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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시간의 힘
(느헤미야2:11-20)
1장과 2장의 전반부에 보면 느헤미야가 오랫동안 금식하며 기도하였더니 하나님께서는 페르시야왕의 마음을 움직여 주셔서 느헤미야를 예루살렘의 총독으로 임명하고 성곽을 건축할수 있도록 허락을 하였습니다. 또한 왕은 이 공사에 많은 물질적인 지원까지도 주게 되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왕의 기병대의 호위를 받으면서 페르시아의 수사궁전으로부터 예루살렘까지 2달동안에 걸친 1600Km의 여행을 무사히 끝내고 예루살렘에 도착을 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한 느헤미야는 본문에 보면, "내가 예루살렘에 이르러 거한지 삼일에 내 하나님이 내 마음을 감화하사 예루살렘을 위하여 행하게 하신 일을 내가 아무 사람에게도 말하지 아니하고 밤에 일어나 두어 사람과 함께 나갈새 내가 탄 짐승 외에는 다른 짐승이 없더라"(11-12)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하면 마땅히 하리라고 생각할수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먼저 권력을 이양받는 총동위임의식을 성대히 치루거나, 도시의 족장들과 장로들, 유지들과 회견을 갖는다든가, 아니면 성읍주변의 지도자들과의 우의를 다지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느헤미야는 이러한 일을 하지 않았고 처음 3일동안은 아무일도 하지 않음을 보고 우리는 놀라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3일동안 먼저 하나님과 홀로하는 시간을 가진것입니다. (이사야30:15) "주 여호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분이 말씀하신다 회개와 말씀가운데 너희의 구원이 있으며 고요함과 신뢰 가운데 너희가 힘을 얻을 것이다"(현대인의 성경) 느헤미야는 고요함과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얻기를 원하여 3일간 고요한 시간을 가진 것입니다.
대학생 선교회 기관인 Intervarsity의 총재를 역임한 고든 맥도날드목사님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일에 쫓기는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다고 말합니다. 쫓기는 사람들은 어떠한 과업이나 일을 성취시키기 위하여 항상 분주하며, 정신없이 일에 몰두하여 일의 중독자처럼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성취하고, 업적을 쌓아감으로서만 삶의 만족을 찾습니다. 이들은 어린시절 부모나 영향력이 있는 교사로부터 그들이 무엇을 완성하고 성취했을 때에만 칭찬이나 인정을 받았고, 실패할때는 사랑을 거부받았기에 성장하여서도 어떠한 과업의 성취를 통하여 타인의 사랑과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어떠한 일을 이룸으로써 내가 사회에서 굉장히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려고 합니다.
일에 쫓기는 부류의 사람들은 성공과 성취를 위하여 부부관계, 가족관계, 친구관계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 희생시킬 뿐더라, 자기자신마져 돌볼 겨를이 없습니다. 쫓겨다니는 사람들은 항상 무엇을 만족할만큼 성취했다고 생각하지 않기에 일분이라도 놓치지 않고 더 많은 회의에 참석을 하고, 더 많은 자료를 수집하고, 더 많은 일들을 벌여 놓아야만 안심하게 됩니다. 스스로 너무 많은 책임을 지고 있노라고 신음하면서도 그 책임으로 부터 조금이라도 풀려나기를 원치 않습니다. 더 바쁘게 일해야만 자기가 중요한 사람, 성공한 사람이 되었다고 안심하기 때문입니다. 일에 쫓기는 사람들은 일의 성취의 결과에만 관심이 있기에 항상 강박관념을 가지고 일을 서두르게 됩니다. 일을 성취하기까지의 과정은 즐길줄을 모르고 과정은 낭비의 시간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러하기에 일에 쫓기는 사람들을 스트레스를 풀만한 휴식을 갖지못하기에 여러 가지 질병에 쓰러지기도 합니다. 미국가정의학회에 의하면 가정 전문의를 찾는 환자들의 2/3가 스트레스로 인한 증세였다고 합니다.
느헤미야는 강박관념으로 쫓기는 사람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군중을 모아놓고 그들에게 성벽건설을 위한 사기진양대회를 벌이거나, 여러 가지 일을 펼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소명의식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예루살렘성벽 건설하는 큰 사역에 뛰어 들어가기전에 그는 하나님과 더불어 같이 하는 홀로 있는 시간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힘과 비젼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예수께서도 그의 공생애 사역의 분기점마다 항상 성부하나님과 성령하나님을 통해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 공생애 사역을 시작하기전 광야에서 40일간 홀로계셨습니다. 12제자로 선택하시기전 홀로 산에서 하루밤을 기도하셨습니다(눅6:20). 세례요한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들었을 때 "배를 타고 떠나사 따로 한적한 곳"으로 가셨습니다.(마14:13). 마가복음1:35에 보면 "새벽 오히려 미명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했습니다. 열두제자가 복음전파와 병고치는 사역을 끝내고 돌아왔을 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따로 한적한 곳에 와서"(마6:31)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눅5:16)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고난이 기다리고 있는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가시기 전 예수께서는 세 제자를 데리시고, 변화산에 기도하러 올라가시어 "하나님"과 함께 하시는 시간, 신의 모습으로 변화하시는 시간을 가지셨습니다.(마17). 또한 모든인간의 죄를 대신 질머지시기 전 겟세마네동산의 고요한 곳에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항상 조용한 곳에서 성부하나님과 성령을 통하여 함께 하시는 시간을 가지심으로 인간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였습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건축하는 구체적인 비전과 계획이 필요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3일동안 홀로있으며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우리는 고요한 가운데 홀로 있을 때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됩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바위를 쪼개는 강풍속에서도, 지진속에서도, 불속에서도 하나님을 만나지 못했습니다. 그는 조용한 가운데 귀에 부드럽게 속삭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끊임없는 소음, 잡담, 분주함으로 가득차 있다. 집안의 TV는 항상 켜 있으며, 차를 타고 갈때에도 음악소리가 그치지 않습니다. 사무실에 있는 친구에게 전화를 하면 그가 내 전화를 받을때까지 전화기에서 음악이 흘러나온다. 이떻게 많은 소음이 있는 가운데, 언제 우리가 고요하고 세미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겠습니까? 사탄은 우리가 소음과 분주함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기를 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인도캘커다에서 길에 버려져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봉사하고 있는 테레사수녀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만나야만 한다. 그런데 하나님은 소음과 분주함 속에서는 발견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침묵의 친구이시다. 자연세계를 바라보자. 나무와 꽃과 풀들은 고요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성장해 가는 것이다.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을 바라보자. 그들이 어떻게 운행되는가? 그들은 고요함속에서 천체를 운행하고 있지 아니한가?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영혼도 고요함 속에서 성장해 나아갈수 있는 것이다. 고요한 가운데 우리는 능력과 힘을 받을수가 있고 그 힘과 능력으로 외적인 활동영역에서 많은 것을 다른사람에 베풀수 있게 되는 것이다." 테레사수녀는 노후에 연약한 여자의 몸을 이끌고 지금도 많은 봉사를 힘있게 할수 있는 것은 그녀가 고요함 가운데 하나님과 독거하며 하나님과 홀로하는 시간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Richard Foster는 우리 현대인들이 짧은 시간이나마 어떻게 고요한 시간, 홀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시간을 가질수 있는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1. 가족이 잠을 자고 있을 때 조금 홀로 일찍 일어나 갖는 시간
2. 식탁에서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전에 홀로 커피를 마시며 가지는 시간
3. 출퇴근시간 교통이 밀려 자동차가 정체되어 있는 시간
4.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홀로 걸어가는 시간
5. 길가의 꽃이나 나무를 바라보는 순간
6. 잠자리에 들기전에 잠시 밖에 나가 고요한 밤을 음미해 보는 시간
Foster교수는 삶의 목표를 점검하기위해 일년에 적어도 네차례 정도 3-4시간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지금부터 앞으로 일년동안 나는 어떠한 일을 성취하기를 원하는가? 또한 지금으로부터 10년동안의 나의 목표는 무엇인가를 점검하며 방향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한 고요한 시간으로부터 삶을 살아가는 용기와 권세와 비전이 우리에게 주어지게 됩니다.
느헤미야는 성벽건축을 그의 힘이나 능력으로 하려고 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성령님을 통하여 주시는 능력으로 그일을 감당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하기에 그는 3일동안 고요한 시간, 하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삼일동안은 하나님과 더불어 홀로있는 시간을 가진 느헤미야는 사흘째 되는 날 밤에 믿을만한 사람 몇 명을 데리고 무너진 성벽을 조사하러 갔습니다. 그가 조사하여 남긴 기록은 매우 자세한 것이어서 오늘날까지도 그당시 예루살렘 성읍이 어떠했는지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역사적 자료가 됩니다. 느헤미야는 골짜기 문에서 시작하여, 무너진 성벽바깥쪽을 말을 타고 둘러보면서 무너진 성벽을 답사했습니다. 느헤미야는 성곽주변을 답사하는 일을 모든 사람이 잠든 한밤중에 했는데 그것은 성곽을 건축하는 일을 훼방하고자 하는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에게 동조하는 스파이들의 눈을 피하고자 함이었습니다. 느헤미야는 현장답사를 하면서 공사를 위한 구체적인 실제적인 계획과 청사진을 마련했던 것입니다.
모든 준비를 끝낸후 그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과 백성들을 불러 모아놓고,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우리의 당한 곤경은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성문이 소화되었으니 자 예루살렘 성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하고 또 저희에게 하나님의 선한 손이 나를 도우신 일과 왕이 내게 이른 말씀을 고하였더니"(느17-18). 그러자 이 말을 들은 유대지도자들은 힘을 얻어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자"고 응답하였습니다.
여기에서 느헤미야는 유대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성벽건축을 위한 동기부여를 하고 있습니다. 실상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함락당한 후 지나간 150여년간 예루살렘 시민들을 성벽과 성문이 없이 살아왔습니다. 에스라를 포함한 몇 지도자들이 성벽을 재건하려고 시도하였지만 그때마다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러하기에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어려운 일이라 시도해보았자 안될 것이다. 사마리아 사람들, 암몬사람들이 방해함으로 해보아야 안될 일이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절대로 그 일을 할 능력이 없다"고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지나간 150년을 성벽없이 살아왔는데" 라고 생각하며 체념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할 때 외적인 동기부여와 내적인 동기부여가 있습니다. 외적인 동기부여는 우리가 흔히 많이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어머니와 어린아이에게 "얘야 이리 오너라. 지금은 목욕할 시간이다. 깨끗이 닦자구나" 그러나 아이는 목욕을 원치 않기에, "나는 목욕하기 싫어요." 그러자 어머니는 "빨리 목욕하고 나면, 만화영화를 TV에서 보게 해줄께"라고 말하면 아이는 얼른 목욕을 합니다. 이것은 외적인 동기부여입니다. 아이가 성장하여 중학교에 다니면, 어머니는 아들에게 말합니다. "얘야 이번 학기에 네가 공부 열심히하여 우등생이 되면, 엄마가 너에게 컴퓨터를 사주고 유도학원에 보내줄께", 회사에서도 판매실적이 좋은 사원들에게 특별보너스를 주거나, 부부동반 구라파여행 티켓을 줌으로 일에대한 외적인 동기를 부여합니다. 이러한 외적동기부여는 일시적인 효과는 있어도 어떠한 일을 행하게 하는 힘이 부족합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도 외적인 동기부여를 할 때가 있습니다. 총동원주일에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우산이나 기타 여러가지 선물을 주기도 합니다. 교회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인도상, 요절암기상, 출석상을 주기도 합니다. 그런데 외적동기부여는 물질적인 욕구에 호소하는 방법입니다. 외적인 동기부여방법보다 더 좋은 방법은 인간의 내면에 호소하는 내적인 동기부여 방법입니다. 2차대전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경은 희망을 상실한 영국 국민들에게 내적인 동기부여를 줌으로 영국 국민들이 희망과 용기를 가지고 나치 독일과 싸워 승리할수 있도록 인도하였습니다. 그는 영국국민의 내적인 심성에 호소하는 다음과 같은 명연설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영국국민 여러분에게 약속할수 있는 것은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밖에는 없습니다. 우리의 목표가 무엇입니까? 승리라고 한마디로 말할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대가를 치루고라도, 어떤 두려움이 닥쳐 온다해도, 그 길이 아무리 멀고 험할지라도 우리는 끝내 승리를 얻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승리하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처칠경은 계속해서 연설하기를 "영국 국민 여러분, 우리는 연약해지거나,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끝까지 싸울것입니다. 우리는 프랑스에서도 싸울것이며, 바다와 대양에서도 싸울것입니다. 우리는 점점 강해지는 자신감과 힘을 가지고 공중에서도 싸울것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대가를 치루더라도 우리의 국토를 지킬것입니다. 우리는 해변가에서도 싸울것이고, 활주로에서도 싸우며, 들판에서도 그리고 길에서도 싸울것입니다. 우리는 산악에서도 싸울것이며, 우리는 결코 항복하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한순간이라도 믿지는 않지만 우리 영토와 그 일부분이 점령되어 우리가 굶주리게 될지라도, 우리 대영제국은 바다위에서도 잘 무장된 우리 함대를 주축으로하여 싸움을 계속해 나갈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정하신 때, 그때까지, 즉 새로운 세계가 옛 세상을 해방할때까지 우리는 싸울것입니다." 윈스턴 처칠경은 영국 국민들에게 피와 수고와 눈물과 땀만을 약속하여 승리를 위하여 싸워 나가자고 그들의 내면적인 심성에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국민들에게 내적인 동기를 부여했던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유대민족에게 성곽을 열심히 쌓는 사람들에게 보너스를 주며, 높은 벼슬을 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루살렘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우리의 당한 곤경을 너희도 목도하는 바라. 우리의 예루살렘이 황무하고 그 성읍이 소화되었으니, 자 우리가 예루살렘을 중건하여 다시 수치를 받지 말자". 여기에서 느헤미야가 말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형제 여러분, 예루살렘이 이처럼 황폐하고 성벽이 무너졌고 성문이 불타버려 우리는 이방민족으로부터 멸시와 조롱과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 택함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가 수모를 당하고 조롱을 당한다는 것은 우리의 하나님이 수모를 당하고 조롱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형제 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루살렘성벽을 재건합시다."
느헤미야는 유대 민족의 영혼에 호소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해야된다"고 그는 암시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이세상에서 복받기 위해서, 잘살기 위하여, 병낫기 위하여,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우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복음증거를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산다는 신앙을 우리는 가져야만 할것입니다. 그리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 주실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동족들에게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페르시야왕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왕의 허락도 받았으니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능력으로 예루살렘성벽을 재건하자고 말합니다.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도우시는 손길이 우리와 함께 하시니, 하나님이 영광을 위하여 성벽을 건축하자고 말하자, 온 유대 형제 자매들이 17절 후반부에 말하기를 "일어나 건축하자하고 모든 힘을 내여 이 선한 일을 하려 하매"라고 했습니다. 느헤미야가 동족들에게 보여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비전, 하나님의 꿈을 이야기하자 모두가 용기를 얻어 하나님의 사역자로 일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자 사마리아 총독 산발랏과 암몬사람 도비야, 아라비아사람 게셉이 느헤미야와 유대형제들을 비웃고 훼방을 놓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사역에는 항상 사탄의 훼방과 방해와 비난이 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수증기선이 미국의 뉴욕으로부터 알바니까지 항해하자, 사람이 노젖는 것보다 수증기선이 더 느려 비웃음거리가 되었다고 합니다. 자동차가 맨 처음 발명되었을 때에도 말에 비해 훨씬 속력이 느려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었다고 합니다. 에디슨이 백열등을 맨처음 발명하였을 때 너무나 어두워서, 석유들을 켜고서야 백열등에 전기가 들어왔는가를 확인할수 있었다고 합니다. 비행기가 맨처음 공중을 날 때 58초후에 땅에 떨어졌습니다. 모두가 비웃으며 "하늘은 새들만 날아갈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저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비행기를 만들었으니 앞으로 저들이 만든 비행기는 절대로 하늘을 날지 못할것이다"라고 모든 사람들이 멸시와 조롱을 하였다고 합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하나님의 사역을 시작하였을 때에도 이방인들은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20절에서 단호하게 그들에게 말하기를 "하늘의 하나님이 우리로 형통케 하시리니, 그의 종 우리가 일어나 건축하려니와, 오직 너희는 예루살렘에서 아무 기업도 없고, 권리도 없고, 명록(역사적권리)도 없다 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성도여러분, 우리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거룩하고 선별된 삶을 살아간다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고 갈채를 보내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구분된 삶을 살아갈 때 우리는 어려운 일과 불리한 일을 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과 함께하는 고요한 시간을 가짐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과 힘을 받으십시다. 그리고 주님께서 주시는 비전을 따라 묵묵히 살아가십시다. 오늘도 성령께서 부어 주시는 능력과 권세를 가지고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비전과 꿈을 따라 사시는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출처: 주님의 시선 글쓴이: 카페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