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명현(己卯名賢) 김세필(金世弼) 선생, 고향 소식을 듣고 기쁨에 짓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이번 편에 소개하는 「구절향신 인래 희이부지(久絶鄕信 人來 喜而賦之)」는 오랫동안 고향 소식이 끊기었던 차에 고향에서 사람이 소식을 가지고 왔으므로 그 기쁨을 주체할 수 없어 표현한 글로, 조선전기 문신이자, 기묘명현인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1473~1533)의 작품이다. 이 시는 ’寘‘ 운목의 오언고시(五言古詩) 36구(句)로 이루어진 장문의 한시다.
「구절향신 인래 희이부지(久絶鄕信 人來 喜而賦之)」의 뜻은 "고향 소식이 오랫동안 끊겼는데, 사람이 찾아와 기뻐하며 시를 짓다"로, 『십청헌집(十淸軒集)』 권1(卷之一)에 수록되어 있다. 이 시는 작가가 기묘사화(1519년) 이후 경기도 유춘역(留春驛)으로 장배(杖配)되었던 1520년부터 1522년 그 사이에 지은 것으로 보인다. 오랫동안 소식이 끊겼던 가족의 소식을 들고 찾아온 사람(또는 가족)을 맞이하며 느낀 기쁨, 두려움, 미안함, 그리고 유배 생활의 고단함이 사실적이고 애절하게 표현되어 있다. 조선 시대에 경기도 음죽현(陰竹縣)에 설치되었던 유춘역(留春驛)은 현재의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 선읍리(옛 음죽현 읍치 부근) 및 장호원리 일대에 해당한다.
○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1473~1533) 선생은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이며 조선중기의 문인이자 학자로, 선생이 후학에 끼친 도학(道學)과 정치사상은 이미 정평을 받은 바 있다. 1504년 갑자사화 때에는 거제도에서 2년간 귀양살이를 했고 이후 중종반정부터 관직에 복귀했다가, 1519년 기묘사화 때에는 조광조를 사사한 일을 규탄하다가 유춘역(留春驛)에 장배된 뒤 약 2년간 귀양살이가 끝난 후, 다시는 벼슬에 나가지 않고 충북 음성으로 내려가서 ‘십청헌(十淸軒)’을 짓고 후진을 양성하다가 생을 마쳤다. 선생은 후학들에게 《논어(論語)》 〈학이편(學而篇)〉에 나오는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 즉 '허물이 있으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를 특히 강조하셨다.
○ [기묘명현(己卯名賢) 김세필(金世弼)] 기묘명현 십청헌(十淸軒) 선생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권력에 타협하지 않고 직언을 아끼지 않은 강직한 선비이자, 시대를 앞서간 개방적인 지식인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기묘사화 당시 화를 입은 사림들을 뜻하는 ‘기묘명현(己卯名賢)’ 중 한 사람으로 불리고 있다. 그에 대한 세간의 인물평은 다음과 같이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먼저① 불의와 타협하지 않는 강직한 기개이다. 1519년 기묘사화로 조광조가 사형당하자, 목숨을 걸고 중종의 과오와 조광조 사사의 부당함을 정면으로 규탄하다가 유배를 당했다. 이어 사화의 시대를 견딘 절개다. 연산군 대의 갑자사화와 중종 대의 기묘사화라는 두 번의 큰 사화를 겪으며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정치적 사상과 도학적 신념을 꺾지 않았다.
두 번째② 균형 감각을 갖춘 온건한 개혁가였다. 급진적인 개혁을 추진하던 조광조의 강직함을 우려하여, 생전에 개혁의 완급을 조절할 것을 충고하는 등 현실을 냉철하게 바라보는 균형 감각을 지녔다. 그리고 "과즉물탄개(過則勿憚改)"의 정신이다. "허물이 있다면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라는 공자의 말을 신념으로 삼아, 스스로 성찰하고 잘못을 바로잡는 합리적인 태도를 중시했다.
세 번째③ 학문적 깊이는 물론 개방적인 지식인이었다. 성리학 중심의 조선 사회에서 명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왕수인의 《전습록(傳習錄)》을 국내로 최초 반입하여 소개하는 등 경학뿐만 아니라 양명학에도 깊은 조예가 있었다. 그리고 말년에는 벼슬길에 미련을 버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십청헌을 짓고 후학을 교육하는 데 전념하여 학문적 명망이 매우 높았다.
○ 십청헌(十淸軒) 김세필(金世弼 1473~1533) 선생은 본관은 경주, 자는 공석(公碩), 호는 십청헌(十淸軒)이며 조선중기의 문인이자 학자로, 선생이 후학에 끼친 도학(道學)과 정치사상은 이미 정평을 받은 바 있다. 선생은 사화 분쟁의 시기의 재신(宰臣)으로 두 번의 유배를 당했다. 첫 번째가 폐비윤씨의 묘소문제에 반대했다는 이유로 갑자사화에 연류되어 거제도로 찬축(竄逐)되어 2년간 귀양살이를 했고, 두 번째는 1520년 9월 조광조의 사사가 지나쳤다는 주장으로 유춘역(留春驛, 경기도 이천)으로 장배(杖配)되었다. 이로부터 1519년(중종 14) 기묘사화 때 화를 입은 사림들을 가리키는 기묘명현(己卯名賢)의 한 분으로 불린다. 1522년 풀려났으나 고향으로 내려가 십청헌을 짓고 후진을 교육하였다. 이로써 학문 연구와 후학 양성의 공로를 인정받아 사림(士林)의 추중(推重)을 받기에 이르렀다.
**「구절향신 인래 희이부지(久絶鄕信 人來 喜而賦之)」** / 김세필(金世弼 1473~1533)
遠鄕音書阻 멀리 고향집 소식이 끊겼더니
秋來能幾字 가을이 오도록 겨우 몇 글자나 받아보았나.
昨宵燈火喜 어젯밤 등불의 심지가 돋아 기쁘더니 (좋은 징조가 있더니)
今夕家人至 오늘 저녁에 집안사람이 이르렀구나.
初欣推枕起 처음엔 기뻐서 베개를 밀치고 일어났다가
復畏道何事 다시금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말할까 두려워지네.
茫如鉗在口 아득하여 마치 입에 재갈이 물린 듯했다가
久乃問童稚 이윽고 오랜만에 어린아이들의 안부를 묻는다.
兩地幸無𧏮 두 곳(고향과 이곳) 모두 다행히 아무 탈이 없고
誰能論別離 이별의 아픔을 그 누가 다 말할 수 있으랴.
唯憐小兒癡 오직 어린 자식의 어리석음이 가련하니
不識父子類 아비와 자식의 정조차 제대로 알지 못하네.
綢繆忘再三 얼싸안고 다독이며 몇 번이고 잊지 못하다가
瘦臉泫老淚 파리한 뺨 위로 늙은이의 눈물이 흘러내린다.
徐徐及桑麻 천천히 농사일(뽕나무와 삼) 이야기로 옮겨가고
存沒更隣比 이웃집 누구는 살고 누구는 죽었는지 다시 묻는다.
听然時啓齒 싱긋이 때로는 웃음 띠며 입을 열다가도
默爾或酸鼻 잠잠히 어느새 코끝이 시려오기도 하네.
所喜秋月獲 가장 기쁜 것은 가을철 수확을 한 것이니
病妻免拾穗 병든 아내가 이삭 줍는 고생은 면했겠구나.
蕩分自流離 신세가 기울어 스스로 떠돌아다니지만
厚德荷天地 천지의 두터운 은혜를 입고 있도다.
亦知前日禍 또한 지난날 입은 화(재앙)도 알겠으니
諒非人所致 진실로 사람이 만든 것은 아니리라. (천명이라 생각하노라.)
小兒祝汝健 작은 아들아, 네가 건강하길 빌 뿐이니
狂走不顚躓 미친 듯이 뛰놀아도 넘어지거나 자빠지지 마라.
大兒且勤書 큰 아들은 또한 글 읽기에 힘쓰고
愼勿浪遊戲 부디 헛되이 놀러 다니지 마라.
可念兩丱女 생각하면 안타까운 두 단발머리 딸아이들
婉娩雙眉翠 부드럽고 온화한 얼굴에 고운 눈썹 푸르렀지.
平生最難忘 평생토록 가장 잊지 못하는 것은
送爺不仰視 아비를 떠나보낼 때 (울음 참느라)차마 고개들고 보지못하던 모습이라네.
百感集胸臆 온갖 감정이 가슴속에 몰려드니
未足發一喟 한 번 한숨 쉬는 것만으로는 다 풀어낼 수 없구나.
聊以暢吾懷 애오라지 내 마음을 시로써 달래어 보나
浮雲不可寄 떠가는 저 구름에는 마음을 기탁해 보낼 수가 없네.
○ 내용인즉, 김세필은 조광조 등과 함께 사림파의 주역으로 활동하다가 기묘사화 때 화를 입고 유배되거나 관직에서 물러났다. 이 시는 당시 고향에 가족들을 두고 홀로 기거하며 가족을 그리워하는 절절한 심정을 담고 있다. 첫 구절에 소식이 오자마자 기쁜 마음에 베개를 밀치고 일어났다가도, 혹시 고향에 무슨 나쁜 일(부고나 처벌 등)이 생겼을까 봐 문득 두려워 입이 떨어지지 않는 장면은 유배객이 느끼는 현실적인 공포와 긴장감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이어 가족에 대한 절절한 사랑을 그려냈다. 자신이 곁에 없어 고생하며 가을철에 이삭을 주워 연명해야 했을 아내가 이번 수확으로 굶주림을 면했을까 걱정하는 남편의 마음이 돋보인다. 또 철없이 뛰노는 작은 아들, 공부에 힘써야 할 큰아들에게 멀리서 훈계를 전한다. 특히 시의 하이라이트는 아비를 떠나보낼 때 눈물을 감추느라 고개를 들지 못했던 딸아이들의 모습이다. 이 장면은 시간이 흘러도 선비의 가슴속에 지워지지 않는 가장 큰 아픔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달관과 수용을 담담히 그려냈다. 마지막 부분에서 작가는 자신이 겪은 정치적 파란과 고난('前日禍')을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지 않고, 천명으로 받아들이며 담담하게 마음을 다잡으려 노력했다. 그러나 결국 밀려드는 그리움과 슬픔은 한 번의 한숨으로 다해지지 않아, 떠가는 구름을 보며 시로 마음을 달랬다. 선비로서의 의연함 속에 감추어진, 한 가정의 가장이자 아버지로서의 인간적인 고뇌와 슬픔이 매우 사실적인 필체로 그려진 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