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이 산다는 것 ( 동거와 별거)
“ 이럴꺼면 같이 사는 의미가 없는 것 같아요. 숨도 쉴 수가 없고 남편은 하고 싶은 대로 해요. 집을 사는 것도 자기 마음대로 하고 의논하는 법이 없어요.( 아내) 돈이 여의롭지 못해 새로 분양하는 좋은 집을 마련할 수 없어서 얼마간은 고생 조금만 더 하다가 집을 마련 하려고, 지금 나온 집이 좋은 집은 아니지만 한번 같이 가서 보자고 해도 안 오더라고요. 할 수 없이 혼자 결정하고 계약한 거예요. 그런데 아내는 매사에 제가 혼자 결정한다고 화를 내는데 자기가 원하는 게 아니면 혼자서 마음대로 한다고 저를 취급해 버리는 거예요. (남편).”
우리가 같이 산다는 것이 무엇일까? 왜 결혼하고 싸우는 건가? 부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한번 생각해 보자. 결혼에 대한 기대는 무엇일까? 외로워서,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어서, 아니면 나의 다음 세대를 낳아서 같이 기르는 부모로서 역할에 대한 것 등등 여러 이유가 있겠다. 남들이 결혼하면 나도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부러워하는 이들을 본다. 그러면 연애 감정보다 더 깊고 진한 결혼이라는 의미가 상징하는 것이 인간에게는 있다. 하나로의 결합, 완전체의 느낌. 사람마다 다르지만, 결혼을 통해 자신의 인생에 완전한 균형을 기대한다.
언젠가부터 시작된 인간의 합일 감. 나를 아껴주고 사랑하며 나와 같고 나의 편이라는 둘이 하나라는 전체적인 느낌에 대한 상상(이데아)이 되어 있다. 이러한 결혼에 대한 이상은 솔직하게 처음부터 달랐고 같을 수 없는 조각들로 결혼이라는 상상 속 합일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 속에서도 신들의 합일은 없었고 각자의 고유한 영역이 존재한 것처럼 인간도 각자의 역할 영역과 각 개인의 카르마가 존재 했지만, 사랑이라는 강렬한 감정이 그 벽을 허물었는지도 모른다. 사랑의 착각, 묘약은 오해라는 부작용을 가지고 갈등은 시작되었다.
결혼하여 사는 부부들을 보면 같은 상황, 같은 대화에서 해석이 너무나 다르다. 어떻게 그렇게 까지 다르게 해석할까, 싶다. 위의 사례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집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나는 이래서 싫으니 다른 집을 같이 찾아보거나 의견을 말한 사람에게 대안도 제언 해 보게 해야 하건만,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지도 않고 상대가 하는 행동에 대해 평가만 하고 있다. 오지 않으면 오지 않을 때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상대의 의견도 물었어야 한다. 안 오니 내가 알아서는 독단적이라는 결과를 낳고 의견을 제언하지 않으므로 참여하지 않는 회피 태도는 의사가 없는 사람으로 무시된다. 이후 서로 원망해도 두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다. 서로 의사소통의 문제는 물질적이든 정신적이든 심각한 결과로 나온다. 서로 손해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말 안 하고 참으면 문제가 해결된다는 건 착각이다. 말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는 불편한 마음이 남아 있고 상대방에게는 내 말을 무시한다는 불쾌감으로 서로 멀어져 가는 것이다.
얼마 전 결혼한 지 3~4년 만에 각방을 쓰면서 대화 기회가 사라지자. 각자 자신의 힘= 즉 수입이나 자신의 경제적인 능력 정도로 의사결정을 하는 것을 보면서 부부와 동거인이 무엇이 다를까? 결혼이 별거 같은 생활이다. 우리가 정의를 내리는 결혼의 형태는 어디로 가고 많은 부부들이 동거를 한다. 결혼= 별거 같은 생활이다. 그저 생활 공동체인 것이다. 각자 자신이 타인과의 소통에 대해 테스트해 보자. 먼저 상대에게 자신의 고민이 있다고 한다.
첫째 고민을 적극적으로 말을 하게 하는지
둘째 자신이 말한 고민에 상대가 자신의 의견을 끼워 넣지 않고 듣는지
셋째 잘되고 못된 것을 가리려 하는지 등을 보자.
대화는 온전한 상대의 말을 수용하고 이해한 다음에 대화가 시작된다.
듣지 않으면 절대로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다. 단지 짐작할 뿐이다.