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남편이 저녁을 먹다가 한쪽 얼굴의 감각이 이상한 것을 감지했다. “자기야, 나 얼굴이 좀 이상해. 피곤해서 그런가?” 그날은 저녁에 아이들의 문화선교학교 발표가 있어서 난 늦게까지 교회에 있어야 했다. 남편을 본 지인이 얼굴이 안 좋아 보인다며 병원에 가보라고 권했지만, 남편은 피곤해서 그런 것 같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하지만 나는 남편의 마음을 알았다. 늦은 밤 응급실 비용이 부담되어 미루고 있다는 걸.... 상태가 점점 나빠지는데도 남편은 고집을 피웠다. 저녁에 만난 지인이 걱정되었는지 의사인 다른 지인에게 연락해 늦은 밤에 전화를 해왔다. “전도사님, 지금 당장 병원에 가셔야 해요. 가셔서 괜찮을 수도 있지만 혹시 뇌출혈일 경우 골든 타임이 지나면 큰일 날 수 있어요. 아직 시간이 있으니 빨리 가세요!”
평소엔 온화한 분이 그때만큼은 강한 어조로 단호하게 말했다. 떠밀리듯 응급실에 간 남편에게서 병원에 도착해 검사를 기다린다는 문자를 받고 목이 메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예배를 드렸다. “얘들아, 우리 감사기도부터 드리자.” 감사 제목을 찾아 기도하는데 그날의 감사는 쓰리고 아팠다. 그제야 아버지가 걱정된다며 눈물을 보이던 아이들. 처한 상황은 염려와 불안이었지만 기도로 이겨내는 중이었다. 감사하게도 얼굴의 마비 증상은 뇌혈관 문제는 아니었고, 안면 신경마비 진단을 받아 오랫동안 치료를 받았다. 우리는 살면서 수많은 ‘골든 타임’(golden time)을 만난다. 이는 생사의 갈림길에 선 환자의 목숨을 구할 수 있는 제한된 시간을 말한다. 남편의 일도 있었지만, 사실 친정아버지도 골든 타임에 심폐소생을 받지 못해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 시간이 얼마나 소중하고 중요한지 잘 알고 있다. 혼란과 암흑의 시대를 지나는 이때 가정이 위기의 순간에 골든 타임을 놓치면 어떻게 될까. 가정마다 주님의 호흡이 필요한 순간이 반드시 있다. 그 순간을 침묵하고 방관해서는 안 된다. 삶과 죽음을 관장하는 분 앞에서 돌이킬 수 있는 골든 타임을 붙들어야 한다. 일주일에 한 번 혹은 몇 번이든 횟수는 중요하지 않다.
단 분주한 삶에서 정신없이 살다가 영적 심박수가 느려지고 응급치료가 필요한 순간, 우리를 지으시고 지키시며 치유하시는 주님을 만나기 위해 응급실로 달려가야 한다. 그곳은 다름 아닌 예배의 자리다. 여호와를 송축하며 나아갈 때 주치의 되시는 주님께서 모든 죄악을 사하시고, 모든 병을 고치시며,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실 것이다(시103:1-5). 우리는 일주일 동안 168시간을 산다. 이 중에 주님과 호흡하는 시간, 온 가족이 주님과 동행하며 그분 앞에 머무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자녀들에게 복음과 신앙을 전하기 위해 물질과 시간을 얼마만큼 투자하고 있을까. ‘품 안의 자식’이라는 말이 있듯이 자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다. 주님이 허락하신 카이로스의 시간에 자녀에게 예배가 흘러가도록 사활을 걸어야 한다. 어리면 어린 대로, 장성하면 장성한 대로 ‘지금이 마지막일 수 있다’라는 경각심을 갖고 골든 타임을 놓치지 않길 바란다. 시간은 절대 되돌릴 수 없으니 말이다.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지를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엡 5:15-16)
- 아무리 바빠도 ... 백은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