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의 시비를 부정한 이탁오의 『장서(藏書)』
신 용 철 (경희대 명예교수)
명대의 문인이며 사상가이고 역사가인 이탁오(1527-1602)는 ‘ 태워버릴 책 『焚書』’ 란 도전적 이름의 저서에 이어 ‘감추어둘 책 『藏書』 68권을 저술했다. 중국의 춘추시대로부터 元대의 말기까지 800여명에 대한 역사인물평가서이다.
체제는 기전체에 따라 본기인 세기에 이어, 열전으로 大臣, 名臣, 儒臣, 武臣, 賊臣, 親臣, 近臣, 外臣으로 분류하였다. 그런데 이 역사인물평가서는 분류의 체제나 내용이 전통적 유교 사가들의 평가와 크게 달라 커다란 파란을 일으켰다. 따라서 이 책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지만, 76세에 그를 “ 敢倡亂道, 惑世誣民” 의 죄목으로 탄핵되어 옥중에서 자결하는 가장 큰 원인이 되었다. 공자의 천하인 중국에서 감히 공자의 시비를 부정한 명문의 역사이론인「藏書世紀列傳總目前書」란 이 책의 서문을 번역해본다.
사람의 시비판단은 처음부터 정해진 바탕(質)이 없었다. 따라서 사람의 사람에 대한 시비판단의 표준도 역시 처음부터 정해진 논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정해진 바탕이 없으므로, 이것이 옳고 저것이 옳지 않은 것이 함께 존재하면서도 서로를 방해하지 않았다.
정해진 논의가 없으므로 이것을 옳다고 하고 저것을 틀리다고 하는 것도 병행하면서도 서로에게 지장을 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오늘의 시비판단의 표준은 나 이탁오 한 사람의 시비판단의 표준이라고 해도 좋고, 천만세의 큰 현인, 대인의 공적 시비의 판단 표준이라고 해도 역시 옳은 것이다.
내가 천만세의 시비판단 표준을 뒤집어엎고, 내가 이것을 옳지 않다고 한 것을 다시 뒤집어도 역시 좋은 것이다. 내가 옳은 것인가, 틀린 것인가는 사람들이 판단할 일이다.
하(夏),은(殷),주(周)의 고대 전 3 왕조에 대해서는 내가 논의하지 않겠다. 그에 이은 한(漢), 당(唐), 송(宋)은 중간(전 207-1270) 1,100 여 년 동안 홀로 시비가 없었다고 송 대의 성리학자들이 주장하는데, 어찌 그 사람들이 시비판단의 표준이 없었다고 하겠는가? 그것은 그들이 모두 공자의 시비표준으로 시비판단의 표준을 삼았기 때문에 시비의 표준이 있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즉 내가 다른 사람의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는 것도 어떻게 하면 좋을 것인가? 무릇 시비판단표준의 다툼은 해(歲)나 때(時)와 같고, 밤과 낮이 바뀌는 것과 같아 항상 하나로 일정하지 않은 것이다. 어저께 옳은 것이 오늘에 옳지 않고, 오늘에 옳지 않은 것이 후일에 다시 옳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록 공자로 하여금 지금 이 세상에 다시 태어나게 한다 해도, 그 또한 어떻게 시비판단의 표준을 세워야 할 것인가를 알지 못할 터인데, 그가 정해 놓은 표준으로 상(賞)과 벌(罰)을 행할 수 있단 말인가?
늘그막에 일이 없어 고대의 역사책의 목록을 보면서 춘추시대로부터 송, 원에 이르기까지 그것을「세기」와「열전」으로 나누어 전체의 유형별로 목차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것은 내 스스로 즐기기 위해서 만들었을 뿐이다. 그리고 그 책의 이름을 장서(藏書)라고 했다.
장서란 무엇인가? 말하자면 이 책은 스스로 즐기면 좋은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 보여서는 안 되기 때문에 그러므로 내 이름을 장서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아주 가까운 한 두 사람의 좋은 친구들이 그것을 찾아 읽는다면 내 이를 막을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나 다만 경계하건대, 읽는 것이야 독자 제군들에게 맡기지만, 다만 공자가 정해 놓은 시비판단의 표준으로서 상과 벌을 행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그런데 이탁오가 1602년 옥중에서 자결하고 그의 저서들이 불태워지고 훼손됐지만, 크게 유행하여 청대의 역사가로 『四庫全書』를 주편한 기윤(紀昀)은 이『장서』금서목록에 넣어버렸다. 이에 세상에 감추어진 이 책은 민국 초 5.4 신문화운동 때에야 햇빛을 보게 되었으니, 감추어 두라는 이탁오의 뜻처럼 책을 금지시킨 유교의 당권자 들에 의해 역설적으로 잘 보관되었다고 하겠다.
첫댓글 신용철 교수님 덕분에 이탁오의 '장서' 서문을 잘 읽었습니다.
몇 가지 질문울 드리겠습니다,
1. 이 번역문이 '장서;라는 책의 서문 전체인가요? 아니면 그 일부인가요?
만약 일부이면 전체를 소개해주실 수 있는지요,
2. 선생님의 서술 중에 인물평을 기전체에 따라 세기, 열전으로 구분해 썼다고 하셨는데 이는 모두 열전만을 다룬 것인데 기전체의 형식을 따랐다고 보시는 지 부연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세기의 내용은 무엇안지도 알려주십시오.
좋은 내용을 올려주셔서 감사드립니다,
1. 이 글이 장서의 '세기열전총목'의 전체 서문입니다.
2. 세기는 1권부터 8권 까지로 서주부터 원대까지의 왕조와 군왕을 다루었습니다.
총 목차가 60 페이지나 되며 열전은 대신, 명신, 친신, 유신,무신 등 다양하게 구분하는데, 800여명을 다루고 있습니다
독특한 목차 분류 부터 논란이 되고, 중요 목차나 개인의 열전에도 , 생애와 업적을 기수하고 나서 사평을 가하기도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