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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汝州 풍혈風穴 연소延沼 선사
그는 여항餘杭사람이니,
처음에 월주越州 경청鏡淸 순덕順德 대사에게 출가하였다.
그러나 깊은 경지에 이르지 못하다가 이윽고 양주襄州의 화엄원華嚴院에 가서
수랑守廊 상좌를 만나니, 그가 곧 여주汝州 남원南院의 시자侍者였다.
그리하여 남원의 종지를 은밀히 탐구하게 되었다.
처음 남원을 뵐 때는 절도 하지 않은 채 불쑥 물었다.
“입문入門해서는 모름지기 주인[主]를 가려내야 하는데,
그 참된 뜻을 스님께서 분별해 주십시오.”
남원이 왼손으로 무릎을 만지자, 대사가 할을 하였다.
남원이 다시 오른손으로 무릎을 만지자,
대사가 또 할을 하였다.
이에 남원이 왼손을 들면서 말했다.
“이것은 그대를 따르겠지만.”
남원이 다시 오른손을 들면서 말했다.
“이것은 또 어찌하겠는가?”
대사가 말했다.
“눈멀었구나.”
남원이 주장자를 들려는데,
대사가 말했다.
“무엇을 하려고요?
주장자를 뺏어서 노화상을 때려도 말하지 못했다고 하지 마십시오.”
남원이 말했다.
“30년 주지를 지냈으나, 오늘에야 누런 얼굴의
절강성 사람이 문턱에 와서 비단 짜는 꼴을 보았다.”
“화상은 마치 발우도 얻지 못한 이가 거짓으로 시장하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대는 언제 남원에 왔는가?”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노승이 분명한 일을 그대에게 물었느니라.”
“그래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우선 앉아서 차나 마셔라.”
대사가 비로소 제자의 예를 올렸다.
이후부터 위산潙山과 앙산仰山의 예언에 따라 세상에 드러나서
무리를 모으니, 남원의 법이 이로 말미암아 모든 지역에서 크게 떨쳤다.
대사가 상당하여 대중에게 말했다.
“무릇 현묘한 법을 배우는 안목은 근기에 따라서 적절하게 곧바로 대용大用이 나타나는 것이니,
사소한 절차에 스스로 구애되어서는 안 된다. 설사 말하기 전에 깨달았다 해도 껍질에 걸리고
경계에 미혹하는 것이요, 비록 말한 뒤에 정밀하게 통한다 하여도 가는 곳마다 미친 소견[狂見]을 면치 못한다.
그대들 여러 사람을 관찰하건대 전부터 남으로 인해 앎을 일으키느라, 밝고 어두운 두 갈래 길로 미혹했지만,
이제는 이것을 일시에 쓸어버리고 낱낱의 사람마다 큰 사자가 땅에 버티고 선 채 외마디 포효하면서
천 길 벼랑 위에 서 있는 것처럼 하리니, 누가 감히 똑바로 바라보겠는가?
만일 쳐다보는 이가 있으면 당장에 그의 눈을 멀게 하리라.”
대사는 또 정주郢州 관아[衙]에 가서 자리에 올라 대중에게 보였다.
“조사祖師의 심인心印은 마치 무쇠 소의 기용[鐵牛之機]과 같아서 가면 도장 문채가 머물고,
머무르면 도장 문채가 깨진다. 만일 가지도 머물지도 않는다면, 도장 문채를 찍는 것이 옳은가,
찍지 않는 것이 옳은가. 대중들 중에서 말할 수 있는 자가 있는가?”
이때 노피盧陂 장로가 물었다.
“학인에게는 무쇠 소의 기용이 있으니,
스님께서는 도장을 그냥 두지 마십시오.”
대사가 말했다.
“원래 고래를 잡기 위해서 맑고 큰 물에 들어가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개구리 걸음을 하며 진흙 모래 위를 헤매는구나.”
[경공사원卿公事苑에서 말하기를 “와蛙는 마땅히 와(洼:개울)로 써야 한다”고 하였으니, 이른바 말<馬>이 진흙 개울<渥洼水>
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풍혈風穴이 말한 뜻은 훌륭한 말이 맑은물에서 나왔으나 도리어 진흙 개울에서 뒹군다고 한 것이 그 뜻이다. 이 책에서 ‘와蛙’라 함은 청개구리<蝦蟆>이니, 어찌 말 걸음을 하고서 뒹굴 수 있겠는가? 전은 장張과 선扇의 반절이다.]
노피가 가만히 생각하고 있으니,
대사가 할을 하고서 말했다.
“장로는 어째서 말을 하지 않는가?”
노피가 나아가 말하려고 하는데,
대사가 불자로 입을 때리며 말했다.
“앞의 말을 기억하는가? 말해 보라.”
노피가 입을 열려고 하는데,
대사가 불자로 또 한 번 때렸다.
그러자 목주(牧主:군수)가 말했다.
“불법佛法과 왕법王法은 똑같군요.”
“어떤 도리를 보았는가?”
“끊어야 할 것을 끊지 않으면,
도리어 재앙을 불러들이게 됩니다.”
대사가 자리에서 내려왔다.
대사가 상당하니, 어떤 스님이 물었다.
“스님께서는 어떤 가풍의 곡조를 노래하고,
누구의 종풍宗風을 이으셨습니까?”
“초연히 위음威音부처님 밖을 멀리 벗어났거늘,
부질없이 한 다리를 쳐들고서 저사底沙부처님을 찬탄하는구나.
”[본생경本生經에서 말하기를 “아주 오랜 옛날에 저사底沙라는 부처님께서 계셨고,
이때에 두 보살이 있었는데 하나는 석가이고, 하나는 미륵이었다.
그 부처님께서 관찰하니 석가보살만이 홀로 마음이 아직 익지 않았을 뿐,
다른 제자들의 마음은 이미 익고 있었다. 이에 생각하기를 ‘한 사람의 마음은 교화하기 쉽고
뭇 사람의 마음은 빨리 다스리기 어렵다’ 하고, 바로 설산에 올라가서 보굴寶窟 속에 들어 큰 선정에 들었다.
이때에 석가보살이 외도 선인의 몸으로 있으면서약을 캐러 산에 올라왔다가 저사부처님을 보았다.
부처님을 뵙고는 기뻐하며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한 발을 들고합장하고서 부처님을 향하여 일심으로
우러러 뵙되 잠시도 눈을 깜빡이지 않았다. 이렇게 7일 낮과 7일 밤을 지니면서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기를
‘하늘 위나 하늘 아래에 부처님과 같을 이가 없고, 시방세계에도 견줄 이가 없나이다.
세계에 있는 것을 내가 두루 보았지만 모두가 부처님과 같은 이가 없나이다’라고 하였다.
이 까닭에 9겁劫의 수행을 초월하여 91겁 만에 아뇩보리阿耨菩提를 이루었다”라고 하였다.]
“옛 곡조에 음률이없는데 어찌해야 화합해서 가지런해질수 있겠습니까?”
“나무 닭이 밤중에 울고, 풀로 만든 개가 대낮에 짖는다.”
“어떤 것이 나무불南無佛을 한 번 부르는 것입니까?”
“봉시등鳳翅燈이 이어져서 집 앞을 비추고,
달그림자가 아미산[娥眉]에 걸려서 얼굴을 기울이며[䫌] 본다.
”[비䫌자는 필匹과 미迷의 반절이다. 고개를 갸우뚱한다는 뜻이다.]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어떤 것이 부처가 아닌가?”
“현묘한 말씀을 깨닫지 못하겠으니, 스님께서 직접 말씀해 주십시오.”
“집이 해문주海門洲에 있으니, 동쪽에서 돋은 해가 가장 먼저 비춘다.”
“둥근 달이 중천에 떴을 때는 어떠합니까?”
“하늘에서 굴러온 적이 없으니, 마음대로 땅에다
그 스님이 스스로를 둥근 달에 견주었으므로 제지한 말이다.
묻어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바람결에 우짖는 나무말에게는 굴레를 씌울 수 없고,
등에 뿔이 솟은 진흙 소에게는 아프게 채찍질을 한다.”
“어떤 것이 광혜廣慧의 검입니까?”
“죽은 놈은 베지 않는다.”
“옛 거울을 아직 갈지 않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천마天魔의 간담이 찢어지느니라.”
“검을 간 뒤에는 어떠합니까?”
“헌원軒轅의 도가 없어졌느니라.”
“둥근 달이 중천에 닿았을 때는 어떠합니까?”
“둥근 하늘[團天][또는 원천圓天이라고도 한다.]
에만 있지 않고 마을 집에도 거처하느니라.”
“창과 방패[矛盾]를 처음 만든 것은 걱정을 서로서로 막은 것이지만,
제망帝網의 밝은 구슬은 그 일이 어떠합니까?”
“산을 만든 것은 아홉 길 높이에 오르기 위함이요,
한 줌의 흙은 천 근의 무게를 누른다.”
“어떠합니까?”
“어떠한가?”
“간목(干木:周의 名士)이 문후(文侯:魏의 왕)를 받들 때에
그 마음을 아는 이가 몇이나 됩니까?”
“소년 시절에는 용사龍蛇의 진陣을 부수기도 했는데,
늙어서는 도리어 나무꾼들의 노래나 듣는다.”
“어떤 것이 청량산淸涼山 안의 주인입니까?”
“한 구절이 무착의 물음에도 미치지 못하여,
아직껏 촌스런 중으로 남아 있다.”
“언구言句가 근기에 맞지 않을 때에는 어떻게 도를 드러냅니까?”
“대묘大昴 서쪽에 뜨는 샛별을 말한다.
설사 하늘과 똑같더라도 해는 정오에 이르지 않는다.”
“어떤 것이 화상의 가풍입니까?”
“학鶴이 구고(九皐:매우 으슥하고 깊은 곳)에 있지만
날개를 펼쳐서 날기가 어렵고,
말은 천 리를 멀다 않지만 바람을 쫓기란 아득하구나.”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게 하라.”
“아직까지 있은 적이 없는 말을 스님께서 말씀해 주십시오.”
“저자에 들어서서는 긴 휘파람을 불다가 집에 돌아가서는
짧은 옷을 입는다.”
“여름이 끝난 오늘에 스님의 뜻은 어떠하십니까?”
“거위[鵝]를 보호한 눈[雪] 같은 계행은 연민하지 않으나,
법랍[蠟]을 받은 이의 얼음 같은 계행은 기뻐한다.”
“고향에 돌아갈 길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붉게 부어오른 자리를 찬찬히 엿보아라.
그대의 평생을 빛내게 하려 할 뿐이었다.”
어머니의 은혜를 찬양함이니 고향에 돌아가라는 뜻이다.
대사가 고을 관아의 청을 받아서 상당하였는데, 어떤 스님이 물었다.
“인왕人王과 법왕法王이 마주 볼 때는 어떠합니까?”
“크게 춤추면서 임천林泉을 도니, 세간에는 기쁨도 근심도 없다.”
스님이 말했다.
“함께 무슨 일을 이야기하겠습니까?”
“호표암虎豹巖 앞에 일찍이 연좌宴坐했다가,
송골매 깃발[隼旟] 군사의 전진을 알리는 깃발이다.
의 광채 속에서 참다운 종풍을 드날린다.”
“잎을 따고 가지를 찾는 일은 묻지 않겠습니다.
어떤 것이 근원根源을 바로 끊는 것입니까?”
“공양을 받기 위해 새벽에 들어가고,
집[堂][또는 당(塘:못․제방)이라고 쓴 곳도 있다.]에 갔다가
비를 맞으면서 돌아온다.”
“온갖 물음은 모두가 억지로 꾸민 것이니,
스님께서 바로 근원을 가리켜 주십시오.”
“귀가 뚫린 나그네[穿耳客]는 만나기 드물지만,
배에다 표시를 하는 이[刻舟人]는 만나기 쉽더라.”
“바로 이런 때를 당해서는 어떠합니까?”
“눈먼 거북이 나무를 만나니 편하기는 하지만,
고목 나무에 꽃이 피는 격이니 만물 밖의 봄이다.”
“어떤 것이 비밀한 방[密室] 안의 일입니까?”
“팔짱을 끼고 고금을 논하는데, 얼굴을 돌린 채 눈썹을 찡그린다.”
“흑룡[驪龍]의 턱 밑에 있는 여의주를 어떻게 얻습니까?”
“일찍이 바닷가에서 마른 대[竹]로 찔렸는데,
지금까지 거문고를 치고만 있구나.”
이는 방편경方便經의 이야기이니,
아우가 형의 눈을 빼고 보물을 빼앗앗는데,
형은 거문고에 능해서 그 거문고 소리로 인해
보물을 되찾는다는 이야기이다.
“큰 배가 허공에 흔들릴 때에는 어떻게 돛을 답니까?”
“스스로 가슴을 치지 말아야 하니, 온 집안이 보기를 좋아하지 않는다.”
“바람을 쫓아도 잡기 어려우니, 앞길이 어떠하겠습니까?”
“파사(波斯:페르시아) 사람의 옷이 벗겨졌다.”
“왕자로 탄생한 이도 급제를 빌려야 합니까?”
“한 구절로 선객의 물음을 빛내려 하나,
삼함三緘으로 고인의 기틀을 등질까 걱정이다.”
“인연을 따라 변치 않는 이가 갑자기 뜻을 아는
사람을 만날 때에는 어떠합니까?”
“망사를 입고 삿갓을 비켜 쓰니 1천 봉우리 속이요,
물을 끌어 채소밭에 대니 오로봉五老峰 앞이다.”
“배[舟]에다 표시를 해서 찾아도 얻지 못하니,
당체當體의 일을 어찌해야 합니까?”
“큰 공훈은 상을 타지 않으니, 사립문 앞은 풀이 절로 깊구나.”
“예로부터 고인古人들은 도장[印]과 도장이
서로 계합한다고 했는데, 어떤 것이 도장의 안목입니까?”
“경솔하게 말하는 이가 기틀의 변화를 아니,
젖은 영혼에게 눈물을 닦는 수건을 준다.”
“여름 동안[九夏] 수고한 이에게 상을 주고자 하니,
스님께서 천거해 보십시오.”
“굴에서 벗어나 열어젖히니 용동龍洞의 비이고,
물결에 뜬 스님이 솟아나니 발우와 바랑의 꽃이다.”
“가장 처음의 자자일[自恣]인데 어떤 사람을 상대하리까?”
“한 줌의 향기로운 풀을 들었다가 아직 내려놓지 않았는데,
육환장六環杖의 방울[金錫] 소리가 허공을 뒤흔든다.”
“조사께서 전해 오신 것을 스님께서 분명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개 한 마리는 헛되이 짖으나,
원숭이[猱] 천 마리는 실제로 싸운다[啀].”
[노猱는 마땅히 노㺜라고 써야 한다. 노㺜는 노奴와 도刀의
반절이다. 긴 털을 가진 사나운 개다. 노猱는 원숭이<猴>이니,
맞는 뜻이 아니다. 애啀의 음은 애崖이며, 개가 싸운다는 뜻이다.]
“왕도王道와 불도佛道의 거리는 얼마나 됩니까?”
“풀로 만든 개가 짖을 때에 천지가 합하고,
나무 닭이 운 뒤에는 조사의 등불이 빛난다.”
“조사의 심인心印을 스님께서 지워 주십시오.”
“조사의 달이 허공을 넘으매 거룩한 지혜가 원만하니,
어느 산의 소나무인들 푸르디푸르지 않으리오?”
“대중이 다 모였으니, 스님께서 설법을 해주십시오.”
“맨발인 사람이 토끼를 쫓았는데,
나막신을 신은 사람이 고기를 먹는다.”
“공왕空王의 교법을 널리 살핀 적이 없으니,
대략이나마 현묘한 이치에 의지해서 말씀해 주십시오.”
“백옥에 흠이 없는데도 변화卞和는 발꿈치가 끊겼다.”
“어떤 것이 무위無爲의 구절입니까?”
“보배 촛불이 바로 난간에 드러나니, 붉은 광채가 태허太虛를 비춘다.”
“어떤 것이 기틀에 응하는 한 구절입니까?”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피우니, 큰 힘이 들지 않는다.”
“맨 얼굴이 서로 드러날 때는 어떠합니까?”
“얼굴을 가리는 비단을 들어라.”
“어떤 것이 납승衲僧의 기질[氣息]입니까?”
“무릎으로 다니고 팔꿈치로 기는 것을 대중은 보았다.”
“‘붉은 국화가 반쯤 피어서 이미 가을이 오니,
달이 둥글어 창문을 비추네’라는 말의 뜻은 무엇입니까?”
“봉래도[蓬島]에 달이 뜬 것 누구나 바라보지만,
지난밤에 서리가 내린 것은 그대는 모르는가?”
“어떤 것이 곧바로 끊는 한 길[一路]입니까?”
“곧바로 끊음이 우회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이 사자후입니까?”
“누가 그대에게 승냥이[野干]의 울음을 하라던가?”
“어떤 것이 진리[諦實]의 말입니까?”
“마음이 벽 위에 걸린 것이니라.”
“마음으로도 능히 반연하지 못하고,
입으로도 말할 수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사람을 만나거든 단지 그렇게만 말하라.”
“용이 맑은 못에 숨었을 때는 어떠합니까?”
“이마에 도장을 찍히고 꼬리를 잡혔구나.”
“성품에 맡겨 떴다 잠겼다 할 때는 어떠합니까?”
“소를 끌어다 난간에 들이지 않느니라.”
“있고 없음이 모두 갈 곳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3월에 한가롭게 꽃 사이로 길을 노니는데,
한 집안이 근심스럽게 빗속에 문을 닫는구나.”
“말하고 침묵하는 것은 이離와 미微에 상관하니
[조肇 법사法師의 보장론寶藏論 「이미체정품離微體淨品」에서 말하기를 “들어가면 이離요 나오면 미微이니,
들어가는 이를 알면 바깥 경계가 의지할 바 없고, 나오는 미를 알면 안의 마음이 할 바가 없다. 안의 마음이 할 바가
없으면 온갖 소견이 옮기지 않고, 바깥 경계가 의지할 바가 없으면 만유萬有가 일어나지 않는다. 만유가 일어나지
않으면 생각들이 흩어지지 않고, 온갖 소견이 옮기지 않으면 적멸하여 부사의하니, 이른바 본래 맑은 본체는 이미
離微하다고 하리라. 들어감에 의하여 이離라 하고, 작용에 의하여 미微라 하였으니, 혼동하면 하나의 이미 없음이
되어서 본체가 맑아 물듦이 없으므로 맑음도 없다. 본체가 미묘하여 있다고 할 수 없고, 있지 않으므로 없음도 없다”고 하였다.]
어떻게 해야 통하면서 범함이 없겠습니까?”
“항상 강남의 3월을 생각하니,
자고새[鷓鴣] 우는 곳에 들꽃이 향기롭다.”
“백을 알고 천을 감당할 때는 어떠합니까?”
“밤에 다니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니 밝거든 오라.”
“몸 둘 곳이 없을 때는 어떠합니까?”
“웅이탑熊耳塔이 열리니 두드리는 나그네가 없더라.”
“어찌해야 좋습니까?”
“속히 끊어 버려라.” 어찌해야 좋을까 하는
마음 자체를 끊으라고 한 것이다.
“온 땅 위의 사람이 와서 일시에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백아伯牙[혹은 자기子期라고도 한다.]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이가 별로 없다.”
“앙굴마라[央堀]가 부처님을 핍박할 때는 어떠합니까?”
“여러분이 보호하라.”
만회감萬迴憨이 물었다.
“심인心印을 아직 밝히지 못했으니, 어찌하여야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유수酉帥가 항복했다는 말은 들었으나, 염소를 끌고 구슬을 바치러
오는 이는 아직 보지 못했다.”
“어떤 것이 임제 휘하의 일입니까?”
“걸(桀:暴君)이 키우는 개는 요(堯:聖君)를 보고도 짖는다.”
“어떤 것이 화살촉을 무는 일입니까?”
[태평광기太平廣記에서 말하였다. “수隋의 말엽에 독군모督君謨라는 이가 있었다. 눈을 감고도 활을 잘 쏘았는데,
그가 눈에다 조준을 하면 눈에 맞고 입에다 조준을 하면 입에 맞았다. 이때에 왕영지王靈智라는 이가 독군모에게 활쏘기를
배워서 그 묘함이 극진했다. 그리하여 독군모를 죽이고 자기가 명성을 독차지하려 하니, 독군모가 단도短刀 하나를 들고
화살이 날아오는 대로 칼로 끊어 버렸다. 그 가운데 화살 하나만은 독군모가 입을 벌려 받고는 그 촉을 씹고 웃으면서 말하기를
‘네가 3년 동안 배웠지만 화살촉 무는 법은 가르치지 않았다’고 하였다.”]
“맹랑하게도 언사를 빌려서 말의 뿔[馬角]을 이야기하는구나.”
“선정과 지혜를 닦지 않았거늘,
어찌하여 부처를 이루는 것을 의심하지 않습니까?”
“황금 닭은 오로지 새벽을 알리는데,
칠통漆桶에서는 검은빛을 뿜는구나.”
“한 생각이 만년萬年일 때는 어떻습니까?”
“바위 위를 털다가 선인의 옷[仙衣]이 해어졌다.”
“큰 종을 치기 전에는 어떠합니까?”
“대천세계에 음률이 퍼지지 않은 곳이 없지만,
묘하게 그윽한 운치를 머금은 것을 어찌 분별할 수 있으랴?”
“종을 친 뒤에는 어떠합니까?”
“석벽石壁과 산하山河에도 걸림이 없으니,
가림이 없어져서 열린 뒤에는 엿듣는 것을 좋아한다.”
“어떤 것이 서쪽에서 오신 뜻입니까?”
“산과 물이 다함을 찾으나 산은 다함이 없다.”
“대인의 모습[大人相]을 어째서 갖추지 못하는 것입니까?”
“올빼미가 밤중에 새매를 속인다.”
“예전과 지금이 자못 나뉘었으니,
스님께서 은밀한 요체를 가리켜 주십시오.”
“겹겹으로 겹친 혀를 끊어라.”
“어떤 것이 대인大人의 모습입니까?”
“홀딱 발가벗었느니라.”
“화상께서의 두 때[二時] 아침과 낮을 말한다.
는 어떠합니까?”
“머루 넝쿨을 휘어잡고, 지팡이를 끄느니라.”
“어떤 것이 손님 가운데 주인입니까?”
“저자에 들어가서 두 눈동자가 멀었느니라.”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 손님입니까?”
“천자의 수레를 타고 돌아오는 길에 일월의 광명[兩曜]이 새로우니라.”
“어떤 것이 손님 가운데 손님입니까?”
“눈썹을 찡그리면서 흰 구름에 앉는다.”
“어떤 것이 주인 가운데 주인입니까?”
“삼척검[三尺]의 칼날을 갈아서 불평하는 사람을 벤다.”
“어떤 것이 괭이 끝의 뜻입니까?”
“산 앞이 한 조각 푸름이니라.”
“어떤 것이 부처입니까?”
“장림산杖林山 밑의 대[竹] 뿌리 채찍이니라.”
[서역기西域記에서 말하기를 “옛적에 마갈타국摩竭陀國에 바라문이 있었는데, 석가모니부처님의 신장이
장육(丈六:16자)이란 말을 듣고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16자 되는 대 지팡이로 부처님의 신장을 재려 하였으나,
항상 지팡이 높이보다 16자 위로 솟았다. 이리하여 차츰 높아지므로 실제 키를 끝내 재지 못하고 드디어 지팡이를
던지고 가 버렸는데, 그 뿌리에서 대밭<竹林>이 생겨 지금도 울창한 대나무가 산골짜기를 덮고 있다”고 하였다.]
대사는 대송大宋 개보(開寶, 973) 6년 계유癸酉 8월 1일에 법상에 올라 게송을 말하고,
15일에 가부좌를 맺은 상태로 열반하였다. 떠나기 하루 전에 손수 글을 써서 단월들에게 이별을 알리니,
수명은 87세이고 법랍은 59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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