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섭리와 작정(1)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이다.
이는 인간만이 하나님과 닮은 존재라는 의미이다.
따라서 인간만이 하나님과의 대화와 교제, 동행이 가능하다.
이러한 일을 통해서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창조된 세상을 경영하여 나간다.
이처럼 인간만이 첫 창조를 하늘의 질서로 완성하는 하나님 경륜에 동행할 수가 있다.
그런데 창조된 세상은 시간과 공간이라는 기본 질서 속에서 이루어진다.
이처럼 창조된 세상은 하늘의 질서로 온전케 됨을 바라보고 계발되고 발전한다.
하나님의 거처인 에덴이 하늘로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이는 땅에 뿌려진 씨앗이 싹이 트고 자라나서 열매를 맺은 나무가 됨과 같다.
이처럼 첫 창조세계는 인간을 통하여 계발되고 관리되어서 새 예루살렘으로 완성된다(창1:26).
따라서 하나님 경륜의 목표는 첫 창조를 하늘의 질서로 온전케 하는 일이다.
이를 어떻게 이루시는가?
하나님의 섭리와 작정으로 이루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와 작정은 첫 창조를 하늘의 질서로 완성하기 위한 일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신구약 중보자에게 그의 영을 주셔서 이루신다.
하나님의 섭리와 작정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기본 질서 속에서 세상 창조를 이루신다.
첫째 날에서 다음날로 이어지는 시간의 질서 속에서,
각 날에 이루어진 공간의 질서 속에서,
만물들과 그것들을 주관하는 존재를 지으신다.
세상 창조가 완성되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을 따라 아담을 지으신다.
이는 창조된 세상을 다스리도록 하기 위함이다(창1:26).
아담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세상을 계발하고 다스리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인간만이 하나님과 만남과 대화, 교제와 동행을 통해서
하나님 뜻을 알고 하나님을 대리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범죄 후에도 인간의 신 의식, 곧 종교의 씨를 보호하고 보존하신다.
칼빈의 말대로 죄의 과격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종교의 씨가 멸절되지 않도록 하신다.
따라서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작정은 지속이 된다.
이는 죄 아래에 있는 옛 백성과 세상을 붙드셔서 창조된 세상을 완성하기 위함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고 그의 뜻과 계획을 알리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섭리와 작정은 창조된 세상을 완성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 뜻과 경륜이다.
죄 아래에 있는 옛 백성과 세상을 보존하고 붙들어서
하늘에 앉은 새 백성으로 완성하기 위한 하나님 사역이다.
하나님 섭리와 작정의 변천 과정
에덴은 하나님의 거처이다.
그러나 이는 아담의 거처이며 일터이기도 하다.
이러한 사실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과 항상 함께하심을 보여준다.
개혁신학은 이방철학의 뼈대를 따라 하나님과 인간은 전혀 다른 영역에 있다고 말하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삶의 현장인 세상과는 전혀 다른 영역,
현상계가 아니라 영원 세계에 홀로 고고하게 계시는 분이라고 말하나,
성경은 하나님께서 항상 자기 백성을 떠나 계시지 않음을 말한다.
죄가 지배하는 가나안땅에 계실 때에도,
휘장의 장벽을 두시고 이스라엘과 함께 사시고,
공생애 동안에는 사람으로 오셔서 제자들과 동행하시며,
오순절 이후에는 보내신 성령 안에서 교회와 함께 사심을 말한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과 함께 사시며 역사를 동행하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동거와 동행은 죄에도 불구하고 중단되지 않는다.
이는 각 시대 백성과 함께 창조된 세상을 경영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함께하심은 하나님께서 언약에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이는 언약 당사자로서 하나님 역할에 신실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아담과 노아, 아브라함과 모세의 하나님이심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참으로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구원 경륜은 갓 태어난 자녀에 대한 양육방식과 같다.
이는 화가가 그림을 완성하는 과정과 같다.
첫 사람 아담을 통한 섭리와 작정은 밑그림으로 나타난다.
이는 아주 먼 거리에서 바라보는 산과 같은 희미한 모습으로 제시된다.
이는 밭에 뿌려진 씨앗과 같은 모습이다.
밭에 뿌려진 씨앗은 성장함에 따라 그 특성이 점차 구체적이며 자세하게 나타난다.
하나님께서는 뱀에게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라.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고 말씀하신다(창3:15).
이러한 구원 경륜은 아벨이 드린 제사에서 구현되며(창4:4),
노아를 통해서는 단을 쌓고 드린 번제로 진행되고,
그 후에는 모리아 산에서 아브라함이 드린 번제로 실행된다(창22:1-14).
그 후에 모세는 이스라엘이 드릴 제사를 아주 구체적이며 세부적으로 설명한다(레1:1-7:38).
이처럼 모세를 통해서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612개 율법 항목으로 나타남은
아브라함 자손이 나라를 이룰 만큼 생육하고 번성하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종말에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자녀) 된 백성으로 완성될 때까지,
죄의 과격한 파괴와 왜곡의 역사에도 불구하고,
옛 백성들을 위한 하나님의 섭리와 보존의 역사가 집행된다.
옛 시대의 중보자들에게 종의 영을 주셔서 붙드시고 보존하신 것이다.
따라서 종교의 씨는 온전한 파괴와 박멸이 불가능하다.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섭리와 작정
하나님의 섭리와 보존의 손길은 창조세계에 분명하게 나타난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고 말한다(롬1:20).
왜 만물에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분명하게 보이는가?
세상 창조가 하나님의 지혜와 의지의 발로이기 때문이다.
세상 창조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의한 결과물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창조된 세상은 최초로 하나님께서 행하신 사역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처음으로 나타내신 계시이기도 하다.
따라서 창조세계에는 하나님의 어떠함이 나타난다.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이 분명하게 나타나는 것이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을 알고도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도 인간의 상실한 마음을 그대로 내버려 두신다(롬1:24).
그러므로 인간은 자신의 죄를 핑계할 수 없다.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의 지혜와 안목을 따라 우상을 섬긴다(롬1:21-23).
이는 인간이 죄 아래에 있기 때문이다.
죄로 말미암아 인간은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하지도 않는다.
이처럼 인간은 만물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성과 능력을 보지만
그들이 섬기는 신은 썩어질 사람이나 금수와 벌레 형상이다.
이처럼 인간은 창조주 하나님보다 피조물을 더 경배하고 섬긴다(롬1:22-25).
이는 세상에 들어온 죄 때문이다.
죄는 하나님과 관계적인 문제이다.
하나님 언약을 파기함이 죄이다.
죄는 아담이 언약을 파기하여 세상에 들어오게 된다.
아담은 옛 세상을 시작한 기원자이다.
따라서 아담의 범죄는 기원자로서 행한 직무적인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세상에 대한 구원 경륜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여호와께서는 언약에 신실하시다.
아담의 하나님이심을 포기하지 않으신다.
이러한 언약에 대한 여호와의 신실함,
곧 여호와께서 아담의 하나님 역할에 신실하심은,
가인과 아벨의 출생으로 증명이 된다.
아담은 일백삼십 세에 자기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고 이름을 셋이라고 칭한다(창5:3).
이는 여호와께서 생명으로 아담과 함께하신 결과이다.
이처럼 여호와께서는 아담의 하나님 역할을 충실하게 이행하신다.
구약의 중보자들은 아담의 후손들이다.
인간의 생육법으로 출생한 육신에 속한 중보자들이다.
그것은 아담처럼 아래로부터 난 중보자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종말에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들처럼 위로부터 나서 영에 속한 중보자가 아니다.
따라서 구약의 중보자들과 그들에게 속한 옛 백성 모두는 죄 아래에 매여있다.
이스라엘도 아래로부터 나서 육신에 속한 종(머슴) 된 백성이다(롬3:9, 갈5:16-21).
따라서 모세율법은 이스라엘의 본질과 완악함에 맞춰진 육체의 예법이다(히9:10).
그러므로 율법 시대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개혁할 때까지의 한시적으로 존치된 시대이다.
이는 아브라함 시대와 예수 그리스도 시대 사이에 존치하는 괄호와 같은 시기이다(롬5:20).
따라서 율법은 그리스도의 때까지 이스라엘을 보존하고 인도한 몽학선생이다(갈4:1-3).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 하나님의 섭리와 작정
옛 경륜은 죄 아래에 세워진 이스라엘의 완악함,
이스라엘의 종과 어린아이와 같음에 맞춰진 경륜이다.
따라서 죄는 구약시대에서 살았던 옛 백성들 가운데 왕 노릇을 한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죄의 특성이 잘 드러난다.
그러므로 모세율법은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하시는 온전한 뜻과 경륜이 아니다.
그러나 모세율법은 옛 시대에 주어진 계시의 빛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나타내는 구약에서의 유일한 계시 빛이다.
따라서 구약에서는 모세율법을 통해서만 여호와를 알 수가 있다.
율법에 부착하지 않고서 여호와를 알고 섬길 수가 없다.
이처럼 모세율법에는 하나님의 지혜와 신성을 담고 있다.
이처럼 율법을 통해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음에도,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심이 확증되었음에도,
여호와께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의 하나님이심을 증명함에도,
이스라엘은 율법을 떠나서 우상을 섬겼다.
이것은 핑계할 수 없는 죄악이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결코 자신들의 죄를 핑계하지 못한다.
여호와 백성으로 세워진 이스라엘이 그러하다면 언약 밖의 이방인들은 말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다(갈4:4).
이는 하나님께서 직접 구원역사의 전면에 나섰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신약시대에 예수를 거절한다면 더 이상의 기회가 없다.
이는 구약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보내심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심이다.
이는 구약에서 나타내신 율법의 빛과는 비교할 수 없는 하늘의 빛이다.
하늘의 빛이라고 함은 참되고 온전한 하나님의 뜻이라는 말이다.
이처럼 종말에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참되고 온전한 뜻을 나타내셨다.
종말에 아들을 통하여 나타내신 하나님 뜻이 무엇인가?
아들을 십자가에서 죽게 하신 일이다.
이는 율법이 없이하지 못하는 죄를 없이하고 율법 아래에 있는 백성을 온전케 함이다(히10:1-14.
그런데 아들의 죽음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심이다.
율법의 요구가 죽음이기 때문이다.
죽음을 요구함은 율법이 죄 아래에서 시행된 여호와의 뜻과 경륜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예수께서 율법을 완성하셨다는 의미이다(마5:1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