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수) 창5:26-32
→ 자녀를 낳는 일은 결혼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물들에게 생식 능력을 주셨고, 대부분의 생물들은 후손을 낳습니다. 그 후손이 뛰어난 후손일 수도 있고 조금 부족한 후손일 수는 있지만 아무튼 후손이 계속 이어지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고대의 사람들은 오래 살면서 자녀를 낳았으니 많이 낳았겠습니다. 그래서 빨리 번성했겠습니다. 지금은 고대처럼 오래 살지도 못하고 후손을 낳는 것도 자의적으로나 타의적으로 제한을 하기 때문에 많이 낳지는 않습니다. 다만, 영적인 후손들은 많이 많이 낳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땅에 살 동안 영적인 후손들을 많이 낳아서 생육하고 번성하는 우리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 창6:9 8:20
→ 노아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먼저 그는 늘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홍수 후에 배에서 내려서 한 첫 행동이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이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예배하는 사람이 노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택하실 만합니다. 땅이 악한 사람들로 가득 찼는데, 이제는 그런 사람들이 다 없어지고 노아로부터 새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세상을 꿈꿀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늘 그런 세상을 꿈꾸십니다. 그런 세상이 오게 하는 것이 또한 우리의 목표입니다!
2025.1.3(금) 창13:1-3
→ 하나님께서는. 당시에 아브람이 가장 의인이어서 그를 택하신 것인지요? 당시에 아브람 만한 사람은 또 없었는지요? 욥도 거의 비슷한 시대라고 들은 듯한데, 욥과 같은 의인이 아니라 아브람을 선택하셔서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동참시키셨습니다! 아브람이 욥보다 더 의인이라고 할 수는 없을 텐데요! 이런 것을 보면 하나님의 선택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의롭고 흠 없는 것이 기준이 되는 것은 아닌 듯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에 대해 말하기를 "너희가 의롭거나 강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약하고 부족한 존재여서 하나님께서 택하셨다"고 했던 것도 생각납니다. 이런 것을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라고 하겠습니다. 우리가 판단할 수 없는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적당한 사람을 선택하셔서 당신의 일을 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도 거기에 포함되는 사람이 되고 싶어 합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을 그 쓸모에 맞게 택하시고 다듬어 가심을 찬송합니다. 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을 때에 우리 각자도 아브라함 같은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 됩니다. 우리를 지극히 사랑하시고 우리 가운데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찬송합니다.
# 창17:24-27
→ 하나님께서 14년간의 침묵을 깨뜨리시고 다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고하셨고, 새로이 언약을 맺으셨으며, 아브라함은 모든 가솔들과 함께 그 언약의 증표로 할례를 행했습니다. 그 14년은 특히 사라에게 암흑기였을 것 같습니다. 약속과 무관한 자로 뒷방에서 드러내지 않고 슬픔괴 고통을 숨기면서 살았을 사라입니다. 이스마엘이 13세가 될 때까지 자라는 것을 보면서, 부럽기도 하고 질투도 나고 고통스럽기도 했겠지요?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이어지는 것을 이미 포기하고 살아 온 세월이 최소 14년입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고, 자기에게도 '열국의 왕후'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 이름을 받았지만 아직은 실감하지 못하고 있는 듯합니다. 아무 반응이 없고 이후에 하나님께서 '사라에게 아들이 있을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에 바로 실소가 터져나오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포기하고 슬프게 살아가는 사라에게 나타나셔서 그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을 뵙습니다. 공연히 저도 눈물이 납니다. 하나님께 경배합니다!
2025.1.7(화) 창43:14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궁지에 밀어넣으실 때가 있으십니다. 흉년이 들어 굶어 죽게 되었고, 유일한 해결책은 이집트에서 양식을 사오는 것인데, 이집트 총리는 베냐민을 데리고 오지 않으면 얼굴도 못 본다 했습니다. 자기 손에 꼭 잡고 절대 놓지 않던 베냐민을 내어놓는 야곱입니다. 궁지에 몰렸기 때문에 어쩔 수 없습니다. 다른 방법이 아무 것도 없습니다. 족장으로서, 베냐민 하나 지키자고 온 가족의 생존에 대해 외면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베냐민을 내어놓는 야곱입니다. 잃을 각오를 하고 내어놓는 야곱입니다. 갑자기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던 장면이 겹쳐서 떠오릅니다. 거의 동일한 경험이지 않나 싶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사람들에게 자신의 가장 귀한 것을 내놓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는 순종하는 그들에게 더 크게 보상해 주십니다. 순종의 과정에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헌신에 진보가 일어납니다. 자기 생각과 능력으로 운영하던 것을 다 포기하고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는 일이 일어납니다. 그리고는, 엄청난 복을 받습니다! 자기 생각, 자기 고집, 자기 욕심, 자기 집착! 이런 것들을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께서 처분하도록 맡기는 것, 그것이 기적의 시작입니다. 그것이 복의 시작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직접 죽여서 드리려 했던 이삭을 돌려 받았습니다. 야곱은, 죽은 요셉을 22년 만에 돌려 받았습니다. 하나님을 찬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