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강사 '무료 공부방'으로 인생 2막 열다
가정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대상으로 강의 중인 허작량 선생. 강선배 기자 ksun@busan.com
"버린 단어는 '담배'요, 얻은 단어는 '보은'입니다."
환갑을 앞둔 수학강사 허작량(59) 씨의 보금자리는 부산 수영구 남천동의 작은 지하 강의실이다. 30평 남짓한 이 강의실에서 그는 지난해부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모아 무료로 수학을 가르치고 있다.
젊은 시절 우연찮게 시작한 학원강사 생활은 그에게 부와 명예를 안겨줬다. 매달 개강일이면 허 씨의 강의를 신청하기 위해 학부모까지 학원 앞으로 몰려왔다. "첫 월급을 받았는데 60만 원이 넘습디다. 당시 잘나가던 대우그룹 신입사원 초봉이 20만 원 정도였으니까 어마어마했지요. 그리고 그 길로 25년을 돈과 명예의 노예로 살았어요. 미안한 이야기지만 그렇게 사는 게 제대로 된 삶은 아니었어요."
수강생 몰고 다니던 수학 강사 허작량 씨
10년 전 큰 수술 받은 뒤 '보은강의' 시작
"돈 · 명예 대신 더 큰 보람 찾아 행복해요"
쉰 살이 되던 해, 계단 한 칸 오르는데도 숨을 골라야 하던 허 씨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지인의 병원을 들렀다. 잠시 기다리라고 하던 의사는 곧장 구급차를 불러 그를 대학 병원에 입원시켰다. 그 날 오후 심근경색 수술을 받았다. 의사는 그 지경이 되었는데 버티고 있었던 게 신기하다고 했다.
수술을 받고 몸을 추스르는데 꼬박 1년이 걸렸다. 그리고 양산에 전원주택을 마련하고, 하루 2갑씩 태우던 담배를 끊었다. 벌여 놓았던 학원 사업도 천천히 정리를 해나갔다. 누워있는 동안 '넌 왜 갚지 않니'라는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맴돌았다는 허 씨는 인생의 2막을 장식할 채비를 하고 있다.
이제 그의 새 무대는 수백 명의 수강생이 빼곡히 앉아있는 학원이 아니다. '덤으로 살고 있다'는 허 씨는 5년 전부터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며 무료 수학강의를 시작했다.
학원가에서는 베테랑 강사인 허 씨지만 자원봉사 현장에서는 풋내기에 불과했다.
"한 번은 중학교에 가서 방학 동안 무료 강의를 해줬어요. 개학할 때가 다가오니 절반이 남았더군요. 대견한 마음에 '내가 교재라도 사 주마' 했더니 하나같이 다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알고 봤더니 남은 애들이 죄다 부잣집 애들이야. 그 부잣집 아이들 진도 맞춰주느라 낙오된 애들이 진짜 내가 가르치고 싶던 애들이었던 거지. 난 봉사랍시고 또 한 번 애들에게 상처를 줬던 거예요."
시행착오를 겪던 허 씨는 지난해 11월 아예 대남교차로 인근에 직접 강의실을 임대해 공부방을 꾸렸다. 수영구의 '드림스타트'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구청과 복지기관을 통해 가정환경을 고려해 학생을 받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는 또 한 번 쓴 입맛을 다시고 말았다. 20명 가까이 되던 고1 학생 가운데 1년이 지나 남은 건 단 2명. "이미 학습 능력이 처진 채 찾아오는데다 집안 환경 때문에 '네일아트 배운다' '요리 배운다'며 중도 포기를 많이 해요. 기껏 용기내서 찾아왔는데 내가 못 이끌어주는 건 아닌가 싶어 안타깝지요."
허 씨는 올해 겨울 또다시 중학교 3학년 16명을 추가로 소개받았다. 2년째 도전하는 '보은 수업'이다. 이 애들만은 어떻게든 대학 문턱까지 끌고 가겠다고 이를 악물었다.
"10년 전 그렇게 목숨을 건지고 이제는 큰일이 없을 줄 알았더니 지난 주 고속도로에서 사고가 나 내 차가 트레일러 밑으로 들어갔어요. 차야 대파됐지만 난 멀쩡해요. 아직 내게 할 일이 남았다는 뜻 아니겠어요?" 순탄치만은 않은 인생의 새로운 막을 올리는 허 씨의 각오는 그렇게 비장했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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