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아래서
큰딸과 손녀를 데리고 모양성에 갔다. 벚꽃이 활짝 피어 성(城)안과 밖을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 모양성의 벚꽃은 평년보다 7-8일 빨리 핀 것 같다.
벚꽃이 국화(國花)인 일본에서 온 큰딸은 모양성을 한 바퀴 돈다고 그녀의 딸과 같이 성 밖에 핀 벚꽃을 바라보며 가볍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평소처럼 안으로 두 바퀴 돌면서 화사하게 핀 벚꽃을 등지고 나 홀로 사진을 찍는다.
군데군데 진달래도 만발하였고 다소곳이 피었던 목련꽃은 그 우아했던 자태를 잃은 채 힘없이 빛바랜 몸짓으로 낙화(落花)하고 있었다. 그 낙화의 모습은 때 묻은 흰 무명천조각처럼 그늘진 땅위에 버려진 듯 애잔하다.
지난 세월 속의 수많은 날들, 스치며 밟고 지나간 나의 발자국과 꽃잎의 흔적들, 그리고 아들딸 손자손녀들의 까만 눈동자가 선하게 떠오른다.
환한 벚꽃 밑을 두 바퀴 돌고 모양성 밖으로 나왔다. 멀리 방장산자락과 도로가에 화사한 벚꽃이 보인다.
내 발걸음 따라 달라 보이는 벚꽃들의 군무는 가장 화려한 선녀(仙女)의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날개옷인 것 같았다.
그 화사함, 꽃잎의 피고 짐이 우리네 인생에 말없는 암시를 준다는 판에 박은 소리가 아니다. 자연 그대로의 진언(眞言)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 순간이다. 내가 사는 이곳이 우주의 중심임을 알아가는 중일 것이라고 스스로 위안 삼는다.
딸과 손녀가 한 바퀴 돌고 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지나 않는가를 신경 써보지만 잠시 잠깐 뿐이고 나는 평소 하던 운동을 계속한다.
딸한테 전화가 왔다. 성(城)을 한 바퀴 돌고 아빠 찾다가 없어서 집에 와 있다는 것이다.
만리타국에서 일가(一家)를 이루며 씩씩하게 살고 있지만, 어릴 때 부모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주었던 아쉬움에 언제나 애처로운 큰딸인데, 동생들이며 조카들까지 뭔가를 챙겨주는 모습이 더 눈시울 붉게 한다.
큰딸을 보려고 전주에서 둘째딸이, 수원에서 셋째 딸이, 대구에서 막내딸이 오후 늦게 온다고 했다.
딸들이 도착하다는 시간이 오후 8시 경이어서 짬이 충분하기에 큰딸과 외손녀, 아내와 같이 석정지구 벚꽃축제의 장에 갔다.
정말 아름다운 벚꽃이 4차선 길 양편에 화려하게 피어 저절로 부푸는 가슴, 깊은 심호흡을 하게 만든다.
큰딸과 외손녀는 사진을 찍으며 즐거운 표정의 미소가 얼굴에 떠나지 않는다.
외손녀는 벚꽃 한 송이를 따서 손바닥에 놓고 활짝 웃는다.
이튼 날, 어제 밤에 도착한 딸들이 벚꽃 구경을 못했기에 아침을 식당에서 먹고 벚꽃축제의 장으로 갔다. 벌써 차량들이 주차장마다 거의 가득 차있고 도로에도 많은 차들이 주차되어있었다.
어제 못 본 산자락의 벚꽃, 만개한 맑고 밝은 꽃 터널을 지나며 모양성에서보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사진을 찍고 행복해하는 딸들과 손주들의 티 없이 맑은 모습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였다. 이런 것들이 작은 행복이고 감사할 일 아닌가.
오늘 모두 떠나야하기에 집으로 돌아와 각자의 소지품들을 챙긴다.
내년 벚꽃 필 이맘때를 기약하며 눈물보다 더 서글픈 가슴시린 애잔함으로 떠나보내야 한다. 일본으로, 대구로, 수원으로.
딸들이 떠나고 난 방안은 정적(靜寂)이 흐르고 있었다.
벚꽃 피었다 지듯, 이제 익숙해져버린 만나면 해어져야 하는 것이 사람 사는 숙명적(宿命的) 삶인 것이란 생각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