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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모습
32: 1-14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 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 오매
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
6.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7.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며 그것에게 희생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9.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10.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
11. 모세가 그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어찌하여 그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주의 백성에게 진노하시나이까
12. 어찌하여 애굽 사람으로 이르기를 여호와가 화를 내려 그 백성을 산에서 죽이고 지면에서 진멸하려고 인도하여 내었다 하게 하려하시나이까 주의 맹렬한 노를 그치시고 뜻을 돌이키사 주의 백성에게 이 화를 내리지 마옵소서
13. 주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하소서 주께서 주를 가리켜 그들에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내가 너희 자손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하고 나의 허락한 이 온 땅을 너희의 자손에게 주어 영영한 기업이 되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말씀하신 화를 그 백성에게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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Ⅰ. 서 론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사람은 책을 딱 한 권 읽은 사람이라는 우스개 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책을 딱 한 권만 읽은 사람은 그 책에서 읽은 것만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가 읽은 책의 방식대로 해야 한다고 우기는 겁니다. 아예 책을 읽지 않은 사람은 우기지 않습니다. 전혀 아는 것이 없으니까 그저 하자는 대로 따라 옵니다.
그런데 때때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책을 딱 한 권 읽은 사람처럼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내 주장과 고집을 절대로 꺽지 않고 내 방식대로 섬기겠다. 내 방식대로 살겠다. 고집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일 답답하게 여기시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로 이런 사람들 때문에 하나님이 답답해서 화까지 내시는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Ⅱ. 본 론
1. 십계명 돌판을 받으러 간 모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벗어난 뒤에 약 삼개월이 지나면서 시내산이라는 곳에 도착을 했습니다. 시내산이라는 곳은 지금도 이름이 그대로 남아 있고, 이스라엘 지역에 현존하는 산입니다. 바로 이곳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십계명이라는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습니다. 그러니 역사적으로 이 산은 아주 의미가 깊은 산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산에서 십계명이 적힌 돌판을 받았을 때, 모든 백성들이 같이 받은 것은 아닙니다. 처음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백성들이 직접 들을 수 있도록 이 십계명을 말씀해 주셨는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던 백성들이 너무 두려워서 그 말씀을 더 듣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말씀해 주셨을 때, 그곳에는 하나님의 음성만 들린 것이 니라 엄청난 우뢰소리와 번개와 연기들이 가득했다고 했습니다.
(가끔씩 천둥, 번개가 심하게 칠 때,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얼마 전에 부산에 천둥, 번개가 칠 때 저는 4층 서재에 있었는데 번개가 바로 옆에서 번쩍 하는 것 같더니만 '쩍' 하는 소리가 나는 겁니다. 원래 천둥소리는 번개가 치고 난 뒤에 한참 있어야 나지 않습니까? 그런데 쩍 소리가 같이 나는 겁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번개가 전선을 타고 흐른 것이죠. 그래서 집에 있던 TV가 코드만 꽃혀 있었는데 저절로 전원이 켜지더니 부속 하나가 타버렸습니다. 번개나 천둥이라는 것이 알고 보면 얼마나 무서운 건지 모릅니다. 과거에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루터라는 사람도 바로 이 번개 때문에 두려워서 사제가 되었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자연의 힘이 무서운 겁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몇 배, 몇 십배의 우뢰와 번개와 가득한 연기를 보았을 겁니다. 그런 현상들이 얼마나 심했는지 백성들이 도저히 두려워서 견딜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하나님께 탄원하기를 '제발 우리에게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지 마시고 모세에게만 말씀해 달라'는 겁니다. 그러면 백성들은 모세가 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받아 듣겠으니 그렇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탄원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할 수 없이 나중에는 모세와 또, 모세를 돕던 여호수아만 산 위로 올라오게 하시고 나머지 백성들은 산밑에 둘러친 울타리를 넘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산밑에 남아서 모세가 십계명이 적힌 돌판을 받아오기만을 기다리게 되었습니다.
모세가 그 계명을 받아 오면 이스라엘은 이제 새로운 법을 가지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게 되는 겁니다. 정말로 역사적인 순간이었습니다.
2. 교만에 찬 백성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어떤 문제입니까? 분명히 모세가 하나님께로부터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을 받으려고 시내산 위로 올라갔는데, 모세가 산에 올라간지 40일이나 지났는데도 아무런 소식이 없는 겁니다. 그러니 백성들이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자기들을 애굽에서 이때까지 인도한 사람은 모세였는데 그 모세를 그렇게 두렵고 무섭던 하나님께서 혹시라도 어떻게 하시지 않았는가? 만약에 모세가 어떻게 해서 죽어버렸다면, 그래서 오지 않는 것이라면 이제 하나님께서 자기들도 죽이시지 않겠는가? 그것이 염려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만약 이럴 때 여러분 같았으면 어떻게 했겠습니까?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시겠지요? 아니면 하나님께서 어떤 말씀을 해 주실 때 까지 기다리시겠지요? 이전에도 하나님께서 백성들에게 직접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렇습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은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습니다. 기도하지 못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면 이 백성들은 도대체 생각을 했습니까?
본문을 보니까 이 백성들은 마냥 이렇게 모세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 아니다. 모세가 죽었다면 어떤 형태로든지 이제 우리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섬겨야 되겠다. 그렇게 생각을 했습니다. 모세가 없으면 우리가 하자.
그런데 이건 사실 이스라엘 일반백성들이 한 생각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에 남아 있는 다른 지도자들이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그런데 실제로 40일 전 까지만 해도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너무나 두려워서 제발 우리보고는 직접 말씀하지 말아달라고 그렇게 탄원하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그런 백성들이 비록 40일이 지났지만 모세가 어떻게 되었는지 확인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주장을 했다는 겁니다. 우리가 하자. 그렇게 나선 겁니다.
우리가 하자는 것은 요, 다함께 힘을 모으자. 그런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해도 된다.
우리 생각대로 하면 된다.
하나님의 법이 뭐 필요하냐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법을 만들자. 옛날에 애굽에 있을 때 했던 것처럼 그렇게 하자.
그런 생각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사실 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이제까지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이 너무 골치 아픈 일이었습니다. 애굽의 신들은 그저 그 앞에 제물을 놓아두고 절 몇 번하고, 그리고 나서 춤추고 놀면 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하나님은 너무 너무 까다롭습니다. 이것도 하지 말라. 저것도 하지 말라. 이것은 이렇게 하라. 저것은 저렇게 하라. 얼마나 간섭이 많고, 배워야 할 것이 많은지 모릅니다. 그런데다가 또 얼마나 두렵습니까?
그러니까 백성들은 이런 하나님의 법에서 좀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감히 벗어나지를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보니까 모세가 죽은 것 같거든요. 그러니 백성들은 모세가 죽은 것을 안타깝게 여기기보다는 바로 이 순간에 그들이 마음속에서부터 원했던 대로 행동하기 시작한 겁니다.
물론 그렇게 하면서 이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안 섬긴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깁니다. 물론 모세의 방법대로는 못 섬기더라도 애굽의 방식대로는 섬기겠습니다. 이들은 그런 주장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새 방법이 아니라 애굽에서 배웠던 우리 방식대로 하겠다는 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뭐라고 그러셨습니까? 목이 곧은 백성이라 하셨습니다.
교만하다는 것이지요.
국어사전을 보면 '교만'이라는 것은 '젠체하고 뽐내며 방자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교만이란 '하나님의 자리를 인간이 대신하려고 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법을 거부하고 내 식대로 하겠다는 것이 교만입니다.
사람들은 은근히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내가 최고의 법이 되고, 내가 최고의 권위자가 되고, 내가 마음먹은 대로 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런 성향들이 있습니다.
내 식대로 섬기겠습니다. 내 식대로 살겠습니다. 내 방식대로 하겠습니다.
똑똑한 일 같지요? 아닙니다. 이런 분들은 결국에는 엉뚱한 길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3. 금송아지를 만든 아론과 백성들
자, 말씀을 보십시오. 이렇게 교만에 찬 이 백성들이 이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게 됩니까?
백성들은 자기들 생각에 이제 자기들이 직접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을 섬기려면 우선 하나님의 모습을 만들어야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만들어진 하나님의 모습 앞에서 제사도 드리고 축제도 벌이고 그렇게 해야 된다는 겁니다.
이게 다 뭡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배워왔던 것들입니다.
애굽에서 430년동안 조상 대대로 내려오면서 보고 배운 것들이 바로 그런 것들입니다. 애굽에서는 어떤 신들을 섬기든지 신의 모습을 조각해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그 조각 앞에서 제사를 드려왔습니다.
그러니 이스라엘의 하나님도 섬기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모습을 조각해서 만들어놔야 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하나같이 '하나님의 모습을 만들자' 그렇게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모습을 만들자. 얼마나 하나님을 모르는 소리입니까?
그런데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던 종교에 대한 고정관념이었습니다. 뭔가 보여야 섬길 수 있다. 이겁니다.
그래서 백성들은 모세의 형이었고 또, 제사를 담당했던 아론을 찾아갔습니다. 그리고는 모세가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알지 못하니까 이제 당신이 우리에게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어 달라. 그렇게 요구했습니다.
물론 아론은 이런 요청을 듣고 고민했을 겁니다.
그러나 아론의 신분이 뭡니까?
론은 모세의 형이기 이전에 하나님 앞에서 제사장으로 세움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이 아무리 하나님의 형상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할지라도 거절 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하는 겁니다. 이러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께 한 번 기도해 보자고 설득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아론은 제사장의 신분을 가지고서도 백성들의 요구 앞에 굴복했습니다.
백성들이 요구한 대로 신상을 만들기로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론은 백성들에게 먼저 그들의 아내와 자녀들이 가지고 있던 금귀고리를 빼어서 자기에게 가져오라 했습니다. 백성들이 아론의 말을 듣고 모든 금귀고리들을 빼서 아론에게 가져왔습니다.
그러자 아론이 그 금귀고리들을 녹여서 큰 덩어리를 만들고, 조각칼로 송아지 형상을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했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낸 신이 바로 이 송아지 모습이라는 겁니다.
왜 하필 송아지입니까?
애굽에서 제일 유명한 신의 모습, 애굽에서 제일 힘있는 우상의 모습이 송아지 모습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이런 신의 모습을 만들어 준다면 든든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한 겁니다.
백성들의 요구대로 백성들의 신을 만들어 준 제사장.
인자한 제사장입니까?
겸손한 제사장입니까?
아니면 백성들을 아끼고 사랑하는 제사장입니까?
아론은 백성과 함께 엉뚱한 길로 가고 말았습니다.
내 식대로 섬기겠다고 하니까, 내 식대로 살겠다고 하니까.
똑똑한 것 같은데, 지혜로운 것 같은데 결국은 이런 우상을 만들게 된 겁니다.
그래서 롬1:21-23을 보면 그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내 방식대로 섬기고, 내 방식대로 살겠다고 똑똑한 모습을 드러내던 사람들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의 모습을 썩어질 사람이나 짐승이나 벌레의 모습으로 바꾸어 놓았다는 겁니다.
세상을 한 번 둘러보십시오. 이게 얼마나 정확한 말씀입니까?
사람들은 자꾸만 자기식대로 하면서 하나님을 자기가 좋아하는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 놓으려 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친숙한 신의 모습이 있습니다.
지하대장군, 지하여장군.
금부처, 흰 수염을 기르고 흰 도포를 입은 모습.
왕관을 쓰고 왕의 도포를 입은 모습. 이런 모습들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신이 이런 모습을 가졌으면 했던 겁니다.
그런데 교회에 와 보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은 모습이 없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떻게 생기셨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대신하여 어떤 모습으로든지 하나님의 모습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것이 제일, 제 이 계명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어떻게 생겼으리라고 예측을 하고 신의 모습을 만드는 것을 보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행위이며 가증한 행위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런데 눈에 보이는 것 만 꼭 우상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우상도 많습니다.
우리도 때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알아가기 보다는 나에게 하나님은 이런 하나님이었으면 하고 자기만의 하나님상을 가지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자기만의 하나님 상을 섬길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원리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자기만의 하나님을 섬기면서 자기 속에 일어나는 생각을 마치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처럼 착각하고 사는 겁니다.
그리고 또 때로는 아무리 기도하자 해도, 기도한다고 문제가 해결됩니까? 예배드린다고 제대로 살 수 있습니까? 말씀을 본다고 됩니까? 우리가 얼마나 많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사실은 하나님께 귀 기울이지도 않아 놓고서 말입니다.
여러분, 내 식대로를 버리시고 하나님식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보면서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인도하심을 구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삶이 되시기 바랍니다.
4.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모세에게 십계명을 전해 주시면서 이런 백성들의 모습을 이미 아시고 진노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들을 아예 전부 다 진멸하고 모세 한 사람만을 택하여 새롭게 큰 나라를 세워야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세상의 많은 민족들을 버려두고 가장 연약하고 가장 못난 민족이었던 이스라엘이라는 민족을 택하셨습니까? 이 연약한 백성들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새롭게 하셔서 이 땅위에 하나님의 새 나라를 만들고 싶어서였습니다.
정의가 흐르고 공의가 세워지고 사랑이 충만한 그런 나라를 하나님이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제까지 애굽이라는 죄악의 나라에서 배우고 익혔던 그 모든 옛 습성들을 버려야만 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법을 따라 익히고 배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 백성들은 그런 옛 습성들을 버리기는커녕 그것을 자기들의 경험이라고 생각하고, 노하우라고 생각하고 그것 가지고 법을 세우려고 합니다. 그것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는 겁니다. 그러면 결국 어떤 나라가 세워지겠습니까? 아무리 잘 세워봐야 애굽 같은 나라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이 한심한 백성들.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으면서도 자기들의 그 가진 것을 버리지 않고 고집하는 백성들을 차라리 하나님께서 버려야겠다. 결심하셨다는 겁니다.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는 잘 버리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입니다.
내 죄악의 습성들을 버릴 줄 아는 사람.
내 옛 가치관을 버릴 줄 아는 사람.
내 고집을 버릴 줄 아는 사람. 하나님께서 복 주시는 사람입니다.
내가 버려야 할 것을 버리지 않고 고집하면 하나님께서 차라리 우리를 버리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하시는 겁니다. 물론 하나님이 하나님의 자녀를 버리시는 일은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정이 그렇다는 겁니다.
EX) 저는 결혼을 좀 늦게 했습니다. 결혼을 하고 전임전도사로 일하면서 첫 아이를 낳았는데 얼마나 우는지 대책이 없었다. 안아줘도 울고, 업어줘도 울고, 할 수 없어서 마침 그 때 교회에서 내준 승용차가 있어서 차에 태우고 동네를 돌아다니면 차안에서는 잔다. 차가 멈추면 또 울고 차가 달리면 잔다. 30분 이상 달리다가 잠들면 집에 들어와서 차 문도 살짝 닫고 대문도 살짝 닫고 딱 눞히면 잉하고 또 운다. 그럴 때는 이걸 그냥 갖다 버리고 싶기도 하고 산 속에 데리고 가서 실컷 울도록 내버려두고 싶기도 하고 별 생각이 다 든다. 그러나 버릴 수 있는가? 없다. 그러나 마음은 버리고 싶다. 아이가 커가면서도 때때로 말을 안 들으면 또 그런 생각을 한다. 자식이 아니라 원수다 원수. 그러나 절대로 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런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나보고 그러시겠구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시면서 아이구 저걸 그냥 내다 버리고 새 민족을 만들고 싶다 그런 마음이 드시면서도 버리실 수 없었던 그 심정처럼 나보고도 저걸 그냥 버려? 그러시면서도 차마 버리지 못하시는 그럴 때가 얼마나 많을까? 그런 생각을 하면 부끄럽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고 내다 버리고 싶다는 심정이 일게 하지말고 우리가 먼저 버려야 할 것을 버리고 하나님의 길을 따라가는 지혜로운 자녀가 되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버려야 할 자기들의 생각과 고집과 옛 가치관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의 도리대로 따라갔더라면 얼마나 멋지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 수 있었겠습니까?
그들이 생전에 보지도 못했고, 듣지도 못했던 나라를 만들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도리대로 따라가기만 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여 가지셨던 멋진 계획을 이루시고자 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씀의 법들을 배워서 내 생각을 바꾸고, 내 가치관을 바꾸고, 내 습관을 바꾸어 하나님이 주실 멋진 열매들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Ⅲ. 결 론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 나타나시면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두려워서 떨며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 눈앞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때때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내 식대로 섬기겠다, 내 식대로 살겠다. 고집하며 하나님의 법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똑똑하게 내 길을 가는 사람들은 결국 자기 나름대로의 하나님상, 자기 나름대로의 우상을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렇게 자기 나름대로의 하나님상을 가지고 자기식대로 살아가려 할때 때로는 그 택하신 자녀를 버리고 싶은 심정을 가지신다고 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어떤 사람입니까? 죄악가운데로 달려가던 사람이었고 멸망가운데로 달려가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독생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주고 사신 사람들입니다. 새 생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또 다시 엉뚱한 길로 갈 때 하나님의 심정은 어떠하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또 다시 버리고 싶다고 갈등하시는 자녀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보시고 사랑스러워서 어쩔줄 모르는 자녀, 하나님께서 축복하시고 사용하실 수 밖에 없는 그런 자녀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모든 성도님들은 주님 안에서 강건한 인생을 사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