異端의 追憶 #77, 편지 한통-정화에게
히스기야의 편지(이단의 추억 #55, 히스기야와 돈까스, #56, 주학목장의 밤)를 발견했던 예의 그 잡동사니 가방 속에서 또 다른 편지 한통을 발견했다. 아마 제대 말년에 발송한 편지 같은데 사무실에 있던 군 타자기로 타이핑을 하면서 먹지를 끼워 부본 한통을 남겼던것 같다. 수신자인 그녀의 명명은 헤스톤이었고 부산의 명문 경남여고에 재학중일때 내가 담당했던 주학교회(이단의 추억 #22, 주학교회)의 예쁘고 착했던 여고생 신도였다.
이 편지를 받을 즈음에는 아마도 서울에서 명문 숙명여대에 재학중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비록 서울의 용산 '수원정'에서 세칭 동방교에의 깊은 회의를 감당하지 못하고 줄행랑을 쳤지만 떠나온 집단에 대한 향수라고 할까, 그리고 지금껏 좁은길(세칭 동방교)을 참길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 제자(?)들에 대한 한줄기 연민 때문에 고민하던 당시의 모습을 떠 올릴 수 있어 자못 감회가 어린다. 그리고 해괴한 짓을 하면서도 수치를 모르는 천박함이었다. 이제 잡동사니 가방속의 편지들을 중심으로 차례차례 그 시절을 회상해보고져 한다.
☆
정화에게.
군복을 입고 처음이자 마지막일것 같은 몇자를 너에게 써보낸다.
이편지가 어쩌면 너의 손에 들어가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문스러움과 함께. . .
김O O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씨나락이라는 회보를 받아들고 언뜻 기억나는 너의 이름을 보고 그 글을 읽으면서 내 입과 귀에 익은 듯한 어휘들이 이제는 벌써 아련해져가는 옛날에의 회상을 불러 일으켜 주는구나.
문득, 지난 세월을 반추해보는 병사의 마음에는 너와 이마를 맞대고 너무나 높은 이상만을 논하고 추구하던 주학에서의 옛일이 떠오른다.
진흙탕 바닥속에서 허덕이던 자신은 잊어 버린채 아득한 하늘위에라도 솟아난 양, 허공을 움켜 잡았던 분수 모르던 부산스러움이,
숱한 시간들이 흘러간 지금,
고차원의 이상보다는 차라리 이 씁스레한 20세기 현실을 직시해야겠다는 차가운 냉정만이 이제 제대를 며칠 앞둔 병사의 가슴속에 어떤 신념으로 굳게 자리잡음은 누구나 가지는 생존에의 고뇌인가 보다하고 결론짓는다.
찬란한 슬픔과 영광으로 이어진,
내 존경을 아낌없이 바쳤던 그분의 발자취,
아름다운 영상, 빛나는 언어들이 귓가에 생생한데...
이제 푸른 군복을 벗는다.
내 짧은 생애중에서 가장 정확하게 마쳐 놓은 병역의 의무, 끝맺음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이제야 말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해야 된다는 어떤 중압감을 느낀다.
그동안 책자와 서신들 보내주신 김O O 선생님께 감사를 드리면서 이제 곧 제대를 하게 되니까 더 이상 부대로 책자나 서신이 부쳐지지 않도록 너가 조치를 취해주었으면 좋겠다. 조금 까다로운 부대니까.
김선생님을 위시해서 어르신까지 일일이 인사를 드리고 싶은 마음 간절하다만은 계시는 곳 모르고 소식 없으니 어쩔수 없구나.
혹시 기회있거든 나의 인사를 대신 전해주면 고맙겠다.
너의 가는 길에서, 그리고 내가 가는 길에서 모두가 반가운 재회를 나눌 수 있는 먼 합류점을 가늠해보자.
생활속에 스며드는 신의와 향기 가득하기를 빌면서 이만 필을 놓는다.
제대를 며칠 앞두고...
☆
정화(가명)는 그후 세칭 동방교를 떠나서 목회자의 부인이 되었다는 어렴풋한 소식을 들었다. 이 서신을 받았던 본인은 아마도 나를 기억하고도 남으리라, 이글 접하게 되는날이 올 수 있을까...
보고 싶은 정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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