며 점령지 동방의 이교도 신전들을 모조리 파괴 했습니다.
훗날 예루살렘 을 정복한 십자군 은 예루살렘 성벽안에 항복한 이교도는 남자와 여자,
노인과 어린아이를 불문하고 모두 죽이고 이슬람 건축물들은 남김없이 파괴 했으니
종군 신부의 기록에는 피가 무릎 까지 찼다고 했으니 "피로써 정화" 하려 했다던가요?
반면에 1453년 당시 동로마 비잔틴 제국의 수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한 오스만 터키
의 술탄 메메드 2세 와 이슬람인들은 실용적인 사고방식 을 가졌던 것이니.....
파괴하지 않고 사원 바깥에 미나레 (첨탑) 를 세운후 성당안의 모자이크는 회칠 을 합니다.
기독교 모자이크는 회칠해서 감추고 메카 방향 을 표시하는 미흐랍 을 설치한 외에는......
원판에 아랍글자 (코란의 경구) 를 몇자 써서 성당 기둥에 붙인 후에는 일체
기독교 성당을 파괴하는 법이 없이 그대로 이슬람 사원 모스크 로 사용 했던 것이니
이교도의 것은 무엇이든 때려 부숴버렸던 기독교도들에 비해 이슬람은 관용적 이었습니다.
무려 900년 이상을 기독교 교회로 비잔틴의 정신적 지주 였던 성당은 그리해서 파괴
당하지 않고 원형을 유지 한채 이슬람 사원인 자미 로 변신했던 것이네요?
훗날 1934년에 아타튀르크 케말 파샤가 그 회칠을 벗겨내자 9~11세기에 만들어진
예술적 가치가 높은 성상화 들이 해빛아래 그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 보였던 것입니다!
바깥 복도에서 안쪽 복도에 들어서면 "황제의 문" 이 나오는데, 노아의 방주에서
가져온 나무 로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네요? 믿거나 말거나.....
이어 중앙 홀에 들어서면 두개의 큰 항아리 가 있는데 버가모의 농부 가 바친
것으로 출전하는 장군이 금은보화를 담아 땅에 묻었던 것인지.... 아니면
올리브 오일이나 포도주 저장용 인지 아직도 학자들은 의견이 분분하다네요!
2층은 갤러리 로 예수를 중심으로 황제와 성모자상 모자이크 가 있어 놀라움을 자아냅니다.
성당은 그리스어로는 하기아 소피아 인데, 터키인들이 부르는 이름은 아야 소피아 라.....
지금은 박물관 으로 사용되는 성당에서 나와 정원을 가로 지르면 바로 블루 모스크 입니다.
꽃과 나무가 아름다울 뿐더러 휴일인지 유난히도 가족 나들이객들 이 많이 눈에
뛰어...... 이슬람인들이 매우 가정적인 성향 임을 새삼스레 깨닫습니다.
아야소피아 앞 아름다운 정원을 잘 보았으니 이제는 이스탄불 최대의 사원으로 블루
모스크 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이슬람 술탄 아흐멧 사원 에 입장해야 할 때 입니다.
첫댓글 하렘에서 이슬람여성들은 격리된생활을 하엿군요 그래서 이슬람여성들은 베일로 얼굴을 덮은모습을 하고 다니는걸 종종 보게됩니다.
기독교인들을 점령국가를 무참히 파괴하고 이슬람들은 모자이크회칠을 하여 역시 실용적인 사고 정말로 멋있습니다.
기독교나 이슬람은 모두 유일신 사상의 유대교에서 유래했으니
우상을 서기지말라가 중요한 계명이지요?
그런데 기독교는 고지식해서 다른 종교시설은 가차없이 파괴했지만
이슬람도 배타적이지만 저 오스만 투르크의 술탄들은
실용적이라 저리 활용했는가 봅니다!
아 그러군요. 선생님에게 많은걸 배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