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의 명분
다음 글에서 얻을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을 '대의 명분(大義名分)'의 측면에서 800자 내외 (띄어쓰기 포함, ±80자 허용) 로 논술하라.
고려 말(14세기) 원명(元明) 교체기에 원을 제압해 가고 있던 명(明)은 일찍이 원(元)이 직속령을 설치했던 쌍성총관부 자리에 그들의 군사 기지인 '철령위'를 설치하겠다고 통보해왔다. 이에 당시의 실권자였던 최영(崔塋, 1316~1388)은 즉각적인 요동 정벌을 주장하게 된다(당시 요동을 명이 차지하고 있었고, 요동은 중국과 우리 나라를 연결하는 관문인 동시에 전략적인 요충지였음).
그러나 이성계(李成桂, 1335~1408)는 4가지 이유를 들어 요동 정벌에 대해서 반대하였다. 그와 같은 이성계의 주장을 4불가론이라 한다. 4 불가론은 다음과 같다.
(1) 이소역대(以小逆大):작은 것이 큰 것을 거역하는 것
작은 나라인 조선이 큰 나라인 명에 대항해서 싸우는 것은 승산이 없다는 주장이다.
(2) 하월발병(夏月發兵):여름에 군대를 동원하는 것
여름은 농번기인데 시기적으로 농번기에 군사를 동원하면 국가 경제에 커다란 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3) 거국원정 왜승기허(擧國遠征 倭乘其虛):거국적으로 원정을 떠나면 왜가 그 허점을 이용한다는 뜻. 고려 말은 왜구가 극성을 부리던 시기였다. 그와 같은 상황에서 명과 전쟁을 벌이게 되었을 때 후방에서 왜구의 침입이 있게 되면 진퇴 양난에 빠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4) 시방서우 노궁해교 대군질역(時方署雨 弩弓解膠 大軍疾疫):여름철 장마가 있어 활을 쏠 수가 없고 질병이 돌 위험이 있다는 뜻.병법에도 장마철에는 원정을 피하라고 되어 있듯이 먼 거리의 원정과 장마철에 돌기 쉬운 질병, 특히 전염병의 발생 확률이 높아 자칫하면 싸워 보지도 못하고 질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이성계의 주장은 당시 실권자였던 최영에 의해 묵살되고 요동정벌이 강행되었다. 고려말 대표적인 무장으로서 정치적 경쟁 관계에 있던 최영과 이성계 사이의 갈등은 요동 정벌을 계기로 더욱 증폭되었다. 이들이 거느리고 있던 군사는 사병(私兵)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원정시에 총사령관인 최영과 그의 군사가 개경에 남아있게 됨으로써, 이성계는 요동 정벌을 그의 힘(사병)을 소모, 제거하려는 최영의 계략으로 판단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결국 요동정벌은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반전되고 왕조의 교체를 초래하였다.
논제 분석
1. 대의 명분은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와 본분을 말한다. 그럼,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와 본분은 무엇인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은 결코 쉽지 않다.
'공동의 선'일지라도 그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질 수 있으며 '공동의 선'이 아닌 것은 각자의 가치 문제와 결부되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타인에 대한 배려, 선공 후사, 공명 정대 등과 같은 일반적인 도덕률은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와 본분으로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2. 최영과 이성계의 주장이 과연 '사람으로서 당연히 지켜야 할 도리와 본분'이었는지 각자 판단해 보자. 그리고 그들은 타인에 대한 배려, 선공 후사, 공명 정대 등과 같은 도덕률에 위배됨이 없었는지 살펴보자.
3. 이 문제는 개인적인 가치에 그치는 그릇된 대의 명분에 대한 비판적 안목을 요구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예시답안
역사 발생의 두 가지 틀은 인과성과 연속성이다. 따라서, 역사에 대한 평가 역시 이들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는 과정보다는 결과를, '과거 ― 현재 ― 미래'라는 연속성보다는 현재만을 지향하는 등의 잘못된 시각에 의해 왜곡된 경우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대의 명분론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여말 최영의 요동 정벌 명분론과 이성계의 사불가 명분론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최영은 '옛 친구를 멀리할 수 없다.'는 시각과 '국가의 주체성을 살려야 한다.'는 역사적 시각에서 '요동 정벌'이 대의 명분상 바람직하다는 주장을 편다. 최영의 이러한 시각은 요동 정벌 실현을 위한 과정을 충분히 고찰하지 않고 요동 정벌이란 화려한 결과만을 꿈꾼 명분에 그치지 않았으며, 또한 요동 정벌론이 가져올 미래적 상황을 전혀 예측하지 못한 공론에 불과한 것이었다.
따라서, 이러한 허상과 공론에 불과한 대의 명분을 끝까지 고수한 최영을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역사적 교훈은 그릇된 대의 명분이 가져오는 좌절감일 것이다.
이성계의 경우는 어떠한가? 그의 사불가론 역시 최영의 요동 정벌론의 범주에서 살펴볼 있다.
역사는 '과거 ― 현재 ― 미래'라는 연속선상에서 평가됨을 그는 잊은 듯하다.
사불가론이 현실적 상황을 충분히 반영한 실리적인 것이라는 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으나, 왕조 찬탈로 이어진 일련의 연결 과정을 고려할 때, 사불가론 역시 현재적 시점에만 머문 명분에 불과하다.
이상에서 우리는 모름지기 인과성, 연속성을 무시한 대의 명분은 한낱 허상에 불과함을 알았다. 따라서, 최영의 요동 정벌론과 이성계의 사불가론이 시사하는 역사적 교훈은 역사적 평가를 고려하지 않는 대의 명분의 좌절감이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