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가 넘쳐나는 시대
"아니면말고"식의 뉴스가 오히려 사건의 본질을 흐린다
"곳에 따라 한때 비"라는 터무니없는 일기예보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와도 그만, 인와도 그만인 이런 식의 예보는 결과로부터 매우 자유롭다
얼마든지 그럴 개연성이 있는 세상을 현명하게 살아가기 위해선
항상 그럴 개연성이 있는 말을 준비해 둠으로써 빠져나갈 구실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그래서 노란 것도 노르스름하고, 두시삼십분이 아니라 "두세시쯤"이라 해두는 게 안전하다
이것도 놓치기 싫고 저것도 포기하지 않으려는 욕심때문에 결국 짬짜면이 생겨난 것이다
셜록 홈즈나 랭던 교수(다빈치코드의)가 나의 호기심을 건드려,
알 듯 모를 듯 배열한 도형과 문자가 눈을 감아도 천장에 둥둥 떠다닌다
알고나면 쉽지만 알기전에는 골치아픈 것
그것이 기호학의 매력이다
개념은 단어로 나타내고 형태는 그림으로 그리지만
의미는 무엇으로 나타내는가?
새들의 언어에도 가갸거겨로 정해놓은 약속이 있듯이
마당을 쪼는 닭은 "구구~팔팔~" 닭의 언어로 말한다
세종대왕할배가 어느 봄날 근정전 마루에서 창살무늬를 바라보다
기역니은디귿을 문득 생각했을 수도 있다
롤랑 바르트와 움베르토 애코에 천착했던 시절엔
이상의 소설과 황지우의 시를 기호학으로 해석하려는 치기어린 허세를 부리기도 했다
하지만 문장이라는 것은 결국은 개념이 아닌 구조의 원리속에 존재하는 것임을 늦게야 알아간다
지금도 길을 걷다 만나는 수많은 간판은 나를 혼란스럽게 하고
그것들이 명확히 해석되기 전까진 간판은 하나의 기호다
만약 밥벌이 걱정없는 상팔자를 타고났다면 나는 아마도 기호학이라는 호사스런 병에 중독되었을 것이다
한 입 배문 사과를 보고 아이폰을 떠올리는 나에게
아이폰과 사과는 동일한 이미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