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신사작가님께서 주신글]
민비 시해사건과 우장춘 박사
한국 러시아 수교 30주년 기념으로,
사바틴 특별전이 덕수궁에서 열렸다.
궁궐에서 전시회를 연다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문의, 문화재청 (전화 042-481-4889, 4888)
앞으로 전개될 내용은 사바틴에 이어 매국노 우범선, 자객 고영근, 우장춘 박사 등 우리나라 근대사의 파노라마다.
명성황후 민비 민자영
서세동점(西勢東漸) 서양세력이 동쪽으로 밀려오는 거친 파도와, 일제의 야심을 정면으로 맞서다 비극적인 최후를 맞은 여인
시아버지 흥선대원군이 쥐고 흔들던 왕권을 고종에게 돌려주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여인
임오군란으로 절체절명의 위기를 극복한 고종을 보좌하며 조선의 근대화를 선도한 여인
욱일승천한 일본이 청일전쟁의 승리를 발판으로 조선 병탄의 야심을 들어낼 때, 러시아 미국을 끌어들이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으로 국가를 보위하고자 했던 여인
고종은 아관파천(俄館播遷, 국왕이 러시아공사관으로 도피함)이라는 전략으로 마침내 대한제국을 수립할 수 있었다.
암탉이 새벽을 알리는 법은 없다. 고로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하는데 그렇지 않다.
古人有言曰 牝鷄無晨 牝鷄之晨 惟家之索
조정의 안정을 위해 피바람을 몰고 온 측천무후
위나라의 기조를 다진 문명태황태후,
장거정의 개혁을 지지해서 밀어붙였던 효정태후,
청나라의 통치기반을 확보한 효장태후
이들은 걸출한 여성 통치자들이었다.
사바틴(1860~1921)의 정체는?
욱일승천하는 일본에 위협을 느낀 고종은 부동항(不凍港)을 찾아 남진 정책을 쓰던 러시아에게 경호를 맡겼다.
그래서 무관 출신을 고용했는데, 상해 등지에서 활약하던 사바틴도 조선에 들어와 경복궁에 배치되었다.
사바틴은 경복궁 건청궁에서 벌어진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목격하고 궁궐을 빠져나가, 제물포에서 군함을 타고 본국으로 돌아가, 상세한 보고서를 제출했다.
민비 시해를 부인하던 일본공사 미우라가 마침내 인정했는데, 사바틴의 보고서가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주범 미우라가 증거불충분으로 석방되자, 일본 메이지 천황이 직접 시종을 보내 치하했다.
사바틴은 무관 자격으로 왔으나 원래는 건축가였다. 그래서 설계 시공에 많이 참여했다.
경복궁 관문각과 덕수궁 옆 러시아 공사관은 그의 대표작이다.
민비 시해사건 이듬해 고종이 사바틴이 시공한 러시아 공사관으로 아관파천한 것은 그와의 인연 때문이었다.
여담으로
귀하의 나라에 있는 크레무린 궁이 그대들이 만든 조선의 덕수궁 석조전과 비교하면?
폐하! 석조전이 단연 훌륭합니다.
계속
영국 신사 21,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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